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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는 사양입니다-11화 (12/166)

11화

루스벨라는 어릴 때부터 몸매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체중 관리를 해 왔다.

편식은 하지 말라고 다그치더니, 자라면서는 체중 관리로 딸의 숨통을 쥐었다. 모순이었지만 루스벨라는 그것을 감히 지적할 용기가 없었다.

‘아버지는 날 사랑하기는 하셨을까?’

아니겠지.

루스벨라는 마른 체구였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어릴 때부터 하는 체중 관리가 빌어먹을 미친 소리 중 하나라는 것을 현재의 루스벨라는 알지만,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벼락처럼 분노한 지펠론 백작의 얼굴이 떠올랐다.

[루시, 얘야.]

[네, 네…….]

[네가 뭘 잘못한 줄은 알고 있니?]

[그, 그게…….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기는! 아비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쾅. 어린 루스벨라와 지펠론 백작의 사이에 있던 원목 테이블이 부서져라 흔들렸다. 덮쳐오는 공포에 루스벨라는 바들바들 떨었다.

[아, 아버지. 유모가 제 나이 때에는 먹고 싶은 걸 충분히 먹어도 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래서, 이 아비의 말보다 유모의 말이 더 옳다, 이거냐?]

[그, 그런 뜻은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냐! 이 아비가 공작 성에 가기 전에 완벽한 숙녀의 모습을 해야 한다지 않았어!]

또다시 지펠론 백작이 테이블을 부서지도록 내리치는 소리가 작열했다.

백작은 루스벨라를 훈육시킬 때 절대 손을 올리진 않았다. 그의 딸은 머지않아 공작 성에 약혼자의 자격으로 들어갈 예비 신부였으니까.

‘하자라도 나면 내 탓으로 돌려지겠지. 그것만은 절대 안 돼.’

그래서 지펠론 백작은 루스벨라를 때리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첫째 딸에게 화가 날 때마다 불러 놓고 차근차근 ‘대화’를 나눠 해결하고자 했다.

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을 할 때마다 고함을 치고 딸 대신에 애꿎은 테이블을 두들기는 걸 대화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제, 제가 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어린 루스벨라에게 있어 용암처럼 분노를 토하는 아버지는 정말 무서웠다. 그녀는 학습의 결과로 아버지를 진정시키려면 그가 하는 질문이 모두 바르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대답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임을 알았다.

‘유모가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괜찮다고 그랬는데…….’

어머니의 말은 옳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었다. 당장은 아버지의 화를 풀어 드려야 하니까. 겁에 질렸어도 그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리 혼났더라. 다 큰 루스벨라는 불쌍했던 어린 자신의 죄목을 떠올려 봤다.

그녀의 죄는 이랬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몰래 한 조각 먹었다는 것.

[이 아비가 뭐라고 했었니?]

[가, 간식을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 왜 안 된다고 했을까?]

[사, 살찌면 안 된다고. 그러셨어요.]

어린 날의 그녀에게 허락된 식사는 철저히 가냘프고 여린 몸매로 자랄 수 있도록 계산된 음식들뿐이었다.

닭가슴살 샐러드와 콩으로 만든 수프를 비롯한 건강식만이 루스벨라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한계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기름 한 점 없는 소고기는 풍족히 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빵은 필요 이상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한 조각만 먹을 수 있었지만.

간식? 그런 건 없었다. 두 동생에게는 허락되었던 사탕이나 캐러멜이 그녀에게만은 주어지지 않았다. 행복한 표정으로 달달한 간식거리를 즐기는 동생들을 몰래 훔쳐보며 침을 삼켰던 때도 있었다.

저건 무슨 맛일까 하면서.

그러나 바보같이 순해 빠졌던 어린 날의 그녀는 동생들에게서 간식을 나눠 달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멍청한 루스벨라, 어리석은 루스벨라. 그녀는 그러지 못한 자신을 비웃었다.

