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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62화 (62/166)
  • 62화

    루스벨라가 데니스의 지도를 받으며 신성력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사이, 아벨과 아슬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벨은 에덴의 신도들을 갈구는 횟수가 늘었다.

    “너희들이 굼벵이처럼 굴어서야 진정 나의 신도라 할 수 있겠느냐? 먹고 쌀 줄만 아는 한심한 돼지들 같으니. 살아 있는 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내가 직접 나서게 만들기나 하고 말이야!”

    “아벨 님, 진정하십시오!”

    “진정? 네가 감히 나한테 명령을 할 자격은 되나?”

    ‘배신자의 핏줄까지 발견해서 기분이 아주 더러운데.’

    푸른 기운의 신성력이 사납게 날뛰었다. 에덴에 속한 모든 이가 있는 홀 안에서 산발적으로 쏘아진 신성력은 사망자를 내지는 않았으나 자잘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

    ‘분명 저건 대체품을 손에 넣지 못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더 있었다는 것이겠지.’

    장로들은 군말 없이 아벨이 심통 난 이유를 알아차리고 상처가 난 곳을 치유받기 위해 다시 아벨 앞에 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에덴의 모든 구성원들은 아벨의 손아귀 위에 있었으니까. 그들의 목숨도, 상처도, 치료받는 것 또한.

    “또 내가 화를 내 버렸네…… 하지만 미안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 거야. 이건 너희들의 무능도 나를 화나게 하는 데 한몫했으니까. 그렇지?”

    “……예.”

    “응. 난 고분고분한 인간들이 좋더라. 그렇게만 하면 좋겠어.”

    그러니 미친놈처럼 난리를 피우다가도 다시 멀쩡하게 돌아온 아벨에게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뒤에서나 의문을 가지고 호박씨를 깠다.

    “왜 저렇게 화를 내시는 거지?”

    “장로님들이 일을 허투루 처리하지는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하급의 사제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그들은 그들의 신인 아벨이 어째서 떼쓰는 망나니처럼 구는 것인지 몰랐다.

    ‘큰일이군.’

    ‘괜한 틈을 보였다가는 아랫것들에게 자리를 빼앗기겠어.’

    에덴은 광신도들의 집합소였다. 신성력을 일정 기준 이상 가지고 있는 자들을 들여온다지만, 에덴에 속한 이들이라면 그게 ‘진짜’ 신성력이 아닌 것을 알았다.

    신성력을 흉내 내는 마법에 불과한 것. 그것 또한 아주 먼 옛날 아벨이 기존의 신을 몰아내고자 할 때 만들어 낸 술수 중 하나였으니까.

    진짜 신성력을 지닌 사람은 그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인 아벨, 그리고…….

    ‘주기조차 알 수 없이 희박한 확률로 태어나는 선천적인 신성력 보유자일 뿐.’

    그 때문에 에덴의 직책은 사실상 아벨의 마음대로 앉히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아벨을 제외하고 최고의 자리인 장로 4인도 수틀리면 언제든 갈아 끼워질 수 있는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아벨에게는 그 누구도 소중하지 않았다. 에덴의 신도라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광기 어린 신은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평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니 모든 것에게 불공평했으므로.

    ‘그러나 우리는 선택받았지.’

    선택받아서, 남들은 누리지 못하는 불로불사의 축복을 맛보고 있다.

    그러한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쾌감이 에덴을 지탱했다. 바깥의 신이 자비를 외치며 사람들의 사랑을 얻는다면, 아벨은 폭력을 부렸으나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사람을 홀려 종이 되게 하였다.

    탐욕으로 이루어진 관계이니 신도들은 언제나 아벨 앞에서 철저한 약자요, 을에 불과했다.

    “그나마 황제가 너희랑 비슷해서 다행이야. 언제나 권력을 가진 놈들은 주제넘게도 영생을 탐하지. 멍청한 놈.”

    “저어, 그것뿐만이 아니오라, 아벨 님께서 거슬려 한 귀족의 집에 첩자를 심기로 하였습니다.”

    “첩자?”

    아벨의 한쪽 눈이 흥미로 가늘게 떠졌다. 말을 올린 사람은 알렉을 추천한 그 장로였다.

    “너, 이름이…… 뭐였더라.”

    “세비어입니다, 아벨 님. 모신 지 벌써 어언 수십 년이 다 되어 갑니다만…….”

    “그래서,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 종 주제에?”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불충한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렇지? 그랬더라면 네 목이 그냥 날아가지는 않았겠지.”

    아벨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때 묻지 않은 순백에 가까운 미소라 더 무서웠다. 심심풀이 장난에 죽어 간 종들도 여럿 되니까.

    “그래…… 최근에 내 심기를 거스르는 인간이라면 대충 짐작이 가는데.”

    “데벤테르 후작인 데니스 데벤테르의 저택으로 알렉이 들어가게 손을 써 뒀습니다.”

    “알렉? 아아…… 네가 얼마 전에 나를 모시라고 넣어 뒀던 그 신입 사제였나.”

    “예, 맞습니다. 그 자에게 데벤테르 후작 가를 조금 뒤섞어 놓을 분탕을 치고 오라 명령했습니다.”

    대체품이 그곳에 있으니까요.

    “흐음. 분탕질이라.”

    아벨이 손을 까닥거리며 저었다. 장로는 익숙한 제스처를 알아듣고 하급 신도에게 명해 달콤한 오렌지청을 탄 주스를 대령했다.

    다디단 음료를 홀짝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의 공기를 울렸다.

    “예를 들면?”

