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
1화. 나는 당신의 두 번째 딸
깡마른 팔과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두 다리. 신체에 자잘하게 남아있는 상처와 생기 없는 푸석한 푸른색 하늘빛 머리카락. 그리고 사람이 썩어가는 냄새가 가득한 이곳은 창녀촌이다.
그런 내 앞에 부패하며 죽어가는 여인은 나의 단 하나뿐인 어머니.
그녀는 비쩍 말라있는 손가락을 겨우겨우 움직여 푸석하지만 벚꽃처럼 빛나는 나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기 새를 만지는 것 마냥 부드럽고 애틋하기만 한 손길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에 내 양팔을 감싸 안고 얼굴을 기대며 따뜻하기만 한 손길을 느꼈다.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세린... 엄마가....”
잔뜩 갈라진 음성 속에서 나를 향한 온건한 애정을 느꼈다.
“엄마가... 미안해...”
그 애정 속에서는 짙은 죄책감 또한 담겨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그녀의 깡마른 손을 붙잡았다. 피차 마찬가지로 앙상한 손가락이었지만 닿아오는 온기와 체온이 달랐다. 내가 꽉 쥔 손 사이로 그녀의 마른 손이 힘을 잃어 갔다.
“엄마.”
나는 당신의 딸
“세린... 엄마가 준 종이...”
“응. 가지고 있어.”
나는 당신이 낳은 첫째 딸이자...
“엄마가 죽으면... 바로 떠나.”
“.....
“ 다시 태어난 당신의 둘째 딸이기도 했다.
“대답해... 세린.”
“응....”
내 대답을 들은 그녀의 마른 입술이 호선을 그렸고 동시에 내가 꼭 잡고 있던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없어졌다. 날 사랑한다는 그 작고 거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지독하게 괴로운 시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죽음은 빠르게 지나갔다.
떠나버린 어머니의 손을 쥐며 울지도 못하는 난 그녀의 첫째 딸로 태어나 죽고 둘째 딸로 다시 태어나 죽음을 겪은 아이였다. 차분히 준비해놓은 과정을 따라 짐을 챙겼다.
창녀촌에서 사는 아이가 챙길 수 있는 짐이란 어머니가 쥐여 준 종이 한 장과 그간 모아놓은 돈, 얇은 이불자락 하나였지만 말이다. 천천히 내가 머물렀던 그 방을 둘러본 후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더러운 이불 위에서 숨이 멎은 나의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름다운 하늘을 그대로 담았던 것처럼 빛이 났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푸른 잎처럼 싱그러웠다.
그 아름다운 생기 있는 입술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안아줬을 때면 난 세상 그 어떤 무서움도 느끼지 못했다. 당신과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며 매일 잠이 들었던 나였다. 이제는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어머니는 나의 걱정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의 첫째 딸로 태어났을 적, 5살이었던 내가 지독한 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에 울부짖던 그 모습이 기억 속에 깊이 담겼다. 뜨거운 고통 속에서 눈을 감고 다시 당신의 품에서 눈을 떴을 때의 그 기분은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작디작은 손가락과 흐릿한 시선 속에서 유독 당신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 내가 둘째 딸로 태어났을 적, 7년 동안 날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온 마음을 다해 날 키웠던 엄마가 문득 짙은 고독이 훑을 때의 그 표정이 가슴에 남았다.
엄마는 그 순간에 죽은 첫째였던 나를 생각했었을 것이다. 이제는 홀로 저편에 갔던 그녀가 걱정되었다.
그곳에 첫째 딸이었던 난 존재하지 않을 텐데. 난 그동안 당신의 옆에 늘 있었으니까.
생기가 없는 마른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붙잡으며 작게 속삭였다. 난 엄마의 딸로 태어나 행복했다고. 다시 두 번째로 엄마의 품에서 태어났을 때도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고.
속삭임이 줄어들수록 난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죽었을 때의 엄마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텅비어버린... 너무나도 외로운 마음속에서 당신의 손길을 찾고 또 찾고 있는 나였다.
이제 날 안아주던 품도 날 쓰다듬어주던 그 손길도 함께 덮고 잤던 이불 속 온기도 같이 꽃을 따서 다발을 만들어보았던 그날의 봄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저 멀리서 나에 대한 걱정을 할 것이 분명한 어머니를 위해 나는 바로 떠나야한다.
나의 화려한 분홍 머리카락이 눈에 띌 것이라며 로브로 꼭 감추라는 어머니의 말을 지키며 로브를 머리 깊숙이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종이를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가 쥐어준 종이에는 작은 마법이 걸려있었다. 귀한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난 어머니가 담아준 오직 나만을 위한 마법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목표까지 안내해주는 도구였다. 종이가 작은 내 손바닥을 간질이며 북쪽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북쪽으로...’
의미 없는 발걸음으로 북쪽을 향해 걸었다. 엄마는 창녀촌에서 나와 살아갔지만 창녀라고 부를 수 없었다. 손님을 받기는 했지만 마법으로 그 손님들을 재우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안전하다고 하던 알 수 없는 말들을 들은 기억도 있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도망치고 있던 걸까? 누구한테서? 이런 곳에 숨은 이유가 뭘까?’
