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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137화 (137/166)

137화

“곧 새 가주가 되실 루이스 님이 뭔가 이상해.”

“내 말이. 요즘 너무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으로 들어오는 때가 많지 않아?”

“전에도 성격이 좋으신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 더 난폭해지셨어. 술에 취해서 들어오신 날이면 고용인들을 때리는 빈도가 늘고 있다고.”

저택 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데니스의 이복동생들이 벌이는 일 때문이었다.

하인들의 수군거림을 데니스와 이쪽 세계의 루스벨라도 들어 알고 있었다. 루이스가 쫓아낸다는 엄포를 놓아 그때까지는 조용히 나갈 준비를 하며 살고 있으니, 저택 내 상황에 대해 주의 깊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루이스 녀석, 도박하는 것 같던데.”

“다른 도련님은, 마약을, 하시는, 데다, 어마어마한 사치를, 누리시는 것, 같고요. 사창가에, 아예 눌러살고, 있는 것, 같다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어요.”

두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증거가 될 만한 말이 계속해서 고용인들의 입을 타고 들리기 때문이었다.

루이스와 다른 이복동생이 본래도 망나니 기질이 있긴 했으나, 데벤테르 후작이 멀쩡할 때는 조심하는 척이라도 했었다. 뒷구멍으로 알음알음 아는 지인을 통해 드러나는 일 없이 음지의 산물을 즐겼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최근은 너무 대놓고 즐기고 있지. 감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루이스가 도박을 하는 것 같다는 심증을 굳힌 건, 그에게 돈을 요구하며 후작저로 쳐들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상당히 여럿이서.

“소후작, 내기에서 졌으면 어서 약속한 돈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흠, 설마 내가 미루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어련히 알아서 제때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놀이 전 계약서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이미 돈을 줄 날짜는 지났던데요? 혹시…… 데벤테르 후작저는 이 정도 돈도 내주지 못할 정도로 궁하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루이스를 살살 긁는 말을 던져 기어이 돈을 받아 갔다. 루이스는 그럴 때마다 지레 찔렸는지, 아니면 ‘놀이’에서 졌다는 패배감 때문인지 하인들에게 난폭하게 굴었다. 그 때문에 사소한 실수로 매를 맞거나 쫓겨나는 고용인들의 수가 늘었다.

“후작님께서 빨리 쾌차하시면 좋겠는데.”

고용인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정부들 소생의 아들 둘이서 후작가를 더욱 번영시키지는 못할망정 말아먹으려는 짓거리만 하고 다니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루이스와 다른 이복동생의 사치와 향락은 점점 늘어갔다. 그들은 마치 멈추지 못하는 마차처럼 쉴 새 없이 데벤테르 후작가의 재산을 펑펑 썼다.

그들의 어머니인 정부들도 그것을 말리지 않고, 방조했다. 함께 가문의 부를 탕진하는 데 동참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후작가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황금 샘처럼 쏟아지던 돈은 가장 윗선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자 삐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에 데벤테르 후작가의 가신들과 저택 내에 고용된 이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일각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도는 중이었다.

“이럴 바엔 첫째 도련님이 낫겠다. 적어도 그분은 사고는 치지 않을 거 아니야?”

“지금까지야 정부들 소생을 후작님이 예뻐하셔서 그쪽에 알랑거렸지만, 이래서야 원……. 후작가에 미래가 있는지도 모르겠어.”

루이스와 카트린 부인은 후작가를 돌보는 데는 소홀하면서, 그들을 욕하는 이야기는 잘만 주워들었다. 불같이 화를 내던 그들은 입을 가벼이 놀렸다는 죄로 데니스의 이야기를 한 하인들을 내쫓고, 데니스를 불러다 앉혔다.

“이 집에서 나가거라.”

“예?”

“네가 루이스의 앞길에 방해가 돼. 천한 아랫것들이 네 존재 때문에 함부로 입을 놀려 나와 루이스를 욕하지 않니? 그러니 네가 나가렴.”

‘허……. 뻔뻔하게도 그걸 전부 내 탓으로 하시겠다?’

데니스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이미 데벤테르 후작가는 저 기생충 같은 정부들과 이복동생들 때문에 기울어 가고 있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했지만, 데벤테르 후작가의 재산은 그 이상이었음에도 어찌나 갉아먹었던지 가문이 통째로 휘청이고 있었다.

원인이야 뻔했다. 상단을 이끌어 가고 재깍재깍 지시를 내려야 할 최고 윗선인 루이스를 비롯한 인물들이 똑바로 살지 않고 돈을 펑펑 쓰기만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윗물이 더러우니 아랫물도 더러워져, 횡령을 하고 후작가의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친 다음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그 배경에도 카트린 부인과 루이스가 무분별하게 상단의 중요 직위를 제 입맛에 맞춰 주는 사람들을 앉혀서겠지만.’

건강해지니 가문의 일을 내다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데니스가 보기에 이 가문은 머지않아 몰락할 게 분명했다. 회생시키려면 정부들과 그 자식들을 쫓아내야 할 텐데 그건 너무 요원한 일이었다.

