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황제와 오라버니들
나는 나를 바라보는 제비꽃 색과 붉은색의 눈동자에서 도망치려 급히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에 몸을 한차례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들고 황자들을 내게 소개했다.
“세린. 너의 두 번째 오라버니 로레인이란다. 여기는 너의 세 번째 오라버니 트레일이다.”
제비꽃 눈동자를 가진 황자가 사르륵 웃으며 봄꽃처럼 아름답게 웃었다.
“반가워 세린. 이름도 너무 예쁘구나. 나는 로레인 아르파슈 레바스찬 이란다. 레인이라고 불러주렴.”
그러자 옆이 서 있던 황자가 붉은 눈동자를 환하게 접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난 트레일 레비첼 레바스찬 이야! 트레일 오빠라고 불러줘!”
나는 동공을 흔들며 생각에 잠겼다. 다들 날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악의나 불행을 바라는 경멸의 감정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난 얼떨떨한 가슴으로 급히 인사를 하려 했다.
“저.. 저는...!”
그러나 한 번에 집중된 시선에 움츠려 들었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말했다.
“세.. 세린.... 입니다.”
이름 소개란 원래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위에서 들리는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다정한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세린처럼 예쁜 아이가 내 동생이 된다니 기뻐. 눈동자도 새싹같이 예쁘네.”
로레인이 화사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몸이 굳었다.
옆에서 트레일이 맞장구치며 예쁘다고 하는 말에도 굳어버렸다.
솔직히 나보다도 로레인이 훨씬 예뻤다.
정말 세상 모든 보석을 견주어도 지지 않을, 더욱 빛을 받을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외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황족이란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걸까?
아버지도 황태자도 로레인도 트레일도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않게 아름다웠다.
나는 가만히 제비꽃 눈동자를 바라보다 조금 용기를 내어 말했다.
“오.. 오라버니가 더 예뻐요...”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용기를 잃어갔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하게 나왔다.
그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뜨다가 보다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 너무 귀엽다. 세린, 오라버니한테 한 번 안겨보지 않겠니?”
팔을 활짝 벌리며 다가오는 로레인을 향하던 내 시선이 갑자기 돌아갔다.
아버지가 등을 돌린 것이다.
“아버지... 치사하시네요.”
“아이가 지쳤을 거다. 일단 들어가서 쉰 다음에 이야기 하자꾸나.”
한숨을 쉰 로레인은 빙긋 미소 지으며 할 수 없다는 듯 아버지를 따라 걸었다.
그러나 뒤돌아서 걷는 아버지의 어깨에 기대어 마주친 오라버니들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 쏠렸다.
모두 나를 반짝이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작아.”
트레일 오라버니
“귀엽군.”
테오 오라버니
“황궁 요리장한테 오늘은 좋은 육질의 기름기 많은 고기를 해 달라 해야겠어요. 세린은 살을 좀 찌워야할 것 같아.”
로레인 오라버니가 나에게 보이는 온전한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가슴 한편이 간질거렸다.
엄마도 항상 날 보며 ‘귀여운 내 딸’이라 던지 ‘사랑스럽다’든지 그런 민망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부끄러웠지만 엄마의 눈에 내가 그리 예뻐 보이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 항상 엄마를 꼭 안아주었었다.
엄마의 생각을 하는 나를 꼭 안아주던 아버지가 성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성 안에서는 복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고 빛이 났다.
장식된 꽃병 속의 꽃 한 송이만 팔아도 일주일은 호화롭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느라 황자와 황태자, 황제가 귀엽다는 듯이 나를 보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어마어마한 곳에서 지내도 괜찮은 것일까?
가슴한편에 두려움이 물씬 일었다.
이곳에서 내쳐지면 어쩌지.
버려지면 난 이제 정말로 갈 곳이 없어지는데...
아버지가 날 데리고 들어간 방은 온통 알 수 없는 글자로 도배가 되어있는 책들의 방이었다.
벽에 붙어있는 책장은 예전 엄마를 따라 들어가 본 서점보다 훨씬 넓고 책이 많았다.
천장도 높아 머리가 꺾일 정도로 위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샹들리에는 보석이 가득 붙어 있었고 천장에 그려진 수많은 그림들은 너무나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아버지는 나를 안은 그 자세 그대로 방 한 가운데 놓인 기다란 사무책상 상석에 앉았다.
오라버니들은 그의 사선에 놓여 진 의자에 차례로 앉았다.
의자마저 보석마냥 빛이 났다.
폭신해 보이는 붉은 색 의자의 자태에 침을 꿀꺽 삼키며 한번 앉아보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창녀촌 구석에 박힌 나와 엄마의 집안에서는 딱딱한 나무 침대 하나와 거친 이불 두 장, 그리고 바닥에 깔아놓은 카펫이 가구의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저런 의자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신기함의 대상이었다.
첫 번째 딸이었을 적에 앉아보았던 의자도 이만큼 아름답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의자를 빤히 바라보던 내가 문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자 나를 유심히 관찰하던 네 쌍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창피함에 고개를 얼른 숙이자 트레일이 한쪽 눈을 찡그리고 웃으며 귀엽다는 듯 말했다.
“세린. 의자가 신기해?”
