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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4화 (24/218)

24화. 지옥훈련의 시작

로레인은 나직이 말했다.

“네가 그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내가 판단하기 전까지 넌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움직여야겠지.”

손을 뻗은 로레인은 부목으로 고정한 이엔의 팔을 잡은 후 마력을 사용하여 상처를 치료했다.

그리고 붉은 원형의 문양이 그의 손목에 새겨졌다.

“이건 내가 새긴 인장이다. 이 인장을 통해 난 네 행동을 관찰할 수 있고 네 위치를 알 수 있어. 원한다면...”

“.....”

“네 몸을 터트리는 것도 아주 간단한 일이야.”

“.....”

“하지만 난 그 상황에서 네 두 손만 날려버릴 거야. 그럼 죽지 않겠지만... 평생 손 없이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겠지.”

로레인은 잔인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알아서 조심하면서 살아.”

그 말을 끝으로 로레인은 일어났다.

당황하며 같이 일어나는 이엔을 향해 “넌 내일부터 일과를 시작해“ 라고 날카롭게 말한 후 그대로 사라졌다.

이엔은 가만히 서서 그가 없어진 자리를 바라보았고 다시 천천히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몸을 터트릴 수 있을 정도의 인장이 새겨졌지만 스스로가 안전해졌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그 두려움과 안도감이 섞인 미묘한 감정에 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이제 자신은 그 끔찍한 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억지로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

그게 대가라면 누군가를 위해 써질 방패로 키워진고 하더라도 만족한다고... 그리 생각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이엔의 뒷모습은 조금 쓸쓸해보였다.

다음 날 아침은 금방 밝아졌다.

그러나 트레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어둠술사를 로레인만큼 경멸하는 트레일의 기사단 앞으로 찾아온 이엔으로 인해.

이엔을 데리고온 로레인은 무감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중에 세린의 기사로 쓸거야. 그 때까지 이 애의 실력을 키워놔.”

“형님... 근신 풀리고 이제야 겨우 훈련에 참여하려는데... 갑자기 다짜고짜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말하자면 길겠지. 하지만 아버지와도 상의가 끝났다. 검술은 네가 제일 전문이니 잘 가르칠 것이라 믿어.”

“형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라...”

“궁금하거든 점심에 내 연구실로 오도록.”

그 말을 끝으로 로레인은 개인 연구실로 이동했다.

트레일은 기분이 나쁜 티를 팍팍 내는 로레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려 이엔을 바라보았다.

“너도 참... 힘들겠다.”

저 형한테 한 번 잘못 찍히면 당분간 고생할텐데....

인상을 왈칵 구기며 분홍머리를 뒤로 넘긴 트레일은 멀뚱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엔을 바라보다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후... 그래. 형님도 생각이 있겠지... 그럼... 꼬맹이”

“이엔입니다”

“... 그래 꼬맹이. 먼저 네 체력을 알아봐야겠다.”

화를 눌러 참는 표정으로 연무장을 한 바퀴 돌고 오라 명한 트레일은 서둘러 돌고 온 이엔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다가 다른 여러 가지 체력검사를 실시했다.

검사가 끝나고도 만족하지 못한 트레일은 목검을 건네준 후 검을 휘둘러보라고 시켰고 그 후부터 쭉 트레일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엔은 그의 앞에 서서 조금씩 눈치를 보았다.

트레일은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능이 엄청나네....’

키우는 재미는 있겠으나 저 아이의 무엇을 믿고 검술을 알려줄지 고민이 되었다.

어린 짐승에게 최고의 사냥법을 알려주면 제 주인도 사냥할 수 있다.

몰론 아버지가 허락했다면야 어쩔 수 없어서라도 알려주겠지만 생각보다 불안함이 먼저 들었다.

이 애를 세린의 옆에 방패로...?

그런 이유라면 이 애를 잘 키워 높은 경지로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지만 그 결정이 조금이라도 세린을 위험하게 할지도 몰라 걱정이 들었다.

뭘 믿고?

어둠술사를 믿을 수 없는데.

점점 날카로워지는 트레일의 기세에 이엔은 조금 어깨를 떨었다.

자신의 팔을 간단하게 부러트릴 정도의 악력을 몸이 기억했다.

그로부터 살벌한 침묵이 몇 분이었다.

그 침묵을 깨트린 건 연무장과 어울리지 않은 귀여운 음성이었다.

“트레일 오빠~~!”

그 가녀린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고개가 돌아간 트레일은 아까의 무서운 표정이 사라지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오는 작은 인영을 향해 달려갔다.

“세린~~~~~~!!!”

양 팔을 넓게 벌리고 달려가는 모습에서 이전의 살벌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엔은 그 모습에 당황하며 그를 저렇게 다정하게 만든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세린이라면... 내가 지켜야하는 사람...?’

고개를 돌려 그 주인을 바라보자마자 이엔은 굳어버렸다.

봄꽃처럼 화사하고 풍성한 분홍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에 잘 어울리는 빨간색 리본.

