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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50화 (51/166)

50화

지하 감옥에 구금되어 있던 아슈라 윈블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감옥의 간수가 최초의 목격자였고, 황제는 이를 조사관을 보내 이를 알아보도록 했다.

“그 결과, 아슈라 윈블 자작 영애는 스스로가 저지른 일에 대해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고 자살한 것으로 판명되었네.”

황실의 공식적인 발표는 그러했다. 신문에는 아슈라 윈블의 자살이 1면에 특보로 작성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윈블 영애의 그 원인은 난동을 부린 것에 대한 죄책감?]

[딸의 미심쩍은 죽음에 반발하던 윈블 자작, 결국 쓰러져…….]

[특집 기사: 아슈라 윈블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러나 루스벨라와 데니스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발광할 만큼 기운이 돌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 그것도 죄를 뉘우치기라도 한 것처럼?

“꼬리 자르기네.”

데니스는 읽고 있던 신문을 내던졌다. 에덴 측에서 먼저 나서서 아슈라를 치운 일이 마뜩잖았다.

‘어제 본 아이에게서 푸른색 기운을 봤다고요?’

‘네. 그리고…… 윈블 자작 영애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봤어요.’

무언가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요?

‘윈블 영애가 날 싫어했다는 건 알지만, 그 정도가 너무 과했던 게 이상했거든요.’

정말 미친 사람처럼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점이 걸려요.

깨어난 루스벨라는 안정을 취하도록 두었다. 데니스의 간호를 받으며 루스벨라는 지난밤에 보았던 것을 모두 이야기했다.

‘푸른 기운은 분명 그 보석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아벨, 에덴의 짓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황태자인 베네딕트를 통해 전달받은 정보에서 황제는 에덴의 장로와 내통한 것 같았다.

‘검은 사제복은 에덴에 소속된 사람들이 입는 옷이니까.’

황제가 에덴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건 데니스도 반신반의한 일이었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그럴 것 같다는 의심은 했지만 설마 정말 황제에게 접근할 줄은 몰랐으니까.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은데.”

데니스는 그게 불안했다. 숨어 있던 에덴의 세력이 과감하게 밖으로 나서고, 우두머리인 아벨도 루스벨라를 직접 습격하는 짓을 했다.

‘특히 아벨이 루스벨라에게 달려들었던 건 정말 의외였어.’

참을성이 없어져서? 아니면 그가 꾸준히 에덴을 방해했기 때문에?

‘뭐가 되었든 좋지 않아.’

거기다 아슈라의 일을 가지고 에덴이라는 단체가 있음을 알릴 기회가 될 수도 있었는데 죽여 버렸으니.

그러면서 사람 놀리는 것처럼 버젓이 핵심 인사들은 밖으로 태연히 외출을 감행했다.

‘거슬려.’

아벨이 루스벨라를 정말 죽이려고 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녀가 아직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겁만 주려고 한 것일 수 있었다.

“이쪽에 한 방 날렸으면 그쪽도 대가를 치러야지.”

에덴의 움직이는 범위가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세력을 키우고 미치는 영향도 넓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데니스도 만만치 않게 준비를 해 왔지만 더는 공격당할 걱정만 하며 가만히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루스벨라.”

“네.”

“신전에 우리도 당한 것 이상으로 대갚음해 주고 싶지 않아요?”

“당연히 한 대 날려 주고 싶죠. 거기다 그 꼬맹이…… 아벨이라고 했죠?”

“네. 진짜 꼬맹이도 아니지만.”

“그가 또 오기 전에 저도 힘을 기르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치유 능력밖에는 없지만…… 뭔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루스벨라가 데니스를 간절히 쳐다보았다. 데니스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았다.

힘없고 당하기만 하던 먹이사슬 최하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

‘언젠가는 알려 줘야 하는 거였지.’

가능하다면 그런 시간이 오질 않기를 바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번에도 아벨이, 에덴이 루스벨라를 두고 볼지는 미지수였으니까.

“루스벨라, 여기 좀 봐요.”

“뭐…… 뭐하는 거예요!”

데니스가 윗옷을 벗으려 하고 있었다. 루스벨라가 당황스러움에 달아오르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하필이면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

루스벨라만 누워 있고, 데니스는 서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노출은 심장을 덜컥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 미안해요. 이게 아니라 가슴팍만 조금 끌어 내리면 되겠네요.”

“그, 그것도 충분히 저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인데요!”

데니스는 아무 생각도 없이 심장이 위치한 곳에 새겨진 표식을 보여 주려다가 그도 당황했다.

“아, 아니…… 제가 당신을 당황스럽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어요. 절대 고의가 아니라,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어서…… 그런…….”

두 사람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잘 익은 사과 둘이서 말이 없다가 겨우 데니스가 헛기침을 하며 루스벨라에게 가슴팍을 보여 줬다.

“루스벨라, 여기에 표식이 보이죠?”

“그…… 네.”

루스벨라는 맹세컨대 남성의 맨 가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심이든 흑심이든 그런 거 전혀 없으니까, 자세히 봐주세요.”

“알았어요.”

데니스의 가슴 위에는 붉은색의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루스벨라는 그것을 살펴보다 중앙에 그려진 올빼미와 초승달을 보고 놀랐다.

“이거…… 지금의 제국이 세워지기 전의 국교의 문양이잖아요?”

“그렇습니다. 알아보시는군요.”

“워낙에 아버지가 되도록 많은 것을 알아야 얕보이지 않는다면서 별 서적을 다 읽게 시켰거든요.”

