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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화 (2/218)
  • 2화. 아버지와 황제

    사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나는 그러한 사내보다 더욱 굳혀져 있었다.

    사내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로브를 뒤로 넘겼고 팔랑이는 소리와 함께 나의 로브가 벗겨졌다.

    풍성하지만 조금 푸석한 분홍빛 머리카락이 꼭 그의 머리와 같은 색으로 반짝였다.

    사내는 입술을 꼭 깨물다 내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야...”

    “.....”

    “혹시 너의 어머니 이름이...”

    붉은 눈동자 속에 들은 것은 의심이 아닌 확신이었다.

    “아리엘이니?”

    그것은 세린의 단 하나뿐이었던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나는 망설이는 눈동자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사내는 입술을 들썩이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나를 넓은 자신의 품에 가득 품었다.

    “!!!”

    놀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그저 조용히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

    “너는 이제 내 성으로 데려가겠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두 눈만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정면에서 제대로 바라본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굵은 선을 가진 외모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그에 대비되는 분홍빛 머리카락매끈한 하얀 피부 위의 눈매와 코, 입술은 그림을 그리듯 선이 고왔다.

    키가 얼마나 큰 건지 침대 아래로 뻗은 두 다리의 길이가 어마어마했고 넓은 어깨 아래로 옷감에 가려진 몸은 단단해 보였다.

    어쩌면 내 나이가 7살이라 그와 대비되어 더 커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두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절... 아세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답이 흘러 나왔다.

    “안다.”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누구신데요...?”

    어쩌면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머리카락이 그 예상을 확실하게 했다.

    그는 나를 품에 안은 자세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믿기 힘들겠지만... 내가 네 아버지란다.”

    그 예상은 정확했다.

    왜 확신하느냐고 물어볼 수조차 없을 만큼 그와 나는 닮아 있었다.

    엄마의 눈매와 눈동자 색을 제외하고 닮아 있었다.

    그는 품에 꼭 껴안은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하늘이 날 도왔구나.”

    그 목소리에서는 슬픔과 함께 안도감이 물씬 풍겼다.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지 너는 모르겠지.”

    고개를 슬쩍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니 아버지는 나를 다정히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성에 가서 설명해주마. 다만 이것 하나만 알아다오.”

    그가 망설이는 기색으로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정말로 너의 아버지라는 것을 말이다.”

    “아...”

    “지금 당장은 네가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을 안다. 그렇지만... 부디 나와 함께 성에 가자. 성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면서 알아가자꾸나.”

    “...”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난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정말 내 아버지?

    동공을 자잘하게 흔들며 양 손을 꽉 붙잡았다.

    왜 이제 서야 나타났는지 원망을 쏟기에는 나는 너무 지쳤고 그의 상처도 깊어보였다.

    무엇이 당신을 그리도 상처 입혔을까.

    난 붙잡은 양손을 천천히 풀어 그의 커다란 손을 마주잡았다.

    “...!”

    “믿을게요...”

    “...!!!!”

    나의 눈동자를 바라본 그의 붉은 눈이 흔들렸다.

    천천히 곱게 휘어 웃은 아버지가 나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뜩이나 커다란 키인데 그의 어깨만큼 높이 올라서니 천장에 닿을 것 같아 아찔했다.

    서둘러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기대자 그가 나직이 말했다.

    “고맙구나.”

    그의 품에 안겨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우리가 머물고 있던 곳이 여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늘은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보았던 눈보다 더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포옥

    머리 위에서 따뜻한 담요가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날 바라보며 자상한 눈빛으로 담요를 정돈해 나를 감쌌다.

    “아직 춥구나, 덮고 있거라.”

    애틋한 그 눈빛과 말투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난 엄마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내 머리카락의 희귀함 때문에 내가 위험에 처할까봐 애초에 사람의 시선에서 차단시켰다.

    창녀촌에서 손님을 받을 적에도 나를 작은 상자 안으로 밀어 넣으며 참아달라고 일러주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촌에서도 내 존재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 정도로 엄마는 착실하게 나를 숨겼고 누구보다 철저하게 나를 감췄다.

    몰론 작은 상자 안은 갑갑했지만 마법으로 그들을 재우자마자 나에게 달려와 나를 꺼내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는 것으로 대답을 해줬다.

    그런 상자 안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난 엄마를 사랑했다.

    기억이 거기까지 미치자 난 화들짝 놀라며 아버지의 옷깃을 잡았다.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뜬 후 날 바라보며 의문을 물었다.

    나는 자잘하게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에게 말했다.

    “어...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직 그 집에 있어요...”

    적어도 엄마의 마지막은 그런 초라한 집이면 안 되었다.

