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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39화 (40/166)

39화

“‘대체품’을 보러 수도로 향하시겠다고요?”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없잖아?”

“하지만…….”

“지금 내가 얌전히 있다고 해서, 장로 너랑 내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잊지는 않았을 거고.”

‘다른 존재?’

알렉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아벨과 장로의 목소리를 귀에 담으며 최대한 그 내용을 까먹지 않고 기억하려 하면서.

‘다른 존재라니. 그럼 인간이 아니라는 말인가?’

노인의 것과 같이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칼과 요사한 붉은 눈동자를 보면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알렉은 팔찌 때문에 아벨이 괴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생을 바라는 너희들이, 내가 젊게 살아가도록 은총을 베풀어 준 것을 모른 척할 건, 아니지?”

‘뭐……?’

알렉이 젊음을 유지한다는 대목에서 크게 놀랐다.

또 팔찌에서 푸른 보석이 빛을 냈다. 알렉은 이제 저 푸른빛만 보면 경기가 날 것 같았다.

장로에게 들었다. 아벨은 저 힘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죽인 적이 ‘있다고’만 말했다. 그게 몇 명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소름 끼치는 유골 무덤이…….’

아벨이 죽인 사람의 시체를 버리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라 진짜라면 큰일이었지만.

“아벨 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저희가…….”

“기다려 달라고 한 게 몇 번이야?”

쾅, 하고 지하의 벽이 흔들렸다. 어린아이만 한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져 진동을 일으켰다.

아벨이 사납게 검붉은 눈을 빛냈다.

“잘될 거라면서 내내 실패하기만 하고, 날 지루하게 만들고.”

쾅. 쾅.

‘아이 씨. 여기 너만 있냐!!!’

아까처럼 큰 돌은 아니더라도 맞으면 골로 갈 것 같은 돌덩어리가 우수수 쏟아졌다. 알렉은 살려고 떨어지는 조각을 요리조리 피했다.

“……죄송합니다.”

알렉에게는 어이없게도 장로가 있는 자리에는 돌 부스러기만 내렸다. 커도 주먹만 한 돌이 떨어졌고. 그것마저도 위협용이기만 한 건지 발치에만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는 너희들이 바라는 젊음을 유지해 줄 수 없다고.”

아벨이 손을 휙 젓자 푸른 팔찌에서 나던 빛이 장로의 얼굴에서도 났다.

‘……뭐야?’

저게 왜 장로의 얼굴에서도 나오는 거지?

알렉은 돌을 피해 달리는 와중에도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크으윽…… 저, 정말 죄송합니다.”

“말은 잘하지. 다들 말은 잘해…….”

푸른빛이 빠져나간 장로의 얼굴은 점점 주름이 늘었다. 매끈하던 피부는 퍼석퍼석해지고 검버섯이 생겨났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허리는 구부정해졌다.

‘늙어졌어!’

아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인가?

“저, 저희가 노력해 봤지만, 누군가가 자꾸 방해해서…….”

장로는 순식간에 늙어 버린 몸을 휘청이며 아벨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눈물 콧물을 쏟아 내며 아벨의 발을 겨우 붙잡은 장로는 불쌍했다.

소년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노인의 모습은 실로 기괴한 성화의 한 장면 같았다.

“방해를 받았으면, 그 자식을 치워 버리면 되는 일이잖아. 신전으로 모이는 돈은 그러라고 쓰는 거 아니었어?”

“자객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이가, 없어서…….”

“쓸모없는 것들.”

‘어?’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유골이나 벽을 부수는 소리가 아니었다.

살과 뼈와 근육이 단시간에 비정상적으로 성장하여 나는 기묘한 소리였다.

“뭐…….”

지켜보던 알렉의 입에서 숨기지 못한 경악 어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저게 뭐야?!’

“날 화나게 한 대가는 치러야지?”

어느 순간 아벨은 커져 있었다. 완연한 성인의 몸은 소년의 외양일 때보다 강압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아벨이 손을 뻗어 장로의 목을 움켜쥐었다. 절대 가볍지 않을 텐데 그는 쉽게 장로를 들어 올렸다.

