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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과거의 편린 : 올리비아 파넬 (27/28)
  • 외전. 과거의 편린 : 올리비아 파넬

    “애니.”

    올리비아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부들부들한 갈색 머리카락에 매끄러운 흰 피부를 가진 여자는 분명 그녀의 동생 애니였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동생인데, 마주하고 있는 얼굴은 너무나 낯설었다. 난생처음 보는 여자 같았다.

    올리비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애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언니…….”

    애니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올리비아를 불렀다. 목이 메는지, 불러놓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긴 한숨과 함께 이렇게 물었다.

    “언니는 어땠어?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

    “나는…….”

    애니의 질문에 올리비아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행복?’

    파넬 공작부인이 된 이래,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못하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당장 가문 밖으로 내쳐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 생활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

    올리비아는 대답하지 못한 채 얼굴만 구겼다. 그 표정이 곧 대답이었다. 애니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겠지. 아버지가 언니를 제대로 된 곳에 보냈을 리가 없으니까.”

    “애니.”

    사랑스러운 동생이 10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이리 냉소적인 말만 하고 있으니, 올리비아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애니의 얼굴이 다시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버석해졌다.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랬어, 언니. 아버지가 이상한 사람에게 날 시집보냈지.”

    “그럼 이 사람이?”

    올리비아는 조심스럽게 애니의 곁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게 그을린 편인 얼굴에는 작고 불규칙적인 흉터가 점처럼 퍼져 있었다.

    ‘딱 보기에도 위험한 남자야.’

    하지만 뜻밖에 애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사람은 아니야.”

    이 남자가 남편이 아니라면 왜 이리 다정히 팔짱을 끼고 파넬 공작가에 방문을 했단 말인가. 올리비아는 애니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애니는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결혼한 것은 알고 있었어, 언니?”

    “듣긴 들었어. 하지만 그때 산후통증으로 몸져 누워 있을 때라 참석할 수가 없었어.”

    몸져 누웠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고상했다. 그 무렵 올리비아는 거의 반시체나 다름없는 혼수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런 설명들을 일일이 할 수가 없었다.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에 가시가 턱 걸리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구나.”

    그런 올리비아의 속사정도 모른 채, 애니는 선선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곁에 앉은 남자를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내 두 번째 남편이야. 에릭 카멜, 작위는 남작.”

    “뭐라고?”

    순진하고 마냥 아기 같던 애니에게 두 번째 남편이 생겼다는 말에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만큼 놀랐다. 하지만 그 말은 이어지는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니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무미건조하게 자신의 삶을 요약했다.

    “첫 번째는 약쟁이에, 도박중독에, 아버지 같은 권위적인 남자였지. 나를 4만 데르크에 사왔고,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돈이 아깝다며 다시 4만 데르크에 팔았어. 이 사람이 노예가 될 뻔한 나를 구해줬지.”

    “……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딸을 팔아? 아기를 낳지 못해서 돈이 아까워?’

    아내가 그저 새끼를 치기 위한 암말이랑 다름이 없단 말인가! 고작 그런 이유로 사오고, 또 팔아치우다니?!

    ‘잔인해.’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만큼 지독한 일이 있을까. 올리비아는 참담한 얼굴로 애니를 응시했다. 애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젠 괜찮아, 언니.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돼.”

    담담한 말이 더더욱 마음을 아프게 헤집었다. 올리비아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애니를 응시했다.

    “미안해, 애니.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어. 네가 누구랑 결혼했는지도 듣지 못했고, 사실은…….”

    “정말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돼, 언니.”

    자신이 얼마나 아팠는지, 왜 애니를 찾아가지 못했는지 설명하려던 말들은 애니가 잘라버렸다.

    애니는 올리비아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나는 이제 괜찮아.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거든.”

    “난, 난, 애니. 정말로.”

    “난 괜찮아.”

    “자꾸 괜찮다고 말하지 마!”

    결국 올리비아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물었다.

    “그럼 여기 왜 온 건데? 괜찮았다면 왔을 리가 없잖아.”

    수년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언니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보고 싶어졌단 말인가.

    ‘나에게 첫 마디가 행복하냐고 물었지.’