오래전에 사멸된 종교의 상징 문양을 데니스에게서 발견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걸 보여 주는 이유는 뭐죠?”

“제게 당신을 지켜 달라는 약조를 위한 힘을 빌려준 게 이 잊힌 신이거든요.”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면 그 검도……?”

“네. 검에서 흘러나온 붉은 기운도 이제는 인정받지 못하는 신으로부터 얻은 힘입니다.”

루스벨라는 데니스가 하는 말이 신기했다. 그녀가 아는 신성력은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신성력이 누군가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요? 단순히 축복이나 정화의 기능만 할 줄 알았는데…….”

“아벨을 보셨다고 했죠. 그렇다면 신성력의 사용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그게 신성력이었다고?

“그…… 푸른 기운이 신성력이었다고요?”

“본인의 것은 아니지만, 그렇습니다.”

루스벨라는 아벨이 어떻게 힘을 운용했는가를 기억했다.

“확실히…… 놀라웠죠.”

그 자리에서 정말 목숨을 잃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루스벨라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제국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힘이었다. 신전이 모시는 신은 자애와 평화를 주관하는 신이었으니까. 자연히 신전에 속한 사제들은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나 정화를 위한 힘밖에 내지 못해서 황권에도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런 잡음 없이 고요한 성직자의 가면을 유지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이겠지.’

수면 위로 올라올 결심을 한 이상 그것도 이제는 다 끝났지만.

에덴의 장로가 황제와 접촉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교류를 해 왔을지도 모르고. 황제는 신전이 가진 힘이 얼마인지는 모르고 젊음에 혹해 손을 잡으려는 것에 불과할 수 있었다.

‘에덴이, 아벨이 이 제국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가진 건 줄도 모르고.’

데니스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었다. 베네딕트가 선량하지만 순수하게 생각 없는 인간이라서 다행이었다.

‘그 녀석에게는 조만간 정보 값을 줘야겠어.’

“신성력…… 그게 신의 힘을 빌려다 쓰는 거라면 우리에겐 승산이 없지 않나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루스벨라가 시무룩해져 데니스에게 묻자 그는 웃으며 그녀를 토닥였다.

“저는 치유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잖아요. 사람을 살릴 줄만 알지, 해치는 일은 전혀 할 줄 몰라요.”

“아니요. 당신은 가능합니다.”

데니스가 루스벨라의 심장이 있는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당신에게는 신성력이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는 당신처럼 문양도 없는데…….”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고, 에덴은 양아치죠. 당신이야말로 진짜 신성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스벨라는 조금 놀랐다. 데니스가 양아치라고 분명히 발음해서.

그것보다 주목할 점은 신성력에 대한 언급이었다.

‘진짜 신성력?’

“한 번도 신전에서 신성력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신전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표면적으로 사제가 된 이들은 사실 평범한 이들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가진 건 신성력이 아니라, 마법을 불법적으로 변형시킨 힘에 불과합니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가 신전에 들리면 곧바로 이단이라며 붙잡혀 들어갈 소리였다.

“에덴이든, 저든, 당신이든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은 같습니다. 새로이 나라가 세워지며 잊혀 사멸되었다고 생각한 신.”

그 신이 바로 신성력의 근원입니다. 사멸되지도 않았고.

“그리고 제국의 신전에서 모시는 신은 가짜입니다. 그럴듯한 신화와 상징 몇 개를 기워서 만든 가짜.”

루스벨라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혼란스러워졌다.

“그런데 제가 무슨 힘이 있다는 거예요?”

“당신이 가진 그 치유력.”

데니스가 루스벨라를 가리켰다. 그건 심장을 향해 있었다.

“치유력이 아니라, 그게 진짜 신성력입니다.”

“……뭐라고요?”

“그래서 신전이 당신을 노리는 겁니다. 진짜 신성력을 가진 당신을 죽이고, 그 결정체를 얻으려고 하니까.”

***

아슈라 윈블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 좋아한 사람이 둘 있었다.

“버릴 패 착실하게 쓰레기통에 넣고 왔다니 다행이네. 장로.”

“이번에는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확실하게 처리하고 왔습니다.”

“그래. 그래. 이런 일처리를 원했다니까. 얼마나 빠르고 착실하고 성실해 보여. 내가 누굴 죽일 일도 없고 말이야.”

에덴 측이 귀찮은 잡음이 일지 않도록 그녀를 죽인 것에 만족해했고,

“하하. 내 딸에게, 데벤테르 후작 부인에게 겁 없이 달려들더니 꼴좋다!”

지펠론 백작이 소식을 듣고서 좋아라했다. 루스벨라는 친정인 지펠론 백작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를 바랐지만, 백작은 한 번도 부녀지간의 끈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 덕에 좋은 혼처를 골라 시집을 간 건데,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건국 기념일 연회에서 지펠론 백작은 루스벨라에게 말이라도 걸어 보려고 했으나 인파에 밀려 다가가지도 못했다.

“아비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가면 도움이 되겠지. 아니 그러하냐, 카일, 레베카?”

“……네. 아버지.”

“그렇겠죠.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역시 그렇겠지?”

웃는 것은 지펠론 백작뿐이었다. 루스벨라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들인 카일과 레베카는 죽은 눈으로 바보 같은 아버지의 말에 힘없이 동의했다.

‘누이는 이미 우리와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는걸.’

카일과 레베카는 루스벨라를 보고 부러움과 질투심을 느꼈다.

누이는 잘살고 있으면서, 남에게 치졸한 열등감을 심어 주면서까지 행복해졌으면서.

‘왜.’

왜 우리는 챙겨 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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