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0. 그녀는 정말로 결혼을 했다.
“공작 각하, 여기 제 결혼식 청첩장이에요.”
“……뭐라고?”
“결혼식, 청첩장이라고요.”
여인의 하얗고 고운 손에 들린 편지 봉투는 그녀의 잘 관리된 분홍빛 손톱만큼이나 어여쁜 꽃물로 물들인 것처럼 아름다웠다. 겉면에는 말린 꽃으로 장식한 매듭이 묶여 있었다.
여인이 청첩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필시 이것이 그녀가 또 제게 건네는 연애편지라고 여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의 ‘약혼자‘이었던 적이 있었고,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해 곡소리를 낸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니까.
‘이 여자가 무슨 꿍꿍이지?’
북부 공작, 아슬란 윈체스터는 의심으로 가득 찬 눈을 들어 전 약혼자를 마주했다.
루스벨라 지펠론.
그가 아무 감정 없는 약혼 생활을 하며 겨우 익힌 그녀의 이름이었다.
루스벨라는 밤마다 아슬란을 그리워한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두 눈 아래는 퀭하고 안색은 파리해 보였다. 마르고 가는 골격은 식사를 매끼 거른 것처럼 핼쑥해 보였다.
아슬란은 생각했다. 정말 결혼식을 앞둔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이 초췌하다고.
그래서, 오판을 저질렀다.
“그대, 내 관심을 끌려고 자작극을 꾸민 것은 아닌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루스벨라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미간을 좁혔다. 두 손을 파르르 떨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슬란은 여인의 모습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되레 코웃음을 치며 그의 전 약혼자를 조롱했다.
“그대에게 관심도 없는 남자의 관심을 끌자고 기껏 가져온 게 거짓 청첩장입니까? 귀족의 명예를 스스로 더럽히는 행동이군요.”
아슬란은 숨을 한 번 고르더니 마지막 일격을 꽂았다.
“추하십니다. 영애.”
“……하.”
루스벨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아슬란은 그것이 당연히 거짓 자작극이 들킨 것에 대한 당황을 표하거나, 마저 연기를 이어 가려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각하를 제 인생의 반려로 삼지 않았던 게 최고의 선택이었네요. 청첩장은 두고 가겠습니다. 전 약혼자로서 보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거든요. 오시건, 말건 상관없으니 제 말이 진실이라는 것만 알아 두세요.”
“거짓말에 능숙해지셨군요, 영애.”
“……당신을 사랑했다는 게 후회돼요. 제 말은 어차피 당신에게 닿지도 않을 메아리였는데. 저는 그 아까운 시간을 무에 그리 집착하며 괴로워했을까요.”
그 말을 끝으로 루스벨라는 공작 저를 나섰다. 아슬란은 영애를 배웅하지 않았다.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녀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어 줄 의무는 없었으므로.
그리고 그의 잘못된 생각은,
“루스벨라 지펠론 영애가…… 정말로 결혼을 했다고?”
“그렇습니다. 공작 각하.”
그녀가 수도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와르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