    그것이 정말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만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애니도 올리비아의 말을 통해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피식 미소 짓는 얼굴에는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은 괜찮지 않은가 봐. 그렇지?”

    마음이 다칠 대로 다친 애니는, 이제 자신의 감정도 타인에게 비추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 * *

    올리비아는 애니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시골 자작가의 망나니 아들이 여색을 밝히다가 인근에서 신붓감을 구할 수 없어 애니를 사 온 이야기부터, 아기를 낳지 못하니 다시 돈을 돌려받고 싶어서 4만 데르크에 판 이야기까지.

    “우연히 펍에서 술을 마시다가 첫 번째 남편이 못된 됨됨이의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곁을 맴돌았지요. 덕분에 애니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애니를 사랑했다는 남자는, 언제고 첫 번째 남편이 애니를 버릴 거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런 놈에게 애니를 팔다니.’

    올리비아는 배신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플로렌스 자작은 심지어 6개월 전에도 애니 핑계를 대며 돈을 받아갔다.

    “네 동생이 아기를 낳았는데, 돈이 많이 드는구나. 산후조리를 하다가 집이 폭삭 망할 판이다. 언니로서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돈을 내어주렴.”

    그래서 올리비아는 애니가 아이를 넷이나 낳고 다복하게 살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지 못해서 버려지다니.’

    기가 차는 거짓말이었다. 결국 그도 딸을 판 뒤로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가만두지 않을 테야.’

    아버지를 떠올리며 올리비아는 이를 아드득 갈았다. 그리고 가엾은 애니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뭐든 말해, 애니. 진심을 다해서 뭐든 해줄게.”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어떤 사정이 있었던 간에 올리비아가 애니를 챙기지 못한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올리비아의 마음을, 애니가 다시 한번 무너뜨렸다.

    “나 불임이야, 언니.”

    “……확실한 거니? 전남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응. 확실해.”

    담담한 애니의 대답에 올리비아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흘러나왔다.

    ‘세상은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가 불임이라니. 아이를 지극하게 원하는데 가질 수 없다니.

    애니는 눈물이 말라버린 사람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올리비아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서 문득 언니가 떠올랐어. 언니는 아마 조카를 낳았을 텐데, 하고 말이야.”

    그리고 여전히 모래처럼 버석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예쁜 조카 보여줘. 그거면 돼.”

    “그건.”

    애니의 부탁을 뭐든 들어준다고 호언장담한 올리비아였으나, 그 부탁에는 망설였다.

    쉬운 부탁인데 머뭇거리는 올리비아를, 애니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올리비아는 이내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

    그리고 곁에 서 있던 하녀에게 명령했다.

    “아이들을 데려오렴.”

    “네, 네.”

    하녀 또한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애니는 그 기묘한 광경을 자신의 눈에 물끄러미 담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녀를 보낸 지 한참 되었는데도 사람이 돌아오질 않았다. 찻주전자가 완전히 빌 때가 될 때쯤 응접실 문이 열리고, 아까 보냈던 하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저어, 마님.”

    “왜 아이들이 오질 않는 거지?”

    “그, 그게.”

    하녀는 문간에 서서 머뭇거렸다. 무엇 하나 예법에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올리비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따끔하게 그녀를 야단치려 했을 때였다.

    몹시 불량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울렸다.

    “왜 우리보고 오라 가라 하는 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 아버지를 꼭 닮아서 산처럼 커다란 덩치를 가진 두 사내아이였다.

    밉살맞은 말을 하는 건 그중 첫째 아이였다.

    “할머니들이랑 고모가 그랬어. 어머니네 가족들은 모두 수준 떨어지니까 어울리면 안 된다고. 나중에 혼나기 싫으니까 자꾸 부르지 마.”

    큰아이가 그나마 엄마를 닮아서 은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나, 둘째는 얼굴까지 모두 아버지와 닮았다.

    그 때문에 진상들은 둘째를 더 예뻐하고 첫째에게 더 엄하게 굴었다. 그 차별이 심하면 심할수록 첫째는 제 어머니에게 더 모질게 굴었다.

    ‘하지만 오늘까지 그럴 건 없잖아.’

    생사도 몰랐던 이모가 처음 찾아온 날인데, 꼭 제 어미를 이렇게 면박을 주어야 한단 말인가. 속상함과 화가 동시에 치솟은 올리비아가 매서운 어조로 첫째를 나무랐다.

