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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8화 (8/218)
  • 8화. 저건 또 뭐야...

    이제는 황제의 음식 덜어주기에 익숙해져서 그가 음식을 덜어주기를 기다리는 나였다.

    황제는 부드러운 빵과 윤기가 나는 커다란 고기를 잘라 내 접시에 올려 주었다.

    그리고 내게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먹거라.”

    “... 네!”

    포크를 들고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으며 나는 오늘도 만족스러운 미각의 즐거움에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황태자는 입가에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맛있니?”

    “고기가 입에서 녹아 내려요..!”

    “다행이구나. 요리장이 좋아 하겠어.”

    황태자는 그리 이야기하면서 고기를 더 잘라 내 그릇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 후 트레일이 방긋 웃으며 문제의 발언을 내뱉었다.

    “형님 그거 아시나요?”

    “음?”

    나를 향한 눈빛과는 다른 표정이었지만 그 표정 속에서도 묘한 다정함이 있었다.

    뭐랄까, 자비를 베풀어주는 윗사람의 모습이었다.

    단어가 뭐였더라... 거만..?

    그런 황태자의 표정에도 아무렇지 않게 웃던 트레일은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끼우며 이어 말했다.

    “오늘 세린은 저에게 오. 빠. 라고 했지요.”

    쨍그랑!!

    황태자의 손에 들린 포크와 나이프가 애처롭게 그릇 위로 떨어지는 것과 내 입에 묻은 음식을 닦아주던 황제의 손수건이 식탁으로 느리게 떨어지는 것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내 입을 부드럽게 닦아주던 황제의 표정이 딱딱해진 것을 바라보다 황태자를 바라보았고 황태자 또한 같은 표정으로 굳어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없는 것 같은데...

    왜 저런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곳 저곳의 눈치를 보던 나는 이내 뜨겁게 타오르는 황태자와 눈이 마주쳤다.

    “꿀꺽.”

    저절로 침이 삼켜질 만큼 입술이 바짝 말랐다.

    뭐야... 오빠라는 말은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던 것 아니야...?

    하지만 오라버니들은 좋아했는데...

    황태자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나를 보며 말했다.

    “세린.”

    “... 네에...”

    긴장으로 목이 굳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혼나면 나 어떡하지?

    하지만 그런 내 고민이 무색한 문장이 그의 입에서 부드럽게 나왔다.

    “나에게도 오라버니가 아닌 오빠라는 단어를 써도 좋단다.”

    “....?”

    황제는 그런 황태자의 모습을 바라보다 나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너무 딱딱하지 않느냐 세린.”

    “...?”

    “단어가 너무 길어 발음하기 힘이 들겠구나. 좋다. 아빠라고 부르도록 하거라.”

    “......”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만 꿈뻑이며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입가를 주먹으로 가리며 웃던 로레인이 오른손을 들었고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아름다운 푸른빛이 생겨났다.

    마법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자 그의 손에서 빛과 함께 하나의 형태가 나타났다.

    그것은... 넓은 어깨 위에 볼이 눌려 있는 내 모습이었다.

    저건 또 뭐지...

    내 황당하다는 반응과는 반대로 황족들은 멍하니 영상구를 바라보았다.

    로레인은 화사한 얼굴로 꽃처럼 웃으며 말했다.

    “이런... 실수로 세린의 영상구를 올려버렸네요.”

    꽃사진을 세린에게 보여주려 했는데... 정말 실수에요 라며 나직이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트레일 쪽에서 반응이 왔다.

    “형님!! 영상구 저, 저도 주세요!!”

    그 말을 들은 로레인은 입가에 고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왜?”

    “저도 나왔잖아요?! 저거 분명 나에요!!”

    “나는 모르겠는데.. 저게 너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 황궁에 너만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것은 아니지 않니?”

    그의 냉정한 말에 트레일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형님!!”

    둘의 말다툼이 시작되려나, 했는데 바로 황제가 끼어들었다.

    “로레인.”

    “네 아버지.”

    “너와 나는 나눌 이야기가 깊어 보이는구나. 원하는 것을 생각해두고 나와 합의를 하여 체결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흐음...”

    길고 고운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쓸어본 로레인은 씩 웃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 식사 후 태양궁 집무실에서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아버지!! 형님!!”

    트레일의 버럭하는 소리를 무시한 황제는 다시 내게 닭을 익힌 요리를 잘라주며 식사의 마무리를 도왔다.

    그리고 그 집무실에는 황태자도 함께 갔다는 이야기를 시녀들 사이에서 들었다.

    매우 엄숙한 분위기여서 차를 따를 때 무서웠다고 하는데.

    나는 내 궁에서 시녀가 따라준 차를 마시며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부끄러웠다.

    “그랬구나...”

