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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9화 (19/218)

19화. 리사 스페라도

대공의 막내 딸 리사 스페라도는 지금 기분이 매우 그것도 매우 몹시 나빴다.

모리 백작가의 티파티에 가면 황녀님이 올 수도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팔랑거리는 귀를 달고 서둘러 왔더니 장미 한 송이를 보내며 거절했다고 한다.

자리를 빛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열심히 하는 금발도 아닌 묘한 노란색을 가진 백작가의 영애를 바라보며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리사는 차 한 잔만 마시고 나가자 라는 마음으로 설탕이 들어간 홍차를 열심히 비웠다.

남작, 자작, 백작 등 다양한 신분을 가진 영애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주고 꺄르르 웃어주느라 바빴다.

‘참나... 뭐가 재밌다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리사의 귀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렸다.

“아 그러고 보니 황녀님께도 초대장을 보냈었다지요?”

한 영애의 말을 시작으로 모든 소녀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저주를 안고 갑자기 사라졌다가 너무나도 건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황녀.

신에게 사랑을 받아 저주가 풀린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고 황후가 황녀를 저주했다가 본인이 죽으니 저주가 풀린 것이라는 이상한 소문마저 돌았다.

리사는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다.

‘소문은 멍청한 사람들이 진실을 볼 줄 몰라서 지어낸 말장난이라고 아버지가 그랬어.’

백작가의 이름도 기억안나는 영애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그런데 바로 거절을 하셨더라고요... 단지 황녀님께서 이런 모임에 빨리 익숙해지시고 데뷔하실 때 어려움이 없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초대를 한 것인데... 제가 너무 앞서갔나 봐요.”

그녀의 슬픈 어조에 다른 영애들은 서둘러 위로했다.

“어머나. 첼라 영애 마음을 알겠어요. 너무 다정하시네요.”

“황녀님도 참... 황녀님은... 첼라영애의 걱정을 왜곡해서 받아들이신 것이 아닐까요?”

그러자 백작가 영애는 당황한 모습으로 손을 저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황녀님은 아직 황족이 되신지 얼마 안 지났다고 들었어요. 아마 이런 자리가 불편하셨을 거에요. 그런데... 조금 속상하네요.”

리사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예의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이 분명해요!”

“황녀님이 실은 사생아였다는 소문도 있어요. 실제 나이에 비해 많이 작으시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나... 혹시... 정말 무서운 이야기지만...”

백작가의 영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 저주가 몸에 남아서 나오지 못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랬다. 리사는 정말 가만히 듣고 싶었다.

쨍그랑!!

“꺄아악!!”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리사는 푸른 눈을 날카롭게 뜨고 컵을 바닥에 던졌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한 사람을 물어뜯는 것이 아주 역겹고 더럽다고 생각했다.

리사는 겁먹은 어린 영애들을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백작가 영애를 향해 말했다.

“야”

“ㄴ.. 네???”

“너 황녀님 직접 봤어? 이야기는 나눠봤고?”

“......”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 표정을 바라본 리사는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뒤에서 하는 이야기로 사람도 죽이겠어. 무서워서 살 수가 없겠다 그치?”

“.....”

소녀들의 침묵에 리사는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예쁜 애가 하나도 안 보여서 짜증나 죽겠는데 말하는 주둥이도 안 예쁘니...”

한심하다는 투가 역력해 소녀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불만 있어? 내가 내 할 말 하겠다는대 불만 있냐고~”

있으면 그 이유마저 죽여줄 얼굴이라 소녀들은 고개를 숙였다.

리사는 코웃음을 한 번 친 후 시녀를 불러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는 나 초대하지마라.”

공녀가 나가고 난 후에도 백작가의 티파티는 고요했다.

태양궁 서재

“황녀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웅..?”

황제의 시종이 말에 세린은 읽던 동화를 내려놓은 후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황녀님께 오신 편지로 인해 부르시는 듯합니다.”

“편지....?”

세린은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을 사람이 있는지 생각을 해보았으나 전혀 머리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세린은 다급히 일어나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혹시... 트레일 오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황제의 집무실에 달려간 세린은 기사가 열어주자마자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편지가 왔...!”

환한 얼굴로 들어온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세린이었다.

집무실에는 황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하얀 은발에 푸른 눈은 대공작이었다.

세린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린에게 손을 뻗었다.

“세린. 뛰어왔느냐 힘들었을 텐데...”

부드럽게 세린의 이마에 땀을 닦아준 황제는 자연스럽게 세린을 안고 상석에 앉았다.

대공은 세린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황녀전하. 처음 뵙겠습니다. 아인 스페라도 라고 합니다. 과분한 칭호이나 아인 대공이라고 불러주시기를”

세린은 당황이 가득한 얼굴로 홍조를 띄며 말했다.

“세.. 세린 레이빈 레바스찬 이라고 해요”

그런 세린을 바라보는 푸른 눈은 날카로운 인상과는 다르게 부드러웠다.

대공은 세린을 향해 물었다.

“제 아들에게 들었습니다. 딸아이가 황녀전하께 조금 무례하였다던데... 대신하여 사과드립니다.”

세린은 작게 고개를 숙이려는 대공을 놀란 토끼 눈으로 말리려 다급히 외쳤다.

