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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84화 (84/166)

84화

‘물건을 팔겠답시고 감히 사제들의 앞길을 막아선 것도 마음에 안 드는군.’

속으로는 오만 가지 불평불만과 욕을 쏟아 내고 있었지만, 벨로트는 프로였다. 그는 따뜻하고 온화한 주교의 낯을 버리지 않았다.

“설마 독 같은 걸 넣지는 않았겠지?”

“하하, 농담도. 저희가 어찌 감히 신의 성스러운 종들께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그렇지. 내 실없는 농담을 좀 해 봤네.”

일부러 뼈 있는 농담을 던진 벨로트였다. 허니버터 상단의 사람은 그가 그저 실없는 장난을 치는 줄 알았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효과가 별로거나 부작용이 조금이라도 나타날라치면 상단주에게 연락이라도 해야겠군.’

다시는 이곳에서 내 귀중한 시간 따위는 빼앗지 못하도록 말이지. 상단 지부에 얼씬도 못 하도록 내쳐 달라는 청을 드려도 되겠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벨로트는 점원을 향해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벨로트가 점원이 해고당하기를 바라는 줄도 모르고, 해맑은 미소의 점원은 예쁜 컵에다 가짜 성력 증진제를 따라 주었다.

“드셔 보세요, 주교님. 미각적인 측면도 고려하여 만든 것이니 괜찮을 겁니다.”

“그럼 마셔 보겠네.”

꿀꺽, 꿀꺽. 벨로트가 한 모금 두 모금 황금빛의 포션을 목구멍 뒤로 넘겼다. 맛은 나쁘지 않았고, 그는 곧 컵 안의 액체를 모두 비웠다.

“다른 사제님들도 드셔 보시겠습니까?”

점원이 권유하자 일제히 신입 사제들은 그들의 통솔자인 벨로트를 쳐다봤다. 벨로트는 맛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이름이 뭔가?”

“성력 증진제입니다. 기존에 사제님들이 사 가시던 피로 회복제를 한층 강력하게 만든 것이지요.”

“성력 증진제라고?”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진짜 성력은 그딴 싸구려 포션 하나로 늘릴 수가 없다고.’

벨로트는 교단의 북부 지부 수석 주교이지만, 동시에 아벨이 북부에 심어 둔 심복 중 하나이기도 했다. 세비어를 제외한 네 명의 장로들 중 한 명의 추천 사제이기도 한 그가 코웃음을 치며 상인을 비웃으려던 찰나였다.

‘뭐지……?’

몸이 이상했다. 그의 신, 아벨로부터 하사받은 신의 축복이 벨로트의 몸과 공명하고 있었다.

‘공명이 아니다!’

증폭이었다. 벨로트가 가진 신의 축복이, 신성력 부스러기가 가진 힘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이게…….”

이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벨로트는 늘상 사람 좋게 보이던 웃음마저 싹 거두고서 당황스러워했다. 그는 재빨리 다른 신입 사제들의 안면을 살펴보았다.

“오, 수석 사제님.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신전에서 기존에 챙겨 주던 피로 회복제보다 훨씬 괜찮네요.”

“효과는, 효과는 어떻지?”

“네?”

“뭔가…… 평소와 확실히 다른 점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냐, 이 말이다.”

초조한 기색을 겨우 감추려 애쓴 말이 그것이었다. 벨로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신입 사제 하나가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래봤자 피로 회복제는 피로 회복제죠. 가지고 있는 신성력의 회복이 조금 더 빠른 것 같긴 하지만, 그것 외에는 큰 차이를 못 느끼겠는걸요?”

“……뭐?”

“음? 그나저나 수석 주교님께서는 뭔가 다른 점이라도 느끼신 겁니까? 저희가 둔해서 느끼지 못한 건가요?”

“아니…… 아니다.”

‘신성력, 신성력이구나. 신성력의 유무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거야.’

벨로트는 곧바로 상황 파악을 마쳤다. 그가 가진 신의 축복이 진짜 신성력이고, 신입 사제들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제들이 가진 신성력은 신성력이라고 알려진 마력에 불과했다.

“내가 잘못 알았던 것 같구나. 생각보다 목이 꽤 말랐던 모양이야.”

“아아, 그러셨구나.”

“그렇다면 어서 신전으로 돌아가요, 주교님! 안색이 나빠 보이시는 게, 오늘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럴 수가 있나. 신께서는 게으름을 부리는 종들을 달가워하지 않으신다네.”

‘이걸……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한다.’

벨로트는 넉살 좋게 신입 사제들의 말에 호응해 주면서도 머리를 도르륵 굴렸다. 미처 숨기지 못한 탐욕이 저 신성력 증진제를 쓸어 담으라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보게, 자네.”

“예, 수석 교주님.”

“나는 잠시 이곳에서 볼일을 볼 테니, 그대가 신입 사제들을 이끌고 먼저 신전으로 가 있게.”

“네? 하지만 보조하라 명을 받았는데 제가 어찌…….”

“일단 그래 주게. 이 일을 질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아, 알겠습니다.”

벨로트의 말에 보조로 따라왔던 사제들이 인원을 대신 인솔하여 데리고 갔다. 벨로트는 홀로 남게 되자 누가 사갈세라 잽싸게 지갑을 내밀었다.

“이 성력 증진제라는 것, 다 얼마인가?”

“전부 사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그러니까 값을 어서 말하게. 내가 다 가져갈 테니.”

“하나당 백 골드입니다.”

“뭐?”

