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그 이후로 루스벨라와 데니스는 함께 식사를 꼭 같이했다.
서로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데니스는 식사 시간이 되면 먼저 식당에 가서 루스벨라를 기다렸다. 루스벨라도 지아나나 다른 하인들이 식사하실 시간이라고 말을 걸면 식당으로 내려가 데니스와 밥을 먹었다.
식사는 언제나 훌륭했고, 맛있었다. 해안가라고 해서 처음 먹은 식사처럼 해산물을 주류로 구성된 음식만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내륙에 있는 수도 못지않은 육류 요리를 포함한 다양한 식단이 반짝이는 샹들리에 밑에서 빛났다.
‘맛있다.’
행복했다.
‘이렇게 마음 놓고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것이 행복하구나.’
루스벨라는 매끼 식사 때마다 볼을 우물거리며 주방장의 실력을 찬양했다.
식사에 대한 고마움이 당도를 초과한 사탕처럼 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되었을 때, 루스벨라에게 넌지시 데니스가 물었다.
“주방장을 불러올까요, 루스벨라?”
“……좋아요.”
만나 보고 싶어요.
주방장을 부르는 게 어떠냐는 그의 말 속에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봤다는 암시가 전해졌다. 그래서 제안을 승낙했다.
데니스에게 아직 왜 자신을 결혼 상대로 골랐는지 듣지 못했지만, 함께 하는 식사는 마음을 물렁하게 녹여 주는 데 성공했다.
곧 주방장이 한달음에 달려와 인사를 전했다.
“부르셨습니까, 작은 마님!”
루스벨라는 누군가 제게 친절을 베푼 적이 별로 없었고, 자신을 좋게 봐주는 사람도 몇 없어 고마움을 전달하는 일이 능숙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
“고맙네, 주방장. 먹는 음식마다 다 맛있어서. 얼마 안 있으면 수도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야.”
“작은 마님……! 저야말로 제 음식을 끼니마다 남기지 않고 드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체류 기간 중 더 맛있는 음식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맛있었지만, 주방장의 열렬한 진심이 보여 루스벨라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주방장이 나간 이후 데니스와 루스벨라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신기한 사람.’
데니스는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였다. 그는 루스벨라가 좋아하는 대화 소재를 먼저 묻고, 그에 맞춰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은 루스벨라로서는 데니스의 대화 방식이 괜찮게 여겨졌다. 그에게는 알은 체 하려는 쓸데없는 체면 세우기가 없었다. 귀족 특유의 오만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루스벨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볼까요?]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를 존중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그의 전부였다.
비싼 값에 팔려온 신부를 대하는 사람에게는 과분한 대우였다. 하인도, 주인도, 모두가 루스벨라를 ‘정상적으로’ 결혼한 사이처럼 살갑게 대했다.
그게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걸렸다.
‘내가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지내도 되는 걸까?’
어릴 때 그녀는 동화책을 사랑했다. 환상과 어린이들의 꿈을 빚어 만든 동화에는 언제나 불행했던 여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맞으며 끝났다.
루스벨라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열셋이 되던 봄에, 윈체스터 공작이 아직 후계자의 위치일 적에 그를 처음 만나 한눈에 반하면서 그렇게 되리라 꿈꿨었다.
그때는 몰랐다.
공작 가가 휘하로 둔 가신의 가문과 혼례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지펠론 백작 가의 차례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아버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약혼이었음을.
[당신 같은 게 올 자리가 아니었다고!]
그런 소리를 들으며 약혼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루스벨라는 제 주제를 알기로 했다. 분수를 알고 조용히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었다.
동면에 든 개구리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떠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으면 굳게 다짐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했다. 괜한 기대는 루스벨라에게 독이었다. 그녀는 데벤테르 가를 어서 떠나야 마땅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잘할 수 있어, 루스벨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해 올 수 있었잖아. 나 자신이 시키는 일도 그렇게만 하면 돼. 문제없어.
그녀는 몰랐다. 그녀 홀로 있는 방이라 방심하고 한 혼잣말을 차 한 잔 어떠시냐고 물으려던 지아나가 들었다는 사실을.
지아나는 눈치 있게 상황을 파악하고서 찻잔을 잠시 거두고 작은 주인님께 그것을 보고하러 갔다.
“도련님, 아무래도 작은 마님께서는……. 저희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려면 시일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지아나의 이야기를 들은 데니스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대답했다.
“알았다. 그 건은 내가 해결해 보도록 하지.”
“역시 작은 마님께서 겪은 고초 때문이었을까요.”
“쉿.”
데니스가 지아나의 말에 입가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지아나는 쓸데없는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안다면 되었어. 고치면 되는 일이지.”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난 지아나를 믿어. 내 어머니를 끝까지 옹호한 사람이고, 또 이제는 내 부인을 지켜 줄 사람이니까.”
“도련님…….”
“작은 주인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리고, 혹시나 같은 일이 일어나 루스벨라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단속 좀 부탁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래.”
데니스도, 지아나도 그리고 리스냐 성의 모두가 루스벨라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데니스가 직접 알아낸 정보를 통해 루스벨라가 어떤 대우를 받으며 지난 삶을 살아왔는지도 들었다.
불행의 신이 있다면 루스벨라에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니 다들 유의해 줬으면 해.’
진실을 알려준 데니스는 소문 따위가 아니라 진짜 루스벨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주인으로서 부족함이 없이 대하라고 명을 내렸다.
‘비록 그게 남녀 간의 연정 때문은 아닌 것 같지만.’
