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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7화 (7/218)
  • 7화. 사생아의 진실과 팔불출의 시작

    나는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로레인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로레인 오라버니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황태자에게 말했다.

    “제가 세린이 있는 줄 모르고 문을 열어버려서 생긴 일입니다. 형님.”

    “로레인 네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구나. 어차피 아버지께서 태양궁의 문은 다 뜯어 고치는 중이니 이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다.”

    태양궁을 뜯어 고친다고?

    왜...?

    나는 놀란 마음에 아버지를 바라보았고 아버지는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문을 옆으로 밀어야 열릴 수 있는 문으로 바꾸는 중이란다.”

    “저 때문에요....?”

    “아니,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다.”

    거짓말...

    나는 나를 위해 사소한 것 하나도 챙겨주는 지금의 가족들의 마음에 놀랐다.

    사생아는 제국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들었다.

    창녀촌 집 밖으로 인적이 없는 시간대에 자주 들리는 소리였다.

    창녀촌에서 태어난 내 또래 아이들은 모두 이름 앞에 사생아라는 단어가 붙었다.

    나는 사생아인 내 존재를 가족들이 반겨준다는 것 자체도 의심이 되었다.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트레일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세린은 무슨 색을 좋아해?”

    “네?”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물음이었다.

    내가 무슨 색을 좋아했을까?

    가만히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본 세린은 식당을 환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분홍머리카락들을 발견했다.

    자신 또한 같은 머리색이라서 이내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트레일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분홍색이요...”

    “큽!!”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황족들은 한 순간 동작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어리둥절한 분위기에 휩쓸려 식사가 끝나자 로레인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세린. 황궁 뒤편에는 예쁜 꽃이 잔뜩 피어 있는데 보러 가볼래?”

    황궁의 정원에 피어난 꽃을 이야기해주며 꽃구경을 하자는 제안에 함께 정원으로 향했다.

    “미안 세린! 오빠는 수업이 있어서... 끝나자마자 바로 갈 테니까 기다려!!”

    트레일 오라버니는 검술 훈련을 떠났고 황태자와 황제는 밀린 일을 마무리하러 가야한다며 나를 한 번씩 안아주고 떠났다.

    “잡아 세린.”

    로레인 오라버니가 뻗은 손을 꼬옥 잡았다.

    커다란 손에 잡히는 내 손이 정말 작았고 오라버니의 손이 너무나도 따뜻했다.

    오라버니가 안내해준 꽃밭은 추운 겨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사한 장미가 가득했다.

    게다가 춥지도 않았다.

    “오라버니. 벌써 봄인가요?”

    “풋!!”

    내 말에 오라버니가 급하게 튀어나오는 웃음을 막았다.

    나는 놀림을 당한 것만 같아서 볼을 부풀렸다.

    로레인은 황급히 손을 내려 나를 안아들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세린. 마법이라고 아니?”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아요.”

    “여기가 따뜻한 이유는 마법 때문이란다.”

    “우웅??”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자 로레인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나를 꼭 안았다.

    “여기는 예쁜 꽃들이 아름답게 필 수 있도록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유지해주는 마법이 걸려있어.”

    그의 말이 신기한 마음이 일렁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장미를 다시 바라보는 내 모습에 로레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세린은 정말 어머님을 닮아 귀엽구나.”

    “...!!”

    고개가 저절로 굳었고 나는 딱딱한 모습으로 로레인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내 반응에 로레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내 놀란 모습으로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혹시 체한거니? 어디 아픈 거야??”

    “.... 오라버니...”

    “응 세린. 왜 그러니?”

    나는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는 왜 저한테 이렇게 잘 해주나요?”

    내 말에 당황하던 로레인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야 너는 내 동생이잖아.”

    “저는 사생아잖아요.”

    내가 내뱉은 말에 그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는 날 바라보며 굳은 자세로 멈추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착각이 들만큼 그는 굳어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사생아라는 거... 아니지. 음.... 세린.”

    “....”

    "세린? 오라버니는 네가 너무 어리고 잘 모르는 것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여태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 또한 오해를 품지 않도록 도와야겠지.”

    오해? 무슨 오해?

    로레인은 난처하지만 조금 슬픔을 담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의 제비꽃 색의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세린 너는 사생아가 아니야.”

    “...?”

    내가 사생아가 아니라고?

    “너는 이 나라의 황후셨던 제국의 어머니 품에서 태어난 황족의 핏줄이란다.”

    “..!!!!!”

    “테오 형님과 트레일과 같은 피가 흐른다는 거야.”

    “....!!!”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죽은 우리 엄마가 황후였다는 말 아닌가?

    이게 무슨...

    당황도 잠시였다.

    로레인의 다음 발언은 나를 더욱 경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따지자면... 사생아는 나란다. 세린.”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열어 제비꽃의 아름다운 보석 같은 빛을 내는 그의 눈동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진실을 알고 싶었다.

