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세린의 방패
“....”
아이의 얼굴에는 지독한 고통이 떠올랐다.
테오는 그 아이를 보며 아무 감정 없이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뭐 이야기는 쉽겠지... 마탑의 정보와 네가 알고 있는 어둠술사들의 정보 말이다.”
“......”
그리고 테오는 자연스럽게 “로레인” 하며 동생의 이름을 불렀고 로레인이 테오 옆 허공에 나타나 땅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아이는 눈을 올려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테오가 날카롭고 강해보이는 아름다움이라면 한쪽은 꽃이나 보석 같은 화사한 아름다움이었다.
로레인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작은 아이를 바라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이 일에 나를 관여시키면 형님이 후회할 것 같군요.”
“후회하지 않아. 저 애의 진실을 알고 싶은데... 네가 필요 하구나.”
“형님.”
로레인은 세린과 함께 였을 때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살벌한 표정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당장에 죽일 것 같은 기세를 풀풀 풍기며.
“전 어둠술사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다고... 예전에 말했었지요.”
아이는 마른 입안에서 침을 삼켰다.
저 얼굴은 진심이었고 저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세도 피부를 찢을 듯 날카로웠기에.
“그 상대가 아이라고해서 못 죽이지 않아요.”
테오는 로레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말했다.
“세린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
“세린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저 아이의 능력이 우리황성에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흉흉한 기운을 내리고 짙은 분노를 일렁이며 테오를 바라본 로레인은 한숨을 쉬었다.
“후.... 저 아이의 능력으로 뭘 할 수 있나요...”
테오는 로레인의 어깨를 다시 두드려주며 말했다.
“저주를 푸는 방도를 찾는 것이지.”
“.......”
“어머니가 했던 희생 같은 방법은 필요 없다. 확실하게 저주를 푸는 방도를 연구해.”
“.....”
“어떠냐.”
로레인은 깊은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좋습니다.”
그리고 로레인은 구역질이 날 것 같은 표정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은 로레인은 두 눈을 감고 손에서부터 마력을 움직였다.
파앗!!
거대한 빛 소용돌이와 함께 아이는 정신을 잃었고 로레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을 읽는 마법.
그 마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마력이 필요하였고 그 방대한 마력을 얻은 자는 '대마법사'라고 불렸다.
로레인은 18살의 나이에 '대마법사'의 칭호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을 가진 마법사였다.
황제가 제의한 그 칭호를 거절하며 평범하게 궁에서 저주에 대해 연구를 하는 것을 원한 그는 지금도 저주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
어둠술사들은 대부분 몰살당하여 저주에 대해 알아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로레인에게 이 아이는 어쩌면 연구의 중요한 매개체가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그가 바라본 기억을 테오에게 전달했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아이군요. 운이 나빠 5살 정도 되었을 때 마탑에게 잡혀 마탑 지하부근에 있는 생체실험실에서 여러 고문을 겪은 것 같아요. 어둠술사로써의 능력을 사용시켜 여러 마을을 피바다로 만든 전적이 있네요.”
“아이가 순순히 하던가?”
“목덜미 뒤쪽에 마력으로 인장을 남겼습니다. 마법사가 원할 때 언제든지 인장을 폭탄처럼 터트릴 수 있는 것 같군요.”
“흠... 터지는 범위는?”
“아이의 목에서부터 머리만 터트릴 범위입니다.”
“트레일에게는 왜 간 것이지?”
“마법사를 피해 그림자 속으로 숨어 마탑을 빠져나왔고 빠져나오며 트레일이 도적을 토벌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트레일의 검솜씨를 보니 기사이며 강해보이는 사람이라 도움을 요청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군요.”
“그래서 다가간 것이고...”
“그렇게 트레일에게 양 팔이 부러지고 목 뒤를 강하게 맞아 기절했죠.”
“.....”
테오는 아주 조금 아이에게 연민을 느꼈다.
로레인은 손을 다시 뻗어 아이의 머리에 얹었고 다시 환한 빛이 터졌다.
“인장은 제거했어요. 저쪽에서는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수고했다.”
“..... 팔은 치료 안 해줄 겁니다.”
“그래.”
로레인은 냉정한 눈으로 이엔을 바라본 후 허공에서 사라졌다.
테오는 한 번 어깨를 으쓱한 후 시종을 향해 말했다.
“남쪽 별궁 손님방에 옮기도록. 1기사단 2명을 데려와서 감시를 하거라.”
“네.”
그리고 테오도 이엔을 바라보지 않으며 냉정하게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갔다.
자기 할 일은 다 했으니 끝이었다.
그러나 이 후 테오는 이 결정이 그를 반복적으로 불쾌함을 이끌 것이라는 미래를 몰랐다.
테오는 그렇게 돌아간 후 바로 세린의 침실로 향했다.