    “지금 어른들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니!”

    “째려봐? 째려보면 어떻게 할 건데?”

    하지만 이미 삐딱할 대로 삐딱한 큰아이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다. 큰아이는 매서운 눈으로 올리비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둘째 할머니를 죽이려고 시골에 처박으려고 하면서.”

    그리고 제 할 말을 다 쏟아냈다는 듯이 휙 돌아섰다. 큰애와 달리 좀 유한 구석이 있는 둘째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헛소리 말고 이리 와!”

    그나마도 큰애가 끌고 가니 속수무책이었다.

    ‘괜히 불렀어. 나도 아이 낳지 못했다고 말할 것을.’

    하는 짓만 보면 내 새끼가 아니라 어머니들 새끼였다.

    아이들이 떠나고 빈 문을 바라보던 올리비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애니에게 말했다.

    “……어머님이 요양원으로 떠나신 지 얼마 안 되어서 애들이 예민해. 이해해줘.”

    거짓말은 아니었다. 매일매일 아프다고 노래를 부르던 둘째 진상은 드디어 요양원으로 떠났다.

    빈자리는 느낄 틈이 없었다. 둘째 진상의 딸이 둘째 진상이 하던 짓을 하려고 파넬 공작저에 상주하다시피하고 있었으니.

    “언니.”

    조카들이 자신이 생각하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애니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잘못이라니! 우린 잘못한 게 없어!”

    애니의 말에 올리비아는 발끈했다.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거라고? 자식들이 나를 홀대하고 불우한 삶은 사는 것이?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올리비아를 보며 애니는 더더욱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게 더 서글프지 않아? 이유 없이 불행하다는 게? 그건 불행이 내 운명이라는 뜻이잖아.”

    그 말이 올리비아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 * *

    “마님,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애니가 그렇게 떠나고, 올리비아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독한 술을 마시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싶었지만, 오늘은 빠질 수 없는 행사가 있었다.

    태황제가 후원하는 황립오페라극단의 오페라 초연날이었다.

    ‘이 기분에 오페라 따위를 보고 있어야 하다니.’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황제는 아주 쪼잔한 사람이라, 참석한 귀족 명단을 만들라는 지시까지 내리곤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불이익이 있었다.

    ‘정말 지친다.’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도 올리비아는 차분하게 몸을 단장했다.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단정한 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옷과 같은 색의 손가방을 들고 나서며 올리비아가 물었다.

    “각하께서는?”

    “연무장에 계십니다.”

    “…….”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올리비아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한번쯤 이런 모임에 얼굴을 내밀어주면 좋겠건만.’

    사람이 싫다는 핑계로 제임스는 대외적인 행사에는 조금도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그 벽돌이 참석해서 무언가를 하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부부 동반 모임인데, 나만 얼굴을 내미니 이상한 소문이 돌잖아.’

    그나마 아이가 둘 있어서 불화설 같은 건 돌지 않았지만, 집안의 가주가 괴짜, 대인기피증이라는 소문 또한 불화설 뺨치게 사업에 지장이 있는 소문이기는 했다.

    ‘뭐, 내가 말한들 듣는 사람이 아니니.’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며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현관에 일렬로 도열한 시중인들을 보는 순간, 올리비아는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

    진상들까지 밀어낸 지금, 파넬 공작가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올리비아였다.

    하지만 그녀가 외출하는데 가족 중 누구 하나 그녀를 배웅하러 나오질 않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엄마에게도 차갑기 그지없는 아이들, 그녀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연무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그녀에게 관심 두지 않는 남편.

    그녀는 지금 파넬을 위해서 우울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서는 것인데도, 아무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거지?’

    바닥이 꺼지는 늪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올리비아가 멍하니 멈춰 있자, 의아함을 느낀 집사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어, 마님?”

    “아.”

    올리비아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발을 들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바닥을 차고 울렸다.

    의미가 있든 없든, 이제 그녀는 멈출 수가 없었다.

    * * *

    ‘애니.’

    하지만 마차에 올라서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온통 메마르게 미소 짓던 동생의 얼굴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고생을 했길래.’

