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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112화 (112/166)

112화

“증인부터 먼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데니스의 변호사가 눈짓을 하자 법정의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이 문을 열었다. 비쳐 오는 햇빛 사이로 가짜 광신도를 자처했던 평민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사제들은 그들을 보고 분노했다. 누군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그들에게로 달려가려다가 제지당했다.

“너희들! 너희들이 우리를 배신한 거지!”

“약아빠진 족속들! 돈값도 못 하는 머저리 같은 새끼들!”

사제라고 믿기 힘든 욕설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경악하면서 그들을 흘겨봤다. 감옥에 갇히기 전의 사제들이라면 이런 눈총을 피해야 한다는 정신머리라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지금 그런 것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게 무슨 돈이었는데! 수중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준 거였다고!’

그들은 그것마저도 깎아서 받는 것을 좋다고 받아들인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이미 걸쭉한 욕을 퍼부은 그들을 향한 방청객들의 태도는 차가웠다.

데벤테르 가문의 변호사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변론을 이어 갔다.

“증인, 증인은 왜 이 자리에 나오겠다고 결정하셨습니까?”

“다른 사람의 죄를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죠?”

“저기 피의자 측에 앉아 있는 여러 명의 사제들입니다.”

의뢰를 받았던 평민들은 하나같이 그들에게 연회를 망치라는 지시를 내렸던 사제들을 가리켰다. 한 명도 빠짐없이 가리키자 벨로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닙니다! 저자들은 지금 저희를 모함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저 사람들을 오늘 처음 봅니다!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는 사제들이 뭐 하러 그런 의뢰를…….”

침을 튀기면서까지 열을 내던 벨로트의 말을 데벤테르의 변호사가 잘랐다.

“판사님께 증인이 흔쾌히 제공해 준 증거물을 제출하는 바입니다.”

“그, 그건!”

벨로트가 증거품을 보자마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상대편 변호사가 제출한 것은 계약서였다. 검은 잉크로 빼도 박도 못하게 이 일에 가담한 모든 사제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계약서였다.

“혹시 무작정 우기실 때를 대비하여 필체 비교본도 준비했습니다. 교단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여, 대신 허니버터 상단에서 그들이 영수증에 남긴 사인을 토대로 비교본을 제출합니다.”

변호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판사에게 여관의 주인이 계약서에 사제들이 서명하는 것을 봤다는 증언까지 확보하여 올렸다.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제들은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가중되었다.

얼굴이 푸르죽죽해진 건 교단에서 사제들을 위해 붙여 준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조심스럽게 성력 증진제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하지만 이 사제들이 그런 엄청난 일을 계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주십시오.”

변호사는 최대한 호소력 있게 사제들의 억울함을 전달했다. 판사가 귀를 기울이자 변호사는 딱따구리처럼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저 사제들은 그저 상단을 믿고 성력 증진제를 샀을 뿐입니다. 효능이 좋아서 교구의 다른 사제들에게도 나눠 주고자 매일같이 상점에 와서 비싼 값의 포션을 사들였습니다.”

선량함을 강조하기 위해 끼워 놓은 거짓말에 방청객들이 술렁였다. 중죄를 지었어도 사제는 사제. 포장된 이미지를 꺼내니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모금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지 않았지만.’

성력 증진제를 산 사제들 전부가 그랬다. 하지만 뭐 어떤가? 다른 사람들이어도 그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여겼다. 몸 안에서 늘어나는 신성력은 그만큼 달콤하고 중독적이었다.

‘어차피 교단도 일이 커지기를 바라지 않잖아. 이 정도 거짓말이야, 나중에 알아서 거짓 증거물이라도 만들어 주겠지.’

교단의 이중적인 면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기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방청객 중에는 교단에서 나온 대사제 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묵묵히 재판을 관전하기만 할 뿐, 거짓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암묵적 동의에 벨로트의 얼굴이 폈다.

“선의의 목적으로 구매한, 상단을 믿고 산 포션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니버터 상단은 하루아침에 효능이 없어진 포션을 똑같이 비싼 값에 팔았습니다.”

데니스는 열정적으로 사제들을 감싸는 변호사의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저 인간은 연극배우를 했으면 더 대성했겠군.’

교단에서 그들에게 변호사를 제공해 주긴 했으나, 실력이 좋지 못한 자였다. 실적이 괜찮은 변호사들 대부분에게 데벤테르 가의 자본을 맛보게 해 줌으로써 변호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황족이 있는 자리에서 난리를 피운 저들을 변호할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저들의 눈에 잠시나마 깃든 희망마저 우스웠다. 예정된 파멸로 향하는 길에 보인 희망이 더 잔인한 법이라는 것을, 저들은 모르고 있었다.

데벤테르 가문의 변호사가 반문했다.