대답 없는 질문과 공허한 마음으로 앞만을 보며 걸었다.
‘엄마한테 데려다주면 좋겠다...’
아 그러면 죽음이겠구나.
죽음이야 한 번 겪어봐서 크게 두려움이 일지 않는다. 추운 한파의 겨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나 내 걸음은 변하지 않았다.
천천히... 하지만 서둘러 앞을 보며 걸었다. 소복이 쌓여가는 눈송이가 거칠어져갔다. 로브에 담긴 온기도 얼어버린 지 오래다.
종이가 날아가지 않게 두 손으로 꽉 쥐며 앞만 보고 걸었다.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곳에서 누군가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을까. 고이 묻어주셨을까. 아직 그 모습 그대로 남아계시면 어떡하지.
불안감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비명에 꽉 쥔 양 주먹 위에 머리를 기울였다. 로브 안에 흐트러진 분홍빛 머리카락을 무시하고 폭설 속 나무 밑에서 그저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흘리지 않던 눈물이 쏟아졌다. 텅 빈 깊은 숲속이라 눈물을 소리 내어 흘려도 상관없음에 감사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가 날 안아주던 그 손길이 닿는 곳으로. 뒤늦게 다가온 추위와 짙은 외로움이 나를 감싸 안았다.
“흐어어어어엉!!”
오랜 시간동안 차가운 계절에 노출된 굳어가는 손가락과 무섭게 내리는 폭설이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동상 따위도 무섭지 않았다.
차디찬 창녀촌의 겨울은 그 어떤 겨울보다 추위가 강하여 손가락과 발가락이 간지러운 정도의 동상은 기본으로 달고 살았다. 지금 내게 가장 괴로운 것은 갈 수 있는 곳도 가야하는 곳도 돌아갈 장소도 이제는 없다는 점이었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언제부터였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울다 지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자 보이는 상황은 누군가의 품에 따뜻한 담요로 돌돌 말려 안겨 있는 나 자신이었고 단단해 보이는 가슴팍 위로 깊게 눌러 입은 검은 로브였다. 로브 밖으로 보이는 날렵한 턱 선과 붉은 입술은 추운 겨울만큼 싸늘하게 닫혀있었다.
나의 작은 움찔거림에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정신이 들었나?”
굵고 낮은 톤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리자 몸이 한 번 더 움찔했다. 고개를 천천히 올리자 보이는 것은 사내의 붉은 눈동자였다.
내 연두색의 눈동자와 사내의 붉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나직이 이야기했다.
“이런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아 마을로 옮겨주려는 것뿐이다. 이왕이면 의원에게 진찰을 받고 집을 찾아보는 것은 어떠하냐.”
“...... 아.”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낯선 이의 호의는 조심해야한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거절해야 맞지만 지금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손과 발에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야.”
대답 없는 내 침묵에 사내가 나직이 한 번 더 나를 불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사한테... 진찰받을 돈은 없어요...”
“.....”
사내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그럼 내가 아는 의원에게 가자꾸나. 진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엄마가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사내가 희미하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훌륭한 어머니구나.”
그리고 내 등을 토닥여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믿어주었으면 하는구나. 오늘 같은 날 누군가가 더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거든. 치료를 다 받거든 어머니에게 데려다주마.”
그런 말을 하는 사내의 모습에서 지독한 고통이 보였다. 바람이 찼으나 사내가 덮어준 담요는 따뜻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사내는 다정한 손길로 내 머리에 눌러쓴 로브 위로 담요를 덮어주었다.
“바람이 많이 차구나. 덮고 있어라.”
그 무미건조한 음정의 목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스르륵 눈을 감고 사내의 체온에 기대어 오랜만의 휴식을 취하였다.
누군가의 온기를 느껴본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만큼 따뜻한 온기로 지신을 품어주던 이는 당연하게도 엄마밖에 없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 누군가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아이야.”
“우응...”
눈을 비비며 눈을 뜬 내 고개가 들렸다. 나무천장이 보이는 것에 어느 건물 안이라는 것을 알았고 원형탁자와 침대의 모습에 여기가 여관 아니면 그의 집이라는 것을 예상했다.
제대로 눈을 뜬 내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반짝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이었다.
‘설마! 내 로브를!’
반짝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의 색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진귀하다고 어머니가 설명한 적이 있었다.
노예상이나 일반 사람들에게 세린의 머리가 들켰다가는 꼼짝없이 팔려갈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다짐하듯 이야기하던 모습이 생생했다. 저절로 창백해진 안색으로 급하게 내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거친 천을 만졌을 때와 같았다.
‘... 거친 천...?’
의문이 가득한 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두 팔을 스르륵 내리자 다시 눈에 보이는 건 꽁꽁 여민 로브 사이로 삐져나온 나의 분홍빛 머리카락과 나의 머리카락처럼 반짝이지만 더 윤기가 나는 사내의 분홍빛 머리카락이었다.
사내와 나는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