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이건 루스벨라가 만들어 준 성력 증진제야.”
“이게요?”
“평범한 포션처럼 보이는데.”
알렉과 제이크는 조그마한 유리병에 담긴 포션을 보고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다.
“이거, 냄새 맡아 봐도 됩니까?”
“물론, 시향해도 좋아. 조만간 신전에 유통할 생각이니까.”
그 말에 킁킁거리며 유리병 내의 황금빛 액체의 냄새를 맡아 보던 알렉이 사레가 들렸다.
“시, 신전에요? 이걸?”
“응. 그게 신전의 입지를 무너뜨리려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
알렉은 주저하다가 데니스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후작님께서는 신전에 내는 헌금을 이번 달부터는 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그랬지.”
‘너무 태평하잖아…….’
“후작님께서 아무리 제국에서 가장 큰 상단의 주인이라고 하셔도, 신전이 곱게 데벤테르 가의 물건을 받아들일 리 없을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 데벤테르 후작 가문이 차명으로 가진 상단이 더 있으니까.”
“와.”
사기 아냐? 순간적으로 알렉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제국의 가장 큰 부를 벌어들이고 있는 집안이 차명으로 다른 상단까지 만들어 놓고 있단 말인가?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더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 꿍쳐 놓은 상단은 데벤테르 가문 대대로 비밀스럽게 유지하고 관리한 것이지만, 데니스 역시 효용이 있을 거라 판단해 둔 것이니 할 말은 없었다.
“그래서 실망이야?”
“아뇨. 한낱 첩자에 따까리 노릇이나 하는 제가 무슨 불만이나 있겠습니까.”
불손한 말투였지만 데니스는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로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단에 이 성력 증진제를 유통시킨다. 적당한 규모에, 여태껏 실생활에 필요한 잡화 위주를 시장에 내놓았으니 의심은 사지 않을 거야.”
제국 내에서 데벤테르의 손이 뻗어 있는 분야는 다양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평민 아이들도 가장 쉽게 접하는 상단의 이름이 데벤테르였으니까.
마찬가지로 신전 또한 웬만한 물건들은 데벤테르에서 주문하고 있었다.
그러나 헌금 사태로 인해 신전이 가진 수입원이 줄어들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데벤테르 가문과의 거래는 끊은 상태였다.
“우린 이걸 신전이 없어서 못 구하게 만드는 상품으로 만들 거야.”
“하긴 성력을 늘릴 수 있는 효과의 포션이라면 사제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네요.”
“마력 증진제는 있어도 성력 증진제는 없었으니까. 다른 상단에서 낼 수도 없을 유일무이한 물약이니 독점으로 가격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기존에 없던 물건의 발명. 그건 분명 사회에 파란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알렉은 가만히 유리병 속에서 반짝이는 물약을 바라보다 데니스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이게 레시피가 유출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합니까?”
“‘진짜’ 신성력이 극히 적은 양이지만 들어갔으니까.”
유독 ‘진짜’에 강세를 두는 데니스였다. 귀 밝은 알렉은 그 점을 지나치지 않았다.
“……신전의 사제들이 쓰는 신성력은 가짜라, 이 말입니까?”
“이해가 빠르니 편하네.”
“예상은 했지만…… 뭐든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분이 바로 인정하시니 맥이 빠지네요.”
알렉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에덴에서 푸른 보석의 힘을 사용하는 아벨을 진짜 신이라 추앙할 때부터 품어 왔던 의심이 진실이라 드러난 순간이었으므로.
“그런데, 그렇다면 진짜 성력 증진제는 신전의 대부분의 사제들에게 효과가 듣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진짜는 진짜 신성력 보유자에게만 들을 것 아닙니까.”
“좋은 지적이야, 알렉. 그것도 설명해 주려 했어.”
데니스가 수업 시간에 손든 학생을 칭찬하는 태도로 씨익 웃었다. 보좌관인 제이크 또한 알렉의 말에 공감하며 귀를 기울였다.
