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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3화 (13/218)

13화.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황후는 붉게 타오르는 후작 성을 뒤로 하고 다급히 세린을 잔디에 눕혀 바라보았다.

호흡이 거칠어진 세린의 미간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세린! 정신 차리렴! 엄마를 봐!"

작디작은 딸의 발끝은 복숭아뼈의 높이까지 썩어가고 있었다.

황후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서둘러 황제의 집무실로 순간이동을 했다.

파앗!!

빛과 함께 나타난 황후의 앞에 사색으로 변한 황제가 다급히 달려왔다.

테오와 트레일, 로레인도 함께였다.

"아리엘!!!"

"세린이... 세린이...!"

황후는 황제의 모습을 보자 눈물을 쏟았다.

그의 품에 기대어 흐느끼며 울던 황후를 달래던 황제는 황후의 품속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딸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발끝에서부터 썩어가며 악취를 풍기는 딸의 모습은 황제의 가슴을 난도질 했다.

"세린... 아가....."

황제는 세린의 볼을 쓰다듬다가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후작을 진작에 죽였어야했다.

로레인을 이용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때 죽였어야했다.

황제는 그 후 세린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집무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어둠술사들의 존재는 매우 드물었고 그 존재를 아는 이도 현저히 적어 방법을 찾기가 막막했다.

심지어 지금 제국에서는 황녀가 저주받았다는 소식에 백성들이 공포로 물들었다는 서신이 끝없이 들어왔다.

썩어가며 죽어가는 황녀의 저주가 옮고 옮아서 제국이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썩어가는 저주까지 알고 있다고? 어디에서부터 소문이 시작된 것이지...?'

세린이 저주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들은 지금까지 황족들뿐이었다.

세린의 저주에 동참한 반란군을 아리엘이 모두 죽였는데 이런 소문이 돌았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황제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끝없는 항의문서와 서신에서는 세린과 황후가 마녀라는 소문도 돌았고 세린의 저주가 전염이라도 될까봐 무서우니 당장 제국 밖으로 내쫓거나 심하게는 화형을 시키라는 말까지 있었다.

황제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으며 욕을 내뱉었다.

시종은 그런 황제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후 폐하께는 알리지 못하였습니다만 귀족들 사이에서는 황녀님의 저주로 인한 피해와 함께 황녀님을 제국에서 추방시키는 것을 주제로 재판을 신청..."

쾅!!!!

황제의 책상에 고이 놓여 진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지금... 누가 누구를 추방해...?"

"송구합니다. 들은 그대로 전해드린 것뿐이오니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주소서..."

"기각한다. 다시는 내 귀로 재판이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황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딸은 죽어가고 있었다.

황제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딸이 있을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 빛 머리카락이었고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작은 딸의 모습이었다.

황제는 다정하게 황후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물었다.

"가서 자지 않고..."

"저주는 감기가 아니에요..."

"음...?"

황후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황제는 다급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려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황후는 울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도 닦지 못하고 황후는 소리쳤다.

"저주는 옮는 병 같은 것이 아니에요!!"

아까 집무실에서 한 이야기가 황후의 귀에 흘러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황제는 흥분하는 황후를 안아주며 이야기했다.

"진정하시오. 나도 알고 있소"

"진정할 수가 없어요!! 모두가 세린을 죽이려 하잖아요!!"

"황후... 이는 내가 처리하리다. 절대 세린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오. 세린의 저주도 내가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테니 제발 울지 마시오.“

"흑....“울먹이는 목소리로 황후는 황제의 품에 안겼다.

"세린 그 작은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대체 왜..."

"황후... 날 보시오“

황제의 붉은 눈이 황후의 연두 빛 눈동자와 마주치며 다짐하듯 말했다.

"반드시 지켜 주리다... 세린도... 당신도...."

황후은 그저 말없이 황제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이대로 세린이 황성에 남는다면 백성들의 민심은 구겨지고 심하게는 황제와 황자들을 위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다음 날, 제국의 백성들이 황성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황녀의 추방과 화형을 외치자 황후는 황녀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것이 아빠의 이야기의 끝이었다.

"가보지 못한 곳이 없었다. 너와 엄마를 찾으려고 매일 떠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어. 그러다 그녀의 마력이 느껴져서 그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 보니 보이는 건....."

엄마의 시신이었지.

아빠의 뒷말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조심스럽게 그의 넓은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빠의 가슴은 상처투성이였다.

"다 내 탓이란다. 내가 엄마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지켜주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야"

"....."

고개를 살며시 들어 아버지의 죄책감서린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

"아니에요..."

"...."

아빠는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말을 돌리며 내게 물었다.

"세린. 너의 엄마가 편지를 남겼다는 것을 알고 있니?"

"...!!!!!"

나는 아빠의 말에 놀라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내 눈동자를 보며 아빠는 슬프게 웃었다.