“하나당 백 골드라고 했습니다, 수석 주교님. 참고로 이곳 허니버터 점포에 있는 것은 오직 열 개밖에 되지 않는, 한정판이랍니다.”

점원이 굽신거리던 태도를 바꿔 능글맞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차마 그것을 지적할 정신이 벨로트에게는 없었다.

‘이미 시음해 보겠다고 신입 사제들이 마신 상황이다.’

한 개의 성력 증진제가 텅 비어 있었다. 남은 것은 고작 아홉 개에 불과했다. 저 작은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사기 같은 포션이 하나당 백 골드나 한다는 것이 기가 막혔지만, 진짜 신성력을 높여 줄 수 있는 효과를 지녔으니 입 안이 써도 가져가야 마땅했다.

“……지금 가진 돈이 충분하질 않아 이따 남은 잔금을 더 치르겠네. 신전에 와서 내 이름을 대면 출입할 수 있을 것이니 그때 와서 잔금을…….”

“어허. 주교씩이나 되시는 분이 설마 볼썽사납게 외상을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죠?”

“외상은 무슨! 그게 아니라…….”

벨로트가 발끈하였으나 점원은 콧방귀나 뀌며 돈을 내놓으라 요구했다.

“저희는 바로바로 값을 치르지 않으면 이번 신상 한정판, 못 드립니다.”

어쩌시겠어요?

‘건방지기는…… 감히 진짜 신께 신성력도 하사받은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하, 하하. 알았네. 구백 골드, 이 자리에서 다 내주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바로 주실 수 있으셨으면 좋잖아요?”

“그으래…….”

이가 으드득 갈리는 처사였지만 벨로트는 거부할 수 없었다. 신성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포션이라니, 누가 이것을 보기 전에 담아 가야 했다.

‘마력을 부리는 멍청이들은 이것을 마시고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나는 다르지.’

늘어난 신성력에 가슴이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경하고 섬기는 신께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몰려왔다.

“이것들 중 하나는 포장을…….”

‘잠깐, 아벨 님께 꼭 보고를 드려야 할까?’

벨로트의 역할은 북부 내에서 세뇌가 빠르게 퍼질 수 있도록 협조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 아벨에게서 신임을 얻고, 충성의 대가로 신의 축복인 신성력 보석 조각을 얻어 활동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아벨에게 당연히 보고해야 옳은 일이었다. 성력 증진제라는 말도 안 되는 포션이 나왔다는 건 그의 신이 바람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 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욕심이 벨로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사비를 넘어 신전의 돈까지 넘겨 산 포션이야. 드러나서 좋을 게 없을뿐더러…… 나 혼자 마시기에도 부족한 양인걸.’

“이거, 다음에도 또 나오나?”

“글쎄요. 워낙 희귀한 물품인 데다 공정 자체도 까다로워서 다시 나올 거라는 장담을 확답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또 나오게 되면 반드시 연락 주게. 오직, 나에게만.”

“예약을 걸으시려면 추가로 오십 골드는 지불하셔야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뭐라고?”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족속들이었다. 벨로트는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상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알았네. 예약금을 지불할 터이니, 연락이 오면 바로, 부디, 내게만 연락을 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손님.”

점원은 벨로트가 부들부들 떨며 건넨 돈주머니를 기꺼이 낚아챘다. 두둑한 돈주머니 속 짤랑거리는 금화 소리가 몹시 듣기 좋았다.

‘지출이 크긴 하지만, 이걸로 저것을 내가 독점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인 일이지.’

“다른 지점에도 나와 있을 수 있으니 그쪽에 있는 사제들에게 연락을 취해야겠군.”

허니버터 상단은 제국 전역에 점포를 둔 포션 주력 상단이었다. 벨로트는 신전으로 걸어가면서도 바쁘게 지역별 허니버터 상단 지점에 연락할 것을 생각해 두고, 또 그 신묘한 포션의 값을 어떻게 지불할지에 대해 궁리했다.

그렇지만 아벨의 심복은 벨로트 하나만이 아니었고, 그가 한 생각을 다른 자들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신성력을 정말 증가시켜주는 포션이라니!”

“이걸 당장 내가 사야겠어.”

미끼를 문 물고기 떼처럼 아벨에게서 신성력 부스러기나 조각을 받은 자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 성력 증진제를 쓸어 갔다. 백 개의 가짜 성력 증진제는 고작 하루가 채 안 되어서 동이 나 버렸고, 수입을 짭짤하게 벌어들였다.

“예상대로 걸려 주니 영광이네.”

물론, 아벨이 심어 놓은 잡초 같은 종자들을 잡아낸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데니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각 지부에서 작성된 명부를 받고 즐거워했다.

“일은 잘 풀리고 있나요?”

“네, 루스벨라. 다음 성력 증진제도 부탁드릴게요.”

“이번에는 세레나가 야근을 하지는 않게 적당히 효율적으로 일해야겠네요.”

“그래요. 부탁드릴게요. 저번에 제이크가 자기 여동생이 너무 늦지 않게 오게 해 달라는 말을 슬쩍 꺼내더라고요.”

“제이크가요? 알았어요. 이제 생산 공정 대부분은 다른 일꾼들에게 맡길 터이니 세레나는 느긋하게 일하다 가게 해 줄게요.”

데니스와 루스벨라는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오후의 티타임을 즐겼다. 그들이 차를 마시는 테이블 위로는 수북한 초대장이 쌓여 있었다. 데벤테르 후작 부부를 초대하고 싶어 하는 내용의 초대장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서신도 하나 끼어 있었다.

「윈블 영애의 재조사에 관하여」

황제로부터의 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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