“아, 아니에요!!”

그리고 리사의 말이 떠올라 부끄러움이 가득해졌다.

“그... 무례랄까... 오히려 칭찬을 너무 많이 해줘서 부끄러웠어요...”

볼이 붉게 달아오른 세린은 수줍게 웃으며 오히려 리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란다.

황제는 그런 세린의 모습에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뚝뚝 떨어트리는 중이었다.

대공은 그런 황제에게 팔불출이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눈으로 본 세린은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풍성하게 찰랑였고 볼록하고 앙증맞은 두 볼은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작은 입술에서 나오는 웅얼거림은 또 얼마나 다정한지.

대공은 잠시 집에 있는 리사를 생각했다.

‘아빠만 황녀님 만나러 가는 거예요? 나는요?’

‘네 어이없는 무례를 사과도 하고 폐하와 나눌 이야기가 있어 가는 것이다.’

‘이유는 필요 없고 황녀님 나도 보러 가고 싶어요!’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 구나. 또 가서 그런 무례를 두고 보라는 것이냐. 그리고 백작가 티파티에서 네가 저지른 만행으로 넌 외출금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흥 그런 티파티에 보낸 어머니가 너무한 거예요!’

‘허... 반성을 하지는 못하고 그 입만 오리처럼 나왔구나.’

‘아버지는 생선 같아요.’

‘...?’

‘못생겼어요.’

회상이 끝나자 꿀밤 한대로는 너무 아쉬운 감이 생겼다.

‘집에 가면 그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더 내려야겠군.’

제 딸이지만 말하는 것이 정말 사냥견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반면 황제의 딸 황녀는 그 사랑스러운 외모로 마음을 울리는데 마음마저 따뜻해 보여 조금 부러워졌다.

‘우리 리사도 참 어여쁜 아이지만 성격이 워낙 강하니.’

황제는 그런 생각에 잠긴 대공을 향해 말했다.

“우리 세린이 어제 내게 말했지. 내가 있기 때문에 여자 친구들은 필요 없다고 말이야.”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라며 황제는 거만하게 웃었다.

세린은 그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난처하게 웃을 뿐이었다.

심기가 꼬여진 대공은 물끄럼 황제를 바라보다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제 아들이 그러더군요. 폐하.”

“음?”

“황녀님을 그리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다며 잠시 다과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이지요.”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세린을 잡은 손길은 부드럽기 그지없으나 대공을 향한 눈빛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머리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대공은 그저 여유롭게 웃으며 세린을 향해 물었다.

“황녀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세린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은발의 소년과 소녀가 떠올랐고 자신이 다급하게 떠나버려 놀랐을 둘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세린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할 것 같아요... 너무 도망치듯이 가버려서...”

“딸아이의 잘못입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세린과 대공이 화사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황제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세린의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하였다.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황제를 바라보는 세린을 향해 황제가 말했다.

“너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트레일에게 편지가 와서란다.”

세린의 표정이 환해졌다.

“오빠가요???”

예쁘게 웃으며 물어보는 세린을 보자 황제의 좁아터진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책상에 올려 진 편지를 들어 세린에게 건네주었다.

봉투를 조심스럽게 받아 든 세린은 봉투가 흠집이라도 날까봐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 소중한 물건을 다루는 태도마저 귀여웠다.

대공도 속 좁은 황제를 흘겨보다가 세린의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편지를 펼친 세린은 천천히 따뜻하게 웃었다.

-세린에게

세린 트레일 오빠야

오빠는 여전히 상처가 하나도 없고 튼튼하고 토벌도 잘 끝나가고 있어.

먹는 것이야 뭐든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 마.

단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힘드네.

세린도 그동안 잘 먹고 있지?

집에 가자마자 얼마나 컸는지 봐야겠어!

감기 조심하고 아프지 말고 밥도 잘 먹고 기다려줘

너를 정말 사랑하는 트레일 오빠가-

세린은 편지에서부터 느껴지는 온기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트레일이 옆에 있는 기분이라 편지로 얼굴을 가리며 웃는데 대공과 눈이 마주치자 허겁지겁 웃음을 그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물었다.

“아빠 편지 제 서랍에 넣고 싶어요...”

그런 세린의 말에 다정하게 웃은 황제는 그러렴 하며 세린을 내려주었고 세린은 밝은 웃음으로 대공에게 인사를 한 후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대공은 그런 세린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밝으시군요.”

“정확히는 드디어 밝아진 것이지.”

그의 말에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린의 안정적인 마음에 조금 안도한 대공은 다시 황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제 아들이...”

“닥치도록.”

대화는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되었다.

세린은 편지를 들고 복도를 달렸다.

하늘에서 눈이 내렸고 세린의 마음에는 따뜻한 온기가 불었다.

펑펑 내리는 눈은 이번 겨울의 마지막일 것이라고 로레인이 말했었다.

세린은 창문에서 걸음을 멈추며 유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제를 처음 만났을 적에도 이렇게 눈이 내렸었다.

세린은 내리는 눈을 슬프게 바라보다가 이내 밝게 웃었다.

지금은 행복하니까. 괜찮아.

그리고 다시 복도를 달렸다.

그리고 정확히 2주 후

황궁으로 복귀하는 1기사단의 행군에서 트레일이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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