    “한 번 파혼당한 여인이니 이번에는…… 바람이 났다고 하면 그 위신이 땅 끝으로 떨어지겠지요.”

    목숨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절망하지 않겠습니까.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세비어 장로는 금수만도 못했으나 그의 젊은 낯짝은 편안하기만 해 보였다.

    인두겁을 쓰고 할 수 없는 소리를 했음에도 세비어의 잔혹한 신인 아벨은 만족스러움에 입가를 올렸다.

    “대체품의 완성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거지? 네 말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되면 후작이란 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모처럼 들어온 신입 사제가 골로 가는 지름길을 밟아도 괜찮다는 거야?”

    내 종은 잔인하기도 하지.

    “도마뱀 꼬리도 아니고. 꽤 신실한 집안 출신이라 죽게 되면 소식은 어떻게 전하려고?”

    얼핏 들으면 알렉의 생사를 걱정하는 말일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었다.

    ‘알렉의 시체가 나오는 날에는 조용히, 잡음 없이 실종 처리를 하라는 말씀이로군.’

    아벨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성력석이었다. 성력석을 얻는 과정에서 거치적거리는 요소가 없기를 바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에게는 제가 알아서 잘 설명하겠습니다. 아벨 님께서 걱정할 것은 없으십니다. 그 가문에는 나중에 따로 에덴의 종이 될 새로운 기회를 주면 되는 일이니까요.”

    인간은 대를 이어 가는 데 집착하는 생물이었다. 탐욕을 가진 자일수록 제 혈통이 미래에도 오래 가기를 바라며 자손을 낳았다.

    그러니 이미 충복으로 살겠다고 맹세한 인간들의 핏줄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혈육을 잃었다는 당장의 슬픔은 더 큰 것으로 보답하겠노라 입에 발린 약속으로 잊힐 것이라고 장로는 믿었다.

    “좋아. 장로. 내가 신경 쓰는 일 없게 해 준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어린 애새끼 주제에 날 방해한 대가는 톡톡히 받아 내야지?’

    아벨은 데니스에게 유감이 많았다. 데니스가 데벤테르 후작 가를 장악하고 나서 정기적으로 신전에 보내던 헌금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제국에서 가장 큰 상단을 거느리고 있으며 무역을 꽉 잡고 있는 데벤테르 가문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범위가 넓었다.

    [데벤테르의 이름 아래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전부, 헌금을 내던 것을 멈춰.]

    [전부 말씀입니까?]

    [안 하면, 해고. 한다면, 추가 수당 얹어 주고.]

    데니스는 가문이 내던 큰 액수의 헌금만 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데벤테르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 전부에게 헌금을 내지 말라고 명령했다.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신도들의 헌금만으로 먹고사는 교단의 입장으로서는 뼈가 아팠다.

    검소하게 지내는 교단이라는 껍데기를 둘러싼 에덴은 데니스의 결정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무려 수입의 3분의 1이나 줄었다. 이래서는 아벨 님의 소망을 이루는 데 지장이 있어.’

    신도들이 아벨의 발을 핥으며 영생의 축복을 떼어먹고 있다면, 아벨은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것을 바랐다.

    “내가 바라는 건 이 세상 전체를 지배하는 권위를 손에 넣는 거니까. 무릇 신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어?”

    아벨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수많은 실험을 통해 제 것도 아닌 신성력을 갈취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는 양지로 나와 만인의 신으로서 우뚝 서고 싶었다.

    “아벨 님의 말씀이 모두 옳으십니다.”

    “그렇지? 그러기 위해서는…… 배신자의 핏줄이 나타났던데, 그것도 죽여 버렸으면 좋겠어.”

    “배신자의 핏줄이라니요……?”

    “있더라고? 찾을 수 없게 도망쳤길래 국외로 갔나 싶었는데……. 설마하니 북부에 터를 내렸을 줄은 몰랐거든.”

    “그 말씀인즉 윈체스터 공작이 배신자의 후손이란 말입니까?”

    “맞아. 내 세뇌가 중간에 깨지는 것을 보고 확신했어.”

    괘씸하기도 하지. 아벨은 손에 쥐고 있던 오렌지청 음료 잔을 터트려 버렸다.

    조각이 아니라 먼지처럼 으깨진 유리잔은 모래처럼 아벨의 손에서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난 그저 조용히 내 보석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갉작거리는 것들이 많을까? 불쾌해. 정말 불쾌해.”

    아벨의 손은 유리로 인해 긁힌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성력석을 사용했다는 흔적인 푸른 기운만이 옅게 흔적만 남겼다.

    “북부에 대한 영향 범위를 넓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응응. 알아서 잘하네. 착하다.”

    아벨이 세비어 장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던진 공을 잘 물어온 개를 칭찬하는 모양새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신도에게는 신의 총애가 최우선이니까.’

    세비어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쓰다듬는 손 아래로 그간의 피로를 씻어 주는 아벨의 축복이 피부 위로 스며드는 게 느껴졌으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벨 님.”

    “그러기 위해서 너희들이 존재하는 거니까.”

    아벨은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것처럼 손을 여러 번 털어 내며 세비어에게서 떼어 냈다.

    “받은 게 있으면 마땅히 은혜를 갚아야지?”

    ***

    데벤테르 후작 저에서 루스벨라는 오늘따라 저기압인 상태였다.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공작 각하께서 여긴 왜 오셨습니까? 연락도 없이.”

    “그게…… 사정이 있었다.”

    전 약혼녀이자 이제는 유부녀인 루스벨라의 집에 기별도 없이 찾아가는 무례를 저질러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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