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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139화 (139/166)
  • 139화

    ***

    데벤테르 후작가는 큰 화재로 인해 결국 잿더미로 변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후작과 두 정부, 그리고 그 아들 둘까지 모조리 불 속에서 타 죽었다. 하인들은 최대한 불을 꺼 보려고 노력하다 도망쳤지만, 이상하게도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까맣게 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워낙 큰 귀족 소유의 저택이었기에 신문에 기사도 크게 났고, 황실과 교단이 함께 사건의 조사에 나섰다. 저택은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출입 통제 처리가 되었다.

    화재 진상 조사를 나섰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새어 나오지 않으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성한 소문만 퍼졌다.

    주로 화재가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고의적으로 일으킨 방화란 이야기였다. 이전에 지펠론 백작가에서 일어난 화재와 너무나 유사한 사건이다 보니, 소문은 역병처럼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 사람들,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시체를 부검하지 않고 바로 장례를 치렀다며?”

    “하지만 그 많은 하인들이 굳이 저택에서 떨어진 곳에서 죽을 이유가 뭐가 있어?”

    “몸에 불이 붙어서 달리다 죽었나 보지.”

    운 좋게도 몸에 아무 이상도 없이 살아남은 생존자, 데니스는 수도 내에 파다하게 퍼진 후작가의 화재 이야기를 곳곳에서 들었다.

    부유하기로 유명하던 가문의 본가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화재라니. 이 기이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사람들은 좋아했고, 과연 어째서 화재가 일어났을지 궁금해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러더라. 그거, 실종된 저주받은 여자가 한 일이라고.”

    로브를 걸치고 여관에 앉아 술을 마시던 데니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루시의 이야기였으니까.

    “진짜? 지펠론 백작가에서 유일하게 발견되지 않은 그 여자?”

    “어. 소문으로는 그 여자가 범인이라던데? 사랑받지 못한 분풀이를 방화로 푸는 거라고.”

    잔을 쥔 손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루시는 저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 혼자서 괜히 시비가 붙는다면 불리했다. 건강해졌다고 데니스의 싸움 실력도 같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심란한 그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입을 멋대로 놀렸다.

    “그런데, 검게 타 버린 시체들 중에 기묘한 게 하나 있었다던데?”

    “뭔데?”

    “심장이 뚫린 시체. 저택 안에서 발견되었다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거기 현장을 지키는 사람 중 하나랑 친하거든.”

    데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그가 면식 없는 사람들을 쳐다보자 그들은 다소 당황했다.

    “뭐야. 형씨, 누군데 그렇게 쳐다봐?”

    “정말 심장이 뚫린 사체가 나왔……습니까?”

    그는 귀족이고, 저들은 평민이었지만 가문이 몰락한 상황에서 혹시 몰라 경어를 사용했다.

    ‘루시를 노렸던 자들이 아예 내 가문의 본가까지 불태웠다면, 그건 정부의 소생들에게도 고의로 접근했다는 게 맞겠지.’

    본가의 저택이 불타고, 후작가의 직계가 모두 사망했다고 알려지자 발 빠르게 하이에나 떼들이 몰려들었다. 후작이 몸져누운 뒤로 정부들과 그 아들들의 소홀한 관리 아래에서 썩어 가던 아랫물들이 속속들이 이득을 뜯어 먹으려 든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데벤테르 후작 가문 자체를 없애려고 한 것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았다. 이미 남은 후작가의 재산이라도 가져 보겠다고 방계 출신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난장판을 피우고 있었으니.

    ‘그래 봤자 이복동생들이란 놈들이 저지른 일이 너무 커서 남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고민으로 골치 아픈 데니스의 안색은 퍽 어두웠다. 그를 보고 퍽 동정심이 들었던 것인지, 불퉁하게 묻던 사내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시체는 왜 묻소? 가족이오? 지인?”

    “……친구였습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였어요.”

    루시를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던 데니스는 결국 그녀를 친구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그 이상의 존재였지만, 딱히 그에 걸맞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저런.”

    “알고 계시는 게 있다면 꼭 알려 주십시오. 제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간절하고 다급한 데니스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는지, 사내는 일행을 잠시 둘러보더니 먼저 가 있으라 손짓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다 알려 주겠소. 정보 값은 없는 것으로 치지.”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데니스는 겨우 루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내에게서 루시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는 발에 불이 붙은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와 불타 버린 잔해만 남은 후작저로 달려갔다.

    ***

    “여기…… 어디에 개구멍이 있을 텐데.”

    지긋지긋하던 저택이었기에, 빠져나가려는 통로는 데니스가 제일 잘 알았다. 사람들의 눈에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던 개구멍을 찾던 데니스는 그곳을 겨우 발견했다.

    “찾았다.”

    들었던 대로, 확실히 불타 버린 후작저에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초를 서 있었다.

    ‘이상해. 왜 교단의 사람들만 경비를 서고 있지?’

    분명 황실에서 주도한 조사였을 텐데, 황실의 문장이 들어간 갑옷은 단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흰색으로 깨끗함을 강조한 교단의 사람들만 있었다.

    ‘모르겠다. 우선 들어가고 보자.’

    데니스는 살금살금 들키지 않게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저택이 있었던 자리를 보자 폐허만 있었다.

    “…….”