‘날 사랑하지 않았고, 증오했던 가문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스러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어쩐지 억울했다. 이것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찬란했던 후작가가 퇴색된 것이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뭐 해? 어서 짐을 싸서 나가지 않고. 쌀 짐도 별로 없잖아?”

루이스가 이죽거렸다. 그는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루스벨라에게도 그가 데니스에게 품은 악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한때 다 죽어 가던 놈과 비교 선상에 놓이니 자존심이 상한 게 다 보이는군.’

졸렬한 인간에게 애원을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미 결정을 내려서 통보하는 일이니, 데니스는 체념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시간을 조금만 줘. 적어도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갈 시간 정도는. 그 정도의 예의를 차리는 것까지 뭐라 하진 않겠지?”

아버지인 데벤테르 후작을 뵙고 가겠다는 말은 핑계였다. 데니스는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루이스와의 일 이후 완전히 버렸다.

그가 구태여 아비를 들먹인 것은 그의 치유사, 루시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자리 잡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루시를 고생시키진 말아야지.’

이 저택에서 나가기 전에 패물들을 슬쩍 챙겨서 갈 생각이었다. 도둑질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그동안 그를 학대하고 방치한 가문에 그가 받아 가야 할 정당한 위자료라고 봤을 뿐.

“흥. 네가 후작님께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침실에 들여보낸단 말이냐?”

“제가 설마 아버지를 죽이기라도 하실 거라고 여기세요? 제 친아버지를?”

카트린 부인의 말에 데니스가 맞받아치자 그녀는 움찔했다. 데니스는 그것이 그녀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후작을 죽일 계획을 꾸밀지도 모르는 방증이라고 추측했다.

“맞아. 저 사람들, 여차하면 후작을 해칠 계획이야. 내가 봤거든.”

루이스와 카트린 부인 모자는 하인들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들 역시 그들에게 불만을 가진 후작가의 가신들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혹시나 데니스가 새로운 후계자로 추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미리 데니스를 지지할 만한 인간들을 전부 추려 내어 쫓아내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해.’

후작의 곁에 있으면서 제 아들이 작위를 이어받고 후작가의 모든 부를 누리길 원했던 카트린 부인이었다. 그녀의 원대한 계획을 망치려는 싹은 존재해서는 아니 되었다.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어머니 말씀이 옳아. 아버지가 의식이 없더라도 너 같은 건 병문안 오길 원하시지 않을걸?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나가. 도살당하는 개처럼 얻어맞고 나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루이스의 입에서 저열하고 더러운 협박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니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요. 뭐, 그럼 내일 중으로 나가도록 하죠.”

“흠, 흠. 그래. 잘 생각했다고.”

생각보다 순순히 응하고 나가니 도리어 카트린 부인과 루이스는 불안해졌다.

하지만 데니스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뿐이었다.

‘뭐부터 가지고 나가지? 웬만한 비밀 장소는 내가 알고 있긴 한데. 그것 외에도 더 가지고 나가야 좋겠지.’

데니스는 어릴 적, 데벤테르 후작이 정부들을 데리고 왔을 무렵 어머니의 패물과 그가 가진 가장 귀한 것들을 그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 숨긴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그것들은 끝내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거랑 아버지가 비자금을 숨겨 놓는 곳도 털어야겠다.’

신이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이건 용서해 주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데니스는 루시에게 돌아왔다. 루시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도, 련님. 어떻게, 되셨, 어요?”

“나가래. 예상했던 대로지.”

나갈 시간을 달라고 한 것과 다르게, 이미 그들은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짐을 싸 둔 상태였다. 단지 숨겨 놨던 패물을 찾아서 갈 시간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 럼, 이제, 보물찾기를, 하면, 되겠, 네요.”

“응. 서둘러 찾아서 나가자. 이제 이 저택은 정말 지긋지긋해.”

데니스가 루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루시는 우물쭈물하며 그 손을 잡길 망설였다.

“뭐 해. 여기서 나가면 더는 도련님과 고용인의 관계가 아니잖아. 동등해지는 사이가 되는 건데, 안 돼?”

“……아니, 에요. 잡을, 게요.”

루시가 데니스와 손을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져 어떤 일이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구간 쪽부터 살피자. 내가 헛간에 하나 숨겨 놓은 게 있거든.”

“좋아, 요.”

두 사람은 열심히 저택 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하인들은 무시했다. 이미 입 싼 루이스라면 데니스가 나간다고 고래고래 다음 날 소리치고 다닐 게 뻔했으니, 굳이 입 아프게 일일이 나 나간다고 알리기도 싫었으니까.

***

그런데 그들이 열심히 보물찾기를 하던 그날 밤이었다.

“불이야! 불이 났다!”

엄청난 화재가 데벤테르 후작저를 뒤덮었다. 그 커다랗던 저택을 모조리 태울 만큼 거대한 불길이었다.

“안, 돼…….”

그 불길은 흡사 예전에 지펠론 백작가에 일어났던 의문의 화재와 몹시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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