    그녀의 동생 애니는 햇살처럼 밝고 순수한 아이였다. 그렇게 힘없이 웃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실은 괜찮지 않은가 봐. 그렇지?”

    하물며 그렇게 냉소적으로 굴 수 있다니.

    자신의 불행에 성질이 나서, 내가 이렇게 불행한데 하나뿐인 언니는 행복하게 사나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애니가 찾아온 것이 바로 어제였다.

    올리비아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는 애니는 타인의 불행에서 행복의 원천을 찾아내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세상이, 고난과 역경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왜 그동안 애니를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안 했을까.’

    몸이 아주 안 좋았고, 그다음에는 진상들이 플로렌스 가문을 무시하는 것이 컸다.

    그 뒤로는 어쩌다 가끔 찾아와서 돈을 뜯어가는 플로렌스 자작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올리비아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참담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무얼 하며 살아온 거란 말인가.’

    이제는 그녀의 곁에 가족이 아무도 남지 않은 것 같은 막막함이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해야 하는 일은 많고 버거운데,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건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뒤, 올리비아는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큼은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죽는 게 낫다 싶은 순간을 여러 번 넘기며 겨우겨우 공고하게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잘못 살았다니?

    ‘그럴 리가 없어. 그래서는 안 돼.’

    올리비아가 초조함에 입술을 물어뜯었을 때였다. 마차가 멈추고, 오페라 극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반가워요, 파넬 공작부인.”

    “오늘도 아름다우시네요.”

    의미 없는 인사를 반복하는 사이, 그녀의 얼굴에는 완벽한 웃음 가면이 씌워졌다. 언제 그리 고뇌했냐는 듯이,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의 지정석으로 가 앉았다.

    그녀의 옆자리는 당연히 제임스 파넬의 자리였다.

    ‘내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이 자리를 채울 생각이 없나 보군.’

    딱히 그와 어떤 활동을 같이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만 하면서 유유자적 지내는 모습을 보면 부아가 치미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다못해 아이들이라도 신경 써주면 좋으련만.’

    남자아이들이니 아빠가 교육에 신경 쓰고 삶의 지혜도 이야기해주는 편이 좋을 텐데, 온전히 진상들과 시누이에게 일임하고 있으니 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안 보였다.

    ‘이제 와 떼어내려고 해도 내가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두 번째 진상이 몸이 아파서 요양원에 보낸 것도 죽이려고 보냈다고 비난하던 큰아이의 시선이 떠올랐다.

    평생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할 거라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 것이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라.’

    그리 생각하며 올리비아가 한숨을 삼켰을 때였다.

    “타이론 공작 각하시네.”

    “오늘도 혼자셔.”

    “돈 주고 산 코르티잔이라도 끼고 참석하실 법도 한데.”

    “저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면이 멋있지 않나요?”

    “인간이 아닐 거예요. 어떻게 저렇게 시간을 멈춘 것처럼 여전히 아름다우신지.”

    극장 안으로 소곤거리는 소리가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굳이 그 소리들을 듣지 않아도 올리비아는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안 타이론 공작.’

    대국민고자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가지고 있는 남자.

    하지만 공작이라는 높은 작위에,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성격 덕분에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높아지기만 했다.

    “저렇게 완벽한데, 신께서는 너무하시지.”

    “차라리 한 여자의 소유가 되지 않는 것이 더 멋진 거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조차 완벽함이죠.”

    수군거림을 한 귀로 흘리면서 올리비아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야.’

    제임스가 전장에 있는 10년 동안 진상들은 무수히 올리비아의 행실에서 흠을 잡아 파넬 공작부인 자리에서 밀어내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외간남자와의 스캔들이었다.

    얼마나 지독하게 시달렸나, 올리비아는 그 뒤로 어리든 늙었든 남자라면 시선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부러워. 차라리 저렇게 혼자 살면 속도 편할 텐데.’

    가족에게 서운할 것도 없이, 애초에 가족이 없으면 되는 문제 아닌가. 올리비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지금 마음이 안 좋기는 안 좋은가 보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다니.

    자괴감에 빠지기 식전, 종소리가 울리고 극장이 어두워졌다. 무대가 곧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무대를 곧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올리비아는 자신의 옆얼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시선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바로 화제의 이안 타이론 공작이었다.

