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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5화 (5/218)

5화. 다시 바라보는 내 모습

“심한 것은 아니시지만 자주 동상에 걸리셔서 발가락 부근에 작은 통증이 있으셨을 겁니다. 약을 처방해드리겠지만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하는 도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성장속도가 또래에 비해 늦으시지만 폐하께서 염려하셨던 것보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신 듯합니다. 적은 양으로 하루를 버티셔서 성장이 늦으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많이 먹고 많이 움직이시고........ 알레르기 검사를 하려고 하였지만 지금은 황녀님이 힘드실 것 같아 다음 시간대에 하여도 괜찮으신지요.”

“좋다. 황녀에게 필요한 약이나 물품, 먹으면 좋은 음식 리스트를 짜서 내게 보고하도록”

“알겠사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의사는 물러났고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날 안으며 나와 눈을 맞췄다.

“많이 놀랐지? 그저 네가 건강한지를 체크한 의사란다. 다행히 큰 병도 없고 아픈 곳도 많지 않구나.”

안심이 가득한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엄마를 제외한 다른 이의 관심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웠고 창피한 기분이었다.

‘우리 세린은 어쩜 이렇게 예쁜가 몰라.’

‘창피해. 부끄러워!’

‘아하하하! 누구 딸인데 이렇게 귀엽지!’

해맑은 웃음소리

내 볼을 다정히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아름다운 눈

엄마는 여전히 아름다운 그 모습으로 나와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뜬 순간 그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새 깨끗하게 씻긴 몸으로 하얀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는 두툼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발에는 따뜻한 털이 달린 부드러운 분홍 신발을 신고 있었고 지금도 내 머리를 정성껏 빗겨주는 시녀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잠이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따뜻한 욕조에서 다정한 손놀림으로 나를 씻겨주는 시녀의 손길에 깜빡 졸은 것이었다.

머리카락에 무언가를 바른 것인지 방금 전의 푸석한 머리카락과 같은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모를 만큼 윤기가 가득했다.

곱슬곱슬 찰랑이는 내 분홍 머리카락을 쥐어보며 눈을 크게 떴다.

‘부드러워.’

“황녀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그런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갈색 머리카락의 시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퍼뜩 고개를 들다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런 내 말에 깜짝 놀란 시녀가 내 말을 정정하였다.

“존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편하게 고마워 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나는 작게 반박했다.

“엄마가 어른한테는 존댓말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훌륭하신 어머니세요. 그래도 저는 황녀님보다 아랫사람이랍니다. 부디 하대를 해주세요.”

다정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망설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녀는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한 후 내 머리카락을 곱게 마저 빗겨주었다.

황궁의 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렵다는 느낌이 강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어떤 곳이든 어려울지도 몰랐다.

둘째 딸로 태어난 후 난 한 번도 다른 이들과 말을 섞어본 적도... 함께 어울려본 경험도 없으니 무엇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를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보여준 책과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식과 글을 배웠던 것이 배움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있을 때 하녀가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빙글 돌려주었다.

그러자 보이는 건 어른 키만큼 커다란 거울이었고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거울 속의 작고 마른... 그렇지만 구불거리는 아름다운 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귀여운 소녀였다.

소녀의 동그란 연두 빛 눈동자가 몇 번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바라보다 그것이 나였음을 늦게 알아차렸다.

어리둥절해서 거울을 보며 양 손을 올려보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굴러보며 움직였다. 거울 속의 소녀가 나와 똑같이 움직였다.

‘나라고...?’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을 내려다보면 여전히 마르고 앙상했다.

그러나 피부는 하얀색이었고 볼에 떠 있는 옅은 홍조는 소녀의 나이에 맞는 귀여움을 보였다.

엄마와 함께 있던 시절에는 먹는 물마저 귀해서 씻는 날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간 내가 하얀 피부를 가졌다는 것을 몰랐다.

나의 그런 모습을 시녀가 흐뭇하지만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황녀님. 황녀님 모습이 참 예쁘지요?”

멍하니 거울을 보며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제게도 너무나 아름답게 보인답니다. 앞으로 머리카락도 몸도 매일매일 관리를 받으실 겁니다. 그러면 황녀님은 제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분으로 자라실 것입니다.”

“제국에서...?”

“네. 제가 장담하고 말씀드립니다. 황녀님이 이 제국에서 제일 빛나고 아름다운 분으로 자라실 것이라고”

시녀의 다정한 눈빛을 보며 나는 그녀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리둥절한 나를 향해 시녀가 이어 말했다.

