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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4화 (14/218)

14화. 세린이 아파요

세린이 황성에 온지 한 달이 흘렀다.

타다다닥

분홍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세린의 볼을 간지럽혔으나 세린은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황녀님~!! 위험해요! 걸어서 가셔야지요!”

시녀의 애달픈 부름에 짧게 미안하다고 소리치고 마저 달려간 세린의 앞에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표정이 저절로 환해진 세린은 다급히 문을 지키던 기사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본 기사가 주춤 뒤로 물러났지만 세린은 더욱 다가서며 물었다.

“오늘 정말 케이크가 나와?”

기사는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눈을 피하다가 이내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고 동시에 세린은 누군가의 품에 안겼다.

“기사가 곤란해진단다.”

“하지만...”

세린을 안아준 사람은 테오였다.

“레몬시럽으로 만든 케이크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우와아....”

반짝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겨 정돈한 테오는 세린을 한 팔로 안아들고 그대로 식당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군.”

“1등이에요”

“그렇구나.”

테오는 피식 웃으며 세린을 식당 의자에 올려주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큰 눈망울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관찰했고 그 아름다운 자태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배고프다...”

그러다 마주친 테오의 눈을 본 후 세린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테오의 눈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세린은 조용하게 눈을 내려 입고 온 하얀 드레스의 리본을 만지작거렸고 테오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애가 배고프다는데 지각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기지도 않는군. 다들 정신을 어따 팔아먹었기에 세린 점심시간도 맞추지 못하는 건지... 쯧.”

혀까지 차며 심기가 불편함을 표출한 테오의 모습에 세린은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아직 배 안 고파요!”

“... 그 자들을 감싸줄 필요는 없다.”

불만이 섞인 목소리에 세린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 그냥 배가 고플 것 같아서 그래요...!”

“그렇다면 먼저 먹어도 좋다.”

음식을 덜어주려는 테오의 모습에 세린이 다급하게 그를 만류했다.

“오.. 오빠! 저 아빠랑 오빠들 다 오면 먹고 싶어요.....”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으나 테오의 동작을 멈추게 하는 것에는 성공하였다.

테오는 나이프와 포크를 든 손을 한차례 부들부들 떨다가 소리를 내지 않고 식탁에 올렸다.

“네가 원한다면...”

뭔가 만족감이 가득 담은 목소리여서 어리둥절했지만 세린은 안도하며 가족들을 기다렸다.

아빠에게 진실을 들은 후 세린은 정말 또래 귀족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지냈다.

산책을 해보고 책을 읽고 낮잠도 자고 밥도 든든히 잘 먹으면서 말이다.

다만, 딱 한 가지 평범한 생활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었다.

세린의 주변을 기웃거리는 거대한 4명의 남자들이었다.

정원을 산책하는 세린에게 '우연이구나' 라고 하며 자연스럽게 산책을 같이 하는 제국에서 2번째로 바쁜 황태자와 세린이 식사를 할 때마다 세린이 잘 먹는 음식을 체크해서 그 날의 메뉴를 스스로 선정하는 제국에서 제일 바쁜 황제.

책을 읽는 세린의 주위에 영상구를 잔뜩 만들어 세린의 영상을 수집하는 황성의 마법사 2황자 로레인과 그저 세린만 쫓아다니는 제1기사단 단장 3황자 트레일은 세린의 평범한 삶 중 평범치 않은 가족들이었다.

자신의 이야기에 껌뻑 죽는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린은 날이 갈수록 생기가 넘쳤다.

이제는 잘 웃고 잘 먹는 그 모습에 황족들은 만족감을 느꼈다.

끼이이익

웅장한 문이 열리고 황제와 트레일, 로레인이 차례로 들어왔다.

“늦었구나. 미안하다 세린.”

황제는 서둘러 세린의 옆에 앉으며 사과했다.

괜찮다고 말하려던 찰나에 테오가 말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세린이 배고프다고 했지요.”

“..!!!!!”

쿠당탕!!

그의 한마디에 황제와 로레인은 창백해졌고 트레일은 의자에 앉으려는 자세로 굳어버려 바닥을 굴렀다.

그러다 벌떡 일어난 트레일은 다급하게 세린을 향해 외쳤다.

“세린!! 미안해!! 곧 있으면 기사단 훈련을 떠나야 해서 물품을 준비하느라..!”

“훈련이요...?”

“음? 아 응! 제국 경계선을 따라 우리 기사단이 도적이나 산적을 토벌해야 하거든.”

“아아....”

세린의 큰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트레일은 잠시 묵묵히 서 있다가 털썩 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으으으!!! 그놈의 토벌이 뭐라고!!! 왜 기사단 훈련을 한 달로 하신 겁니까?!!”

악쓰는 트레일을 무감정하게 바라본 황제는 픽 웃으며 대답했다.

“뭐... 원래는 일주일이 맞지만. 제국을 지키는 1기사단의 기사들이니만큼 더 강해져야겠지”

“아버지 사심이 가득 들은 훈련기간이라고요!! 한 달 동안 우리 세린도 보지 못하고!!!”