"편지랄까... 일기 같은 기록지였지."

"...?"

"저주에 걸린 너를 안고 여러 실험을 해본 기록이 적혀 있었단다."

실험...?

"너의 생명을 갉아 먹는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다가 발견한 거지. 널 살릴 수 있는 방법을"

"....."

"그게 비록 저주를 자신에게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

"미련하고 바보 같은 엄마지?"

"....!!"

"세린. 이 이야기는 네 탓을 하기 위함이 아니야. 들어 주렴“아빠의 단호한 음성에 나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주를 풀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 결과는 너에게 박혀있는 저주를 자신에게로 옮기는 것이었다고 쓰여 있었어. 저주는 살아있는 생명에만 붙는 다는 것을 이용했다고... 그리고 남은 마력으로 이미 썩어버린 너의 몸을 되돌리기 위해 네 시간을 거꾸로 재생시킨 것이다“

"거꾸로...?“

"그래. 너를 저주받기 전의 나이로 되돌렸다는 것이란다. 그러니 넌 둘째딸이 아니라 나와 아리엘의 첫째 딸이라는 것이지.“

"..!!!!!“그러면 아기의 모습을 하던 내 모습은 엄마가 저주로 인해 썩었던 내 몸을 돌려놓기 위해 내 신체의 시간만 거꾸로 재생시켰다는 이야기인가...?

아빠는 혼란에 가득 찬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웃었다.

"네가 기억에 혼란이 온 이유도 알 것 같구나. 5살이었던 네가 다시 어려지면서 기억 일부가 지워진 것이겠지. 가질 수 있는 뇌의 기억용량은 나이마다 달라지니까 말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아찔해졌다.

엄마는 결국 나를 위해 살다가 나를 위해 죽은 것이었다.

엄마가 드문드문 짙은 고독을 느끼며 슬퍼할 때에 첫째 딸이었던 내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닌 황궁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들들과 남편을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런 희생을 아무 말 없이 감내하며 버틴 것일까.

아빠의 말처럼 엄마는 참 미련했다.

엄마가 지니고 있던 마력의 힘이 방대해서 저주를 지니고도 오래 버틴 것이라고 했다.

7년 동안 저주를 품에 안고 버틴 엄마의 모습에 다시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지금 내 옆에 그녀가 없음이 지독하게도 슬펐다.

황제는 울고 있는 나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창문 밖의 해가 하늘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고 붉게 타오르는 아침 풍경처럼 아빠와 내 눈가도 붉어졌다.

모든 의문이 풀렸음에도 가슴이 갑갑했다.

지금 미친 듯이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빠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다시 깊은 잠에 빠진 세린이었다.

슬프게 울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황제는 아리엘은 창녀촌에서 남자 손님을 받을 적에 마법을 사용해서 기분 좋은 수마에 들 수 있도록 조작을 했다고 적혀있었던 기록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 기록을 읽으며 아리엘이 창녀촌으로 숨은 이유가 단지 백성들의 휘어진 민심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이유로 인해 그 구석진 곳에서 이를 악물고 버텼을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에 쫓겼기 때문에 그런 곳으로 숨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황제는 그 기록지를 수십 번 반복하여 읽으며 아리엘의 흔적을 찾고 또 찾았다.

왜 하필 그 곳에 숨은 걸까?

무엇이 당신을 그리 위협했던 것일까?

머리를 쓸 줄 모르는 페르돈이 어둠술사와 계약했던 그 모습에서부터 불길한 예상과 감이 생겨났다.

우연히 어둠술사와 계약을 했다?

말도 안 되었다.

그러다가 황성을 뚫을 듯 들려오는 세린을 화형시키라는 그 말이 무섭고 두려웠을 그녀를 생각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세린의 저주를 완벽히 옮기고 나서도 황성으로 돌아오지를 못했을까.

국민들의 불신과 압박이 다시 반복되어 위험해질까봐 돌아오지 못했음을 예상하고는 있다.

얼마나 그 더러운 구석에서 필사적으로 버텨낸 것일까.

내가 얼마나 그녀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던 것일까.

사랑하는 이 한 명 지키지도 못하고 늦어버린 제 자신이 한심하고 역겨웠다.

청혼을 하지 말 것을 그랬나.

그녀가 냉정히 거절할 때 포기를 할 것을 그랬나.

그래야 그녀가 더 좋은 삶에서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황제의 가슴은 짙은 죄책감의 무게로 무거워져갔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바꿨다.

아리엘과 만났기에 지금의 의젓한 황태자를 둘 수 있었다.

다정한 로레인도 아들로 들일 수 있었고 저 씩씩한 트레일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 덕분에 다시 한 번 사랑스러운 딸을 다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황제는 창문 밖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고.

세린에게도. 자신에게도 말이다.

이제는 남은 우리 아이들의 길을 위해 꽃밭을 가꾸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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