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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6화 (16/218)
  • 16화. 트레일의 토벌준비

    세린의 건강을 누구보다 신경 쓰는 황제는 이내 건강식으로 식단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세린은 3일 동안 밥과 약의 전쟁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황제와 황족들 덕분에 금방 완쾌하고 일어날 수 있었다.

    세린은 어두운 밤에 일어나 가벼워진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제 열도 나지 않았고 목의 따끔거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불 위로 흐트러진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진 황제를 바라보다가 따뜻하게 웃었다.

    잠이든 모습마저 아름다운 황제는 3일 동안 자신의 간호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아픈 동안 한 번도 품에서 내려주지 않던 황제의 마음에 가슴이 따스해졌다.

    세린은 다시 황제의 품으로 기어들어가 그를 안아주며 다시 눈을 감았다.

    황제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고 언제나 든든했다.

    단순히 품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무서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든든한 그 품에서 세린은 안심하고 안도하며 스르륵 다시 잠이 들었다.

    따뜻한 하루의 일상이었고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세린의 아픈 목이 다 나아지고 황족들에게는 평화가 찾아왔다.

    응석을 부리는 귀여운 모습은 이제 보지 못하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해진 세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늘 평소처럼 맛있게 저녁을 다 먹은 세린은 동그랗게 부른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뚱뚱....’ 그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던 세린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로레인이 말했다.

    “날이 갈수록 더 예뻐져서 큰일이네.”

    “... 헉!!”

    세린의 얼굴이 창피로 붉게 물들었다.

    “아, 안 예뻐요..!!”

    다급히 말하는 세린의 모습에 로레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즉시 반응하는 세린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그러자 세린의 그 말을 들었던 황제부터 황태자, 트레일이 차례로 대꾸했다.

    “세린. 무슨 소리냐. 넌 예쁘단다.”

    “나도 이번만큼은 아버지 말에 긍정해. 세린 넌 예뻐.”

    “세린 오빠도 제국에서 세린만큼 예쁜 애는 못 봤는데?”

    끄아아아악!!

    본전도 찾지 못해 더욱 창피해진 세린의 얼굴이 화로마냥 붉어졌다.

    다급히 의자에서 내려온 세린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사.. 산책 갈 거예요!!”

    호다다닥 사라지는 그 뒷모습마저 귀여웠다.

    황제는 나직이 웃으며 트레일에게 말했다.

    “가보거라. 오늘 산책은 네가 돕는 것이 좋겠지.”

    트레일은 그런 황제를 얄밉다는 식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버지 탓이잖아요. 이제 저 모습을 한 달 동안 못 본다니...”

    투덜거리면서도 착실하게 긴 다리를 움직여 세린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트레일이었다.

    빠르게 땅만 바라보며 걸어가는 세린을 트레일이 붙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트레일 오빠...!”

    품에 가볍게 안긴 세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트레일은 세린의 얼굴을 다정히 바라보며 웃었다.

    구불거리는 아름다운 분홍빛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분위기가 사라진 개구진 미소.

    세린은 내일이면 한 달 동안 보지 못할 트레일의 모습을 조심조심 눈에 담았다.

    ‘한 달... 너무 길다...’

    동시에 조금 우울해졌다.

    매일같이 마주보며 함께하는 가족이 한 달 동안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쓸쓸했다.

    트레일은 시무룩한 세린을 보며 당황했다.

    “세린? 왜 그래?”

    등을 토닥여주며 세린을 달래려는 트레일은 그녀가 말없이 목을 감싸 안아주자 딱딱하게 굳었다.

    ‘레인형님!!!!! 영상구!! 영상구!!!!!!’

    그런 그의 생각이 들리지 않을 세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달이면 금방 오시는 거지요...?”

    “음...?”

    “그.. 훈련이라는 것에서 다치지도 않을 수 있는 거지요?”

    트레일은 걱정이 듬뿍 담긴 세린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눈물이 왈칵 고였다.

    이때까지 가본 훈련 중... 아니 모든 훈련 다 가기 싫었지만 제일가기 싫어진 훈련이었다.

    트레일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세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다치지 않고 바로 달려올 테니까...!! 걱정하지마 세린!”

    울면서 이야기하면 더 걱정이 드는데 말이죠...

    세린은 히히 웃으며 다시 그의 목을 껴안았다.

    “빨리 와주세요.”

    “그래!!”

    트레일은 세린을 꼭 껴안아주며 정원을 걸었다.

    트레일의 품에서 내려다본 꽃밭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직 추운 겨울이었지만 꽃밭은 따뜻했고 트레일의 단단한 품도 따스했다.

    세린은 그 짧은 산책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트레일은 간단하게 주변을 돌고 태양 궁 앞에 세린을 내려주었다.

    기사단 정비를 위해 다시 가봐야 해서 오래 산책을 하지 못해 미안했다.

    “세린 미안해. 오빠가 이제 가봐야 해서...”

    “네에.”

    “으윽...”

    세린이 다정히 웃으며 대답하자 트레일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진짜 열 불나네. 복수할거야...”

    “네??”