    ‘……멋있네.’

    개구쟁이처럼 뻗은 눈썹, 하지만 그윽해 보이는 눈매, 무기물이라도 보는 건조한 시선이 제각각 다른 느낌인데도 잘 어우러졌다.

    ‘제임스와는 완전히 달라.’

    한 올 한 올 포마드로 정성껏 빗어 넘긴 머리 모양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제임스에게서 볼 수 없을 터였다.

    ‘저렇게 잘생기니 다들 관심을 가지는 걸까.’

    하지만 지나치게 표정이 없어서인지 잘생긴 동상 같았지,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저 사람도 언젠가 사랑에 빠져서 허덕거리는 날이 올까?’

    지금 봐서는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태황제가 얼마나 그를 장가보내고 싶어서 절절매는가를 떠올리던 올리비아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

    ‘나랑 무슨 상관이야.’

    올리비아는 머릿속에서 이안을 몰아내었다. 이름과 얼굴밖에 모르는 남자보다 더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들이 그녀에게는 산적해 있었다.

    * * *

    그럭저럭 오페라를 보고 나오니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이런.’

    분명 우산이 없을 텐데. 하녀가 급하게 우산을 구하러 다닐 모습이 바로 그려졌다.

    ‘조금 기다려볼까.’

    하지만 공작부인 체면에 지붕에 비를 맞지 않도록 서 있는 것도 우스웠다. 올리비아가 어떻게 하는 편이 나을까 고민했을 때였다.

    낯선 남자가 불쑥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파넬 공작부인이십니까?”

    “그런데.”

    미묘하게 얍삽해 보이는 얼굴에 부실한 체형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제 주인께서 우산을 건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산의 손잡이에 가문의 인장이 새겨져 있기에 올리비아는 대번에 누구의 우산인지 알 수 있었다.

    이안 타이론의 것이었다.

    ‘그 남자가 나에게 왜?’

    어찌 되었든 그에게 이런 호의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올리비아는 칼같이 잘라냈다.

    “받지 않겠네.”

    올리비아가 고개까지 돌리며 강경하게 거절하자, 남자의 표정이 더더욱 엉망이 되었다. 그는 비굴하게 굽신거리며 말했다.

    “받아주시지요. 받지 않으시면 제가 어떤 경을 칠지 모릅니다.”

    “받아서 어떤 소문이 생길지 아나.”

    그녀가 그동안 당했던 모진 수모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을 때였다. 이쯤 말하면 물러갈 줄 알았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녀가 한 말보다 더 냉소적이었다.

    “제 주인은 이미 고자라고 소문이 파다한데 구설이 생길 것이 뭐 있겠습니까.”

    “…….”

    ‘아니, 타이론 공작이 불능인 건 사실인데 이렇게 공공연하게 말해도 돼?’

    심지어 말투가 묘하게 비웃는 것 같기까지 하다. 올리비아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 아랫사람 맞아? 아니면 아랫사람에게 유한 주인인가?’

    어찌 되었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생활에 잡음 하나 없는 남자가 새삼 유부녀에게 우산 하나를 건넨다고 누가 로망스를 떠올리겠는가.

    올리비아의 입가에 시니컬한 미소가 번졌다.

    ‘고자와 불임이라.’

    퍽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고쳐 쥐었다.

    “그래, 그렇군.”

    그 순간 애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건 불행이 내 운명이라는 뜻이잖아.”

    그 순간이었다. 막을 새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읏.”

    이런 곳에서 울면 안 된다. 보는 눈이 많았다. 남편도 없이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 같은 게 들켰다가는 얼마나 비웃음거리가 될지 몰랐다.

    ‘울면 안 되는데.’

    상대방 남자가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이, 눈물에 순식간에 흐려졌다. 올리비아는 손등으로 눈을 꾹 눌렀다.

    ‘한번 울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눈물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퐁퐁 솟아났다. 올리비아가 도망이라도 쳐야 하나 했을 때였다.

    “실례.”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 그녀가 목소리의 주인을 볼 사이도 없이,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아앗!”

    올리비아는 속절없이 그에게 이끌려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쏴아아.