“폐하와 황태자님. 황자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녁을 드실 시간이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가 고기위주로 많이 드시라고 하며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 나는 신발의 폭신함과 따뜻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걸음 걸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포근함은 세상에 태어나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런 호화스러운 생활이라니.

내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생활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신발의 기분 좋은 감촉으로 인한 행복이 조금씩 내려갔다.

더럽고 구석지고 냄새나는 얼마 전 나와 엄마의 보금자리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우리를 빨리 찾았다면 어땠을까

엄마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하늘빛 머리카락도 예전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곳에서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금 이 순간의 호화에 죄책감의 무게가 실렸다.

무거웠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었나...?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에 조금 눈을 깜빡이다 시녀의 부름에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를 잃은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

나는 그 짧은 하루 사이에 아버지를 만나고 형제를 만났다.

그리고 새로운 옷과 새로운 신발, 새로운 신분을 받았다.

누군가 새로운 삶이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지금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일부는 엄마였고 지금 엄마는 내 곁에 없으니까.

그럼 누군가 이 삶이 계속 지속되었을 경우 그 후에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지 물어본다면...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따뜻한 그들의 눈빛과 시선이... 손길이 엄마와 너무나도 닮아서...

웅장한 문이 열리고 그 곳에는 아름다운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앉아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눈빛에는 한 점의 경멸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또한 우리를 오래도록 찾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품어지는 엄마에 대한 의문도 커져갔다.

아버지와의 관계, 내가 첫째였을 때의 아버지는 누구였는지, 둘째인 나를 가지고 도망간 이유가 무엇인지, 엄마의 정체는 무엇인지.

나는 정말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매일 하루를 사랑하고 불행을 이겨가며 사느라 바빴다.

마음 속 생각과 고민을 돌아보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양 손을 활짝 벌리고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바로 옆 의자에 앉혀 주었다.

식당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웅장했고 식탁에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자태의 음식이 상 가득 놓여 있었다.

“우와...”

놀란 내가 입을 벌리며 눈을 크게 뜨자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 서둘러 입을 닫았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로레인이 맑게 웃으며 말했다.

“세린 많이 먹어. 그렇다고 무리해서 먹으면 탈이 날지도 모르니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먹어야한다?”

“네에...”

쑥스러운 모습으로 대답한 내 앞에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과 그 외의 집게 모양 등 많은 수저가 있었다.

대략 10개는 되어 보이는데 사용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

'어떤 걸로 먹어야하지...?’

나는 망설이는 손길로 포크를 쥐어보려 손을 뻗었는데 나보다 빠르고 커다란 손 하나가 다가와 포크와 나이프를 가져갔다.

놀란 마음에 고개를 들자 아버지가 다정히 웃으며 커다란 고기를 작게 잘라 내 앞 접시에 올려주었다.

“맛이 어떤지 먹어보렴.”

그리곤 조심스럽게 내 손에 작은 포크 하나를 쥐어주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 포크로 고기를 콕 집어보았다.

흙과 비슷한 색깔이었으나 식욕을 자극하는 색이었다.

조심스럽게 집은 고기를 입에 넣었다.

“...!!!”

고기를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리는 느낌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에 굉장히 기특하다는 듯 웃었고 오라버니들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난 남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음식에 열중했다. 처음 느껴보는 맛에 놀라 감탄이 연달아 나왔다.

포크를 열심히 움직여 고기를 입에 넣느라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내 접시에 고기를 연달아 채워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맛있어...!'

'세린. 누군가 너를 챙겨주거나 도움을 주면 감사합니다하고 꼭 인사해야해 그게 예의야.’

멈칫

머릿속에 떠오르는 엄마의 말투에 나는 허겁지겁 움직이는 포크를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라버니들도 아버지도 내 밥을 챙겨주느라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민망함이 목 위까지 차올랐다.

맛있는 밥 고맙습니다? 아니야. 따지고 보면 아버지나 오라버니가 만든 음식이 아니잖아...?

고기 잘라주셔서 감사합니다? 떠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어떤 인사가 맞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끙끙 거렸다.

“세린 왜 그러느냐?”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탈이라도 난 거 아니야?”

다급한 목소리의 트레일이 안절부절 못한 모습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아버지는 내 이마에 손을 올려도 보고 내 배에도 손을 올려보며 인상을 와락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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