지아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무실을 나섰다. 데니스나 루스벨라나 둘 다 결혼 적령기의 성인이니 어서 아이를 가지고 행복하게 산다면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둘이 얼마나 괴로운 가시밭길을 걸었는지 아는 사람으로서는 그저 지켜보며 그들이 원하는 행복을 찾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게 충복으로서 마땅한 태도라 여겼다.
“작은 마님께 어서 차를 가져다 드려야지. 식기 전에 얼른.”
지아나는 바삐 걸음을 옮겨 루스벨라의 방문을 두드렸다. 회색 머리에 녹안의 작은 마님은 여전히 가냘프고 수척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주방 쪽 사람들과 합심해 손이 자꾸만 가는 중독적인 맛의 맛난 다과를 준비해 가는 것이 최근 지아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작은 마님을 살찌우자. 작은 마님께서는 좀 포동포동 살이 오르실 필요가 있다.
‘이 임무는 아주 막중하지, 아암.’
“많이 드세요, 작은 마님!”
“고맙네. 자네도 한 술 들지 않겠는가?”
“저는 괜찮습니다. 마님이 많이 드셔야죠. 그게 저희에겐 더 기쁜 일입니다.”
“그렇다면…… 알겠네. 더 많이 먹어 보려고 노력하겠네. 그리고 지겨울지도 모르겠지만, 매번 더 애써 줘서 고맙네.”
‘아이고, 저렇게 아랫것들에게 어색하게 대하시는 것도 귀여워 보이니 원.’
루스벨라가 감정 표현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녀가 고맙다는 인사를 늘려가는 게 노력의 산물이라는 게 보였다. 작은 안주인은 서툴지만 다정한 사람이었다.
작은 마님이 우리가 얼마나 마님을 좋아하는지 아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항시 환하게 웃을 일만 계시기를.’
지아나는 신께 간절히 소망했다.
***
여느 때와 같이 편안하고 배부른 식사를 마친 이후 루스벨라에게 데니스가 미션을 주었다.
“놀다 오세요.”
“제가요?”
“그럼요. 루스벨라 말고 여기 또 누가 있겠어요?”
‘보고 있는 시선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고개를 휙 돌려 주변을 둘러봐도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깨어난 이후로 계속 이런 일들의 반복이었다. 외부인이 신기해서였는지 루스벨라를 향한 시선의 밀집도가 리스냐 성의 지붕 높이만큼 치솟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루스벨라가 할 말이 있느냐고 물어볼라치면, 발 빠르게 모두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루스벨라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왜들 저러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다면 직접 대면해서 눈을 맞추고 해 줬으면 좋겠는데.
루스벨라는 몰랐다. 그녀가 리스냐 성의 인기인이 되었다는 것을. 그건 고작 며칠뿐이었지만 루스벨라가 그들이 최소한도로 지정했던 작은 마님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딸기 케이크 사건부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주방장은 처음에 케이크를 보고 안색이 나빠진 작은 마님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났었다. 마님이 가리는 음식이 없다고 했지만, 그게 사용인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저어되어 한 배려 섞인 말이라면 주방장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입에 맞는 게 아니었다면 어쩌지!’
안절부절못하며 철렁 떨어졌던 주방장의 심장을 다시 원위치시켜 준 것은 루스벨라와 데니스가 식당을 비운 때였다.
“그릇이 깨끗해요.”
“부스러기만 조금 남았지, 다 드신 것 같아요. 정말 맛있으셨나 보다.”
“크흠, 그래?”
주방장의 콧대에 우쭐함이 더해졌다.
이후로도 루스벨라는 잔반을 남기지 않는 아주 더없이 멋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주방장을 불러 음식이 맛있었노라 칭찬까지 해 주시니 그는 요새 일할 맛이 너무 나서 탈이었다.
지아나는 두말할 필요 없이 루스벨라의 편이었다.
지아나의 지시에 따라 매일 아침 루스벨라를 단장시키는 하녀들도 까탈스럽지 않고 수더분한 주인이라며 좋아했다. 거기에 루스벨라는 꾸미는 맛이 있는 젊은 주인이었다.
“오늘 마님 머리 봤어? 어때?”
“생화랑 눈동자 색이랑 같은 에메랄드가 들어간 머리끈으로 장식한 거? 당연히 봤지. 반 묶음이 그렇게 잘 어울리시는 분은 처음 봐.”
“그렇지! 내가 오늘 그 머리를 작은 마님께 추천해 드려서 했다니까! 오늘 입으신 푸른 드레스랑 아주 잘 어울리셔서 뿌듯했어.”
“어머, 잘했다. 얘. 더 열심히 해 봐.”
“물론이지. 아직 내게는 101가지 머리 묶기 비법이 남아 있다고.”
우려했던 일과는 정반대로 호감도만 높아지고 있으니 루스벨라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곡선을 그렸다.
“아, 그런데 오늘 속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어.”
“그게 뭔데?”
같은 시각.
루스벨라도 데니스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제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왜긴요.”
한숨을 쉬며 말하는 하녀와 데니스가 웃으며 말하는 내용은 똑같았다.
“작은 마님께서 자꾸 일을 찾으려 하셔.”
그것이 요즘 시종들의 고민이었다. 후작 가의 일원이 된 사람으로서 편히 안락한 생활을 누렸으면 했는데, 그녀는 가만히 받기만을 원치 않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데니스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놀고 오라고.
“루스벨라가 할 일을 찾아 성 내를 돌아다닌다는 제보가 자꾸 들어와서 말이죠.”
명색이 신혼여행으로 여기에 온 건데, 제발 놀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안 되나요?”
“네. 안 돼요.”
반박에 전혀 여지를 두지 않는 단호함을 주며 데니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