    까맣게 타 버린 저택의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괴이한 것은, 사람들의 시체도 고스란히 수습하지 않고 나뒹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게…… 대체……?”

    윽. 역한 냄새가 풍겼다. 눈으로 보기도 힘든데, 악취까지 나니 맨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루시를 찾아야만 해.’

    돌아오지 못했다면, 그라도 나서서 루시의 시체를 거둬야 했다. 루시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저택의 내부였던 곳으로 향해 탐색을 시도하자, 곧 심장이 뚫린 왜소한 시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그 시체는 상당히 기묘했다. 온몸에 불에 탄 흔적이 남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다른 시체들과는 다르게 숯처럼 변하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카락 색이 다시 은색에서 회색이 되었군.’

    루스벨라는 또 다른 자신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각성의 증거로 보이는 은색 머리칼이 다시 회색이 되고, 심장이 뻥 뚫린 것으로 봐서는 역시 아벨 일당이 그녀를 살해하고 성력석을 빼앗아간 것 같았다.

    신기한 건, 마치 누군가 와 주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공기 중에 희미하게 남은 황금빛 신성력이 루시의 시신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꼭 돌아와 준다고 했잖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거짓말쟁이.

    데니스는 루시의 시신을 확인하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내가 올 줄 알았던 거야? 나라도 기다린 거야?”

    이미 죽은 이는 말이 없었다. 차갑게 식은 얼굴 위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동화 속에서는 왕자님이 이렇게 울면 잠자던 공주님이 깨어나던데.”

    그러나 현실과 동화는 달랐다. 루시는 죽었다. 그녀를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그 사실이 폐부 곳곳을 찔러 숨을 쉴 때마다 버거웠다.

    “말렸어야 했는데. 가지 말라고 애원만 하지 말고 그냥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

    데니스는 황금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시신을 두고 오열했다. 루시는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텅 빈 녹색 눈동자가 경악에 질려 있었다.

    하기 싫은 온갖 상상들이 그를 괴롭혔다. 루시를 노리던 이들은 얼마나 잔혹하게 그녀를 살해했을까. 그녀는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면서 죽어 갔을까.

    “누가 널 죽였어?”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루시에게 물었다.

    루스벨라가 그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말을 걸었던 것처럼.

    “알면 어떻게 할 건가요?”

    데니스에게 루스벨라가 말을 걸었다. 들리지 않음에도 마치 들은 것처럼 대답이 이어졌다.

    “죽여 버릴 거야. 너를 이렇게 만든 이들을 찾아서 다 죽여 버릴 거야.”

    네가 겪은 고통 한 줌까지도 마저 다 대갚음하기 전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거야.

    그의 울음소리는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니라 짐승의 것에 가깝게 들렸다. 루시의 시신 주변에 남은 신성력 때문인지, 누군가 인기척을 느끼고 오는 일은 없었다.

    “……여기에 널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이 빌어먹을 저택을 벗어나자.”

    데니스는 루시의 시신을 옮기려 했다. 차가운 땅바닥에서 그녀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황금빛 신성력이 하나로 뭉치더니 펑 터지며 무언가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안녕. 상냥한 인간아.]

    신성력은 곧 백발의 긴 머리카락과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인간의 형상이 되어 그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영혼을 진동시키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뭐야, 이 희끄무레한 건?”

    [……예의가 없는 인간이로고.]

    큼큼 헛기침 소리가 들렸지만, 데니스는 그를 무시했다. 그의 정신은 온통 루시에게 가 있었으므로.

    [나는 이 땅이 생겨날 때 함께 태어난 최초의 씨앗. 태초부터 존재한 영혼. 너희들의 타락에 못 이겨 스스로를 봉인한 자.]

    그런 나를 너희 인간들은 신이라고 부르더구나.

    “신이든 뭐든 관심 없으니까 꺼져.”

    데니스가 여전히 그를 무시했다. 신, 셀레누스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필이면 내 눈앞에 있는 자가 이런 건방진 인간이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데니스가 루시를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손이 닿자마자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던 루시는 데니스의 손이 닿은 지점부터 까맣게 피부가 타들어 가더니, 불타 죽은 다른 시신처럼 변했다.

    “안 돼!”

    그가 절규하며 루시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내 그녀의 육신은 재로 변하더니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갈 곳을 잃은 분노는 그를 지켜보던 신에게로 향했다.

    “너 때문이지! 네가 나타나니까 루시가……!”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신은 그것을 가뿐히 피했다.

    [내 탓이 아니다. 그 아이가 숨을 거둔 순간부터 저렇게 되어야 했는데, 릴리안의 가호와 내가 스스로를 봉인하기 전 혹시 몰라 걸어 두었던 힘 때문에 저렇게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거다.]

    “네가 진짜 신이라도 된다는 거냐?”

    [믿지 못하겠지만, 그렇다.]

    “그럼 그녀를 살려 줘.”

    루시의 시신마저 사라지자 미치기 일보 직전인 데니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렵다. 죽은 이를 살리는 건 섭리에 어긋나는 짓이야.]

    “신이라며! 신이라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 한 명도 살리지 못해?”

    루시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슬픔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를 살려 줄 수 없다는 신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는 모르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씩씩거리는 와중에도 하염없이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흘렀다.

    그것이 못내 안타까웠는지, 신이 머뭇거리다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살릴 방도가 있다면, 해 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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