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아이고야…… 부황께서 설마 이런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줄이야.”
베네딕트는 한숨을 내쉬며 잠긴 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했다. 하지만 바깥쪽에서 쇠사슬과 자물쇠, 그것도 모자라 마법까지 동원하여 잠근 문이 미동도 할 리는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어마마마? 부황께서 저희를 가두셨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황태자.”
베네딕트의 어머니이자 황후인 이벨린은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최근 폐하의 상태가 무언가 수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아내와 자식을 다짜고짜 감금할 줄은 몰랐다. 사랑 없이 결혼했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의 선은 지킬 줄 아는 부부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폐하는 우릴 어쩔 생각이실 걸까요.”
“뭐…… 이 지경까지 왔다면 대충 뭘 생각하시는 것인지 보입니다. 다만 그 생각조차 폐하 본인의 것이 아니라 다른 놈의 것이라는 게 웃기지만요. 하하하!”
베네딕트가 세상에서 가장 웃긴 것을 본다는 것처럼 키득거렸다. 이벨린은 이마를 짚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베네딕트.”
“어…… 음, 네. 어머니.”
“조용히 하거라. 네 어미 화병으로 죽이고 싶지 않으면.”
“넵. 잘못했습니다.”
얌전히 닥친 베네딕트가 종종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이벨린은 한숨을 푹푹 쉬다 겨우 아들에게 질문했다.
“넌 폐하께서 왜 이러시는지 알고 있는 거지? 아들아.”
“네. 물론이죠. 영생을 주겠다는 사이비 같은 교주 놈의 말에 홀랑 넘어가서 이런 짓을 저지르실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요.”
“뭐?”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요…….”
베네딕트는 최대한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어머니에게 설명했다. 이벨린은 그 이야기를 경청했고, 중간중간 뒷골이 당긴다며 달달한 차를 마신 뒤에야 다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폐하께서 헛된 꿈에 빠져 이 난리를 만들었다는 거구나. 네가 자신의 죄를 캐낼까 봐.”
“맞아요. 그래도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두는 것으로 그쳤으니.”
살짝 나사가 빠진 아들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이벨린은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에 바빴다.
“그럼 나는 왜 여기다 가둔 거지?”
“어머니께서는 제가 갇히면 가만있으실 위인이 아니시니까요. 틀림없이 저를 꺼내려 애쓰셨겠지요.”
그 소란을 폐하께서는 원치 않으셨던 겁니다.
“듣고 보니 그게 맞구나. 네가 어떤 이유 없이 감금당할 아이가 아니니까. 뭔가 일이 있었겠지. 그리고 상의도 하지 않고 갇힌 너를 내가 두고 보진 않을 거야.”
“하하하. 초점이 거기로 가 있는 거예요?”
“그럼 내가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니? 비탄에 빠져 눈물에 젖은 얼굴로 통곡하는 모성애를 보이길 바라니?”
“아니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 이후 어머니가 저한테 당장 신붓감 후보 카탈로그를 내밀면서 이 중에서 얼른 골라 결혼하라고 닦달할 것 같아서 무섭네요.”
“그래. 알면서 왜 그러니.”
부드럽고 강하게 조곤조곤 말로 때리는 어머니에게 베네딕트는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요. 항복합니다.”
이벨린 황후는 후후 웃으며 아들에게서 따낸 소소한 승리를 만끽했다. 그러다 굳은 목소리로 베네딕트에게 물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음, 폐하의 황관을 벗겨 드려야겠죠.”
“네 아버지이자 내 남편인 이 제국의 황제를 끌어내리겠다?”
“시치미 떼지 마세요, 어머니. 어머니 눈빛만 봐도 다 티 납니다. 지금 머리채라도 잡고 싶어 하시는 거 겨우 참고 있으시잖아요.”
베네딕트는 이벨린의 성격을 알았다. 고상함 뒤에 철저히 숨긴 다혈질은 오로지 그릇된 행동을 보았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남편인 황제를 옹호하기는커녕, 어떻게 해야 그 인간을 효과적으로 조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음에 베네딕트는 데니스의 검을 걸고 내기도 할 수 있었다.
“흠, 너에게도 다 티가 났다니. 감추는 실력이 녹슬었구나.”
“저한테만 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은 다 어머니를 자애로우신 황후 폐하로 아니까요.”
“그래…… 하지만 이제 황제 폐하께는 좋은 아내로 남지는 못하겠구나.”
그 사람이 먼저 나를 배신했으니 말이야.
이벨린은 베네딕트와 같은 금빛 눈을 빛내며 아들에게 물었다.
“사람은, 심어 놨느냐?”
“물론이지요. 기본 중의 기본 아닙니까.”
베네딕트가 씩 웃으며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제게 가장 먼저 가르쳐 주신 처세술 중 하나 아닙니까. 적을 발견하면 그 옆에 폭탄을 심어 놓아라.”
적이 생기면 그 적을 곁에 두고 방심하게 만들면서 한 방 먹이는 게 황후와 황태자의 방식이었다. 그들을 감금시킨 황제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데벤테르 후작과 윈체스터 공작에게 조치를 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떻게 말이니?”