‘내가 그때 틀린 것도, 잘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슬펐다. 이미 남은 상처를 굳이 끄집어 보는 이유는, 그때 그 아이의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서리라.

회상이 이어졌다. 그다음에는 뭐라고 하셨더라, 내 아버지께서는.

[잘못인 줄을 알았으면 하지 말았어야지!]

악마처럼 잡아먹을 듯이 루스벨라를 째려보는 지펠론 백작의 눈에 그녀는 덜덜 떨었다. 진짜 악마처럼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지고 아버지의 머리에서 뿔이 자라나는 환상마저 보였다.

그래서 어서 잘못을 빌자고 작은 머리를 최대한 숙이고 바닥에 몸을 웅크려 잘못을 빌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깟 케이크가 뭐라고. 네가 미래의 공작 부인이 되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는 게 디저트다! 조금만 참으면 달콤한 미래가 너를 기다리는데. 그것 하나도 참지 못해서 뭘 하겠다는 거야!]

[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모르는 게냐? 이 아비를 어디까지 실망하게 해야 만족할 셈이야!]

실제로 루스벨라가 사고다운 사고를 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이 세상에서 가장 옳은 줄 알고 자란 멍청한 계집아이였으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쥐 잡듯 몰아세우는 것 자체가 딸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음에도 지펠론 백작은 자신의 행동을 고치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이런 방식의 훈육이 올바른 것이라 믿었다.

그가 어릴 때 받은 보살핌은 이런 잔인한 방식이 아니었음에도.

[지금 당장 화장실로 가서 먹은 것을 다 토해라.]

[네……?]

[무얼 하고 있어! 소화가 되기 전에 뱉어야 하거늘, 서두르지 못하겠느냐!]

[아, 알겠어요. 아버지. 토하고 올게요.]

[쯧. 천것도 아닌데 저리 말을 더듬어서야 원. 예법 선생을 바꿔야겠어.]

어떻게 토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짧은 두 다리로 화장실에 갔었다. 한참을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결국 유모를 불렀다.

[유모, 나 좀 도와줘.]

[……백작님께서 뭐라 하셨나요, 아가씨?]

[응…….]

[뭐라고…… 하시던가요.]

유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케이크 먹은 거…… 토하래. 난 그거 먹으면 안 된대.]

[뭐라고요?]

[아버지 화를 풀어 드리려면 어서 해야 해. 근데 유모. 내가 토하는 법을 몰라서……. 도와줘. 빨리 하고 가야…….]

와락.

[가엾은 우리 아가씨……. 불쌍해서 어쩌누.]

유모가 기어이 눈물을 흘리며 어린 그녀를 안았다. 구슬피 우는 유모의 품에서 루스벨라는 영문을 몰라 가만히 있었다. 속으로는 아버지는 기다리는 걸 싫어하시는데, 라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가씨.]

[응. 유모.]

[하얀 거짓말이라고 알아요?]

[아니. 그게 뭐야?]

[착한 거짓말이라는 뜻이에요. 아가씨도 이번 한 번만, 그거 해 볼 수 있겠어요?]

[또 거짓말했다가 혼나고 싶지 않은데……. 화를 내시는 아버지는 너무 무섭단 말이야. 유모, 토하고 가면 안 돼?]

[아가씨가 거짓말을 뭘 했다고요. 분명 백작님 앞에서 참말만 했을 텐데.]

아가씨는 잘못하신 거 없어요. 하나도 없어요.

[백작님이 ……하신 거지.]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아가씨. 제 말대로 행동해 주실 수 있으세요?]

[응. 유모 말이라면 해 볼게. 유모는 착하잖아.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해 주셨다는 좋은 말씀들을 다 해 주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아버지께 또 걸리면 무섭겠지만……. 유모니까 한 번만 해 볼게. 다음은 없어.]

[……고마워요. 아가씨.]

