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5화 (15/218)
  • 15화. 세린 달래기 프로젝트

    “편도가 많이 부으셨습니다. 목이 부우시면서 자연스럽게 열도 생기신 것 같은...”

    “그럼 나아질 방도는 뭔가.”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하루 식사 후에 30분이 지난 후 드셔야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목으로 넘기기 좋은 부드러운 음식을 드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주의해야할 것은?”

    “열은 목이 가라앉기 전에는 잘 안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황녀전하께서 조금 힘드시겠지만 약을 드시다보면 금방 가라앉을 것이니..”

    “더 위험한 것은 없는가?”

    “예...?”

    황제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더 큰 병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없느냐.”

    “아... 아 예... 그저 식사를 잘 챙겨주시고 약도 잘 먹여주신다면...”

    “그러면 되었다. 고맙군.”

    황제는 안심한 얼굴로 세린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식은땀과 창백한 안색이 안쓰러워 다시 미간이 좁아졌으나 이내 미간을 다시 펴고 부드럽게 세린을 안아 올렸다. 황궁의는 다급히 그런 황제에게 말했다.

    “저기... 폐하...”

    “뭐냐.”

    “그... 저기 그... 약이 많이 씁니다. 황녀전하께서 먹기 힘들어하실 수 있으나 그래도 효과가 좋으니...”

    “괜찮다. 빨리 나을 수 있는 약으로 가지고 오도록.”

    라고 말하며 황제는 냉정히 뒤를 돌아 침실로 향했다.

    젖은 물수건으로 세린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닦아준 황제는 여전히 색색거리며 힘들게 호흡을 내뱉는 세린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결국 황제는 뜬 눈으로 아침까지 세린을 간호하였다. 그러나 세린의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황제는 부드럽게 세린을 두드려주며 그녀를 깨웠다.

    “세린, 일어나야지.”

    항상 먹는 시간에 맞춰 아침을 먹이고 황궁의가 내려준 약을 먹여야 한다. 세린은 스르륵 눈을 힘겹게 뜨며 기침했다.

    “콜록! 콜록!”

    “세린...!”

    기침을 하며 목이 따끔거려 눈물이 그렁 매달린 세린은 황제에게 손을 뻗으며 칭얼거렸다.

    “아빠아아... 아파요...”

    “세린...”

    황제는 아들 셋이 한 번도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보다 더욱 가슴이 아팠고 세린의 눈물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황제는 안쓰러운 눈동자로 세린을 부드럽게 안아주며 다정히 말했다.

    “그래, 아프지 않으려면 밥을 먹어야 한단다. 어서 가서 밥을 먹고 약을 먹자꾸나.”

    “히이잉...”

    세린은 황제의 넓고 단단한 가슴에 기대어 얼굴을 부비며 칭얼거렸다.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다. 그리고 공기가 차가운 것처럼 추워져서 몸을 잔뜩 웅크렸다.

    황제는 힘들어하는 딸을 안고 서둘러 식당으로 왔다. 식당에 미리 앉아 기다리던 형제들은 아파 보이는 세린의 모습에 창백해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세린이 왜...”

    테오의 경악이 섞인 물음에 황제가 낮게 말했다.

    “편도가 부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목이 부으면서 열도 나는 것이니 약을 식 후 30분에 맞춰 먹여야 한다.”

    로레인은 황제의 말에 슬프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세린을 바라보았다. 트레일은 다급히 황제의 의자를 끌어 자리를 만들어주며 외쳤다.

    “그럼 어서 밥을 먹여야지요! 약을 먹으려면 밥을 든든히 먹어야 좋다고 하는데...!”

    “그래야지.”

    황제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세린을 아기를 보듬듯 안아주는 자세로 안아들었다. 그리고 시녀가 준비한 죽을 천천히 떠서 세린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세린은 입술을 꾸물거리다가 힘없이 입을 열어 받아서 먹었고 그대로 얼굴을 왈칵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세린...?”

    당황이 잔뜩 묻은 얼굴로 황제가 세린을 달래자 세린은 고개를 휙휙 가로 저으며 말했다.

    “먹기 싫어요....”

    “세린...!!”

    황제와 형제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든 잘 먹는 세린이 한 입 만에 먹기 싫다고 표현하니 당황스러웠다. 황제는 그런 세린을 다정히 안아주며 물었다.

    “죽이 맛이 없느냐, 다른 음식으로 바꿔주는 것이 좋겠구나.”

    “... 으으으응”

    세린은 그런 황제의 품에서 고개를 저었다. 세린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연두색의 큰 눈망울이 눈물까지 담고 있으니 황족들의 가슴은 무너졌다. 세린은 눈물을 흘리며 속상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목이 아파요..”

    “응...?”

    “목이 아파서 먹기 싫어요... 아빠....”

    세린은 황제의 옷을 붙잡으며 작게 식식 거리고 불편한 숨을 내뱉었다. 열로 인해 달아오른 볼과 그 거친 호흡이 황제를 슬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황궁의가 주의를 주었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그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서 황제는 마음을 다잡았다.

    “세린, 죽을 먹고 나면 약을 먹을 것이란다. 약을 먹다보면 목이 아픈 것도 금방 나아진다고 황궁의가 그랬어.”

    “.... 히잉... 먹기 싫은데...”