“컥, 커억……! 사, 살려……!”

악력이 엄청났다. 장로는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너희들이 사리사욕 채우는 거야 늘 있었던 일이니 봐주고는 있지.”

하지만.

“너희들의 핏줄이 나와 약속했던 것을 잊지는 말아야지. ‘대체품’을 제때 발견해서 내게로 가져오는 것. 그것 하나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인간은 너무 멍청해서 짜증 난다니까.

아벨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장로의 목을 놓아줬다. 장로는 힘없이 떨어져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컥, 콜록, 콜록.”

한계까지 붙잡고 있었던 터라 장로는 정신을 쉽게 차리지 못했다.

‘정말 죽일 기세였어…….’

알렉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아벨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괴물이라고.

그리고 이곳, 에덴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 같다고.

“너희들이 주어진 일을 게을리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야지.”

“나서시면…… 콜록, 위, 위험한 것 아닙니까.”

“위험? 너희들이 해 먹은 짓이 들통날까 봐 무서운 거겠지.”

누가 나를 위협할 수 있겠어.

“가장 신에 가까운 힘을 내가 틀어쥐고 있는데 말이야. 응?”

아벨이 쪼그려 앉아 바닥에 엎어져 있는 장로의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채를 잡아챘다.

“크윽.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요,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그러게, 왜 시킨 일을 잘 못해서 날 슬프게 만들어. 너도 이렇게 괴로워지잖아.”

‘미친놈…….’

알렉은 장로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 순간만큼은 가여워졌다.

“말리지 마. 그리고 다른 장로들과 뿌리들에게도 알려.”

“예…….”

“내가 직접 수도로 가 볼 거라고. 말리면 준 ‘축복’을 거두고 죽음만이 있을 거라고.”

“……알겠습니다.”

무시무시하던 표정을 거두고 아벨이 다시 천진하게 웃었다. 사람 아닌 것이 사람같이 웃고 있으니 소름이 끼쳐 알렉은 도망치고 싶었다.

“젊음은 다시 돌려줄게.”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노쇠하던 장로의 몸이 다시 생생해졌다. 늘어졌던 피부가, 툭 치면 부러질 것 같던 몸이 활발한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대신 내가 수도로 갈 준비는 확실하게 해 놔. 너희가 그렇게 내 노출이 두렵다면, 알아서 잘해. 응?”

“명심하겠습니다. 실망하시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아벨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는 이제 볼 일은 다 끝났다는 듯 지하에서 장로와 알렉을 내쫓았다.

‘징그러워.’

장로에게 가졌던 일말의 동정은 그가 다시 청년으로 돌아오고 나서 사라졌다.

장로는 안심하고 있었다. 젊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몹시도.

“……이런 광경을 처음 봐서 놀랐겠지.”

“……예.”

“이게 에덴이 존재하는 이유일세. 고르고 고른 소수만 오는 까닭이기도 하고.”

그러니 입조심은 이 비밀을 알려 준 것으로 잘하길 바라네.

“…….”

“자네도 은총을 받을 선택받은 이에 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제기랄. 그딴 거 바라지도 않았어.’

아벨의 말을 기억한다. ‘너희 핏줄들’이라고 했었다.

신전의 고위 사제인 아버지. 대대로 신전에 속하겠다고 맹세하여 귀속된 그의 가문.

에덴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선택한 것도 단순한 추천이 아니었던 거구나.’

가문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었으나 이젠 끔찍하게 여겨졌다.

토기가 밀려오는 것을 참고 있는데, 장로가 다시 젊어진 본인의 몸을 황홀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이 ‘축복’. 놀랍지 않나? 아벨 님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짜 구원자요, 신이나 다름없는 분일세.”

“……예. 놀랍더군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신전 내의 가장 깊숙한 위치에 있다는 사람이 하는 말이 신성 모독이라니.

“이곳에 들어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신히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여긴 미쳤어.’

어서 빨리 데니스에게 보고하고 이곳을 뜨고 싶었다.

“자네도 장로가 되면 죽을 때까지 젊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걸세.”

“예. 그렇군요.”

