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어둠술사?
세린은 옷소매로 눈가를 북북 닦으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붉어진 눈가를 하고 주변을 관찰하던 세린의 동공이 커졌다.
태양궁 정원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던 세린은 잠깐의 침묵 후 재빠르게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기사들과 멜은 당황하며 세린과 함께 달려 나갔다.
세린은 그 작은 발을 열심히 굴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숨이 거칠어져도 신경을 쓰지 못했고 발바닥이 아려도 모르는 척하며 달렸다.
그리고 태양궁 정원 앞의 높은 계단을 뛰어 올라 눈앞에 보이는 넓은 가슴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날아올랐고 트레일은 가벼운 몸짓으로 세린을 받아 안았다.
세린은 그의 품에 안기자마자 커다랗게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세린의 인생에서 제일 큰 울음소리였다.
당황한 트레일이 세린의 등을 두드렸다.
“세린... 왜 그래 많이 놀랐어?”
“오빠 미워요!!!! 으아아아아앙!!!”
세린은 혹시라도 다시 트레일이 사라질까봐 무서워 그의 목을 꽉 껴안았다.
“미.. 미안해 세린. 뚝~! 뚝 하자~!”
당황이 가득한 트레일의 목소리에도 세린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흐아아아아아앙!! 내가 얼마나 히끅 걱정했는데!!!!”
“그... 그게 여기에는 사정이...”
“몰라요!!! 바보!!! 오빠 바보야!!! 같이 산책 안 갈 거야!!!”
세린이 트레일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뭐 어?? 안 돼!!”
서러움이 목까지 차올라 세린을 힘겹게 했다.
당황한 트레일을 무시하며 다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세린을 향해 트레일은 난처하게 웃으며 다시 그녀를 꼭 껴안았다.
“정말 미안해. 보고 싶었어...”
“히끅... 나도 흐어엉.... 히끅.”
“일단 물부터 마시고 이야기하자.”
다정하게 웃으며 트레일은 세린을 안고 태양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동안의 마음 속 고통과 지금 그가 무사하다는 안도감에 아직도 눈물이 나왔다.
세린의 눈에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아주며 트레일은 사과했다.
질 질 질
“....?”
이상한 소음에 고개를 내리자 보이는 것은 그의 뒤를 따라 무언가가 질질 끌려오는 괴상한 장면이었다.
세린은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그의 어깨 너머 뒤편을 바라보았고 그것이 꽁꽁 묶여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놀랐고 그 사람이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남자아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오.. 오빠 어린아이에요!! 왜 아이를 저렇게 묶었어요??”
세린의 반응에 당황한 트레일이 눈을 굴리다가 슬쩍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세린. 저 애는 위험한 녀석이야.”
“...?”
“안 되겠다. 세린 넌 로레인 형님 옆에 꼭 붙어 있어.”
“...?”
“저 녀석 어둠술사야.”
황제의 집무실에 트레일과 함께 들어온 세린은 들어오자마자 날아오는 차디찬 음성에 놀랐다.
“이제야 기어들어오는구나.”
“아, 아버지이...”
황제의 날카로운 음성에 트레일이 어깨를 움찔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황제와 앉아 있었던 로레인은 트레일에게 다가가 세린이 보지 않는 틈에 눈을 빛냈다.
너무도 따가운 시선이어서 트레일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세린, 이리오렴.”
그리고 자연스럽게 트레일의 방어수단이었던 세린을 데리고 황제의 옆으로 간 로레인의 모습에 트레일은 땀을 뻘뻘 흘렸다.
“아... 그... 저기....”
그러다 트레일의 온 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조용히 문이 열리고 테오가 들어왔다.
테오의 얼굴에 가득한 비웃음과 좁아진 미간에 트레일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뭐지... 왜 전쟁 분위기야?’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 몰라 당황이 가득해진 트레일을 바라보며 황제가 말했다.
“어이가 없구나. 기사들을 이끄는 단장이 행군에서 이탈이라....”
황제의 싸늘한 말에 트레일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난처하게 말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행군 도중에 위험한 것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 위험한 것이 저 아이고?”
황제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 흑발의 꼬마를 보며 물었다.
트레일이 고개를 끄덕였고 세린은 그저 로레인의 품에 안겨 그 둘의 상황을 관찰할 뿐이었다.
테오는 트레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이냐.”
“아니 그게...”
3일 전 황궁으로 복귀하는 길.
“단장님. 눈이 내립니다. 눈이 쌓이면 도착예정이 일주일은 더 걸리겠군요.”
부단장의 말에 트레일이 인상을 왈칵 구겼다.
“젠장... 노숙하고 싶지 않은 놈들은 잘 따라와라!”
“네!!”
트레일은 기사단들을 데리고 말을 거칠게 움직여 서둘러 마을로 향했다.
눈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동이 어려워진다.
‘세린한테 빨리 가기로 했단 말이야!!’
세린이 보내준 편지만 반복하여 읽느라 본래 세린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형님들은 세린과 매일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에 억울함이 가득하던 트레일은 말을 재촉했다.
타다다다닥!
“음? 멈춰라!”
트레일은 달리던 말을 멈추고 그 자리에 멈췄다.
“단장님? 왜 그러십니까?”
“.... 기운이 안 좋은데....”
“네???”
트레일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에서 내렸다.
“단장님?”