    엄마와 나의 추억이 담긴 그 뒷산 잔디에 눕혀주거나

    불을 사용하여 하늘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런 날 바라보다 지독한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씁쓸히 웃었다.

    “걱정 말거라... 그녀는 내가 아무에게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눕혀주었단다.”

    “...!”

    이미 엄마를 보고 왔던 것인가?

    “나중에 너를 데리고 가마.”

    그러다 문뜩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같은 날에는 누군가가 더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걸까..?

    나는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우리를... 언제부터 찾으셨던 거였나요...?”

    그는 앙상한 나의 손가락을 따뜻이 감싸 잡아주며 다정히 말했다.

    “너와 그녀가 사라진 그 후부터... 항상 찾아다녔단다. 이곳저곳, 안 돌아본 곳이 없을 정도로 찾고 또 찾았지.”

    그랬구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니...

    엄마가 나를 가졌을 적부터 이미 알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와 엄마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을 적에는 너무 슬퍼서 아무 생각이 안 들더구나. 그러다 한 종이를 발견했지.”

    '종이? 설마...”

    “마법이 담긴 종이더구나. 그 종이를 따라가면 네가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주변을 살피면서 너를 찾았단다. 그런데 그만 숲에 오기 전에 종이가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아버지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의 아찔함이 내게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그 깊은 숲 속까지 돌아다닌 거였구나.

    그런데 종이가 한 장이 더 있었다니...

    나에게 쥐여 준 종이가 전부가 아니었던 걸까..?

    나는 더 말하지 않아도 좋다는 식으로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종이 한 장을 집에 놓고 내게 한 장만 쥐여 준 것일까?

    혹시... 아버지가 나타날 것을 아신 걸까?

    엄마에게 자주 했던 행동으로 그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주자 그는 머뭇거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내 등을 쓰다듬었다.

    “자세한건 천천히 다 설명해주마. 네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

    나는 눈을 감고 아버지의 어깨에 기대어 생각했다.

    나도 그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고.

    그가 궁금해 할 나와 엄마의 이야기.

    아무에게도 해줄 수 없는 괴롭고 힘든 일상 속에서 서로를 붙잡으며 사랑했던 기억.

    아버지의 품에 안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구석에 대기하고 있는 마차를 발견했다.

    짙은 검은색의 마차와 그 마차를 이끌 준비를 하는 거대한 흑마.

    시종이 부드러운 몸짓으로 문을 열어주자 그 사이로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나를 데리고 마차에 올랐다.

    “폐하. 그 아가씨는...”

    시종이 조심스럽게 묻자 아버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황녀다. 궁으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시종이 깔끔하게 대답을 한 후 마차의 문을 닫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폐하...? 황녀...?

    아무리 머리를 쓰고 계산해 봐도 답은 하나였다.

    아버지를 다급히 바라보며 입을 멍하니 벌리자

    그가 나를 고쳐 안아 무릎에 앉히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혹시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것이냐.”

    내 이마를 만져보고 팔과 다리 이것 저곳을 열심히 살펴보는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화... 황제님...?”

    “음..?”

    그런 내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가 그가 작게 미소 지었다.

    별처럼 빛나는 분홍빛 머리카락 아래에서 지은 그 작은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놀랐나보구나 아가야. 너는 황제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아빠라고 불러주면 좋을 것 같은데...”

    “히끅”

    놀란 마음에 딸꾹질이 나오자 그가 더욱 놀란 눈으로 급히 내 등을 두드렸다.

    “힘들면 천천히 불러줘도 좋다. 물이라도 마셔야 딸꾹질이 멈추겠구나.”

    시종을 불러 물을 달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을 마시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

    내 아버지가 이 제국의 황제.... 라고...?

    따스한 상봉 뒤에는 줄곧 당황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이 제국을 이끄는 황제.

    그리고 엄마가 알려준 이야기를 기억하면 황제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긴 자세로 열심히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목표를 잡기 시작했다.

    황후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면 후궁 출신이었던 걸까...?

    아니면 승은을 입은 평민...?

    애초에 창녀촌에 오기 전, 그러니까 내가 첫째 딸이었을 때에는 엄마 또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귀족이라는 것이겠지.

    몰론 내가 5살에 병으로 죽어 그 후에는 어떻게 된 건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히 그녀는 평민이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럼 왜 둘째였던 나를 임신한 채 도망간 거지...?

    내가 첫 번째로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폐하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

    혼란과 의문이 뒤죽박죽으로 변했다.

    엄마가 후궁이 아니었다면 난 일개 사생아일 텐데 아버지의 아들들은 나를 어찌 생각할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지금 당장 물어보고픈 말이 많지만 다음으로 기약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도 나에게 다 이야기해주기로 약속을 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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