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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5화 (25/218)

25화. 마스크를 쓴 이유

“..... 그래. 여기는 무슨 일이지?”

말도 없이 말이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황제를 보며 대공은 즐겁게 웃었다.

그는 몇 년 만에 생긴 황제를 놀릴 수 있는 기회에 만족스러웠다.

“편지를 보냈었는데 늦게 도착하였나 봅니다. 저번 황녀전하의 허락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

세린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왔다.

칭찬을 해준 리사에게 감사인사도 해야 했고 도망치듯 사라졌던 일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했다.

서둘러 황제의 품에서 내린 세린이 제이와 리사에게 다가갔다.

조금 머뭇거리는 것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저기...”

제이는 세린의 모습에 빙긋 웃었고 리사는 두 눈을 격하게 반짝였다.

‘여전히 예뻐!!’

세린은 레이스로 짜여진 마스크를 쓴 리사를 바라보며 조금 민망한 모습으로 말했다.

“치.. 칭찬해준 거 고마워!”

제이는 그런 세린의 모습이 귀여워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의 무례를 용서해주서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

제 오빠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리사였다.

세린은 동그란 눈을 굴려 물어보았다.

“저기... 리사공녀는 왜 마스크를...”

“아...”

난처한 대답은 제이에게서 나왔다.

“조금 사정이 있어서요.”

“..?”

불과 몇 시간 전.

스페라도 대공가에서는 또 리사와 대공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아버지! 황녀전하께 나도 갈래요!!!”

“생선같이 못생긴 아비랑 같이 가면 네 품격이 떨어질까 무섭구나. 집에 있도록”

“싫어요!!! 아버지 못생겼다고 안 할게요!!”

“이런, 네게 거짓말을 시킬 수 없지.”

“이이익!! 아버지 속이 너무 좁아요!!”

“어쩔 수 없구나. 이 아비가 얼굴도 못생기고 속도 좁은 것 같아서.”

두 부녀의 대화가 그리도 웃길 수 없었다.

“얌전히 있을게요! 무례한 일도 안 할게요!!”

“.... 흠 어찌한다....”

대공의 눈이 즐겁게 번뜩였다.

리사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과 동시에 대공은 무언가를 제의했고 리사는 굳은 얼굴로 수긍하며 결국 함께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

그 제의는...

‘입만 열면 나오는 단어들이 상상을 초월하여 내 불안하니... 황녀전하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

리사는 그렇게 개방적인 입이 봉인되었다.

의사전달을 위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며 표현하는 길 말고는 없어 리사는 갑갑했다.

저 귀엽고 예쁜 황녀님께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더욱 입이 간지러웠다.

제이는 다정한 눈으로 그런 리사를 바라보았고 세린은 그런 남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세린은 황급히 황제를 바라보며 머뭇머뭇 물었다.

“아.. 아빠 저기... 공자 공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을까요..?”

사랑스런 딸의 부탁에 불가는 없었다.

황제는 다정히 웃으며 그러렴 하고 말했고 쓴 입안을 다시며 냉정하게 대공을 바라보았다.

“이거... 실수로 황녀전하와의 시간을 방해하였군요.”

“그대의 실수는 항상 그랬지.”

황제의 기분은 매우 하락했고 세린의 기분은 위로 올라갔다.

대공은 그저 황제의 반응을 즐거워하며 웃을 뿐이었다.

황제는 대공의 그런 미소가 그리도 얄미웠지만 세린의 앞에서 티를 낼 수 없어서 그저 웃었다.

“세린, 가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오너라.”

“네! 아빠 고마워요!”

밝은 그 웃음이 너무도 어여뻐서 황제는 꿍해지는 마음을 풀고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나 정면을 바라보자마자 자신을 비웃는 대공에 의해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황제가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안 세린은 공자와 공녀와 함께 정원으로 이동했다.

태양궁 정원의 티 테이블에 앉은 세린과 일행에게 인사를 한 시종과 시녀들은 달콤한 케이크와 과자를 테이블 위에 올렸고 우유와 설탕을 넣은 홍차 등을 올려 준비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리사는 마스크를 착용하며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음... 공녀?”

“읍?”

대답이 나올까봐 서둘러 두 손으로 입가를 막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리사의 모습에 세린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제이는 그런 세린의 밝은 모습에 옅은 홍조가 생겼다.

언제 보아도 사랑스러운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생각을 하던 리사도 입을 막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목소리를 참았다.

세린은 웃음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말했다.

“공녀... 비밀로 할테니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

고개를 저으며 눈을 돌린 리사는 시무룩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건 이제는 자존심 싸움이었다.

리사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아버지한테 질 수 없지...’

그 고집 있는 모습에 세린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리사의 입을 열 수 있을까...?

세린은 고민을 하다가 손바닥으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명령!”

제이와 리사는 눈을 크게 뜨고 세린을 보았다.

세린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누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을 때 명령이라고 하면 다 들어줄 것이라고 했어요! 리사공녀 예쁜 목소리로 같이 이야기를 나눠요! 명령이에요!”

