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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2화 (22/218)

22화. 마탑과 어둠술사

트레일은 방 침대에 앉아 두 눈을 깜빡이며 검을 닦고 있었다. 토벌은 어려움 없이 잘 끝났지만 마지막에 나타난 어둠술사 꼬맹이로 인해 마무리가 삐끗했다.

‘... 저 어린 체구에 전투를 해본 경험이 있다는 건... 누군가 그 애를 그렇게 키웠다는 것 같고... 우리 기사단에게 무슨 짓을 하려던 것 같았는데 뭐였을까?’

아님 누군가의 사주?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결과는 엉뚱하게도 세린을 만나러 탈출하는 것이었다. 작은 까만 머리 꼬맹이랑 비슷한 나이의 세린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트레일은 부들부들 떨리는 눈으로 문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탈출이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걸리면 근신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잠시 고민하는 트레일이 결국 포기하려던 그 때에 톡톡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트레일은 창문을 향해 눈을 돌렸고 살랑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묶은 귀여운 모습의 세린이 로레인의 품에 안겨 손을 흔들고 있었다.

트레일의 표정은 단번에 환해지며 서둘러 창문을 벌컥 열었고 세린은 다정하게 웃었다.

“세린~~~!!”

“오빠. 방금 1기사단들이 돌아왔어요...”

“에......... 그, 그래....?”

그 한마디에 갑자기 소심해지고 시무룩해진 트레일을 보며 세린이 작게 쿡쿡 웃었다.

“다음에 꼭 기사단에게 사과해주세요. 많이 걱정하셨을 거예요.”

“알겠어....”

“그리고 얼른 근신 풀리면 같이 산책해요.”

트레일은 수줍은 세린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어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지??”

“네에...”

“약속 한 거다??”

“네에!”

작디작은 새끼손가락을 뻗은 세린의 손에 커다란 손가락이 걸어지며 약속을 나누었다. 세린은 트레일의 개구진 미소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개구지게 웃어버렸다.

따뜻한 시간이었다. 로레인은 세린이 밝아진 모습을 보며 함께 웃었다.

“세린. 이제 근신 점검시간이구나.”

“헉 벌써??!!”

말은 세린에게 걸었는데 대답은 트레일에게 돌아왔다. 로레인은 트레일로 인해 세린이 걱정했던 그 순간들을 잊지 않았다.

세린이 보이지 않게 눈을 날카롭게 뜬 로레인은 세린이 오빠의 근신 중 자기가 왔다는 것을 들키면 어쩌느냐며 당황하자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럼 우린 다시 정.원. 으로 가서 산.책. 을 하자. 오빠가 세린이 좋아하는 장미를 많이 피웠어.”

“우와아!”

트레일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로레인의 시선을 피해 딴청을 부렸다. 로레인은 한 번 코웃음을 치며 '한 달 후에 보자.' 라는 말을 남기고 세린과 함께 워프로 이동하였다.

“......”

트레일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어쩌면 테오보다 무서운 건 로레인 일지도 몰랐다.

차근차근 사람을 압박하니까 더 무서워...

트레일은 우울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근 한 달을 버텼다. 그러나 트레일의 괴로움은 금방 금방 사라졌다. 그의 근신기간동안 닫힌 문 밑으로 들어오는 작은 종이들로 인해서 말이다.

꼬불거리는 글씨체를 보니 누가 봐도 제 하나밖에 없는 귀여운 여동생이 분명했다. 어떤 날에는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음식이 맛이 있었고 어떤 음식이 맛이 없었는지가 쓰여 있는 귀여운 내용이었다.

트레일은 싱글벙글 편지를 읽어가며 미소를 지었다. 저절로 상상이 가는 사랑스러운 그 얼굴에 입가가 허물어졌다. 그러다 세린이 우는 모습이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저절로 얼굴이 창백해진 트레일은 생각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고 말이다.

세린이 자신에게 안겨 펑펑 눈물을 쏟을 때의 그 무서움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너무도 미안했고 너무도 괴로웠다. 생각해보면 세린은 부끄러움이 많으면서도 유독 안기는 것이나 누군가의 품에 의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랑한다고 속삭여줄 때에도 창피해 하면서도 행복해 하면서 웃는 세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사랑 많은 아이가 누군가가 실종이 되어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면...?

자신 같아도 두려움에 벌벌 떨며 걱정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씨...”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트레일의 미간이 좁아졌다. 결국 트레일은 뜬 눈으로 밤을 넘기다가 이내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세린은 오늘도 트레일의 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몸짓으로 트레일의 궁 문 밑으로 얇은 종이를 슥 슥 밀어 넣었다. 또 하나의 종이를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웅...?”

세린의 고개가 갸웃거리고 슬그머니 그 종이를 꺼내었다.

“킁킁.”

트레일의 향수냄새가 났다. 시원한 그 냄새를 맡으며 세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빠가 쓴 거야...!’

세린은 서둘러 편지를 펼쳐 읽어보기 시작했다. 온통 사과와 사랑한다는 말이 잔뜩 적힌 그 편지의 내용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천천히 세린의 통통한 볼에 보조개가 쏙 들어가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편지에 얼굴을 묻고 키득키득 웃은 세린은 문가에 입술을 바짝 들이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저도요!”