싱그러운 새싹 같은 연두색의 큰 눈망울이 아름답게 반짝였고 오밀조밀 귀여운 입술은 핑크빛이 돌았다.

볼록한 두 볼에 올라온 옅은 홍조가 그리도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하얀 레이스로 이루어진 풍성한 드레스차림의 작디작은 소녀는 두 팔을 벌려 달려오는 트레일을 향해 작고 앙증맞은 손을 뻗었고 안정적으로 그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꺄르르 웃는 그 얼굴의 미소가 너무도 빛이 나서 이엔은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트레일은 세린을 품에 안아주며 말했다.

“오빠 보러 온 거야??! 너무 감동이야!”

“오빠 근신이 풀렸다고 해서 얼굴 보러 왔어요...!”

“으으으으...!!!!!!! 세린 너무 귀여워..!!!”

“하하하하하 간지러워요!!”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개구지게 웃은 트레일은 사랑스러운 세린의 말에 그녀의 목에 얼굴을 부비며 간지럽혔다.

꺄르르 웃으며 즐거워하는 세린의 모습이 귀여워 주변의 기사들도 흐믈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기사단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세린을 기사단들도 좋아했었다.

이엔은 여전히 세린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린의 눈과 이엔의 금빛 눈동자가 마주쳤고

놀란 토끼눈으로 변한 세린이 다급히 트레일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트레일이 천천히 내려주자 세린은 트레일의 다리 뒤에 서서 이엔을 관찰했다.

“오빠... 저 아이는 왜 여기 있어요?”

“음? 아... 음... 기사가 될 거라서!”

“기사요??”

“응... 아마?? 기사가 되어서 우리 제국을 지켜주는 일을 해준다고 하네!”

‘내가 언제...’ 트레일의 말에 어이가 없어진 이엔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수긍했다.

지키는 것은 맞으니까.

세린은 그 말을 듣자 표정이 밝아졌다.

“그랬구나!”

“...... 네?”

“정말 다행이야!”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세린의 모습에 이엔은 굳어버렸다.

왜 다행인거지?

그의 당황을 모르고 세린은 이어 말했다.

“계속 감옥에 있을까봐 걱정 많이 했었어...”

“.....”

트레일은 억지로 웃었다.

꼬맹이를 걱정????

거어어어억저어어어엉??????

세린의 관심이 이엔에게로 쏠리는 것이 여간 속이 뒤집히는 게 아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라갔다.

그런 트레일을 모르고 세린은 사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훈련 열심히 해서 꼭 멋진 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줍게 하는 그 인사에 이엔은 바위마냥 굳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 이엔의 몸짓이 웃겼는지 고사리 같은 작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키득키득 웃는 세린이었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흐믈흐믈 거리는 트레일은 로레인을 만나러 가겠다며 세린이 뒤돌아 완전히 떠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세린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이엔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린이 사라진 후 트레일은 이엔을 향해 몸을 천천히 돌렸다.

그 느린 동작이 두려워진 이엔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트레일의 표정이 사냥을 준비하는 맹견 같았고 그의 입에서 나온 살벌한 말은 이엔을 두렵게 만들었다.

“넌 이제부터 매일 지옥훈련이다. 지옥이 무엇인지 잘 알게 해주지.”

“......”

이엔의 일생에서 최대 위기일지도 몰랐다.

세린은 밝은 표정으로 로레인의 궁을 향해 걸었다.

그러면서 아까 전의 금빛 눈동자가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었다. 그 어린아이가 감옥에서 계속 지내야 할까봐 걱정이 가득했던 참이었다.

아직 작은 아이일 뿐인데 어둠술사라는 이유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냉정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 또 한 가지고 있던 편견이었다.

어둠술사가 사용하는 고유 능력의 무서움을 알기에 더욱 그 아이가 무섭고 두려웠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마른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이 겹쳐 보였다.

‘저 아이에게도 가족이 있을 텐데...’

그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제국의 기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그 아이에게 생겨서 다행이라는 마음도 생겼다.

더 이상 죄인으로 황성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니까.

아빠와 오빠들이 그 아이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곳에서 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린이 생각에 잠겼을 때 누군가 조용히 세린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안아 올렸다.

“아빠!”

“어디를 그리 급히 가는 것이냐.”

황제였다.

황제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위로 넘긴 깔끔한 모습으로 검은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서부터 다리까지 내려오는 긴 붉은 망토가 참 잘 어울린다고 세린은 생각했다.

그런 황제를 바라본 세린은 밝은 모습으로 말했다.

“레인오빠한테 가려고 했어요.”

황제는 사랑스런 딸을 기특하게 바라보며 다정히 웃었다.

“그럼 로레인에게 가기 전에 나와 티타임을 가지는 것은 어떠냐.”

“우와... 좋아요!”

“네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준비해달라고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너무 좋다며 밝게 웃는 얼굴로 세린은 황제의 품에 안겨 태양 궁으로 향했다.

태양궁 입구에 들어서자 익숙한 그림자가 보여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바로 스페라도 대공과 제이 스페라도, 그리고 리사 스페라도였다.

황제의 눈이 일그러진 것과 동시에 세린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아인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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