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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0화 (20/218)
  • 20화. 트레일의 행방

    세린은 멍하니 황궁의 별궁 정원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1기사단에서 받은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돌아오는 도중 마주친 적으로 인해 트레일 단장이 적을 막았고 그동안 기사단에게 후퇴를 명령함. 다음 마을에서 자정까지 기다린다는 보고를 한 후 약속했던 자정이 지나 다시 그를 찾으러 이동. 이동결과 단장과 적의 흔적이 없어 보고함.

    황제는 충격을 받은 세린을 열심히 달래며 말했다.

    ‘아빠가 말했었지 세린. 트레일은 제국에서 정말 강한 기사란다. 이유 없이 사라질 아이가 아니니 금방 돌아올 것이야.’

    테오도 다정하게 말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단다. 그 때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와서 밥을 먹고 있더구나.’

    ‘그래 세린. 오빠 생각도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어떻게 걱정이 안 될 수가 있겠어!

    세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애처롭게 매달렸다.

    어디에 있는 거야...

    빨리 오겠다고 했으면서...!!

    계속 창문 밖을 서성이다가 황성 입구의 탑 꼭대기로 올라가 관찰하기를 반복했다.

    세린은 불안한 마음을 껴안고 별궁의 정원으로 향했다.

    별궁의 정원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다가 기운 없이 의자에 앉았다.

    ‘또 가족을 잃는 건 싫어....’

    세린은 눈물을 투둑 떨어뜨리며 소리 없이 울었다.

    “어디로 간 거야....”

    그 서글픈 뒷모습에 세린을 지키던 기사들이 안타까운 가슴을 껴안았다.

    세린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다가 천천히 일어나 태양궁으로 향했다.

    따뜻한 정원이었지만 세린은 춥기만 했다.

    “세린.”

    “로레인 오빠...”

    허공에서 나타난 로레인은 기운 없는 세린을 슬프게 바라보다가 긴 팔을 뻗어 품에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정히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세린 오빠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

    세린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로레인은 밝게 웃었다.

    “테오 형님이 말한 적 있었지?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네....”

    “그때는 내가 15살 때니까 트레일이 12살 이겠구나.”

    세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때 트레일은 단장이 아니었지만 1기사단의 기사로써 토벌에 참여했었어. 워낙 성장속도가 남다르고 능력도 남달라서 가능한 일이었지.”

    “우웅...”

    “그런데 그 애가 토벌을 떠났는데 혼자만 사라진 거야.”

    “...???”

    “실종이었지. 말 그대로. 나도 형님도 아버지도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세린은 긴장이 가득한 눈으로 로레인을 바라보았다.

    제비꽃색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곱게 휘어 웃은 로레인은 그런 세린의 볼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 애가 실종이라는 말을 듣고 서둘러 찾은 지가 3일이었는데 어느 날 주방에서 냉장고를 털고 있더라고.”

    “.......?”

    “우리가 언제 왔냐고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니 자기는 이미 토벌 끝내고 지름길로 혼자 왔었다고 그러는 거 있지?”

    “..... 에....”

    “어이가 없지? 나도 그랬어. 자기가 기사단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쉬고 먹고 쉬고 다 하고 있던 거야.”

    “웃겨요...”

    그치? 하며 함박웃음을 지은 로레인은 세린을 안아주며 말했다.

    “어쩌면 이미 성에서 숨어 있는 걸 수도 있어. 아니면 널 놀래 키고 싶어 준비를 한 걸지도 모르지. 당연하게도 다치거나 어디가 부러질 아이는 아니란다.”

    세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사정이 생겨서 잠깐 늦어지는 걸 수도 있어. 세린 그러니까 걱정ㄴ하지 말고 웃으면서 기다려줘.”

    그 이야기를 하러 바쁜 와중에 자신에게 달려온 것일까?

    세린은 눈을 깜빡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언제까지고 우울해 할 순 없다.

    오빠가 약속했으니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었다.

    세린을 그리 달랜 후 로레인은 다시 마법연구를 위해 떠났고 세린은 보다 씩씩해진 발걸음으로 태양궁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 세린의 눈에 보인 태양궁 정원의 모습에 조금 슬퍼졌다.

    함께 산책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늘에서 내린 눈이 이제는 잔뜩 쌓여 소복하게 하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세린은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걸어가는데 그토록 외로울 수 없었다.

    햇살 같은 개구진 그 미소와 든든하게 자신을 안아주던 트레일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눈도 많이 왔는데....’

    잠시 멈칫하다가 앞을 향해 걸어가며 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

    트레일 오빠는 반드시 돌아 올 거야.

    세린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세린은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슬리퍼를 신고 멜이 건네준 따뜻한 숄을 걸치고 밖으로 향했다.

    태양궁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정말 먼 곳까지 내려다 볼 수 있었기에 혹시라도 트레일의 모습이 보일까봐 아침마다 올라가게 되었다.