둘의 신경전을 가만히 지켜본 세린은 조심스럽게 고기 한 조각을 올려주는 손길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로레인이 아름다운 그 얼굴에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늦어서 미안해. 내가 훈련에 필요한 물품 수량을 체크해주기로 했거든.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배 많이 고팠지?”

세린은 다정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포크를 들고 그가 올려준 고기를 한 입 먹었다.

‘역시 맛있어!’

세린의 눈이 환해지자 그를 바라본 테오와 로레인의 표정도 환해졌다.

신경전이 진행 중인 황제와 트레일을 무시하고 세 사람은 다정하게 서로를 챙기며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다 먹어가자 세린의 포크질이 느려졌다.

힐끔 문가를 바라보는 것이 무언가 기다리는 것이 있는 듯 했다.

황제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세린..? 왜 그러니?”

문가를 바라본 세린이 퍼뜩 놀라 몸을 움찔하자 황제가 등을 두드려주며 다시 물었다.

“기다리는 것이라도 있는 것이냐?”

황제의 다정한 말에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던 세린은 황족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리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그?”

“레몬시럽 케이크가 안 나왔어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황제와 오빠들의 정적에 세린의 얼굴이 붉게 익었다.

얼굴이 잔뜩 붉어진 것이 많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황제는 잠시 멈칫하다가 벨을 흔들었다.

시녀가 다가오자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레몬 시럽 케이크가 안 나왔다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메뉴 선정은 황제가 세린의 식단에 맞춰 스스로 선정했다.)

시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죄송합니다! 메뉴 착오가 있던 모양입니다. 지금 바로 케이크를 가져 오겠습니다.”

황제는 비웃음을 가득 지으며 말했다.

“주방에 있는 케이크들은.”

세린은 황제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싹 다 가져와.”

세린의 눈에서 황제는 빛이 났다.

시녀들은 서둘러 주방으로 이동하여 다양한 케이크를 식탁 위로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 맛있는 케이크의 자태와 윤기에 세린의 목에 침이 넘어갔다.

“꿀꺽.”

그 모습에 황족들은 저마다 심장을 부여잡고 애틋하게 세린을 바라보았다.

저리도 좋아하는데 미처 케이크가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 알아주지 못한 자신들에게 화도 났다.

황제는 다정히 웃으며 세린에게 말했다.

“먹고 싶은 것부터 먹거라.”

어떤 케이크를 원하는지 말만하면 당장에 그릇에 전부 올려줄 분위기에 세린이 잔뜩 붉어진 볼로 레몬시럽이 들어간 케이크를 가리켰다.

“레몬 시럽이 들어간 케이크가 먹고 싶어요...”

그러자 황제는 당장에 고개를 끄덕인 후 자연스럽게 케이크를 세린의 그릇 위로 올려주었다.

그러자 세린의 얼굴이 환해지며 포크를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서두르는 기색이 조금 보이자 테오가 말했다.

“세린, 체할 수 있으니 천천히 먹거라.”

“네에...!”

세린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느리게 포크를 사용했다.

하지만 케이크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너무도 맛이 있어 두 눈을 빛내며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로레인은 그 모습이 귀여워 쿡쿡 웃다가 조심스럽게 영상구를 꺼냈다.

황족들의 시선이 모두 그 곳으로 쏠렸다.

로레인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테오도 함께 끄덕였다.

트레일 또한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무슨 대화인지는 모르나 아주 중대한 사항을 무언으로 나누는듯한 모습에 시녀들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세린은 그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결국 세린은 체를 하고 말았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만지작거리던 세린은 머리에 몰리는 어지러움과 속이 메슥거리는 기분에 조금 힘겨워했다.

그러다 '괜찮아지겠지'라고 넘겨버리며 잠이 들었고 체를 동반한 뒤늦은 감기가 세린에게 찾아왔다.

저녁의 회의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온 황제는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운 세린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에 닿는 온기에 황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린의 이마는 불덩이였다.

이마에서부터 느껴지는 세린의 열에 황제가 당황했다.

세린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인상을 쓰고 있었고 작은 입술에서 세어 나오는 신음소리가 황제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서둘러 세린을 안아 든 황제는 세린의 몸은 차갑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더욱 창백해지며 다급히 밖의 시녀들을 향해 외쳤다.

“당장 황궁의를 들여라!”

“으으...”

작게 꿍얼거리는 세린의 신음에 다시 조급해진 황제는 다시 외쳤다.

“아니, 지금 내가 데리고 가겠다!”

그리곤 긴 다리를 성큼성큼 걸어서 태양궁에서 대기하는 황궁의에게로 갔다.

황궁의는 늦은 저녁에 갑자기 나타난 황제에 의해 놀랐다.

그러다 그의 품에서 창백하게 질려있는 황녀를 본 후 그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황궁의는 서둘러 세린을 침대 위에 눕힌 후 맥을 확인하고 이마에 손을 올리며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황제는 정신이 사나워지도록 세린의 주변을 맴돌며 “아직 멀었나?” “왜 그러는 건가.”등의 질문으로 황궁의를 괴롭혔다.

황궁의는 그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말하며 서둘러 검사를 마무리했다.

황궁의는 황녀의 증상에 대해 서류에 작성해가며 황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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