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내가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사제님들도 마셔 보고 확인해 보면 알겠지.”
데니스의 이죽거림에 사제들은 서둘러 경악을 감추려 호통을 쳤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사제들이 씩씩거리며 허겁지겁 포션 병을 열었다. 긴장으로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미지근한 포션이 넘어가자, 반가움마저 일었다.
‘이 감각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신성력이 차오를 익숙한 감각을 사제들은 기대했다.
‘……뭐야?’
하지만 신성력이 늘어나는 충만감은 들지 않았다.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제들이 자신의 몸을 더듬어 봤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저기, 신성력이 늘지가 않소.”
“그쪽도?”
“나, 나도 그렇소!”
다른 사제에게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안색이 노랗게 질려 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마시기 전까지만 해도 가품이 아니라 진품인 것을 확인했다. 그사이 가짜 성력 증진제와 바꿔치기한 것이 아니라면,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체포될 때 빼앗겼던 성력석 부스러기도 가지고 있건만……!’
증거용으로 시연하기 위해 돌려받은 성력석 부스러기가 죄수복 주머니에 있었다. 그런데도 신성력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떻습니까? 성력 증진제의 효과가 평소와 같던가요?”
그들의 혼란스러움을 지켜보고 있던 데니스가 깐족거리자, 사제들의 핏발 선 눈동자가 일제히 그를 향했다.
“데벤테르 후작……!”
“포션에 무슨 장난질을 친 것이오? 비겁한 사기꾼 같으니라고! 신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시오?”
“신성력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 비열합니까!”
사제들의 원성이 터지자 판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조용히 하라고 경고했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입니다. 정말 퇴장시키기 전에 정숙하세요!”
“이익…….”
불만의 소리가 입 밖으로 새지 못하고 부글부글 끓었다. 데니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하신 건가 봅니다?”
“사실대로 털어놓으시오! 이, 이게 이럴 리가 없잖소! 우리를 속여서 재판에서 이기려고 한 것이지!”
“제가 당신들을 상대로 왜 그런 수까지 씁니까? 그럴 이유가 없는데.”
“없지 않…….”
데니스의 말을 반박하려던 사제가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신세가 위태로워진 상황이나, 아벨이 루스벨라의 심장에 잠들어 있을 성력석을 원하니 동기는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데벤테르 후작이 진짜 신성력의 존재도 밝힌 뒤야.’
섣불리 입을 놀린다면 아벨에게 사지가 찢겨 죽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살아 있는 채로 산산조각 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다시 성력 증진제를 가져와 주시오. 후작의 말이 진짜인지 믿지 못하겠으니.”
“얼마든지.”
어깨를 으쓱인 데니스가 보좌관인 제이크를 시켜 미리 준비해 둔 성력 증진제를 추가로 가지고 왔다. 사제들은 그것들을 받는 즉시 삼키고 신성력이 늘어나길 기다렸다.
변화는 없었다. 몇 번을 마셔도 똑같았다.
“이게…… 이게 어떻게…… 이럴 수가…….”
확인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성력 증진제는 예전과 같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루스벨라가 착실히 사제들이 성력 증진제를 마시기 전마다 미리 힘을 회수했기 때문이었다.
“확인은 다 하셨습니까?”
“…….”
“제 말이 맞는지, 아니면 사제님들의 말이 맞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표정만 봐도 답이 나오네요.”
능구렁이처럼 실실 웃기나 하는 데니스의 면상에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마시고 또 마셔도 신성력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교단의 사람들은 진작 일어나서 퇴정해 버렸다.
데니스의 변호사는 이미 승리로 기운 분위기를 확신하고 말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이에 저는 저의 의뢰인이신 피고가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성력 증진제에는 피고들이 주장하는 효능은 없었음을, 저 사제들이 착각하여 오히려 무고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음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아니야…… 분명 우리가 그렇지 않고서야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서 샀을 리가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법정 내 분위기는 싸늘했다. 사제들은 시선조차 둘 곳이 없어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원고 측 사람들은 대답하십시오. 데벤테르 소유의 허니버터 상단이 유통한 성력 증진제에 정말 신성력이 늘어나는 효능이 있던 것이 맞습니까?”
“그, 그게 맞는데요. 판사님. 정말 저희는 그걸 느꼈습니다!”
“증거 있습니까?”
“증거는…… 없지만…….”
“그렇다면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판사는 냉정하게 말을 흐리는 사제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벨로트는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딱 한 병, 아니 한 모금이라도 남겨 둘 것을……!’
자기 힘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늘어난 신성력이 다시 원상 복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았다. 늘어난 신성력을 유지하기 위해 벨로트를 비롯한 증진제를 구입한 사제들은 빠르게 그것을 먹어 치웠다.
그것이 이토록 한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낼 결정적인 한 수가 될 줄 알았다면, 절대 다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즉, 증거물로 제출할 수 있는 성력 증진제는 없었기에 증거 조작을 의심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의 변호사조차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판단한 것인지 심드렁한 눈빛이었다.
“누가, 누가 도와줘요…….”
