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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1화 (11/218)
  • 11화. 다가오는 어둠

    “로레인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 마음을 내 알고 있네. 그러나 후계는 정통의 피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 노후를 위해 좋지 않겠나?”

    후작은 한 손으로 컵을 돌리며 묵묵히 있었다.

    황제는 이죽거리며 이어 말했다.

    “아 어차피 로레인 내 조카를 보고나니 짐이 마음이 놓여. 다행스럽게도 이미 후계를 뱃속의 그 아이로 점찍은 것이 티가 나더군.”

    후작은 샴페인을 내리며 황제를 싸늘히 바라보았다.

    “하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역시 후작. 내 마음을 그리 잘 알아주니 고맙군.”

    황제의 미소에 후작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황제는 한 쪽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로레인을 황족으로 입적하겠네.”

    “....!!!!!!”

    후작의 얼굴에 경악이 섞였다.

    황제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내 아들을 닮아 애틋해서... 후계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면 황족으로 남은 생을 누리는 것이 아이에게 더 행복할 것이 아닌가.”

    “폐하 제 아들입니다. 어찌 같은 사람으로서 아비에게 하나뿐인 자식을 달라하십니까!”

    황제는 후작의 비통한 목소리에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아주 멋들어지게 미쳤군.’

    그러나 표정만큼은 아주 애틋한 눈으로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마음을 내 잘 아네. 그러나 지금 로레인을 보고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

    “아이가 저리도 마르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후작이 저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서가 아닌가?”

    돈보다 주는 정이 없으니 아이가 저리 말라 비틀어져 굶주림에 죽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워낙 가리는 음식이나 못 먹는 것이 많아...”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황성으로 데리고 가고 싶다는 이야기지.”

    “......”

    “황성은 후작가보다 더 훌륭한 요리장도 있으며 뛰어난 의사도 있지.”

    “폐하...”

    악 다문 입 사이로 꾹 눌러 참는 신음이 흘러 나왔다.

    황제는 세상 다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아이가 계속이 내 눈에 밟혀서 잠을 제대로 못 자네. 황후도 로레인이 황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사생아라는 단어를 지워주고 싶다며 아주 난리여서 난처해.”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후작은 말을 늘리며 넘어가려 애썼다.

    ‘그렇겠지. 저 분홍머리의 아이로 네가 이루고자 하는 황위를 노릴 수 있었을 테니까.’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며 후작에게 가까이 붙었다.

    “내가 지금 인내심이 깊어 보이나 후작?”

    “.!!!!!”

    “그리고 부탁이라고 내가 이야기했던가...?”

    후작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입적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네. 입적하겠다고 통보를 했지.”

    후작은 말없이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처신에 주의하도록.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맛있는 음식이 아주 많이 차려져있어 어떤 것부터 집어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드니까 말이지.”

    “....!!!”

    뿌려놓은 죄가 많아 어떤 죄를 꺼내어볼지 고민한다는 소리였다.

    황제는 기분 좋게 웃으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눈치 빠른 연주자는 연주를 멈췄고 황제는 후작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귀족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 우리 테오의 탄생을 축하하러 와준 것을 알지만 다른 좋은 소식이 생겼다.”

    “.....”

    웅성거리는 귀족들 사이에서 황제는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후작부인이 고귀한 핏줄을 이은 아이를 가졌다고 하는군.”

    황제의 말에 귀족들이 박수를 쳤다.

    “후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어머나!”

    후작부인은 난처하지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고 후작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창백한 안색이 볼만하다고 황제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 황제는 다시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리고 후작이 아끼던 내 조카 로레인 페르돈을 황족으로 입적하여 로레인 아르파슈 레바스찬이라는 새 이름을 내리겠다!”

    후작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황제를 보았다.

    이미 이름까지 결정했었다고?

    황제는 그런 후작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귀족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귀족들의 얼굴에 있는 경악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찮았던 사생아가 후작을 계승하는 후계자라고 했을 때에도 역겨웠는데, 이제는 황족?

    그렇다면 이 제국에서 그를 멸시할 수 있는 자는 황족들뿐이었다.

    귀족들의 그 마음을 모르는 척하며 황제는 웃었다.

    “힘든 결정을 해줘서 고맙소. 후작, 사랑을 주며 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네.”

    “... 폐하의 하해와 같은 마음에 감사합니다....”

    아리엘은 그 모습을 관찰하다 아름답게 웃으며 로레인에게로 다가갔다.

    만삭의 황후가 코앞에서 넘어질까 무서워 귀족들은 뒤로 걸어 길을 터주었다.

    로레인은 이 모든 순간이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어린 아이의 모습에 황후는 눈물이 차올랐다.

    이 아이에게 얼마나 무서운 짓을 하였으면 사람의 시선에 겁을 먹고 고개를 숙이는지... 황후는 부드럽게 무릎을 굽혀 앉아 로레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었다.

    “반갑다 아가야.”

    “......”

    흔들리는 제비꽃 색 눈동자가 참 어여쁘기도 했다.