트레일은 부단장의 부름에도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한 쪽 방향으로 눈을 돌려 집중하던 트레일은 말에서 내려 빠른 속도로 뛰쳐나갔다.
“단장!!”
트레일은 숲 사이에 있는 이상한 기운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상대는 땅에 구르듯이 그 검 날을 피했다.
“큭!!”
“야... 너 이 새끼... 지금 우리 기사단한테 무슨 짓 하려고 했어...”
땅에 누워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 인영은 흑발에 금빛 눈동자를 가진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였다.
아이는 생채기가 가득한 얼굴에 당황이라는 감정이 담겼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런 아이의 손에서 검은 안개가 일렁였다.
트레일은 그걸 보자마자 이마에 힘줄이 생겼다.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그가 나직이 말했다.
“하... 참나 이 새끼들 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존재하네....”
살벌한 음성으로 이를 악 물은 트레일은 부단장을 향해 소리쳤다.
“부단장!! 부대를 이끌고 너는 마을로 간다!”
“단장!!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변에 누가 있으면 방해다!!”
부단장은 트레일과 꼬마의 대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단장이 저런 꼬마를 상대로 도망가라고 하는 것인가?
단순한 아이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부단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외쳤다.
“다음 마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자정 안에 내가 안 오면 궁으로 먼저 출발하도록!!”
“단장!”
“명령이다!! 출발해!!”
아이에게서 시선을 집중하며 대답한 트레일은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말했다.
“너 오늘 잘 걸렸다.”
트레일은 검 손잡이를 잡은 후 달려들었고 꼬마는 자신의 그림자를 잡은 후 어둠을 꺼내어 몸을 방어했다.
콰광!!
“어쭈...?”
공격을 아이가 막는 것에 트레일은 의아함을 느꼈다.
이정도로 작은 애가 전투경험이 있다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이런 식의 전투를 겪었을 것 같지 않았다.
트레일은 잠시 고민했다.
‘이걸 죽여? 아님 데려가?’
어쩌면 또 다른 어둠술사의 위치를 알지도 모른다.
그들의 씨를 말려 죽이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잠깐의 고민이 끝난 트레일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숨이 붙어있는 채로 잡아가기로 했다.
아이의 손에 닿으면 저주를 받아갈 수 있으니 빠른 속도로 아이의 양 손목을 꽉 잡았다.
우드득!!
“으으윽!!”
저주를 사용하지 못하게 아이의 양 손목을 살짝 부러트린 트레일은 눈가를 휘날리는 덥수룩한 검은 머리카락 밑의 얼굴을 향해 비웃었다.
“하나도 안 미안해. 넌 일단 기절해라.”
퍽!
---현재---
“그리고 그대로 애 끌고 지름길로 궁으로 왔어요.”
“......”
황제는 짙은 한숨을 쉬며 트레일의 이마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퍽!
“악!!! 아버지!!!”
“부단장이 마을에서 기사들과 기다리는 것을 알면 그대로 마을에서 같이 출발할 것이지. 돌아오지 않아서 실종이야기를 듣게 만들어?”
“그.. 그건...”
“기사단들이 널 의지하고 있다. 네가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어서 네가 있던 그 부근까지 수색하며 찾았다고 하더구나. 그러고 네가 보이지 않으니 급하게 실종이 되었다며 편지가 날아왔고.”
머쓱하게 황제가 때린 부위를 만지던 트레일은 힐끔 세린의 눈치를 보았다.
‘나도 그 일로 세린에게 그렇게 미움을 받을 줄 몰랐다고...’
그렇지 않아도 후회하던 트레일이었다.
세린의 통곡에 얼마나 미안하던지.
토벌에 가면 자주 있던 일이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실수였다.
테오는 그런 트레일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면면에 가득히 지었고 세린에게 물었다.
“세린. 트레일을 몇 대 더 때려줄까?”
“형님....!!”
이 사람이.... 기회다 싶으니까 엄청 물어뜯네?!
트레일이 어이없는 얼굴로 테오를 바라보던 모습을 관찰한 세린은 잠깐 침묵하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한 대만요...”
너무 얄미우니까...
퍽!!!
“악!!!!”
다행스럽게도 트레일이 무사하니 세린은 꿍한 마음을 훌훌 털어버렸다.
작은 꼬마는 지하의 감옥에 가둬지고 한 달간 근신하라는 벌을 받은 트레일은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억울한 모습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아니 난 세린이랑 산책 빨리 하고 싶어서 지름길로 온 것 뿐 인대요. !!!!”
“그걸 기사단한테 전달을 했었다면 아주 좋은 결정이었겠구나.”
황제는 단칼에 말을 자르며 나가라고 말했고 트레일은 한 달 동안 근신이라는 거대한 벌을 받아 방에 누워있었다.
세린은 방에 갇힌 트레일이 안타까워졌다.
‘나한테 빨리 오고 싶어서 그랬다는데...’
몰론 말도 없이 그냥 오는 바람에 기사단들과 황족들의 걱정을 가득 쌓이게 한 행동은 얄미웠지만...
근신까지 받아 한 달 동안 또 못 본다니 속상해졌다.
세린은 조심스럽게 로레인을 향해 물었다.
“오빠... 저기 트레일 오빠 궁은 어디에요?”
“트레일은 북쪽 별궁이란다. 왜 그러니?”
“저기... 부탁하나만 해도... 괜찮을까요?”
무슨 부탁인지 묻지 않고 로레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