“아벨 님께서 ‘완벽한 성물’을 얻으면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부디 ‘대체품’이 이번에는 성물급이었으면 좋겠는데…….”

‘성물과 대체품.’

푸르게 빛나던 보석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았다.

“아주…… 멋진 꿈이로군요.”

“그렇지?”

뭘 그렇지야, 미친놈아.

‘씨발. 여기에 있는 사람들 다 엿이나 처먹었으면 좋겠다.’

알렉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겨우 장로를 보냈다. 그는 장로의 빌어먹을 영생에 대한 꿈 이야기를 데니스에게 알리기로 하고 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아, 아. 들리세요? 고용주님?”

[들린다. 알렉. 무슨 일이지? 아직 정기 보고 시간도 아닌데.]

“꼭 알려야 할 게 있어서요. 여긴 미쳤어요. 영생을 이룬답시고 충성하는 광신도 이단 집단이었다고요. 아무리 내가 보수를 보고 왔다지만 지금…….”

잠깐만.

‘이 사람은 어떻게 첩자로 보낼 사람을 나로 정한 거지?’

조건이 너무 딱 들어맞는 자가 알렉이었다.

에덴의 정체를 믿지도 않던 때, 데니스는 알렉이 반드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에덴은 철저히 자신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젊음을 유지하는 게 들키면 안 되니까. 그래서 아벨도 나가기를 꺼렸는데.

“저기요…… 고용주님.”

[말해.]

“이런 것들을 다 어떻게…… 알고 저를 고르신 겁니까?”

데니스 데벤테르는 에덴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전부 알고 있었을까?

‘가지고 있는 정보력이 아무리 좋아도, 에덴은 비밀을 알고 있는 사제의 혈통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곳이야.’

심지어 고위 사제의 핏줄인 알렉도 지금 안 사실이었다.

그는 어디까지 알고 일을 계획했을까.

[무엇을 물어보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정보를 줘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너야.]

“허.”

데니스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가 모른다고 잡아떼는 이상, 알렉이 진실을 알 수는 없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괜히 돈을 많이 주는 게 아니었군요. 보고나 하겠습니다.”

알렉은 데니스가 철저히 자신을 이용하려고 고용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계획적인 접근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착수금을 더 많이 달라고 할걸.’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이 미친 곳에서 벗어나려면 이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에덴이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을 속세로 환속시켜줄 리 없었다. 외출까지는 허용해 주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고 든다면 제거당할 게 틀림없었다.

알렉은 데니스에게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벨, 그 괴물이 수도에 ‘대체품’을 찾으러 간단 이야기도 빼먹지 않고.

[그 새끼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데니스는 ‘대체품’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벨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면 찢어발겨 죽여 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오줌을 쌀 것 같이 무서웠다.

“저, 저기요, 고용주님.”

[왜.]

“저 일 다 끝내면 죽이는 건 아니죠? 무사히 여기서 빼내 주실 거죠? 그렇죠?”

알렉은 두려웠다. 고용주나 자기가 지금 모시는 미친놈이나 무슨 행동을 벌일지 모르는 폭탄이어서.

“제발 비밀 지킬 테니까 살려 주세요. 물론 돈도 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오해한 거 같은데, 난 널 이용만 하고 버릴 생각은 없어. 약속은 지킨다.]

“정말이죠?”

[신께 맹세하지.]

“……원래도 신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찝찝한데요.”

알렉은 이 일이 끝나기만 하면 신전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해서 데니스의 말이 시원찮았다.

[반드시 지킬 거다. 넌 걱정일랑 말고 해 오던 대로 해.]

“알겠습니다.”

통신이 끊어졌다.

데니스는 달력과 노트를 응시하며 곰곰이 알렉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수도로 내려온다고…….”

달력 위로 붉은색 별로 표시된 건국 기념일이 보였다.

“이날 다 한자리에 모이겠네.”

그는 피곤에 찌든 눈을 팔로 덮었다. 감은 눈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서 모든 걸 끝낼 수 있기를.”

심장이 아프게 뛰었다. 데니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징조였다.

“이번에는 ……하는 일이 없도록.”

신께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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