    소낙비가 그녀의 온몸을 적셨다. 빗물에 뿌예졌던 시야가 맑게 개는 것만 같았다.

    올리비아는 멍하니 자신의 손목을 꽉 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빗물에 짙은 색으로 물드는 금빛 머리카락과, 베일 듯 날카로운 턱선이 흔할 리가 없었다.

    이안 타이론이었다.

    그는 올리비아와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다시 그녀를 끌어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정중하기 짝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 보좌관인 줄 알고. 사람을 착각했군요.”

    여자와 남자인데 착각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올리비아는 어이가 없어서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때 저 멀리서 비명 같은 부름이 울렸다.

    “마님!”

    “다행히 하녀가 잘 찾아온 모양입니다.”

    이안의 눈가가 부드럽게 휜 것 같았으나, 돌아서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올리비아는 멍하니 다시 빗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뒤늦게 그의 보좌관이 올리비아에게 내밀었던 우산을 부산스럽게 펼쳐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안 타이론.’

    그동안 대회의 등등에서 여러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인사 외의 말을 해본 것도 오늘이 처음 같았다.

    ‘의외네.’

    올리비아가 받은 인상은 단순했다. 그간 멀리서 보던 것과 많이 느낌이 달랐다.

    더 생각할 틈도 없이, 하녀가 호들갑을 떨며 올리비아의 곁에 왔다.

    “어머나, 마님! 이게 무슨 난리예요. 홀딱 젖으셨잖아요.”

    하녀의 말대로 빗물이 뚝뚝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 목 뒤를 적시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싱긋 웃었다.

    “아아, 떠밀리는 바람에 비를 맞고 말았단다.”

    “얼른 마차에 오르세요. 감기 걸리시겠어요.”

    “그래.”

    하녀의 입에서는 눈물 같은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비를 맞는 바람에 모두 씻겨 내려가버린 것이다.

    ‘일부러 그랬구나.’

    그녀가 타이론 공작의 보좌관 앞에서 큰 소리로 우는 모습이 들통 났다면 우스운 소문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눈치가 빨라.’

    게다가 일처리가 깔끔했다. 어설프게 그에 대한 감정을 가질 수도 없이 탁 치고 빠졌으니 말이다.

    이 소란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올리비아.

    그는 그녀를 배려한 것이다.

    ‘남을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올리비아는 다시 그쪽을 돌아보았지만, 이안은 이미 마차에 오른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하녀가 올리비아를 재촉했다.

    “마님, 빨리요!”

    “……그래.”

    빗속으로 사라지던 너른 등을 그려보던 올리비아는 고개를 돌렸다.

    * * *

    그 뒤로도 지긋지긋한 건 여전했다. 둘째 진상의 요양원행은 결국 불발되었다. 하도 자신을 죽이려는 거라고 난리를 쳐대는 통에 강행할 수가 없었다.

    둘째 진상의 딸이자, 제임스의 누나인 시누이가 올리비아에게 또다시 새된 소리를 쏟아내었다.

    “어머니가 아프면 당연히 정성 다해서 모셔야지. 돈으로 해결해보려고 해? 그렇게 정나미 없는 여자였어?”

    집무실에서 파넬의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있던 올리비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시누이가 대번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웃어? 지금 이게 웃겨? 내 말이 우스워?”

    “그래요, 우습네요.”

    시누이는 올리비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은 꾹 참고 들어주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올리비아는 피식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모시고 싶으시면 당신이 모시면 되지. 왜 나한테 와서 이렇게 왁왁거리는지 이해가 가질 않네요. 내 부모예요?”

    올리비아의 대꾸에 시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뭐라고? 파넬에 시집을 왔으면 당연히 네 부모이지! 그동안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머니들을 대한 거야?”

    옳은 말을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올리비아에게 삿대질을 하는 시누이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싸늘하게 식은 올리비아에게는 웃기기만 한 소리였다.

    올리비아는 그린 듯한 비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왜 내 부모야, 당신 부모지. 심지어 내 남편을 낳은 것도 아니고.”

    “뭐라고?”

    시누이는 기가 차다는 듯이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그때였다.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움찔거리는 시누이를 지나쳐 문을 열었다.

    “흥! 이제 자기 잘못을 깨닫고 날 피하는 건가?”