    “아니야. 세린 얼른 들어가~감기 걸려.”

    세린의 물음에 대답을 피한 트레일은 방긋 슬프게 웃으며 세린의 등을 밀었다.

    세린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트레일을 바라보았다.

    트레일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오... 오빠 한 달이 지나고 오시면... 그때 또 함께 산책해요.”

    붉어진 얼굴로 말하는 세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 트레일은 주먹을 꾹 쥐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젠장!! 가기 싫어!!!’

    그런 속마음과 다르게 다정하게 웃은 트레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래. 꼭 가자!”

    세린을 그리 보낸 후 트레일은 눈물을 삼키며 정비를 하러 출발했다.

    그날 밤

    세린은 황제가 안겨준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침대로 다가오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우려던 황제는 멀뚱이 자신을 바라보는 딸을 향해 물었다.

    “왜 그러니?”

    “저... 아빠...”

    “음?”

    세린은 눈을 굴리다가 다시 물어보았다.

    “트레일 오빠는 강해요?”

    “강하냐고..?”

    “네.”

    “흠....”

    부드러운 동작으로 침대에 앉은 황제는 딸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고민했다.

    “기사로써 말이니?”

    “움... 네!”

    “트레일은 아직 어리지만 제국 기사들 중 두 번째로 유능하고 강하지. 그래서 단장을 할 수 있던 거야.”

    어리다고...?

    아빠나 다른 오빠들보다는 아니지만 키가 그렇게 큰데?

    세린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오빠는 몇 살인데요?”

    “15살.”

    에...?

    황제는 세린의 당황하는 표정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뭐... 성장이 남다르지?”

    “.....”

    황제는 테오와 로레인은 저 나이에 저렇게 크지 않았다고 했다.

    트레일이 특별한 경우였다고 하는데.

    세린은 어쩐지 조금 부러워지기도 했다.

    ‘나도 잘 먹으면 오빠처럼 금방 클까?’

    그런 생각으로 고민하는 세린을 바라보던 황제는 내가 오빠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 채고 말했다.

    “테오는 지금은 19살이란다. 13살에 황태자가 되었고 그 후부터 중요한 정치 업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어. 지금 성인식을 해야 해서 고민이 많단다.”

    황제는 이어서 말했다.

    “로레인은 18살. 황궁에 있는 마법사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단다. 우리 황족들 중에서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은 로레인뿐이란다.”

    그렇구나.

    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세린 너는 달콤한 것보다 상큼한 과일류를 더 좋아하지. 다양한 영양을 섭취하려면 과일뿐만이 아니라 육류나 야채도 섞어야 해서 식단을 정할 때 조금 어렵더구나.”

    “......”

    이야기가 갑자기 산으로 간 기분인데요...

    세린은 눈만 깜빡이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멈추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했다.

    “산책을 통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규칙적이고 활동적인 운동이 필요한데... 아직 무리한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작으니... 그것도 고민이군.”

    아니 저기....

    세린은 도저히 황제의 민망한 말을 멈출 방도를 찾지 못하고 눈을 굴렸다.

    안절부절 못하는 황녀를 모르는 황제는 세린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 고민했다.

    “역시 일단 간단한 소근육을 자극하는 그림을...”

    덥썩!

    세린은 더 듣기 힘든 황제의 말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 황제를 안았다.

    세린은 황제의 몸이 딱딱하게 굳은 걸 느꼈지만 말을 멈추게 하는 것이 우선인지라 다급히 말했다.

    “아... 아빠! 저 졸려요!!”

    황제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아차 싶은 얼굴로 서둘러 세린을 베개에 눕히고 말했다.

    “이런. 내가 실수했구나. 얼른 자거라”

    세린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눈을 감았다.

    세린은 곧이어 몸을 토닥이는 부드러운 손짓에 작게 미소 지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세린이 잠들기 전까지 따뜻한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아침은 금방 밝았고 트레일의 훈련을 위한 토벌준비는 순조로웠다.

    마차의 내부로 옮겨지는 짐들을 바라보던 세린은 황제의 품에 안겨 있었고 마차에 쌓인 짐들을 살피던 로레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전부야.”

    그 말에 트레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형님.”

    “조심해서 다녀오렴.”

    로레인은 나직이 웃으며 트레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트레일은 머쓱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테오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황성의 기사단이 도적 토벌에 다치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

    트레일은 비꼬는 테오의 말에 와락 인상을 쓰며 말했다.

    “오히려 훈련이 아닌 산책을 나간 것 같아 걱정이네요.”

    “두고 보겠어.”

    테오의 대답을 끝으로 둘은 피식 웃었다.

    세린은 그저 멍하니 트레일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쳐오는 창피는 없기를 바란다.”

    “아버지까지 그러지 마시죠!”

    황제와 웃으며 인사를 한 트레일은 자연스럽게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오빠가 얼른 돌아 올 테니까 기다려!”

    세린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코끝이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눈에도 열이 몰려오는 느낌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세.. 세린???”

    당황하는 목소리가 세린의 귀에 들렸지만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결국 흐르는 눈물방울이 땅을 톡톡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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