“이 성력 증진제는 사실 만드는 과정 자체는 간단해. 그냥, 일반적인 마력 증진제에 신성력 한 방울만 들어가면 끝이거든.”
“그러니 위험한 것 아닙니까? 만약 신성력이 없는 자들에게 통하기라도 한다면…….”
“아니. 괜찮아. 이건 신성력이 없는 마력 보유자들에게는 그냥 보통의 마력 증진제로써 작용할 테니까.”
데니스의 말에 알렉과 제이크 둘 다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예?”
“정말입니까?”
“사람을 가려서 작용하는 포션이라니 엄청나게 희귀한 거 아닙니까?”
연금술로 만들어 낸 포션은 보통 한 가지의 효과만 가진다. 그렇기에 시중에 유통되는 포션의 종류가 다양한 것이고 연금술사가 되면 돈 벌기가 조금 수월한 편이었다.
‘그런데 선택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니…….’
다른 연금술사들이 들으면 당장에 이 포션을 연구하고 싶어 할 것이 틀림없었다.
“특수한 작용을 거친 건 아니야. 아까 말했듯이, 이건 신성력 때문이니까.”
“그렇다면 신성력이 신성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반응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제이크의 말에 데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알렉의 보고로 나는 신전 내에 ‘진짜’ 성력의 부스러기를 아벨에게서 얻어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
그 사람들을 공략할 거야.
사탕을 물은 것처럼 달콤한 어조는 잔인한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나 매달리는 ‘진짜’ 신의 힘을…… 늘릴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탐이 나겠어.”
데니스는 상상했다. 굶주린 황야의 개떼들처럼 성력 증진제를 한 개라도 더 갖고자 아등바등할 아벨의 수족들을.
‘영생을 원해서 아벨에게 붙어 있는 놈들이라면 가지고 있는 욕망 또한 바다처럼 넓고 깊겠지.’
깊숙이 숨어 있는 교단의 심장, 에덴.
젊은 모습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주는 낙원처럼 들리지만, 그곳에 속한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결국 영생에 대한 욕망만 남게 된다.
가족들이 죽고, 친구와 지인들도 사라져 버리게 되면.
남는 것은 오직 자신뿐.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영생만이 비루한 그들이 붙잡고 있는 최후의 욕망이 된다.
‘불안하겠지.’
그 욕망은 아벨의 손끝에 달린 일이니까.
오래도록 아벨이 에덴을 지배하며 폭군처럼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이 믿는 진짜 신에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나타난다면…… 신도도 신의 자리를 노리고 싶어 하지 않겠어?”
불안한 유대 관계는 부서지기 쉬운 법.
욕망으로 이루어진 신과 신도의 사이는 신도가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순간 위태롭게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거고.’
굳건할 줄 알았던 에덴을 무너뜨릴 생각에 데니스는 희열을 느꼈다. 찬란하고도 광기 어린 만족감이 상상만으로도 배를 채웠다.
“좋은 방법이긴 한데…… 고용주님. 진짜 악당 같아요. 무섭습니다.”
“칭찬 고맙네.”
알렉은 에덴을 부술 생각에 기뻐하는 데니스를 보고 다시금 오싹함을 감지했다.
“아마 계획은 잘 먹힐 것 같습니다. 이거…… 성력 증진제요. 냄새가 마력 증진제와 똑같아요.”
“그런 것도 구분이 가능한가? 사제들은?”
제이크가 놀라서 묻자 알렉은 모든 사제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건 아니고, 사제를 배출하는 집안이라면 필수적으로 먹게 하는 약이 마력 증진제가 맞는 것 같아서요.”
“그렇겠지. 세간에 성력을 가진 자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은 사실 마력 보유자니까.”
데니스가 끼어들어 말을 보탰다. 알렉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사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제 집안에서는 이걸 가지고 대대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먹였거든요. 몸에 좋은 약이라면서.”