문 건너편에 앉아 있던 트레일의 입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

로레인과 테오는 세린의 침대 위에 앉아 각 자 세린의 양쪽 머리를 붙잡고 그녀의 머리를 땋고 있었다.

세린은 그 둘의 서툰 손길을 느끼며 작게 웃었고 로레인은 그런 세린의 모습에 환하게 웃었다. 테오는 다정한 눈빛으로 피식 웃어넘겼다.

그러다 눈썹을 팍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상해 보이는군.”

“이상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상합니다. 형님.”

“네 쪽도 만만치 않구나.”

“형님보다는 아름답게 묶인 것 같군요.”

“착각이 그 정도면 병이라고 하지. 유능한 의원을 불러주겠다.”

“제 직업이 마법사라... 스스로 치료가 가능하답니다. 아 형님은 의사가 필요하시겠군요.”

말다툼을 실체화시킨다면 여기는 이미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즉 전쟁의 서막이었다. 세린은 다급히 뒤를 돌아 물었다.

“어, 어때요?? 예쁜가요??”

둘은 동시에 세린을 바라보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하면 저런 머리를 해도...”

“미래가 걱정이군요. 저와 남남이었다면 전 벌써....”

세린은 둘의 말끝을 듣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쁘다는 거야, 안 예쁘다는 거야?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서 무엇부터 물어봐야하나 고민하던 세린의 귀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전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테오는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인상을 썼다. 귀찮다는 기색이 면면에 가득인지라 세린은 그를 재촉하는 시종이 안타까워졌다. 테오는 그저 세린의 머리를 정돈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곧 나가지.”

“전하. 송구합니다만 이제 지하 감옥의 아이에게 고문을 하셔야...”

“아!!! 그 아이!!”

시종의 말이 세린의 외침에 흩어졌다. 세린은 다급히 테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테오는 세린의 물음에 조금 망설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글쎄... 그 녀석의 대답과 이야기에 따라서 녀석의 미래가 바뀌겠지.”

“.....?”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테오는 부드럽게 세린을 쓰다듬어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밖으로 향하는 테오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한 세린은 로레인을 힐끔 바라보았다. 난처하게 웃은 로레인은 세린을 침대에 눕혀주며 말했다.

“어린아이는 잘 시간! 키가 쑥쑥 크려면 빨리 자야해.”

“치...”

세린의 귀여운 투정에 로레인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세린의 이마에 다정히 입을 맞춘 후 로레인은 자리를 떠났고 세린은 조용히 침대에 누워 트레일의 손에 끌려온 작은 아이를 생각했다.

마르고 상처가 많은 작은 아이.

그림자를 붙인 듯이 까만색의 머리카락과 자잘한 상처가 많은 얼굴....

세린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어둠술사라고...? 사람에게 저주를 심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트레일의 말로는 손에 닿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그랬는데...

세린은 물끄럼 창문 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그 까만 머리카락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둡고 지독한 냄새가 가득한 황궁의 지하 감옥.

거대한 철 기둥 감옥 안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있었고 남자아이는 눈을 살짝 가릴 만큼 긴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테오는 아무 표정 없이 두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아이의 양 팔은 트레일로 인해 뼈가 부서져 응급처치로 부목을 대어 붕대로 감겨있었다.

테오는 시종이 내어준 화려한 의자에 앉아 아이를 마주보았다.

“......”

아이는 살며시 눈을 떠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테오를 바라보았다. 테오는 싸늘하게 물었다.

“어둠술사라지?”

“.....”

테오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아이를 향해 나직이 물었다.

“몇 살이지.”

“13살...”

“이름은”

“이엔.... 입니다.”

“누군가의 사주냐.”

“.... 의뢰 따위 받은 적 없습니다.”

“의뢰를 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군.”

“......”

“그럼 왜 3황자에게 다가갔지?”

“......”

아이는 창백한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굳은 눈으로 말했다.

“감옥이라도 좋아요! 날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테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어둠술사를 받아줄 만큼 황궁은 인재에 궁하지 않아.”

“..... 그게 아니...”

“내가 먼저 질문하지.”

테오는 단칼에 아이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물었다.

“넌 어디 소속이냐.”

“.... 마탑.”

“..... 네가 말한 마탑이 내가 아는 그 마탑이냐.”

“제국에 소속되지 않은 중립지역의 마법사들의 탑.”

“허....”

테오는 왈칵 인상을 썼다.

“아주 재밌게 돌아가는군...”

“전 거기 실험체였어요. 어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인재라며 날 데려가 생체실험을 했어요... 살려주세요.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아이는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테오는 그저 아무 표정 없이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은 저런 아이의 말에 냉큼 도와주마! 라고 할 정도로 착하지 않았고 아이의 말을 믿기에는 의심이 많았다.

테오는 부드럽게 눈을 깜빡이며 비웃음을 가득 지었다.

“네가 돌아가고 싶은지 돌아가기 싫은지는 내 알 바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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