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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83화 (83/166)
  • 83화

    “완성되었다.”

    “끝! 이걸로 성력 증진제와는 완전히 안녕이네요!”

    루스벨라는 세레나의 보조를 받아 가짜 성력 증진제 백 개를 모두 만들었다. 찰랑거리는 금빛 액체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해 주기라도 하듯 반짝였다.

    “안녕이라니, 세레나.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헉. 설마 백 개가 아니라 천 개라도 뽑아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오백 개는 뽑아야 하지 않을까?”

    제국 전역에 퍼져 있는 사제의 총합이 그 정도는 될 테니, 한번 유통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바빠질 것이 틀림없었다.

    “오백 개를 저랑 마님과 둘이서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죠……?”

    세레나가 울상을 지으며 루스벨라에게 절대 그것만은 아니 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루스벨라는 피식 웃으며 세레나에게 말했다.

    “그때는 최종 과정만 너와 나 둘이서 하고, 나머지 공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거야.”

    가짜 신성력 증진제의 핵심은 루스벨라의 신성력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그 일만큼은 외부에 새어 나가서는 안 되었기에, 세레나와 루스벨라 둘만이 진행해야 했다.

    “그런 것만이라면 괜찮아요! 휴, 하마터면 꼼짝없이 공방에 붙박여서 일만 내리 해야 하는 걸까 불안했거든요.”

    ‘내가 조금 무리하게 일했나.’

    루스벨라는 멋쩍음과 세레나에 대한 미안함에 뺨을 긁적였다. 처음으로 자기 소유의 공방이 주어졌다는 행복에 빠져 주어진 일을 전부 해치우기로 한 것이 벌써 며칠째였다.

    ‘내 몫을 해내고 싶었던 욕심이 과했구나.’

    세레나는 데니스가 루스벨라에게 붙여 준 조수였다. 그러니 일을 얼마나 시키건 간에 그만큼의 적합한 보수가 나오겠지만, 늦게까지도 남아 루스벨라의 작업을 도운 세레나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미안, 세레나. 내가 간만에 신이 나서 너를 너무 늦게까지 잡아 뒀구나. 피곤할 테니, 며칠 간은 푹 쉬렴.”

    “아, 아니에요! 마님! 당연히 제가 할 일이었는걸요. 투정 같은 말이었을 뿐인데…….”

    “그래도 내 사람을 고되게 해서는 안 되지. 집사에게 일러 다과와 피로회복에 좋은 차 등을 준비해 놓으라 일러 놓을게. 가져가렴.”

    “그렇게까지…… 감사해요, 마님!”

    세레나는 기뻐하며 입고 있던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루스벨라도 옷을 갈아입고 공방 내의 휴게실에 들렀다.

    “마님, 마차를 대기시켜 놨어요!”

    “너는 먼저 들어가렴. 나는 이곳에서 데니스를 기다려야 해서.”

    루스벨라는 잡아 놓은 마차는 그녀가 대신 지불할 테니 세레나가 편하게 집까지 가기를 원했다. 세레나는 기뻐했다.

    “아, 후작님이 데리러 오시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백 개나 되는 성력 증진제. 그것들은 최대한 남의 눈을 타지 않고 은밀히 사제들의 손으로 유통되어야 했다.

    그러니 데니스가 직접 와서 성력 증진제를 가져가고, 허니버터 상단의 이름으로 시중에 내놓을 것이다.

    ‘알렉이라는 사람이 잘해 냈다고 그랬지.’

    데니스는 에덴에 알렉을 첩자로 심은 것을 루스벨라에게 알려 준 이후, 그에게서 보고받는 내용을 빠지는 것 없이 그녀에게도 공유해 주고 있었다.

    “일이 잘 풀렸어요. 알렉을 추천해 준 세비어란 장로에게 성력 증진제를 무사히 맛보게 해 줬다는군요.”

    데니스의 말로는 알렉이 세비어 장로를 주시한 결과, 성력 증진제의 효과를 봤는지 그에게 지난번에 마신 포션에 대해 채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혼자만 성력 증진제의 위력을 알고 싶은지 다른 이에게는 전혀 언급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세비어의 살아 있는 신인 아벨에게마저도.

    데니스와 루스벨라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아벨의 수족이 되어 주던 자들이 떨어져 나가도록 할 절호의 기회라는 셈이었으니.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기쁜 소식에 들떠서 어서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바쁘게 움직였던 건.

    “벌써 완성할 줄은 몰랐는데.”

    “왔어요?”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때부터 그가 왔음을 그녀는 알아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부드럽게 입가가 올라갔다.

    데니스가 루스벨라에게 손을 뻗었다. 루스벨라는 그가 그녀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려놓을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안 아파요. 고작 백 개 만들었다고 쓰러질 체력은 아니거든요.”

    윈체스터 성에서의 고된 노동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끔찍했지만, 기술의 숙련도는 높여 주었으니 조금은 고맙다고 해야 할까.

    “세레나를 먼저 퇴근시켰다고요.”

    “며칠 내내 제 옆에서 고생했으니까요.”

    “루스벨라도 고생했잖아요. 피곤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괜찮아요, 이 정도는. 하루라도 더 빨리 생존 가능성을 높여야 하잖아요?”

    이야기를 나누는 둘 옆으로 데니스의 수하들이 상자를 짊어지고 움직였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가짜 성력 증진제를 재빨리 상자에 모아 넣고 아래층에 있는 짐마차로 옮겨 두었다.