    세린은 그의 말에 황제의 품에서 고개를 부비며 눈물을 글썽였다. 트레일은 벌써 마음이 약해진 얼굴이었다.

    “억지로 먹이면 병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아버지...”

    그런 그의 말에 테오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세린이 아프지 않으려면 약을 먹어야 하고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을 필요가 있다. 세린, 우리 조금만 더 먹고 약을 먹자꾸나.”

    세린은 테오의 다정한 부탁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로레인도 난처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세린을 달래기 시작했다.

    “세린, 얼른 먹자. 다 먹으면 오빠가 마법을 보여줄게.”

    그러나 세린의 고개는 돌아가지 않았다. 황족들은 처음 보는 세린의 고집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세린의 거친 기침에 황제가 놀라 세린의 등을 두드렸다.

    “히이잉...”

    세린의 칭얼거림이 늘어나자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너무도 안쓰러웠다. 황제는 그래도 다소 엄한 얼굴로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세린, 얼른 나으려면 밥을 먹어야해. 아빠는 네가 아픈 것을 보고 싶지가 않구나.”

    “.... 아빠아....”

    황제의 엄한 표정에 세린의 눈이 흔들렸다. 그렁그렁 애처롭게 매달린 눈물이 결국 세린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세린은 황제의 어깨에 힘없이 기대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조금만 먹을게요...”

    그 대답에 황제의 표정이 밝아졌다. 황제는 서둘러 세린의 입가에 죽을 넣어주었고 세린은 꼭꼭 씹어서 먹다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삼키기를 반복했다.

    세린이 음식을 삼킬 때마다 세린과 함께 얼굴이 일그러지는 황족들은 세린이 죽을 다 먹자 박수를 쳐주며 칭찬해주기 바빴다.

    “다 먹었구나! 훌륭해!”

    “기특하구나.”

    “잘했어 세린.”

    모두의 칭찬을 들어도 아픈 것은 여전했던 세린은 토라진 듯 고개를 휙 돌려 황제의 어깨에 기대었다. 황제는 서둘러 세린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녀를 달래려 애썼다.

    세린은 점점 힘이 없어졌다. 몸도 무거웠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여전히 공기가 차가운 것처럼 추워서 몸을 계속 웅크리고 있었다. 작게 오들오들 떠는 딸의 기운에 황제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세린은 가만히 침대에 앉아 황제가 쥐여 준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을 읽을 기분도 아니었고 너무 힘이 들어서 그저 황제의 품에 안겨만 있고 싶었다.

    세린은 두 팔을 황제에게 뻗어 말했다.

    “아빠... 저 아빠랑 있을래요..”

    황제는 이제 막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해야 했었다. 당황한 얼굴로 딸을 본 황제는 세린의 칭얼거림에서 느껴지는 사랑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세린을 안아 올렸다.

    황제의 품에서 안정을 취해가는 세린은 가만히 그의 향기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몸이 노곤하여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았다.

    황제는 세린을 품에 안은 자세로 집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깃펜이 부드럽게 움직여 사인을 하는 황제의 고운 손을 바라보던 세린은 두 눈을 끔뻑이며 졸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냐.”

    냉정한 황제의 물음에 “약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황제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라고 이야기하였고 시녀가 하얀 그릇을 들고 집무실에 들어왔다.

    시녀의 손에서 건네받은 약은 매우 진한 갈색이었다. 향기만 맡아도 매우 쓸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황제는 약을 받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먹어주려나...?

    먹어야 빨리 나을 텐데...

    결국 황제는 스푼으로 약을 한 숟가락 떠서 세린에게 말했다.

    “약이란다. 이것을 얼른 먹고 빨리 자자.”

    “......”

    냄새만 맡았을 뿐이었으나 세린은 먹기 싫어졌다. 아픈 것도 서러웠는데 약까지 써보였다. 신체가 힘이 없어지니 어린 마음에 속까지 상해져서 세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세린...?”

    “... 먹기 싫어요....”

    황제는 속상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 같아도 먹기 싫을 것 같은 색이었다. 그러나 하나뿐인 딸이 아픈 것은 더욱 싫었다.

    황제는 부드럽게 말했다.

    “세린, 아픈 것이 싫지...?”

    “... 네에...”

    “얼른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아빠가 이야기 했었는지 기억이 나느냐...?”

    세린은 붉어진 볼을 하고 힘없이 말했다.

    “밥 먹고... 약을 먹고...”

    황제는 기억해주는 세린의 모습이 그저 기특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 세린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냐.”

    “... 약을 먹어야 해요...”

    “똑똑하구나. 세린 한 입이라도 좋으니 약을 먹어주었으면 아빠의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단다.”

    “...... 네에..”

    세린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황제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는 세린이라서 입을 크게 벌려 약을 먹을 준비를 했다.

    황제는 그런 세린을 기특하게 바라보며 서둘러 약을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인상을 왈칵 일그러트렸지만 뱉지 않고 꿀꺽 삼켰다.

    “으으에에..”

    “멋지구나, 조금만 더 힘 내거라.”

    “... 이이잉.... 아”

    세린은 다시 입을 벌리고 약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떠서 먹여준 약은 금방 바닥이 났고 세린은 지친 기색으로 황제의 품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황제는 작디작은 딸을 품에서 두드려주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작은 몸에 이만큼의 열이 나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화도 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