황제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비어있는 침실은 오직 세린 혼자만 자고 있었다.
작고 통통한 볼 사이로 꼬물거리는 입술이 앙증맞았다.
날카롭던 테오의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그의 입가가 허물어졌다.
세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며 테오는 생각에 잠겼다.
마탑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던 그는 이내 굳어가는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마탑에서 도망쳤다고... 어둠술사들은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서 걸리지는 않았겠군.'
어쩌면 이엔이라는 꼬맹이를 받아들인 것은 잘 한 일일지도 몰랐다.
세린의 미래에서 또 다시 저주에 관한 일들이 벌어질 수 없도록 그 아이를 교육시켜서 세린의 방패로 지키게 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자 아이라는 것만 아니면 신경이 쓰이지 않았겠지만 뭐 그 부분은 아직 어리니 넘어가기로 했다.
가... 아니었다.
테오는 갑자기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어린 녀석이 보아도 세린의 외모는 훌륭했다.
저 사랑스러운 볼만 보아도 그렇고 싱그럽고 커다란 연두색 눈동자도 너무도 아름다운 아이였다.
나중의 미래가 걱정이 들 정도로 세린은 지금 하루하루가 다르게 예뻐지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테오의 대답은 냉정하게 '아니'였다.
진지하게 고민하던 테오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로레인을 찾아갔다.
로레인은 자신을 찾아온 테오를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구겼다.
“이 밤에 또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로레인. 냉정하게 제 3자의 시점으로 판단하고 이야기하도록.”
별 이야기를 다 한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로레인이었다.
그러나 테오의 질문이 시작되자마자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세린은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아름답더냐.”
“형님,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겁니까?”
로레인의 날카로운 말투에도 테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유도했다.
“난 확실한 대답을 원해.”
“후...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군요. 세린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아름답습니다.”
“역시... 그렇겠지.”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고 로레인은 이어 말했다.
“일단 그 아름다운 눈동자에서부터 할 말이 없지요. 보석처럼 빛나는 연두색 눈동자도 아름다우나 그 밑으로 앙증맞은 입술도 선이 곱습니다. 볼도 탱글하니 촉감도 부드럽고요. 분홍색 머리카락이 빛나는 모습이 매우 잘 어울리면서 인형 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입니다.”
그런 로레인의 말에 긍정하며 테오는 물었다.
“그럼 그 어둠술사 꼬맹이가 세린을 지키게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나?”
“형님... 지금 그 아이를 호위기사로 키우실 생각이십니까?”
“위험요소만 네가 제거해준다면 세린이 더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단하군요. 정말...”
로레인은 혀를 차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 한참을 테오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이내 세린의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테오의 말에 수긍을 하고 말았다.
어둠술사 이엔을 세린의 방패로 키우기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로레인은 살벌한 표정으로 건너편에 앉은 이엔을 바라보았다.
과묵한 입으로 고개를 숙이며 앉은 이엔은 로레인의 두려운 시선에도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로레인은 깊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네 목에 인장은 지웠어.”
“..!!!!”
이엔의 얼굴에 경악과 함께 안도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 로레인의 말에 다시 굳어졌다.
“하지만 내가 새 인장을 너의 손등에 넣을 거야.”
“......”
“네 목에 있던 폭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으로 말이야.”
“......”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로레인은 이엔을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의 하루 일정은 내가 구성할거야. 아침은 3황자가 있는 1기사단에서 검을 배우고 점심에는 글을 배운다. 그리고 밤에는 나와 함께 저주를 푸는 방법을 연구할거야.”
“..... 네.”
“마탑의 규칙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마탑이 아니야.”
로레인의 보라색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제국에 왔으니 제국의 법을 알아둬. 어제부터 계속 너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했어.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지. 앞으로 네가 배울 검술은 너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네가 지킬 사람을 목숨 걸고 지킬 수단이야. 글은 그 사람을 위해 네가 알아둬야 할 정보고.”
“.... 지켜야할 사람...?”
“그래. 난 이제부터 너를 이 황성에서 살게 해주는 대신에 그 아이만을 위한 안전한 방패로 키울 생각이니까.”
이엔의 금빛 눈동자가 애처롭게 흔들렸다.
로레인은 그 눈빛을 무시하고 이어 말했다.
“지하실에서 고문 받고 실험을 위해 사람들을 죽이라고 시키는 곳보다 사람을 지키며 먹을 거 다 먹고 공부에 검술까지 알려주는 여기가 더 이득이 아닌가?”
그의 말이 맞았다.
물, 불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고 로레인을 향해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지킬 분은 누구신가요?”
“지금부터 지키게 할 수는 없지. 너처럼 약한 애가 붙어봤자 세린을 신경 쓰이게 할 뿐이야.”
‘세린...’ 지하 감옥에서 황태자와 로레인이 나눈 이야기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지킬 분이 그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