    아리엘은 다정히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아이를 끌어당겼고 로레인은 힘없이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황후는 그 작고 가벼운 아이를 안고 황후 자리에 앉았다.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제부터 귀족들이 알아야 할 로레인의 위치가 이 자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현재)---

    아빠는 그 이야기를 해준 후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아빠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품에 안겼다.

    “로레인은... 황성에서 진찰을 해보니 다리에 금이 가 있는 상태였더구나. 영양실조에 타박상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물끄럼 아빠를 바라본 나는 아빠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척을 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로레인은 그 후에 황성에서 차근차근 좋아졌지. 어눌하던 발음도 또렷해지고 자주 웃고 테오와 트레일과 함께 잘 지냈단다. 나와 아리엘을 엄마, 아빠라고 불러주기도 했지.”

    아빠는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네가 태어났어. 너의 탄생을 제일 기뻐한 아이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나는 바로 로레인이었다고 자신하며 말할 수 있단다.”

    “.....”

    그랬구나. 나를 보듬어 안아주는 그 손길과 얼굴, 표정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입을 통해 들으니 부끄러웠다.

    아빠는 나를 고쳐 안아주며 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

    “세린~오라버니 여기 있어.”

    “까르르르.”

    반짝이는 아름다운 분홍 머리카락을 양 쪽으로 올려 묶은 세린을 보며 로레인은 헤벌쭉 웃었다.

    앙증맞은 작은 소녀의 그 짧고 통통한 다리도 앙증맞은 손가락도 어디 하나 안 예쁜 구석이 없었다.

    로레인의 손을 잡은 세린은 주절주절 오늘 보고 온 꽃에 대해 이야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퍼뜩 자리에서 멈추더니 "엄마!" 하며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로레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급히 세린을 쫓았다.

    “세린! 뛰면 위험해!”

    아슬아슬하게 몸이 기우뚱 쓰러지는 세린을 누군가 잡아주었다.

    로레인은 안도감이 잔뜩 서린 얼굴로 웃으며 구세주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로레인. 세린 돌보는 것이 힘들 텐데...”

    “아니에요. 세린이 너무 귀여워서 매일 매일 보고 싶어요.”

    “후후 엄마 눈에는 로레인도 귀여워서 매일 보고 싶은데.”

    “어, 어머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 로레인을 보며 아리엘은 웃음을 터트렸다.

    “가자. 아버지가 같이 점심을 먹자더구나.”

    “네!!"

    “밥! 꼬기 꼬기!”

    세린의 어눌한 발음에 사이좋은 모자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사랑스러운 나날이었다.

    황제는 계속적으로 들어오는 서신에 질린 참이었다.

    후작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고 알리는 서신과 편지들은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로레인을 만나게 해달라는 그 이유로 황성에 계속 들락거리는 후작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며 로레인이 아프다거나 회복중이라거나 누군가를 만나기에 아직 낯을 가린다는 핑계로 넘기기를 몇 번이었다.

    이제 와서 만나려는 이유가 너무나 뻔했다.

    이제 로레인은 자신의 자식이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키워 온 소중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후작과 대면하게 하라고?

    어림없는 소리였다.

    황제는 망설임 없이 후작의 애절한 서신을 찢어 화로에 던졌다.

    그리고 세린이 5살이 되었을 무렵 후작의 반란과 세린과 황후 아리엘의 인생을 뒤집는 사건이 발생한다.

    평소와 같이 세린은 정원에서 황후와 함께 뛰어 놀고 있었다.

    “엄마! 레인오빠 보고 싶어요.”

    “세린. 오빠는 지금 마법연습을 하는 중이야. 방해하면 오빠가 곤란해져”

    “힝....”

    세린은 황후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입술을 내밀었다.

    귀여운 딸의 모습에 웃음을 지은 황후는 세린을 안아 들어 올리려 두 팔을 내렸다.

    엄마가 안아주려는 것을 알고 서둘러 팔을 올리던 세린은 엄마가 재빠르게 자신을 품으로 가둔 모습에 의아했다.

    팡!!!!

    무언가 황후와 세린의 주위에서 터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나이프들이었다.

    끝이 둥글게 안으로 말린 칼은 조금만 스쳐도 살을 찢을 듯이 날카로워 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세린은 그저 황후의 품속에서 눈을 굴리며 안겨 있을 뿐이었다.

    “암살...”

    이를 아득 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든 세린의 주위에는 푸른색의 빛들이 일렁이며 막이 세워져 있었다.

    “엄마...?”

    “어느 길드인지는 몰라도 상대를 잘못 조사한 모양이야. 아니면 이 나라 황후가 누구인지 모르는 건가?”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터를 향해 대화를 하는 황후의 모습에 세린은 어리둥절했다.

    ‘아무도 없는데?’

    황후는 차갑게 웃으며 한 쪽 손을 들어 마력을 응축시켰다.

    황후의 손 위로 날카로운 마력의 파동이 빛과 함께 일렁이며 점차 크기가 증폭되어갔다.

    “당장 나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공격하겠어.”

    사박 사박

    황후의 외침과 동시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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