    나는 누구고 엄마는 누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나는 조심스럽게 로레인의 옷을 잡으며 말했다.

    “알려주세요... 엄마에 대해서....”

    로레인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슬프게 미소 지었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란다. 세린."

    “하지만..!!!"

    “미안해...”

    단호한 사과에 나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그는 넓은 가슴으로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곧 알려주실 거야.”

    “오라버니...”

    “지금의 너에게는 힘든 이야기야. 그리고 나한테는 그 이야기를 해줄 자격이 없어.”

    “....?”

    “한심하지만... 네가 힘든 시간을 보낸 이유도 나 때문일 테니까.”

    “오라버니....”

    그의 슬픈 얼굴에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묻고 아름다운 장미를 바라보았다.

    로레인 오라버니가 사생아...?

    나는 황제의 피를 이은 황녀...?

    언제쯤이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다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고쳤다.

    어쨌든 엄마에 대해 알아갈 수 있잖아...?

    오라버니도 아버지도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로레인의 목을 꼭 안아주었다.

    어떤 과거가 있든 무슨 일이 있었든, 결국 모두 내 가족이라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세린!!!!”

    멀리서 들리는 외침에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장미 밭 건너편에서 트레일이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왔다.

    그의 구불거리는 짧은 분홍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흔들렸고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다리로 성큼 내 앞에 온 트레일은 해맑게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오빠 엄청 빨리 왔지??”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네에....”

    “러면 한 번만 안아주라!”

    나는 트레일이 벌린 양 팔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의 이마에 흐르는 작은 땀방울로 시선을 돌렸다.

    검술 훈련을 한다더니 정말 훈련이 끝나자마자 달려온 것 같았다.

    “아...!! 냄새가 나? 미안해...”

    “...?”

    막 안기려고 팔을 들려다가 트레일이 급하게 손을 내렸다.

    내가 잠깐 생각을 했던 것이 작은 오해를 하기 좋았다는 것을 늦게 알아버렸다.

    자신의 옷에 코를 묻고 킁킁 거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냄새 안나요..”

    “응??”

    “안아주세요.”

    양 팔을 벌리며 그에게 손짓하자 트레일은 잠시 멈칫하다가 눈부시게 웃으며 나를 안았다.

    그의 볼에 잔뜩 달아오른 홍조가 참 귀엽게 느껴졌다.

    로레인의 품에서 트레일의 품으로 이동하자 시원한 바람 냄새가 풍겼다.

    그 시원한 느낌이 좋아 얌전히 안겨있자 트레일이 맑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크으...!! 세린이 안겨있어요 형님!”

    “그렇구나.”

    로레인이 방긋 미소 지으며 수긍했다.

    “저한테 안기다니...!! 꿈은 아니죠???”

    “풋. 꿈이 아니란다.”

    민망하게... 창피해...

    나를 안으며 꿈인지 생시인지 이야기하는 모습에 창피함이 얼굴로 몰렸다.

    붉게 물들어지는 얼굴을 무시하며 가만히 트레일의 어깨에 볼을 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로레인의 얼굴이 저절로 화사해지며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내 볼을 쿡 눌렀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로레인의 손에 반짝이는 빛과 함께 무언가 동그란 구가 생성이 되더니 번쩍 소리를 내며 구에서 빛이 뿜어졌다.

    너무 놀라 움찔 떨자 로레인이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세린. 네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그게 뭐에요??”

    “음? 아 이거?”

    로레인의 손에는 아직도 푸른빛이 일렁이는 동그란 구가 있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그걸 바라보자 로레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로 가까이 올려 보여주었다.

    “이건 영상구라고 해. 이걸로 보고 싶은 것을 담아서 언제든지 꺼내어 볼 수 있어.”

    내 볼은 저절로 달아오르며 눈을 반짝였다.

    “이것도 마법이에요??”

    “그래. 마법이야.”

    “오빠는 마법사에요???”

    “음... 그렇지?”

    “우와아!!”

    엄마를 제외한 마법사는 처음이었다.

    나는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법사라니... 대단해!

    그러자 다급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세린 오빠는 마법사는 아니지만 엄청난 기사라고?!! 그것도 단장을 맡고 있어!!”

    “..... 네에...”

    그게 뭐지... 검을 쓰는 사람에게서는 저런 식으로 계급이 나누어지는구나.

    그냥 그런 것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자 트레일은 눈에 확 보일만큼 기가 죽었다.

    어두운 기운이 물씬 풍겨서 가만히 아까 했던 내 발언을 생각해보았고 그제야 어디에서 그가 상처를 입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트레일의 어깨에 손을 올려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오빠도 멋있어요.”

    그리고 트레일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코에서 피가 흘러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날 저녁밥을 먹는 시간에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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