    웃기는 소리. 올리비아는 큰 소리로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들에게 말했다.

    “라난 부인께서 제 어머니를 몸소 모시고 싶다고 하시는구나. 어서 두 번째 어머님의 짐을 싸라!!”

    “뭐야?!”

    남을 비난할 때는 세상 최고의 효녀처럼 굴더니 정작 자신보고 모시라고 하니, 시누이는 바로 뒤집어졌다.

    “왜 내가 모셔야 하는데? 어머니를 딸이 모시는 법이 어디 있어?”

    “오늘부터 모시면서 타의 모범이 되시면 되겠네요. 부모 자식 간에 법이 어디 있나요. 당연한 도리지.”

    도리, 도리 찾던 것은 시누이 쪽이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되는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올리비아에게 그런 식의 비난을 하지 않았으리라.

    올리비아의 말에 시누이는 팔짱을 끼고 올리비아를 노려보았다.

    “지금 네 일을 이런 식으로 떠넘기겠다는 거야?”

    “떠넘기다뇨. 새언니가 너무너무 어머니가 걱정되어 조금이라도 더 잘 모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부모 자식 간의 도리를 운운하면서요.”

    그렇게 잘 모시려면 역시 친자식이 최고 아니겠는가. 올리비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시누이의 가슴을 박박 긁었다.

    “사사건건 제가 하는 일은 효도가 아니라고 하셨으니, 이참에 새언니께서 효를 보여주세요. 제가 보고 배우겠습니다.”

    “이, 이봐. 나랑 다시 이야기를…….”

    “어서 짐을 싸라! 농담이 아니다!”

    만날 자신이 세상 최고의 효녀인 척 굴던 시누이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두 번째 진상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진상도 친딸의 집에서 지내기를 강력하게 희망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진즉 이럴 것을.’

    그렇게 한 번에 골칫덩어리 둘을 처리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특히 시누이!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참고 살았는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대든 적이 없는 올리비아였으나, 애니를 본 탓에 신경이 곤두선 것인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었다.

    ‘다신 오지 마라. 물론 일주일 안에 돌아오겠지만.’

    저 성질머리에 제 어머니의 징징거림을 받아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 생각하며 올리비아가 돌아섰을 때였다.

    남편과 똑같이 생긴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기둥 뒤에 숨어서 얼굴만 빼죽 내밀고 있었다.

    ‘둘째.’

    유난히 시누이를 좋아하는 둘째 아이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시누이를 내쫓는 모습을 보았으니 무슨 생각을 할까.

    ‘또 시누이 편이나 들겠지.’

    심장이 다시 싸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올리비아는 턱을 꼿꼿하게 들고 말했다.

    “너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렴. 왜 그러니?”

    “어, 엄마.”

    둘째 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제임스를 닮은지라, 올리비아는 결국 먼저 시선을 슬쩍 피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였다. 둘째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첫째가 올리비아에게 또다시 미운 소리를 쏟아냈다.

    “이 못된 여자! 결국 할머니를 내쫓는 거지?”

    “얘야.”

    올리비아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네가 곧 아홉 살이던가?”

    “그, 그런데 뭐! 내 나이도 몰라? 역시 어머니 자격이 없어.”

    “…….”

    아이의 말에 올리비아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부모 자격이 없다는 건.

    ‘하지만 이런 비난은 비겁하지 않나.’

    올리비아와 시누이가 실랑이하는 것을 들은 사람이 하나둘이 아닌데, 내쫓는다는 표현은 너무나 억울했다. 그쪽이 일방적으로 비난했고, 자신이 하던 말에 스스로 발목이 잡힌 것 아닌가.

    올리비아는 첫째와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말했다.

    “귀가 있고 눈이 있으면 똑바로 들으렴. 내가 언제 내쫓았니?”

    “지금 내쫓으려고 하잖아! 언젠가 그럴 거라고 했었지. 할머니들 말이 옳았어. 천성부터 글러먹었다고.”

    “……그래.”

    아이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저것 또한 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괜히 아이가 밉거나 하지도 않았다.

    ‘너도 네 살 궁리를 하는 거겠지.’

    이 집구석에서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결국 올리비아는 이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럼 못된 여자랑 말 더 하지 말고 얼른 너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렴.”