“대중들에게 제 소식을 알려 달라고요. 귀족, 평민 가리지 않고요.”
“백성들 사이에 들끓는 여론이 일겠구나. 자격 없는 황제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서 말이야.”
“그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머니와 저를 가둔다고 해도, 그리고 폐하께서 본인의 잘못을 가리려고 해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 봤자 소용없었다. 베네딕트는 황제가 어디까지 움직일지 예측하여 그에 따른 대비책을 데니스와 아슬란에게 미리 부탁해 뒀다.
‘내가 나오지 못한다면 바로 폐하에 대한 공격이 들어가도록.’
사실 공격도 아니었다. 황제가 저지른 그 자신의 과오가 업보로 돌아오는 것일 뿐. 자업자득이었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 어머니와 저의 감금 소식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황실의 위상이 말이 아니구나.”
“그 위상은 부황을 물러나게 만들면 사라질 일입니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황위에 오르는 건 좋은 그림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래서야 베네딕트에게 민심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한량 놀이는 이제 접는 것이니? 결혼은?”
“그건 무사히 즉위를 하고, 혼란기를 이겨 낸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곧 죽어도 바로 한다는 소리는 안 하는구나.”
이벨린은 툴툴거리면서도 나쁘지 않다는 듯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황제 폐하의 반응이 기대되는구나. 설마 아내와 아들을 멋대로 가두고서 두 다리 뻗고 편히 잠을 자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반드시 황제의 금빛 머리털을 쥐어뜯어 주리라. 가정과 나라를 개판으로 만든 죄를 물어서.
***
“그거 들었어?”
“뭐가?”
“교단과 데벤테르 후작가와의 재판 말이야. 후작가가 압승했다며?”
“아, 그거. 내 친구도 방청하러 가서 직접 봤다고 하더라. 깨끗한 줄만 알았던 교단 사제들이 모함하려고 기 쓰다가 망했다고.”
“그렇지? 게다가 요즘은 그 교단이 숨기고 있는 비밀 단체가 있다고 소문이 막…….”
수도가 시끄러웠다. 아벨은 혼자서 풀리지 않는 일들의 향연에 속이 답답하여 잠시 외출했다가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
‘빌어먹을 후작가의 애송이가.’
아마도 완벽한 대체품일 루스벨라의 옆에 결혼의 형태로서 있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니 기분이 심히 좋지 않았다.
‘그냥 찾아가서 죽이기에는 다른 벌레들이 너무 많아…….’
교단과 에덴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외부 활동을 선포했지만, 그들은 원하던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에, 데벤테르 후작가 측은 이상할 정도로 방비가 잘되어 있었다.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변방의 요새처럼, 미리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너무 철저해서 무언가 이상했다.
“야, 그리고 그것도 알아? 황제 폐하께서 황후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가두셨대……!”
누군가 속삭인 그 이야기는 반가운 것이었다. 그건 아벨이 원했던 일이었으니까.
‘황제를 협박하여 해내길 잘했군.’
그렇지만 이렇게 빠르게 소문이 퍼질 줄은 몰랐다. 거기다 길거리의 평민들마저 알 정도라니. 이건 필시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황태자? 아니면 데벤테르 가의 그 후작이나 윈체스터 공작이겠군.’
마음 같아서는 황태자를 회유하고 싶었지만, 이미 셋이서 아벨의 심복들을 붙잡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일이 끝날 때까지 가두든지, 죽이든지 하라고 압박을 넣은 것이었는데……. 이러면 곤란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아벨이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더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말이야, 그게 황제 폐하께서 사악한 단체와 손을 잡아서 그런 거란 말이 돌고 있어.”
“뭐? 그게 어딘데?”
“에덴이라고…… 이번 성력 증진제 사건의 사제들도 소속되어 있다는 단체라나 봐. 그 에덴의 꾐에 넘어가 폐하께서 황후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가두는 악수를 둔 거라고…….”
“하.”
정보가 줄줄 새고 있었다. 거리의 무지렁이 벌레들도 저렇게 에덴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머리가 핑 도는 감각이 느껴졌다. 화병이라도 날 것 같았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아벨은 당장 전투태세로 돌입할 수 있는 사제들의 수를 떠올렸다. 신성력 부스러기를 나눠 준 벨로트를 비롯한 이들이 공격 쪽으로는 그나마 쓸모 있는 편이었지만, 붙잡힌 이상 버려야 했다.
“전면전으로 들어가야겠군.”
이대로 있다간 그 핏덩어리 같은 놈들 셋에게 당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품을 품고 있는 루스벨라의 심장은 열어 보지도 못하고 끝날 수도 있었다.
‘드디어 내가 기다렸던, 완벽한 신이 될 수 있는 초석이 되어 줄 성력석이 나타났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아벨은 벌레들을 봐주려고 했다. 이렇게 빠르게 터트려 죽여야 할 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이건 전부, 알아서 화를 자초한 데벤테르 후작 부부와 윈체스터 공작, 그리고 황태자의 잘못이었다.
성력석의 힘을 이용해 에덴으로 돌아간 아벨은 자신의 신도들에게 말했다.
“때가 되었다. 나의 종들아. 이 나라를 내게 바치러 가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