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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2화 (12/218)
  • 12화. 후작의 최후

    황후는 멀리서 걸어오는 인영을 바라보면서도 손 안의 마력을 풀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가는 황성에서 일어나는 암살이라니.

    웃기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어린 딸이 그녀의 품안에 있었다.

    딸을 보호하고 서둘러 황제를 불러야 하는데...

    황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걸어오는 인영은 까만색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자리에 멈췄다.

    “넌 누구냐.”

    “.....”

    “노리는 것은 누구냐.”

    “........”

    황후는 침묵하는 인영을 바라보며 품속의 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목이 타는 침묵 속에서 황후는 건너편의 사람을 파악하려 애썼다.

    ‘칼을 손으로 던진 것이 아니야. 마법으로 날린 것 같은데... 나와 같은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니...’

    마법사가 지니는 특색 있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자 황후는 당황했다.

    분명 사람의 힘으로 던진 파동이 아니었는데...

    그런 고민과 동시에 황후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세린!”

    “레인!!! 오지마!!”

    다급히 뒤를 돌아본 황후는 달려오는 로레인의 모습이 보이자 목청껏 소리쳤다.

    그런 황후의 모습에 놀라 자리에서 멈춘 로레인은 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황후가 다시 고개를 들어 건너편 사내에게 눈을 돌리자마자 황후와 세린을 보호하던 막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광!!!!!!

    “어머니!!!!”

    후두둑 떨어지는 돌조각과 꽃잎 사이에서 흙투성이가 되어버린 황후가 천천히 보였다.

    “윽....”

    마력을 높이 쌓아 올려 만든 보호막이 깨지고 그 사이로 검은 색의 안개가 일렁였다.

    황후는 그 안개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밑에 머리를 감싸고 두 눈을 꼭 감은 세린을 관찰하며 그녀가 다친 곳이 없음에 안도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보니 상처가 조금 깊은 것 같았다.

    황후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뒤로 넘긴 후 세린을 꼭 안아주려 팔을 내렸고 옅은 연두 빛 눈동자와 마주친 것과 동시에 세린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 세린?!”

    황후는 너무 놀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고 건너편 사내의 품에서 기절하듯이 눈을 감은 세린의 모습이 보이자 저절로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법의 힘으로 옮긴 것이 아니었다.

    마력이 아닌 힘으로 그리고 저 검은 안개를 사용하는 자들은 정해져있었다.

    황후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었다.

    “내 딸을 어떻게 하려는 거지...”

    “......”

    “당장 돌려줘!!”

    황후의 손에서 파스스 소리를 내던 마력이 격한 파동을 일으켰다.

    사내는 씩 웃으며 물었다.

    “그거... 잘못하다가 애도 죽어.”

    “.....”

    황후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침착한 모습으로 물었다.

    “노리는 것이 황녀냐.”

    “.....”

    “.... 정확히는 세린뿐이 아닌 것 같군...”

    “...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내는 태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네가 고용된 시기가 문제지... 지금은 황태자 책봉을 결정하는 중이니까! 황위계승자격이 없는 세린부터 노리는 것도 그렇고.... 제멋대로 들고 휘두를 수 있는 황위계승 자격을 지닌 로레인을 제외한 나머지 황족을 죽이라는... 뭐 그런 내용의 의뢰가 아니었나... 하는 예상.”

    황후의 말에 사내가 낮게 혀를 찼다.

    “참나...”

    그러다 이내 씨익 웃은 사내는 낮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맞아. 하지만 지금은 황족들이 사랑하는 황녀를 먼저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게 죽여 달라는 의뢰여서 말이야. 나는 생각보다 충실한 사람이라서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해.”

    “너...!!!”

    “너는 대마법사라고 했지?”

    검은 로브 속 사내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담겼다.

    사내의 손이 생기가 흘러넘치는 세린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진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술사라고... 알고 있지?”

    “........”

    입술을 꼭 깨문 황후의 반응에 사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어둠술사를 알고 있구나... 대단해! 역시나 대마법사.”

    “세린에게 손대지마!!”

    “어둠술사의 고유 능력은 그림자와 저주지.”

    사내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황녀가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잘 봐줘.”

    “세린!!!!!!”

    황후의 절망과 함께 세린의 몸에 검은 안개가 들어갔다.

    세린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어버린 볼을 하고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뒤에서 바라보던 로레인은 너무나도 놀라 멍하니 그 모습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이제 아들 관리 잘해야 할 거야.”

    말을 내뱉은 사내는 망설임 없이 세린을 땅에 던지듯이 내려놓았고 뒤를 돌아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황후는 다급히 세린을 받아들고 그녀의 몸을 살폈다.

    세린은 창백해진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황후는 철렁이는 마음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세린의 몸을 살피다 신발을 벗겼고 이내 한 번 더 절망에 빠졌다.

    세린의 발끝은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다.

    황후는 이를 악 물으며 눈물을 참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황후는 다급히 세린을 고쳐 안은 후 로레인을 향해 소리쳤다.

    “레인!! 당장 아빠에게로 뛰어가!! 어서!!! 가서 형을..!! 동생들을 보호해달라고 전해!!!”

    로레인은 다급한 그 음성에 퍼뜩 놀라 움찔 떨었고 황후가 황제에게로 가라며 소리치자 입술을 꾹 깨물고 뛰어갔다.