    꼭대기에 올라서자 보이는 것은 하얀 눈으로 뒤덮인 황성이었다.

    차근차근 주변을 둘러보며 집중하는 세린의 모습에 멜이 마음 아픈 표정을 감췄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발에 불이 나도록 이 높은 꼭대기로 올라오는 것인지, 그 마음 깊이에 멜은 가슴이 아팠다.

    세린은 그저 집중하여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여전히 아무 움직임도 없었고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세린은 침울한 모습으로 다시 침실로 내려와 침대에 누웠다.

    어떻게 하면 트레일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아빠가 혹시 오빠를 찾고 계실까?

    그 생각까지 미치자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온 세린은 황제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황제는 집무실에 찾아온 세린을 바라보며 슬픈 얼굴을 지었다.

    그 시간동안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걱정을 했다는 것을 세린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작디작은 얼굴에 몰린 피로와 걱정이 황제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황제는 세린을 천천히 안아 올려주며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세린, 괜찮은 거니?”

    “네에... 저기 아빠...”

    “그래, 말해 보거라...”

    세린은 머뭇거리다가 다짐하며 물었다.

    “오빠를 찾고 계세요...? 오빠가 많이 위험할까요?”

    황제는 세린의 그 물음에 고운 눈썹을 휘며 슬프게 웃었다.

    “세린, 오빠가 많이 걱정 되었구나, 걱정하지 마렴.”

    “하지만....”

    세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황제는 세린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이런... 울지 마렴. 지금 1기사단의 기사들이 트레일을 찾고 있단다. 전투의 흔적은 있지만 누군가 다친 것 같은 흔적은 없었으니 무사할 것이야.”

    황제는 세린을 달래며 나직이 웃었다.

    하지만 세린은 걱정을 날릴 수 없었고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눈물을 글썽이다가 이내 황제의 품에 안겨 울었다.

    “무서워요오.... 흐어엉”

    황제는 슬픈 얼굴로 세린의 등을 두드려주며 달랬다.

    울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세린이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당연히 무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는 굳은 얼굴로 세린의 등을 두드려주었으나 어떠한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를 달래주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세린은 결국 울다가 잠이 들었다.

    태양궁의 넓은 침대 위에서 잠이 들어버린 세린을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곱게 정리해준 황제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세린의 이불을 꼼꼼하게 정리해준 후 로레인에게로 향했다.

    로레인은 황제가 보이자마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하며 말했다.

    “세린은 잠이 들었나요?”

    “울다가 겨우 잠이 들었구나. 많이 힘들어 하고 있어”

    황제의 말에 로레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로레인은 인상을 왈칵 구기다가 이내 천천히 미간을 풀며 말했다.

    “숲 근처에서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그 녀석 발자국을 스스로 감추고 이동한 것 같아요.”

    “무사한 것이냐.”

    “무사한 것 같습니다. 핏자국도 없을 뿐더러 잠시 전투를 벌였던 공간에 트레일의 흔적이 많지 않았어요. 단시간에 문제를 해결했을 것입니다.”

    “흠....”

    황제는 미간을 좁히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또 저번처럼 혼자 오고 있는 것이냐?”

    “그 녀석이 마음먹고 숨긴 흔적을 찾기는 어려워서... 하지만 무사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

    황제는 그러면 되었다고 표현하며 미간을 문질렀다.

    로레인은 그런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트레일이 오거든 한 대 세게 때려주세요.”

    황제는 로레인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자리를 이동해 다시 세린이 잠든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린은 눈물이 섞인 눈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황제는 젖은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세린의 눈가를 닦아주며 조심스럽게 이를 갈았다.

    ‘아주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겠어.’

    세린은 늦은 새벽에 깨어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트레일이 너무도 걱정되어 그랬던지 막 꿈에서도 그가 등장했던 참이었다.

    저절로 창백해진 낯으로 엉금엉금 침대를 기어 창문을 바라보던 세린은 서둘러 침대에 내려와 실내화를 신었고 도도도 달려 방 문을 열었다. 시녀 멜이 그런 세린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전하, 일찍 일어나셨군요. 어서 세숫물을 가지고...”

    “아니, 나 성 위로 올라가볼래!”

    “전하... 눈이 내려서 아직 밖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멜... 나 올라가고 싶어...!”

    멜은 세린의 고집에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두툼한 겉옷을 꺼내었다.

    세린은 겉옷을 입은 후 서둘러 계단을 올라 높은 황성의 옥상으로 올라왔다.

    세린은 넓게 펼쳐진 정원과 넓은 황성의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려 까치발을 들었다.

    하얀 눈은 아직 녹지 않아서 정원을 하얗게 만들고 있었다.

    ‘도착했을까?’

    ‘아직 멀었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세린의 눈가로 점점 열이 올랐고 코가 시큰해져갔다.

    세린은 트레일의 그 미소가 그 얼굴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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