그 직후 유모는 루스벨라가 정말 토한 것처럼 입가에 음식물을 조금 묻혀 주고, 위액을 뱉어 낸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려 보이도록 표정을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으음…… 잠시만요.]

유모는 쓱쓱 손을 놀려 종이 위로 그림을 그렸다.

[아가씨, 이거 보이세요?]

[윽. 징그러워! 거미잖아!]

[그래요. 이 거미를 보고 표정을 연기해 주세요. 어려운 요구라는 걸 알지만, 한 번만요. 아가씨께서는 뭐든 곧잘 해내시니 가능하실 거예요.]

[알았어, 해 볼게!]

둘의 계획은 잘 먹혀들었다. 루스벨라가 지펠론 백작의 앞으로 내려가자 그는 잘했다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버지를 속였다는 죄책감과 처음으로 그를 속여서 다행이라는 통쾌함이 뒤섞여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들었다.

[유모, 해냈어!]

[잘하셨어요. 아가씨.]

그러나 기쁨은 잠시. 달콤했던 딸기와 생크림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았던 것처럼.

유모가 그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났다. 약간의 퇴직금만 지급받고, 추천서는 없는 채로. 루스벨라와 유모의 작당질을 목격했던 세탁실 하녀가 그것을 백작에게 고자질했기 때문이었다.

[감히 내 집에서 그릇된 것을 알려 준 죄다.]

[유모! 유모!]

[넌 가서 잘못했다는 반성문이나 써서 제출해라. 오십 장이다.]

유모는 루스벨라의 어머니, 전 백작 부인이 시집올 때 같이 데려온 동무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듯 내치다니, 루스벨라가 있는 용기를 쥐어짜 항의했지만 묵살 당했다. 대들었다는 죄로 그녀는 방 안에 갇혀 반성문을 다 쓰기 전까지 나올 수 없었다.

깃펜을 쥔 여린 손가락의 관절이 아프도록 반성문을 써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날따라 방의 녹색 벽지가 저주받은 숲의 깊은 늪과 같이 보였다. 헤어날 길이 없는, 빠지면 허우적대는 게 소용없을 정도로 금세 사람을 삼켜 죽는 깊은 늪.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라. 알아들었느냐?]

[네…….]

유모가 쫓겨난 이후 백작 가에서 루스벨라는 디저트는 눈에도 들이지 못했다. 공작 성에서는 드문드문 먹어 본 기억이 있긴 했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미건조했다.

그녀에게 디저트는, 특히나 딸기 케이크 종류는 역린이나 다름없었다.

보기만 하면 자신 때문에 쫓겨난 유모가 생각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쫓겨나는 날 유모는 혹여 아가씨가 자신 때문에 자책할까 싶어 절대 아니라고 연신 말했지만, 그녀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 딸기 생크림 케이크.’

생크림을 볼 때마다 항상 진실한 말만 하라는 소리가, 케이크의 중앙을 앙증맞게 차지하는 화룡점정인 딸기를 볼 때마다 분노한 그때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주 정성을 들여 아름답게 장식했고, 맛의 질은 아까 먹은 식사처럼 훌륭할 터.

하지만 쉽게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서웠다. 자신은 이제 그때의 멍청한 어린아이가 아님에도, 정신의 한 조각을 떼어 그 시간에 고정해 놓은 것처럼 몸이 삐걱거렸다.

“작은 마님?”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 거지.

‘받아야 하는데.’

저 작고 예쁜 것에 들어간 정성이 있잖아. 거절하면 많이 상처받을 거야. 그러면 안 돼. 안 되는데.

한 입 먹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나는 이리 궁상을 떨고 있는 거지.

‘안 돼.’

도저히 먹을 자신이 없어…….

“미…….”

거절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거 이리 줘 봐.”

데니스가 끼어들었다.

“예?”

“나 주라고. 내가 먹을 테니까.”

“네?”

이번에는 루스벨라도 케이크를 갖고 온 주방장처럼 어안이 벙벙해서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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