    황후는 사내가 사라진 자리에 손을 올렸다.

    아이들이 위험해지기 전에 그 뿌리를 뽑을 생각이었다.

    반드시 널 죽여서 세린을 돌려놓겠어...!!!

    황후는 남겨진 사내의 흔적을 타고 그의 위치를 파악하려 애썼다.

    마력과는 반대의 속성인 어둠을 파악하기란 어려웠으나 사내의 몸에 아주 옅게 있던 마력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한 황후는 바로 워프를 외쳤다.

    그리고 황후가 그의 어둠을 따라 도착한 그 곳은 페르돈 후작가의 집무실이었다. 후작은 후작성에서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렵게 구한 어둠술사에게 의뢰하여 황녀를 제일 먼저 죽인 후 3황자... 그리고 1황자를 죽일 예정이었다.

    그 후 로레인을 황위에 올려 황태자로 책봉할 수밖에 없는 황제에게 사생아를 황태자로 책봉하여 어찌 하냐며 비웃을 생각도 하면서 즐거워하던 후작이었다.

    로레인을 제외한 황족들을 죽여 천천히 황제와 황후를 압박할 생각으로 기분이 좋았었던 후작의 앞에 황후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상처투성이의 황후가 후작 집무실에 황녀를 안고 허공에서 나타나자 내부에 있던 귀족들과 후작은 당황했다.

    그 당황 속에서는 어둠술사도 있었다.

    어둠술사의 주 마력은 어둠이었다.

    마법사처럼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그런 그의 흔적을 도대체 무슨 수로 찾아낸 거지??

    황후는 그런 어둠술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 비웃음을 담았다.

    “내가 누구인지 네가 더 잘 알 텐데...”

    황후는 타오르는 눈동자로 창백해진 후작과 그리고 어둠술사, 함께 있던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황제가 말해준 반란군의 조짐이 보이는 이들이었다.

    황후는 세린을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난 대마법사야. 어둠술사를 잘 모르는 애송이들은 방법이 없었겠지만... 난 너희들을 알거든.”

    그리고 황후는 날카롭게 어둠술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마탑에서 보낸 녀석이지?”

    “...!!”

    어둠술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게 아니라면 네 몸에 있는 마력인장은 설명할 수 없어. 그 마력인장 덕분에 널 찾아낼 수 있었으니 어쩌면 다행이구나.”

    그러한 황후의 말에 안색에 창백해진 어둠술사는 다급히 후작을 향해 말했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고 말하지 않았잖아!”

    그의 말에 대답해준 것은 황후였다.

    “당연히 몰랐겠지. 다들 입으로만 떠들고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후작은 어둠술사의 화난 음성에도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풍성했던 금발 밑의 빛나는 얼굴은 공포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대마법사의 기세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리석기는....”

    황후는 냉소를 지으며 후작을 비웃었다.

    “오늘 내가 황후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이 있더라도 너희들의 씨를 말려죽이고 내려가겠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서 너희들은 필요 없으니까.”

    황후는 마법으로 바로 옆 귀족을 불태웠다.

    “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황후는 이어 도망가려던 어둠술사의 다리를 가루로 만들어 날려 버렸다.

    “허억!!”

    신음소리도 내뱉지 못하고 쓰러진 어둠술사는 사라진 제 다리를 보며 부들부들 떨었고 황후는 감정 없이 웃으며 말했다.

    “어찌한다. 도망갈 다리가 없어졌네.”

    “너... 이..... 허억 헉”

    황후는 천천히 어둠술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 딸의 저주를 풀어준다면... 다리쯤이야 다시 만들어주지.”

    “후... 허억... 헉... 푸흣...”

    “...?”

    어둠술사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하긴.. 후윽... 후.... 난 저주를 거는 방법은 알아도... 허억... 푸는 방법 따위 몰라....”

    “...!!!”

    “저주는 걸라고 있는 거지... 후욱... 풀기 위해 있는 게... 아, 아니라고 멍청한 년아...”

    황후는 낄낄 웃는 어둠술사를 무감정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죽어.”

    “안..!!

    “ 파사사삭

    어둠술사의 전신은 가루로 변하여 바닥에 뿌려졌고 황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후작을 향해 걸어갔다.

    뒷걸음질 치는 후작을 바라보던 황후는 이를 악 물으며 말했다.

    “네가 감히 내 딸을 죽이려 했다지...”

    “... 윽..... 큭.....”

    덜덜 떨며 뒤로 걷는 후작을 향해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내 아들을 이용해서 황위에 오르려 한다고...? 아무 죄도 없는 우리 아이들을 죽이고 네가 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공포에 휩싸여 몸을 휘청이는 후작을 바라본 황후는 쾅 소리를 내며 바닥을 발로 내리쳤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황제가 될 수 없던 이유가 아직도 그 금발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후작?”

    “... 끄윽...”

    “미안하지만 네가 너무 멍청한 탓이다. 로레인은 이제 네 도구 따위가 아니라 내 아들이야.”

    황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후작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제부터 페르돈의 씨앗을 모두 죽여 버릴 거야. 네 그 잘난 아들도 아내도 그리고 너도. 살아서 나갈 수 없어/”

    “제.. 제발 용서를..!!!”

    다급히 무릎을 꿇는 후작을 바라보던 황후는 독한 모습으로 웃으며 말했다.

    “늦었어...!”

    콰과과과광!!!!!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후작성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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