    조금 수줍어하며 대답하는 내 모습을 본 시녀는 따뜻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황녀전하께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 듯합니다.”

    “힉!!”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까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그런 창피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녀는 맑게 웃으며 “정말인 것을요”라고 할 뿐이었다.

    그리곤 시녀는 내 머리카락을 정돈해준 후 말했다.

    “이제 주무실 시간입니다. 폐하께 가시겠어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황제의 침실로 향했다.

    아직 어리고 연약한 딸을 혼자 넓은 방에 재우기 싫다며 이야기하던 황제는 결국 세린과 함께 태양궁의 침실에서 잠을 잤다.

    세린은 시녀의 안내를 따라 태양궁의 침실 앞으로 섰고 부드럽게 열린 침실 문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스윽

    “웅...?”

    그리고 나는 들어서자마자 황제의 품에 덜렁 안겼다.

    하얀 가운 안으로 보이는 단단한 신체에 먼저 놀라버렸지만 이내 다정히 웃어주는 황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황제는 그런 나를 안아 부드럽게 침대에 옮겨 눕혀준 후 말했다.

    “피곤하느냐.”

    “아니요...”

    “눈은 이미 피곤한 것 같은데...”

    황제는 피곤하지 않다는 내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엽다는 얼굴이라 다시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본 황제는 어색하지만 다정한 손길로 내 배에 이불을 덮어준 후 나를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그 큰 손은 내 배를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커서 놀랄 때가 많았지만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천천히 아버지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저주는 옮는 병 같은 것이 아니에요!!’

    어라...?

    엄마 목소리...

    ‘진정하시오. 나도 알고 있소.’

    이건... 아버지 목소리...

    ‘진정할 수가 없어요!! 모두가 세린을 죽이려 하잖아요!!’

    ‘황후... 이는 내가 처리하리다. 절대 세린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오. 세린의 저주도 내가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테니 제발 울지 마시오.’

    ‘흑....’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슬프게 우는 어머니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엄마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옆 침대에는 내가 누워있었다.

    꿈이라서 그런 걸까.

    몸이 움직이지 않지만 두 분의 반응을 보았을 때 내가 병에 걸려 죽어가던 그 때였던 것 같다.

    첫째였을 때에 아버지도 역시 황제였구나.

    그런데... 저주라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가 아버지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세린 그 작은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대체 왜...’

    ‘황후... 날 보시오.’

    아버지의 붉은 눈이 엄마의 연두 빛 눈동자와 마주치며 다짐하듯 말했다.

    ‘반드시 지켜 주리다.’

    세린도... 당신도....

    라는 말과 함께 나는 또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땅 속에 있던 기억이 새싹처럼 땅 위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여태 내가 알고 있던 기억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뭘까 이 기억은...

    멍하니 푹신한 이불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커다란 창문을 관찰했다.

    이제 막 밝은 해가 뜨고 있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하얀 이불 위로 흐트러진 분홍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황제였다.

    황제는 붉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이내 나를 다시 제 품에 안았다.

    “일찍 일어났구나.”

    다정하고 달콤한 목소리에서 꿈속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무도 죄책감이 가득한 그 슬픈 목소리는 아버지가 맞았다.

    나는 가만히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을 관찰하다 수줍게 말했다.

    “많이 잤는데... 요...”

    그런 내 대답에 황제의 눈썹이 슬그머니 올라갔다.

    “아이들은 많이 자야지 큰다고 하던데... 잠이 많이 없는 편이었나?”

    아니... 많이 잤어요...

    황제는 부드러운 손길로 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황제의 품은 따뜻했고 태양의 빛은 밝았다.

    평화롭고 편안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황제는 나와 함께 조식을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그의 품에 이제는 편안하게 안겨있던 나는 멀리서 보이는 한 분홍색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황태자였다.

    테오는 뒤를 돌아 황제와 나를 발견하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그래, 같이 이동하자꾸나.”

    “네.”

    그리고 바로 내게 시선을 올려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잘 잤니? 세린.”

    날카로운 눈매가 곱게 휘어 웃으니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테오는 보다 더 아름답게 미소 지으며 황제의 옆을 따라 걸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트레일과 로레인이 이미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황제가 들어서자 로레인과 트레일은 자리에서 부드럽게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이며 “어서 오세요, 아버지“라고 인사를 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여주며 자리에 앉았다.

    나를 안고서.

    “....?”

    황제의 옆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던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런 황제를 바라보니 황제는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오늘은 계속 안아주고 싶구나. 불편하려나...?”

    그렇게 애절하게 절 바라보면 곤란해요...

    저런 눈을 보고도 “싫어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이 나는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니요, 불편하지 않아요.” 라고 하였다.

    그 대답이 그리도 좋았던지 황제는 밝게 미소 지으며 내 앞으로 그릇을 옮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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