재판에서 이기지 못하면 무고죄로 형량은 더 높아질 것이다. 아니, 이미 황태자의 심기를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인데 형량이 문제가 아니라 받을 처벌의 수위가 높아질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래서야 아벨이 그들을 찾아온다면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힘을 좇아 탐욕만 부리다 패배자가 된 심복들을, 일을 단단히 망쳐 놓은 사제들을 아벨이 용서할 리가 없었다.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이렇게 되기를 원했던 게 아니라고.’
“재판 결과, 피고의 주장은 그 근거가 미흡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원고가 무죄임을 밝히는 바이며, 또한 피고 측이 오히려 원고의 상단을 모함하려 했음을 고려하여 무고죄를 적용합니다.”
“아니야……!”
재판이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사제들은 승복하지 못했다. 시끄러워질 예감에 판사는 경비들을 불러 그들을 다시 감옥으로 데려갈 것을 요구했다.
“이건 무효야! 다들 저 악마 같은 사기꾼에게 속고 있는 거라고! 아아악!”
“악마는 너희들이겠지. 퉤, 세속에 찌든 사제들 같으니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 봐도 돌아서는 사람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로지 데니스와 루스벨라만이 그들이 질질 끌려가는 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끝났네요.”
“네. 루스벨라. 정말 잘해 줬어요. 고마워요.”
“제가 할 말이에요. 이제 남은 건…… 이 소식에 분노할 에덴과 아벨을 처리하는 일이네요.”
“벌집에서 꿀을 모두 훔쳐 간 것과 같은 행동을 우리가 했으니, 곧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반드시.
***
두 사람의 예상대로 아벨은 길길이 화를 내며 날뛰고 있었다. 비상 상황 선포 이후 겨우 차분해졌던 그를 교단의 사람들이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아벨 님.”
그들은 에덴과 교단을 잇는 연결고리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여 무슨 일이 터지면 아벨에게 꼬박꼬박 보고를 하러 왔는데, 그동안은 세비어의 명으로 쉬쉬하고 있다가 그가 사라진 후에야 온 것이었다.
“이런 씨발…….”
아벨이 욕설을 지껄였다. 저속한 날것의 욕설에 사제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조용했던 거구나? 나한테서 감추려고.”
‘세비어, 이 개자식이.’
에덴 내부의 사제들을 풀어 세비어와 알렉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지만, 소득이 없었다. 두 사람 다 하늘로 솟은 것인지 땅으로 꺼진 것인지 행적이 묘연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벨은 에덴 내의 모든 사제들을 다시 소집했다.
“누가 이런 중대한 사건을 덮으라고 했지?”
“그, 그게, 세, 세비어 장로님과 현재 재판 중인 사제들이 하도 사정을 해서…….”
“그래? 죽기 싫다고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그렇지?”
“그, 그게, 아니라…… 저희는 그저…….”
“말 제대로 할 줄 몰라? 바보야? 머저리야? 똥개만도 못한 것들아?”
뭔가 베이는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덩어리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끄, 끄아아아아악!!!”
“왜 그랬어. 왜 나를 실망시켜. 왜 나를 화나게 해. 응?”
한 사제의 팔이 베였다. 그것조차 일손이 부족하면 배신자들을 빨리 찾을 수가 없으니 목 대신에 벤 것이었다.
푸른 기운의 신성력이 어느 때보다도 흉흉했다. 다른 사제들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 비명 지르는 동료의 몸부림을 외면했다. 그들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몰랐다.
“사, 살려, 살려…… 잘못했…….”
팔을 베인 사제는 피거품을 물면서도 연신 아벨에게 용서를 구했다. 무릎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가 이마를 땅에 박으면서 살려 달라 애걸했다.
“지금 나한테 반말하는 거야? 너 따위가?”
“저,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 아니고서야 그렇게는 못 하지?”
아벨은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하는 사제의 머리통을 짓밟으며 태연히 물었다. 그건 그 사제에게만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벨에게 소식을 전해 주지 않은 다른 사제들 전부에게 경고하는 것이었다.
너희도 이 꼴이 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처신하라고.
“너무 개판이어서 다들 나를 무시하는 줄 알았지 뭐야. 하하!”
“……죄송합니다, 아벨 님.”
“저희가 다…… 잘못했습니다. 감히 아벨 님의 시야를 가리려던 죄, 달게 받겠습니다.”
아벨은 힐끔 고개를 수그리고 죄송하다고 비는 사제들을 살폈다. 벌레들이 잔뜩이었다. 세상에는 벌레가 너무 많아서, 다 발로 짓뭉개 터트리고 싶었다.
‘짜증 나…….’
이 벌레도 저 벌레도 다 짜증 나.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잘하자? 응? 지금은 이걸로 넘어가지만, 해결하지 못하면 다 팔다리를 못생기게 잘라 버릴 줄 알아. 절단면도 깔끔한 게 아니라 비틀어서 내 버릴 거라고.”
살아 있는 채로 살이 저며지고 싶은 게 아니면 알아서들 해.
“명심하겠습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제들이 빌었으나 아벨은 차갑기만 했다.
‘이 일만 끝나면 다 죽여 버려야지.’
신이 될 아벨에게 벌레는 필요 없었다. 벌레는 죽어야 마땅했다. 혼자서 완벽해지면 벌레는 전부 치울 것이다.
“그,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추지 않는 아벨에게 장로 하나가 굽신거렸다.
“이 일을 진두지휘하는 황태자를 황제가 감금시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