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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7화 (17/218)
  • 17화. 편지를 받기 위한 노력

    당황한 것은 황제와 형제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트레일은 너무 놀라 입만 벌렸다.

    세린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 건강하게... 다치지 마시고... 잘 먹고.... 빨리 와주시고..... 윽...!”

    차오르는 눈물에 말을 마치지 못하고 황제의 목을 감쌌다.

    울음을 참는 뒷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뒤에서 지켜보는 기사들이 한탄을 했다.

    트레일은 멍하니 서 있다가 다급히 세린이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싱그러운 연두 빛 눈동자와 붉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세린이 참 좋아했던 개구진 미소를 지은 트레일은 세린의 볼에 입을 맞춰준 후 말했다.

    “오빠 다녀오면 같이 산책하자던 거... 잊으면 울 거야!”

    “.... 잊어버리지 않아요...”

    “알아! 세린은 똑똑하니까.”

    밝게 웃은 트레일은 세린에게 “금방 올 테니 울지마“ 라고 한 후 망설임없이 말에 올랐다.

    깔끔한 헤어짐이 서운하면서도 서둘러 출발하는 이유를 알아서 세린은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세린에게 얼른 돌아오려면 얼른 출발해야한다고 로레인이 이야기해줬기 때문이었다.

    세린의 얼굴이 눈물범벅이라는 것만 뺀다면 아름다운 헤어짐이었다.

    몰론 뒤돌아 달려가는 트레일의 얼굴은 더 엉망이었지만 말이다.

    트레일과 헤어진 후 성으로 돌아온 세린의 앞에 달콤한 케이크와 과일이 올라왔다.

    포크를 세린의 손에 쥐여준 황제는 세린에게 말했다.

    “슬플 때는 달콤한 것이 제일 좋다고 하던데...”

    세린은 황제의 세심한 배려에 가슴이 간지러웠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웃은 세린은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한 후 가장 앞에 있는 생크림 케이크를 집었다.

    눈가가 붉게 부은 세린이 맛있게 케이크를 먹는 모습에 지켜보던 나머지 황족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조금 억울해졌다.

    트레일 그 놈을 위해 운다고...?

    나도 떠나보는 척 해볼까...?

    등등 반응이 아주 다양했다.

    그들의 생각을 모르는 세린은 그저 맛있게 케이크를 먹을 뿐이었다.

    빨리 먹고 트레일의 무사를 위해 기도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세린은 케이크를 다 먹고 난 후 다급한 모습으로 침실로 향했다.

    황제의 침실에는 세린이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작은 크기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세린은 서둘러 그 자리에 앉으며 시녀를 향해 말했다.

    “나, 종이랑 펜이 필요해!”

    시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서둘러 종이와 깃펜, 잉크를 테이블에 올려 주었다.

    세린은 깃펜을 들고 조금 엉망으로 휘어지는 글씨로 꼬불꼬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 떠난 트레일이지만 자주 편지를 보내 그를 응원할 생각이었다.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적어내리는 편지는 점차 종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둘러서 그가 달려왔으면 좋겠다는 작은 마음을 담아서 한 글자씩 쓰던 세린은 이내 만족스러운 얼굴로 시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트레일 오빠한테 보내고 싶어...!”

    “알겠습니다. 전하”

    시녀의 부드러운 대답에 세린의 미소가 밝아지며 보다 사랑스러운 얼굴로 변했다.

    언제 보아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황제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아직 황제는 세린에게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랑스러운 딸의 첫 편지가 트레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질투로 눈이 불타올랐다.

    세린의 편지를 받으려면 어떤 작전을 세워야 하는지 황제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황제가 생각했다가 내린 결론은 결국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저녁을 먹는 세린을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세린, 트레일에게 편지를 썼다고 들었다.”

    그 말과 동시에 테오와 로레인의 얼굴이 굳었다.

    ‘누구한테 편지를 썼다고...?’

    세린은 황제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이내 부끄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에...”

    황제는 그런 세린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글씨는 잘 써지고 있느냐?”

    “아직... 예쁜 글씨가 아니에요... 막 꾸물꾸물 거리고 못생겼어요.”

    세린의 표현이 귀여워 황제는 나직이 웃다가 이내 달래는 말투로 조심스럽게 세린의 머리를 정돈하며 말했다.

    “연습을 해볼 겸, 아빠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떠냐?”

    “네에?”

    세린의 커다란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황제는 그런 세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며 말했다.

    “아빠도... 세린의 편지가 받고 싶어서 이리 욕심을 부렸다. 힘들면 안 해도 좋아”

    그러자 세린이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하지만... 글씨가 정말 이상해서...”

    아빠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는 기색에 황제는 입가를 부드럽게 휘며 말했다.

    “편지에서 중요한 것은 글씨의 모양이 아닌 얼마만큼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란다. 네가 진심을 담아 써준다면 아빠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장담하지”

    세린은 황제의 말에 볼이 잔뜩 붉어졌다. 멋진 말이었다.

    ‘편지에서 중요한 것은 진심...!’ 세린은 고개를 비장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아빠, 제가 써드릴게요!”

