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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3화 (3/218)
  • 3화. 새로운 가족들

    그의 넓은 가슴에 머리를 기대자 그가 작게 움찔 떨었다.

    그리곤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성으로 가게 되면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불편한 것이라도 있다면 뭐든 이야기해주렴.”

    “.... 네...”

    “아직 네가 지낼 궁을 생각하지 못했단다. 그동안 나와 함께 태양궁에서 지내자꾸나.”

    태양궁이 뭔지 내가 지낼 궁이 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그의 품에 기대었다.

    “지금 네 나이가 7살쯤 일 텐데...”

    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숨과도 같은 나직한 목소리에 슬픔이 묻혀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가볍다니...”

    머리카락 색으로 인해 또래 친구들도 사귈 수 없이 숨어 살던 나라서 내 키가 작은지 큰지 알 길이 없었다.

    작은 편인가?

    양 손을 펼쳐 눈으로 관찰하자 보이는 건 얇고 앙상한 손가락이었다.

    이런 내가 뭐가 예쁘다고 엄마는 매일같이 날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했는지...

    그 사랑 덕에 나는 언제나 행복했다.

    엄마의 사랑에 나는 언제나 배가 불렀다.

    아버지는 두런두런 생각에 빠진 내 모습을 바라보다 아무 말 없이 날 꼭 껴안았다.

    “황궁의와 요리장을 먼저 만나봐야겠군.”

    낮은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한 것 같았지만 졸음이 몰려와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엄마의 생각뿐이었다.

    즐거웠던 그 봄날, 서로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더위를 피하던 그 여름날.

    낙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주던 그 가을날, 눈으로 서로의 눈사람을 만들어주던 그 겨울날.

    엄마와 함께 했던 사계절의 기억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꿈에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운 모습들...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만났지만 엄마는 외로울 것이다.

    그 곳에서 첫째 딸이었던 나를 찾아다니느라 쉬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현듯 이는 걱정에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 나 엄마 몫까지 열심히 살다가 갈 테니까 조금만 정말 조금만 기다려줘.

    꿈속에서 내뱉는 말처럼 그녀를 향한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흩어졌다.

    엄마가 바라고 바랐던 내 행복을 위해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야한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가는 길이 험난했던 건지 그간의 피로가 몰려 온 건지 나는 또 아버지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뜨자 보이는 풍경은 광활한 꽃밭과 그 길을 따라 이어지는 엄청난 크기의 성이었다.

    “..!!!”

    깜짝 놀란 마음에 벌떡 상체를 일으키자 진정하라는 듯 내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일어났니?”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다정스럽게 날 바라보며 잘 잤냐고 아픈 곳은 없냐고 물어보았고 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뒤에는 1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공손한 몸짓으로 아버지를 이어 따라가고 있었고 아버지의 앞으로는 꽃밭과 함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성이 펼쳐져있었다.

    '여기가 황성이라는 곳인가...?'

    상상 속에서보다 황성은 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놀란 내 모습이 귀여웠던지 쿡쿡 웃은 아버지는 나를 다시 고쳐 안아주며 말했다.

    “여기는 고작 황성 입구란다. 이 정도에 놀라면 다른 궁을 볼때 얼마나 놀랄지 걱정인걸..? 태양궁으로 이동하는 마차가 곧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렴.”

    네...?

    여기가 고작 입구라고요?

    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아버지를 모른척하며 주변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과 웅장한 성들을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성이라기보다는 어마어마하게 높고 넓은 탑과 같은 모양이었다.

    주변을 관찰하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멀리서 화려한 금과 붉은색 보석들로 치장된 마차 한대와 백마 두 마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우와...

    아까 타고 온 흑마와 흑마차도 멋졌는데 이건 멋지다기보다 매우 많이 화려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는 기분이었다.

    그 화려한 마차가 우리의 앞에 멈추고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러나 문 안에는 누군가 존재했다.

    마차 밖으로 나온 한 사람은 아버지보다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키를 곧 따라잡을 만큼 큰 키를 가지고 있었고 넓은 어깨를 펼치고 있었다.

    검은색의 제복에 달린 수많은 배지와 수놓아진 금줄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우아한 손놀림으로 왼쪽 가슴을 가린 그 사람은 고개를 아버지를 향해 숙이며 말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버지. 별고는 없었습니까?”

    그러한 부드러운 자태와 말투가 너무도 아름다워 입을 벌리고 집중하던 나였다.

    그러다 “그래.” 라고 대답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점차 정신을 차렸고 아버지에게 인사한 사람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보고 그가 황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색이 된 내 얼굴은 말할 것도 없이 굳어졌다.

    시작부터 형제를 만나다니... 날 미워하면 어쩌지.

    따지고 보면 사생아인데.

    우물쭈물 말도 못 꺼내고 아버지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숨기 바쁜 내 모습을 아버지가 의아하게 여겼다.

    “왜 그러느냐?”