“그래서, 그 포션의 사라진 효능이 무엇이었길래 이런 짓까지 하게 된 거죠?”

“그, 그건…….”

사제들의 변호사가 주춤했다. 사제들이 절대로 그건 말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기 때문이었다.

신성력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됐다. 그러다가 진짜 신성력의 정체라도 알려진다면, 그땐 정말 일을 걷잡을 수 없어진다.

우물쭈물하는 상대측 대신에 데벤테르 가의 변호사가 대신 말했다.

“제 의뢰인께서 말하시길, 저들이 주장하는 ‘사라진 효능’은 진짜 신성력의 증가라고 하더군요.”

“그게 뭡니까?”

판사의 말에 변호사가 답했다.

“증인으로 데벤테르 후작님을 요청합니다.”

데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스벨라는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잘하고 와요.”

“물론이죠.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는걸요.”

루스벨라의 이마에 무언가가 스쳤다. 데니스가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한 것이다. 루스벨라는 얼굴이 붉어졌고, 다른 방청객들도 그것을 보고 금실 좋은 부부 사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존경하는 판사님, 그리고 이 재판을 보러 온 방청객 여러분. 잠시 제게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데니스가 손을 뻗어 검집에서 검을 뽑는 자세를 취했다. 그의 허리춤에는 검이 없었음에도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뭘 하려는 거지?”

“어……? 저것 좀 봐!”

붉은빛의 신성력이 피어올랐다. 검의 형태가 되어 데니스가 뽑아 든 신성력을 법정 내의 사람들이 홀린 듯이 바라봤다.

“이게 저들이 말하던 진짜 신성력입니다.”

“말도 안 돼…….”

벨로트를 통해 데니스가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들었음에도 사제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들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거늘, 직접 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기운, 색은 다르지만 신성력이 맞아!’

“어떻게 데벤테르 후작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설마 저자도……?”

웅성거리는 사제들을 향해 벨로트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건 아닐세. 후작은 절대 우리 편이 아니야.”

데니스는 곧 준비해 두었던 성력 증진제를 꺼냈다. 총 두 병으로, 모두 성력 증진제였다. 루스벨라의 신성력이 들어가지 않은 가짜 성력 증진제는 가져오지 않았다.

‘본래 계획은 마력 증진제를 가져와서 신성력 증가의 효과 따위는 없었다고 말하는 거였지만…….’

루스벨라가 낸 의견을 채택하면서 방법을 바꿨다.

그녀는 완전히 사제들이 납득하고, 포기하게 만들려면 진짜 성력 증진제를 섭취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도 신성력이 늘어나지 않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포션에 섞어 놓은 제 신성력을 통제하면 돼요. 성력석의 힘과 섞이지 않도록, 다시 제게 돌아오도록 만드는 거예요.”

루스벨라의 말에 데니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벌써 거기까지 해낼 수 있게 되었나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게 빠르겠죠.”

공방 안의 성력 증진제 중 하나의 마개를 빼 책상 위에 두었다. 루스벨라는 포션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가만히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내게로 와.’

그녀의 부름에 반응한 신성력이 물약 위에서 떠올랐다. 황금빛은 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힘은 본래의 주인을 알아보고 다시 그녀의 심장으로 돌아갔다.

“자, 이걸 마셔 봐요. 신성력을 뺀 것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데니스는 곧바로 그것을 마셨고, 신성력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대단하군요. 이거라면 사제들도 빠져나갈 궁리는 포기하겠죠.”

그렇게 해서 루스벨라는 데니스가 사제들의 말을 부정할 때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 신성력을 빼낼 준비를 마쳤다.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제들이 무고하다면 제가 준비한 성력 증진제를 마시고 제게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어야겠지요?”

“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사제들은 데니스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불안했지만, 당연히 그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 이 자리에 준비한 것과 같은 성력 증진제를 가져왔습니다.”

변호사가 사제들에게 다가가 성력 증진제를 내밀었다. 맛만 살짝 보도록 한 숟갈만.

“……진짜가 맞습니다.”

사제들은 가짜가 아님을 확인했다. 그리고 데니스는 포션의 마개를 열어 한입에 그것을 털어 마셨다.

“보세요. 제 신성력이 늘어나는지를.”

데니스가 붉은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손 위로 불꽃 같은 힘이 요동쳤다.

하지만 이미 루스벨라가 그 전에 신성력을 빼낸 후였다. 사제들이 성력 증진제가 진품인지를 확인한 직후에, 바로.

‘내게서 흘러나온 힘아. 다시 돌아와 줘.’

신성력이 주인의 부름에 따라 착실히 다시 심장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며 루스벨라는 안심했다.

그러니 당연히 데니스의 신성력은 늘지 않았다. 출력에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사제들은 입을 모아 소리쳤다.

“거짓말!”

“이것도 사기극이야! 데벤테르 후작이 모두를 기만하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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