    그러자 황제는 “고맙구나.” 라고 말하며 다정히 웃었다.

    솔직함을 이길 꼼수는 없다. 황제는 목표를 이루고 뿌듯한 눈으로 두 아들을 바라보았다.

    테오의 미간이 왈칵 구겨졌고 로레인의 미소에는 금이 갔다.

    세린에게 편지를 받고 싶은 자들의 눈동자는 불타올랐다.

    식사가 끝난 후, 세린은 황제를 위한 편지를 써가며 이내 방긋 미소 지었다.

    아빠에게 써드린 후 테오와 로레인에게도 진심을 담아 써줄 생각이었다.

    세린은 두 손으로 펜을 꼭 잡은 후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들에게 자신은 그 만큼의 표현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속상하던 참이었다.

    편지는 어쩌면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랑한다고 써야할까...? 하지만 부끄러워.’

    그러나 황제는 진심을 담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세린은 결국 부끄러움을 참고 한 글자씩 땀방울을 흘리며 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오래 편지와 씨름한 세린은 다 써진 세 장의 편지를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녀를 향해 외쳤다.

    “이거, 봉투에만 넣어줘! 내가 직접 드리고 싶어.”

    “알겠습니다.”

    시녀는 공손히 세린과 닮은 분홍빛 봉투에 편지를 넣어 다시 세린에게 건네주었다.

    세린은 맑게 웃으며 테이블에서 일어났고 서둘러 황제의 집무실을 향해 달렸다.

    문을 지키던 기사들은 토토토 뛰어 오는 작은 형체에 입가가 허물어졌다.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분홍색 머리카락도 커다란 눈망울도 앙증맞은 코와 입술마저도 안 예쁜 곳이 없는 황녀님이었다.

    세린은 신나 보이는 얼굴로 기사들을 향해 “아빠한테 나 왔다고 이야기해줘!

    “라고 말하였고 기사들은 우렁찬 외침으로 황녀전하의 등장을 알렸다.

    망설임 없이 문이 열리자 황제가 바로 문 앞에 등장했고 세린은 그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아빠! 받으세요.”

    “이런... 이걸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냐.”

    “얼른 드리고 싶어서... 혹시 바쁘신데 방해를...”

    황제는 세린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란다. 어서 들어오너라.”

    세린은 황제의 품에 덜렁 안겨서 그의 집무실 책상에 함께 앉았다.

    당장에 편지를 뜯어볼 기세에 세린이 퍼뜩 놀라 그를 안아주며 말했다.

    “지, 지금은 부끄러워요... 저 없을 때...”

    “음...? 그렇구나. 알겠다.”

    황제는 다시 편지를 책상의 제일 상단의 서랍에 올렸다.

    그러자 세린은 머뭇머뭇 거리다가 이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저... 저 나가서 산책하고 올게요! 아빠 읽으세요!”

    “세린?”

    황제는 당황해하는 세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세린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얼른 읽어보았으면 싶은 그 모습에 황제가 웃음을 담으며 편지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봉투를 아주 조심스럽게 열어 종이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황제의 눈은 조용했고 입가는 이미 허물어졌다.

    작은 손으로 열심히 쓴 그 흔적이 황제의 마음을 두드렸고 그 사랑스러운 내용에 한 번 더 황제는 웃었다.

    한 번도 세린의 입을 통해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 딸에게 받은 편지에서 황제는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를 마음껏 읽고 느끼며 만끽했다.

    이것이 정말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황제는 부드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치듯이 사라진 딸을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속삭여줄 참이었다.

    황제의 긴 다리가 빠르게 걸어가며 짧은 다리로 총총 뛰어가는 세린을 바로 잡았다.

    “아빠??”

    놀란 그 눈동자가 너무도 애틋하고 사랑스러워 황제는 세린의 작고 귀여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도 사랑한단다, 세린”

    세린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지만 이내 베시시 웃으며 황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조용한 오후였고 아름다운 하루였다.

    시간은 느리게 그리고 빠르게 흘러갔다.

    트레일이 토벌을 간 것이 일주일 전이었지만 세린에게는 한 달보다 길게 느껴졌다.

    텅 비어있는 듯 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밝은 하늘을 보던 세린은 이내 마음을 다시 잡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태양 궁 복도를 빠르게 걸어가던 세린의 뒤에는 자연스럽게 시녀 한 명과 기사 두 명이 붙었다.

    시녀 멜이 세린을 향해 물었다.

    “황녀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세린은 눈을 굴려 창문을 바라보다가 이야기했다.

    “태양궁 정원으로 가고 싶어.”

    “알겠습니다.”

    멜이 방긋 웃으며 안내했다.

    길은 알고 있지만 황제의 말로는 궁에서 이동할 때 황족이 앞장을 설 수 없다고 했는데 왜일까..?

    태양궁 정원을 향해 걸어가던 세린은 다시 머리를 비집고 나오는 트레일의 모습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었다.

    아직 그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까봐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는 세린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세린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아이들 목소리였다.

    ‘아이들 목소리...?’

    황궁에서 어린 아이들이 있는 것은 처음이라 세린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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