    내일이면 저것들로 탐욕스러운 아벨의 종들을 거를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대감 하나만으로도 루스벨라는 잠을 몇 시간은 잔 것 같은 충만함을 느꼈다.

    “……그래도 몸을 챙기세요. 저는 당신의 마음에 여유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이 일 다음에는 바로 사교계를 휘어잡을 계획에 착수해야 하는걸요. 바쁘니까,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편해요.”

    그래서 좋아요.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충족감에 배부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요.”

    데니스가 일어나서 루스벨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익숙하게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들였다.

    가짜 성력 증진제를 운반하는 일꾼들의 짐마차와 함께 데니스와 루스벨라는 부티크에 들를 예정이었다. 이미 넉넉한 드레스를 구입하는 척 드나드는 단골 귀족 여성들에게 호의를 가장하여 접근하고, 성력 증진제는 데벤테르 후작가와 무관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설령 데벤테르 후작가를 주목하고 있던 교단 측이 수상함을 느껴도 아무런 말조차 꺼낼 수 없도록.

    “모든 것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예요.”

    “그러길 바라고 있어요. 간절히.”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른 후에도 루스벨라는 데니스와 맞잡은 손을 떼지 않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녀를 믿어 주고 지지하는 사람의 체온에는 떨어지기 아쉬운 중독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원하는 것 전부가 현실이 될 수는 없을 텐데.’

    루스벨라는 예기치 않은 불행이 주는 체념을 알았다. 바란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데니스의 말이 마법처럼 그녀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같잖은 위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리될 것이라 믿고 싶은 힘이 생겼다.

    그래서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사교계를 점령하여 그녀를 노리는 적의 눈에 띄겠다는 과감한 결정까지도 내릴 수 있었다.

    “난 반드시 살아남을 거예요.”

    설령 그녀가 지금 행하는 발악이 쓸모없더라도, 데니스가 봤다는 망할 예언처럼 결국 흘러가게 되더라도.

    ‘쉽게 죽어 주지는 않을 거야.’

    더는 체념과 포기 속에 갇혀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지 않았다.

    ***

    “거기, 사제님들! 이리 좀 와 보십시오. 새로 나온 신상품이랍니다!”

    “이게 아주 효과가 끝내준다고요.”

    “허어……?”

    북부의 한 마을에서 호객 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력 증진제를 구입하러 나온 사제들에게 집중적으로. 사제들은 신성한 신의 대리인 대접을 받는 터라 이런 식의 영업 행위가 영 낯설고 불쾌했다.

    “무슨 짓들이냐! 감히 사제님들께 예의 없이.”

    “에이,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시음해 보십시오. 이게 저희 상단에서 새로 개발한 것인데, 사제님들을 위한 특급 비약이 될 것입니다요.”

    교단에서 자체적으로 사제들을 호위하기 위해 고용한 용병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말라 으름장을 놓아도 허니버터 상단의 사람들은 집요했다. 돈에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세상의 속된 이미지와는 먼 사제들에게 한 번만 마셔 보면 구매욕이 솟구칠 거라며 눈을 번뜩 빛내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관심 없다고! 돈에 눈먼 장사치들아. 사제님들의 앞길을 막지 말란 말이다!”

    호위가 큰소리를 치자 허니버터 상단의 사람들은 그제야 조금 주춤했다. 하지만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물러서지는 않았다.

    용병이 호위 중인 사제들은 올해의 신입 사제들로, 신전에 갓 들어온 그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수석 주교 한 명이 배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지?”

    “죄송합니다, 주교님. 저 상인들이 워낙 강경하게 물건을 사 달라 떼를 쓰는 바람에…….”

    “흐음.”

    “바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칠 일은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호위는 여차하면 무력으로라도 상인을 치우고 지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수석 주교가 그것을 막아 세웠다.

    “됐네. 신께서는 저런 자들도 품고 나아가기를 원하시지 않겠는가. 물건을 좀 둘러본다고 해서 신께서 노하시지는 않으시겠지. 시간을 잠시 내지.”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주교님의 일정도 있으실 터인데…….”

    “이 또한 신의 안배겠지. 나는 인연에는 반드시 그분의 의지가 깃들어 있을 거라 믿네.”

    수석 주교, 벨로트가 온화하고 너그러운 웃음을 건네며 말했다. 호위는 그의 관대한 성품에 감탄하고 뒤로 물러났다.

    “어디, 그토록 자랑하던 물건이 어떤 것인지 내 직접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주교님! 드셔 보시면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허니버터 상단의 사람 하나가 황금빛의 가짜 성력 증진제를 벨로트의 손에 건네줬다. 벨로트는 잠시 포션을 빤히 바라보다 상인에게 물었다.

    “이건 사제들이 주로 마시는 피로 회복제인가? 못 보던 것인데.”

    “아, 예! 이번에 저희 상단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상품입니다. 더욱 월등한 효과를 줄 수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런가.”

    ‘뭘 믿고 저렇게 까부는 건지 모르겠군. 상단의 이름도 우습기 짝이 없고.’

    포션을 많이 팔면 다인가. 속세에서 돈만 밝히는 개미 새끼들 같으니라고.

    이게 진짜 벨로트의 모습이었다. 그가 모시는 신 외에는 다른 인간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냉혈한이 바로 벨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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