    달래려는 티가 나는 말투로 내 등을 두드려주는 그의 모습에 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에 하나의 시선이 더 붙었다.

    “아버지... 그 아이는..?”

    “황녀다. 세린 인사 하거라. 제국 황태자이자 너의 첫째 오라버니란다.”

    “... 히끅”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딸꾹질을 참았다.

    황태자라니..!!

    저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황태자라니!!

    윤기가 나는 분홍빛 머리카락 밑으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 나라의 황제를 누구보다 쏙 빼닮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조금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드디어... 찾으셨군요...”

    내가 싫을 거야.

    창녀의 품에서 태어난 내 피도 다 싫어 할 거야.

    부들부들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그에게서 날아오지 않았다.

    외려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손을 뻗어 내 작고 마른 손을 잡아주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반갑구나. 이름이 세린이라고. 나는 너의 오라버니가 될 테오 위르실 레바스찬 이라고 한다. 가족들은 나를 테오라고 부른단다.”

    너도 앞으로 테오라고 불러주면 기쁠 것 같다고 그가 속삭였다.

    아버지 앞이라 그런 걸까...?

    나는 그가 마주 잡아준 손을 천천히 감싸 쥐었다.

    그러자 놀란 눈동자로 변한 그의 눈이 사르륵 녹듯 휘었다.

    아주 미세하게 휘어진 눈동자였지만 가까이 있는 나는 그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 히끅”

    “너희들의 눈은 장식이냐. 황녀에게 어서 물을 내오거라.”

    단호한 음성으로 하녀에게 싸늘히 말한 테오는 다시 조심스럽게 내 손을 놓은 후 하녀가 준비한 물을 내게 잡아주었다.

    미워하는 게... 아닌가...?

    어리둥절한 마음의 한편으로는 나를 보는 눈길이나 손길이 부드럽다는 것에 놀랐다.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의 이미지였다.

    아버지와 황태자는 내가 물을 들이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쿨럭. 너무 부끄러웠다.

    나오려는 기침을 꾹 참고 물을 다 삼키자 아버지는 내 등을 두드려주며 마차에 올랐다.

    황태자도 따라 마차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무릎에 자리 잡은 후 건너편 황태자, 이제는 나의 첫째 오라버니를 관찰했다.

    마차 창문 밖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분홍색 머리카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눈썹 아래에서 찰랑이는 짧은 그의 머리카락과 배꼽까지 내려온 내 머리카락을 손에 쥐어보며 관찰하니 윤기에서부터 머리카락의 손상정도가 남달라 괜히 부끄러워졌다.

    같은 색이라는 것만 알겠지 누가 봐도 나는 몰골이 말 그대로 거지였다.

    침울해진 눈동자로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는데 따가운 듯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고 그대로 황태자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 떠는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 내 손에 그러쥔 머리카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직이 말을 이었다.

    “예쁜 색이구나.”

    “....!”

    화악 하고 얼굴이 붉어져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랑 똑같은 색이면서...!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설핏 웃음을 지었고 황태자의 말을 받아 이어 말했다.

    “그렇구나. 우리 보다 색이 더 연하고 고와.”

    그만하세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나직이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고 황태자가 이어 말했다.

    “너와 비슷한 머리카락 색을 가진 오라버니들이 2명 더 있는데... 혹시 아니?”

    모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슬쩍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매를 살짝 휘며 말했다.

    그의 쌀쌀한 얼굴에 피어나는 미묘한 웃음이 참 예쁘다 생각했다.

    “둘 다 너를 많이 기다렸단다. 곧 있으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런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고민했다.

    정말 날 기다렸을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자 마차의 도착을 시종이 알렸다.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나를 품에 가두며 마차 밖으로 나왔고 황태자가 이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곳에는 높디높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넓게 퍼져있었고 많은 시종, 시녀, 하녀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시종들의 맨 앞에 서 있는 두 인영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고 나는 그 둘이 바로 내 둘째, 셋째 오라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나와 비슷한 색으로 연한 분홍빛 머리카락들은 햇빛보다 더 반짝이고 있었다.

    한 사람은 황태자만큼 큰 키에 푸른 색 정장을 입고 긴 분홍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묶은 아름다운 미남이었다.

    사르륵 접힌 제비꽃 색 눈동자에 서린 웃음이 너무나도 화려해 보석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옆의 사람은 그들보다 아주 조금 작았으나 귀를 덮을 정도로만 길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양 옆으로 넘긴 사람이었다.

    머리카락이 약간 구불구불한 것이 태생인 듯 했다.

    붉은 색을 가진 눈동자와 약간 싸늘해 보이는 인상에서 그의 성격이 작게 엿보였다.

    그러나 그 쌀쌀한 눈매와 입술은 마치 그림책에서 봤던 왕자처럼 빛이 났다. 나는 그 두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당황이 커져갔다.

    어떻게 모든 게 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거지?

    조금 쉬엄쉬엄 만나도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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