“....... 으으으”

세린의 미소에 부들부들 떨던 리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귀여워어어어!!!!!!!! 아버지는 바보야!!!!! 이건 내가 진 게 아니라 황녀님의 부탁 아닌 부탁으로 말 한 거니까 내가 이긴 거야!!!!!”

제이는 눈썹을 간지럽히는 단정한 백발을 쓸어 올리며 여동생의 폭주를 지켜봤다.

생각보다 더 웃겨서 입가를 막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세린은 리사의 그 모습에 같이 웃음 지으며 키득 거렸고 여전히 투덜거리는 리사의 사이에서 제이와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이 아름답게 휘어지며 제이의 얼굴이 화사해졌다.

미미하게 담긴 눈가의 웃음이 그토록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세린은 제이의 눈을 살짝 피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제이공자는...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아름다운 푸른 눈부터 하얀 백발은 리사와 똑같았지만 둘은 외모가 많이 달랐다.

리사가 조금 더 대공을 많이 닮아 날카로운 인상의 예쁜 소녀 같다면 친모를 닮았는지 제이는 매우 달콤하게 예뻤다.

화사하고 섬세한 이목구비에 저 웃음을 지으니 너무 예뻐서 놀랐다.

세린의 핑크빛 볼에 붉은 기운이 더 감돌았고 세린은 열을 식히기 위해 다급히 말했다.

“리, 리사공녀 여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에요! 맛이 어떤지 먹어봐요!”

“취향마저 귀여우시네요!! 제가 다 먹어드리겠습니다!”

“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리사의 현란한 포크질에 세린이 정신을 못 차리자 제이가 다급히 리사의 손목을 잡았다.

“리사. 어머니께 배운 예법을 지키면서 먹어야지.”

리사는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다 천천히 부드럽게 포크를 사용하여 케이크를 먹었고 세린은 다정하게 웃었다.

리사는 참 귀여운 아이였다.

제이는 리사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세린을 관찰했다.

보고 또 봐도 신기할 정도로 생기가 넘쳤고 분홍빛 머리카락과 연두빛 눈동자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저 다정함은 본래 가지고 있는 성격 같았다.

제이는 이내 살짝 붉어진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황성에 자주 오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제이였지만 리사의 폭주가 무서워 그냥 참기로 했다.

하늘은 맑았고 세린은 밝았다.

세린에게 친구가 생긴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늦은 점심, 이엔은 연무장 밖 의자에 앉아 반쯤 죽어가고 있었다.

트레일이 말한 지옥훈련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아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정말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체력이 바닥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에게 제공된 밥이 맛있어서 그 힘든 마음을 조금 위로할 수 있었다.

이엔은 덥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렸다.

반듯한 눈썹 밑의 깊은 눈매는 끝이 살짝 올라가 있어서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고 반듯한 코와 연한 분홍빛이 도는 도톰한 입술이 눈매와 잘 어울렸다.

이엔은 시선을 위로 돌려 금빛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더 황궁생활이 어려울 것 같지만 마탑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이엔의 어깨가 다가온 그림자로 인해 살며시 그늘졌다.

이엔은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다가온 인영을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을 놀라게 한 상대가 더 놀란 눈이라 당혹감이 몰려오는 것도 잠시... 그 그림자의 주인에 이엔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세린이었다.

“안녕!”

“...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하얀 레이스가 가득한 귀여운 드레스을 입고 있는 황녀는 그 분홍색의 홍조가 가득한 두 볼을 하고 방긋 웃었다.

“훈련은 많이 힘들었어?”

“.... 아닙니다....”

슬그머니 눈을 돌려 바닥을 바라보았다.

여자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던지라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 이엔을 바라본 세린은 주섬주섬 멜의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어 이엔에게 건네주었다.

영문을 몰라 얌전히 상자를 받으니 부피에 비해 조금 가벼웠다.

세린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타르트라고 알아?”

“... 모릅니다.”

“정말 정말 맛있는 간식이야! 힘든 날에는 단 것을 먹으면 위로가 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래서...”

이엔은 상자를 한 번, 다시 시선을 돌려 세린을 한 번 바라보았다.

자신의 가슴에 닿을 듯 안 닿을 듯 작은 소녀가 준 첫 선물은 이엔의 마음을 타르트보다 달콤하게 만들었다.

세린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다가 다짐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 힘내!!”

“네...?”

“1기사단에서 하는 훈련은 힘들 것이라고 들었지만... 저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어서... 힘내!”

제국의 황녀가 고작 기사도 아닌 황궁에 갑자기 굴러 들어온 자신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말인가.

이엔은 다정한 세린의 마음에 떨리면서도 동시에 두려워졌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줄 아는 것이 사람이었다.

자신도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세린의 관심과 다정함이 걱정이 되었다.

선물을 거절하려 걸음을 한 발 옮긴 이엔은 지옥훈련으로 인해 후들거리는 다리가 비틀거렸고 동시에 세린의 품에 쓰러지듯이 넘어졌다.

쿠당탕!!

“황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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