어른들이 하는 말이니 군말 않고 먹었다. 성력을 늘려 주는 약인 줄 알았건만 설마 그게 흔한 마력 증진제인 줄은 전혀 몰랐다.
“다 자라고 나서도 죽을 때까지 먹는 사제들은 흔하니 유통 자체는 손쉬울 거라고 봅니다.”
“흠…… 그렇지만 후작님. 과연 저희가 시장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게 걱정이 되는군요.”
제이크의 지적은 타당했다. 이미 시장에서 팔리는 마력 증진제는 넘치도록 많았다. 사제들이 데벤테르 가문에 등을 돌릴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가장 많이 마력 증진제를 판매하는 곳이 어디지?”
“허니버터 상단이지.”
알렉의 혼잣말에 데니스가 대답을 달아 주었다. 제이크와 알렉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
‘무슨 상단 이름이 그래?’
허니버터 상단이라니, 보통 상단주의 이름이나 성을 붙여 운영하는 것과 달리 굉장히 괴상한 작명 센스였다.
“이름이 좀 이상하지?”
“……티가 났습니까?”
“어. 그런데 나도 처음엔 이상하다고 봤으니까 괜찮아. 그거, 꿀 빨고 싶어서 가문의 선조가 멋대로 지은 거라서.”
“……네?”
“아니, 무슨 그런…….”
“데벤테르 가문 선조 중에는 괴짜도 많아서…… 나도 모르지. 나중에는 바지사장 앉혀 놓고 허니버터란 성을 준 모양인데,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았다고 하더라고.”
“…….”
“…….”
진짜 싫었겠다. 두 사람은 허니버터란 성을 가진 바지사장의 핏줄에게 속으로 묵념했다.
‘그런데 방금, 가문의 선조라고 하지 않으셨나?’
알렉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데니스에게 질문했다.
“설마…… 성력 증진제를 유통하려는 상단이……?”
“응. 허니버터 상단이야.”
“어…… 적당한 크기의 상단이 아니었나요?”
알렉은 그의 귀가 잘못되었나 잠깐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분명 현재 마력 증진제를 가장 많이 팔고 있는 곳이 그 허니버터 상단이라고 했는데.
“데벤테르의 거대한 사업에 비하면 허니버터는 조그만 꿀단지지.”
데니스는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허니버터 상단을 꿀단지에 비유했다.
전혀 귀엽지 않은 비유였다.
“고용주님.”
“왜.”
“좀 많이 재수 없지만 부럽습니다.”
“고마워. 나도 숨 쉬면 돈이 들어오는 자리에 있으니 편하긴 편하네.”
‘데벤테르 후작 가문, 정말 장난 아니구나.’
알렉은 아벨 때문에 불안해하던 가슴에 힘을 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차하면 사람 하나는 외국으로 빼돌릴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고용주가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용주님. 첩자 노릇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도 잘 부탁할게, 알렉. 앞으로도 네가 열심히 활약해 주어야 하거든.”
“보수는……?”
“물론 추가되는 요구사항마다 보너스로 얹어 줄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알렉이 의욕 넘치는 대답을 하며 직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지하실로 올 때와는 천지차이였다.
“그럼 너는 이제 가 봐. 너랑 나랑 루스벨라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장로의 심복들도 봤을 테니.”
‘어, 나 감시당하고 있던 거야?’
알렉이 입을 떡 벌렸다. 좋아하지도 않는 유부녀에게 실례되는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을 감시역들이 봤다니.
‘와…… 와…… 와…….’
“왜, 왜 그런 걸 말 안 해 주셨어요…….”
“누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런 괴상한 연기를 한 거지. 미리 말했으면 생생한 반응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이거 산재 처리 해 주십쇼.”
쪽팔린 값을 기어이 받아 내려는 알렉이었다.
“그러던지.”
데니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알렉은 돈이 원수라며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