나는 고개를 퍼뜩 들으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푹신해보여서...”
“앉아보고 싶으면 앉아 봐도 괜찮아!”
트레일의 밝은 목소리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앉아 봐도 괜찮은 거야?
살며시 아버지를 바라보자 아버지는 작게 미소 지으며 나를 내려주었다.
“어디 의자에 앉아 보고 싶니?”
뭔가 처음으로 땅에 발을 붙인 느낌이었지만 나는 조심조심 황태자 옆의 의자로 다가갔다.
드르륵
내 앞에 있는 의자를 황태자가 뒤로 빼주었다.
모두의 시선에 내게로 몰려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의자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였다.
의자에 오르기 위해 두 팔을 의자 방석에 내리자 몰캉하고 푹신한 느낌과 함께 부드러운 실크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의자에서 일으켜 자리에 앉았고 엉덩이에서부터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만족감을 느꼈다.
저절로 환해지는 얼굴로 해맑게 엉덩이를 부비는데 따끔한 시선이 느껴져 눈을 돌리자 그 곳에는 저들끼리 대화는 나누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네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난 놀란 눈동자로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버릇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창피해.’
쿡쿡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돈해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올리자 테오가 입가를 고이 접으며 웃고 있었다.
“의자가 마음에 들었나보구나. 나중에 너의 궁에 저것보다 더 크고 감촉이 좋은 것으로 들여 주마.”
그러자 옆에서 성이 난 듯한 목소리로 트레일이 소리쳤다.
“형님만 좋은 역할 하지 마시죠! 세린. 나는 정말 푹신푹신한 큰 침대를 들여 줄게!”
“그럼 나는 인형까지 들어 주마.”
“이익! 세린!! 오빠는 아예 방을 네가 뛰어 놀 수 있는 쿠션 방으로 만들어줄게!!”
고개를 숙이며 로레인이 작게 웃었다.
어쩐지 둘의 유치한 상황대치가 귀엽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둘의 말다툼에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보다 작은 목소리로 살짝 웃으며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
그리고 이어진 침묵
나는 그 침묵의 의미를 몰라 당황하며 급히 말을 이었다.
“어.. 엄마가 무언가를 받으면 인사를 해야 한다고... 그 어.. 그러니까 그게... 다 해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인사를...!”
양팔을 휘저으며 다급히 말하는 내 모습을 네 사람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 테오가 손을 뻗어 내 볼을 살짝 쥐며 말했다.
“여동생이 이런 느낌일 줄이야...”
이어 트레일 또한 말했다.
“귀여워...”
한 숨 같은 그 나직한 목소리에 아버지와 로레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움의 연속에 그만 또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문가에 서 있는 시종을 향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황궁의는 왜 이리 늦는 거냐?”
“송구하옵니다. 지금쯤이면 도착할 것이오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유순하게 말을 받아 넘긴 시종을 향해 혀를 차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황궁의라면 의사 아닌가? 의사가 왜?
“폐하. 황궁의가 도착했습니다.”
“들라하라.”
굳건한 문이 밖에 서 있던 보초병들의 손에서 매끄럽게 열렸고 그밖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안경을 쓴 중년 여인이 서 있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인사는 되었다. 황녀의 건강상태를 진찰하거라.”
“알겠사옵니다.”
묵묵히 고개를 숙인 여인은 나에게 곧장 다가와 나의 동공, 입안, 코, 팔과 다리 등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폈고 내 손목에 손가락을 올리거나 배 중심을 눌러보는 등 무언가 열심히 나를 탐색해나갔다.
“황녀저하.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아도 괜찮겠는지요?”
“네에...”
“평소 식단은 무엇이었는지 소인에게 알려주세요.”
“어...”
내 손목을 바라보며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의외로 엄마는 내 식사를 매우 열심히 챙겼다.
그 구석진 외딴 곳에서 먹는 것이라고는 직접 뒷산에서 농사해 얻은 감자를 잘게 빻아 죽처럼 끓인 음식과 숲에서 캐내어 먹는 채소가 전부였지만 엄마는 만족하지 못했다.
‘세린은 이제 쑥쑥 커야하는 나이라고!’라고 말하며 여기 저기 돌아다녀오더니 빵이나 혹은 운이 좋아 아주 작은 고기를 가져올 때도 있었다.
그러고는 꼭 엄마는 입맛이 없다며 그 작은 빵조각이나 고기마저도 다 나에게 줬던 기억이 있다. 나를 위해 하는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서 억지로 빵을 뜯어 엄마에게 건네주며 함께 먹었었다.
그 삶 속에서도 나와 엄마는 서로가 있기에 너무나 행복했었다.
“감자를 꾹꾹 눌러서 만든 죽이랑 야채랑... 가끔 가을에 자라는 빨간 과일이랑 엄마가 사주신 빵이랑... 작은 고기를 먹었어요.”
나는 손가락을 펼쳐 하나씩 접어가며 말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히 다른 질문을 하였다.
“하루 끼니는 얼마나 드셨나요?”
“어... 한 번만 먹을 때도 있고... 두 번 먹을 때도 있고...”
눈치를 보며 말하자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진 기분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버지의 미간은 좁혀져 있었고 오라버니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나눈 후 의사는 황제에게 다가가 나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