    그건 올리비아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저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지나치게 피곤했다.

    ‘이게 인생인가.’

    곁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고, 울고 싶어도 울지도 못하는 신세.

    “답답해.”

    집무실에 도착한 올리비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마님.”

    “응?”

    하녀장이 그녀를 불렀다. 쉴 틈이 없이 서류가 그녀 앞에 쌓였다.

    “다음 달에 있을 생신 파티 건으로 결재해주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만.”

    “아, 그렇지. 이리 줘.”

    그녀의 마흔 번째 생일은 황후 폐하까지 행차하는 큰 행사가 될 예정이었다.

    ‘힘들어도 별수 있나. 멈출 수는 없으니.’

    계속 일하는 수밖에.

    그리 생각하며 올리비아는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 파티를 스스로 준비했다.

    시간을 돌리기 한 달 전이었다.

    * * *

    올리비아 파넬 공작부인이 죽었다.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었으나, 정황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성대한 마흔 번째 생일 파티를 앞두고, 공작부인은 긴장된다며 일찍 잠들었다. 밤새 침입한 사람은 없었고, 공작부인의 몸도 가지런하여 저항한 흔적이 없었다.

    완전한 돌연사였다.

    “……심장마비인 것 같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이 지병도 없던 여인이 숨졌으니, 심장마비라는 결론뿐이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결론을 낸 파넬 공작가의 주치의는 자신을 응시하는 파넬 공작가의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런…….”

    놀란 듯했지만, 공작의 어머니의 입꼬리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누가 봐도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더니.’

    이미 파넬 공작가에서 오가는 신경전을 알고 있는 주치의는 눈을 내리깔고 웃음을 못 본 척했다. 아무리 그래도 죽었는데 좋아하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흘린 것은 단 한 사람이었다.

    “엄마!”

    바로 두 번째 공자. 아직 어린아이라서 그럴까. 반듯하게 누운 싸늘한 시체를 보고 무서운 듯 뒷걸음질을 치던 두 번째 공자는 이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엄마! 안 돼! 엄마!!”

    “시끄러워!”

    그리고 첫 번째 공자가 그런 동생을 날 선 어조로 나무랐다.

    “안아주지도 않는 엄마가 무슨 엄마라고.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하지만 형아! 엄마가! 엄마가!!”

    “시끄럽다니까!”

    두 번째 공자의 절규는 결국 첫 번째 공자가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두 번째 공자의 모습은 더더욱 주치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묘하게 반응한 건 다름 아닌 올리비아의 남편, 제임스 파넬이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지?”

    “예?”

    주치의는 벌벌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덩치에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거야…….”

    꼭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하나. 주치의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렀다. 저 어린 공자들조차도 모두 심장마비라는 말에 상황을 알아들었는데, 산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진 파넬 공작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주치의는 땀에 밀려 흘러내리는 안경을 바짝 올려 쓰며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돌아가셨습니다.”

    “…….”

    그 말을 내뱉은 뒤, 주치의는 조금 놀랐다. 산처럼 강건할 것만 같던 제임스의 몸이 비틀거렸기 때문이다.

    “공작님!”

    “각하!”

    사실 조금 놀란 것은 주치의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용인들도 크게 충격받은 듯 휘청하는 제임스의 모습이 의외였다.

    ‘별로 사이가 좋지 않으신 것 같더니.’

    ‘데면데면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부는 다른 걸까.’

    제임스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떨리는 눈으로 올리비아를 응시하던 그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번에도 나만 남은 건가…….”

    의미가 모호한 말이었으나, 충분히 놀라서 횡설수설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누구 하나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황망한 듯 중얼거리던 제임스는 누워 있는 올리비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얼음처럼 굳어 있는 그녀의 손등에 이마를 대었다.

    “부인.”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건만,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는 얼굴에서 짙은 슬픔이 묻어났다.

    평소의 제임스는 아예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늘 무뚝뚝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더더욱 인상 깊었다.

    ‘사실은 무척 사랑하셨던 걸까.’

    ‘하긴, 싫어하는 여자의 침실에 매일같이 들었을 리가 없지.’

    ‘그 흔한 염문 하나 없었고.’

    그동안 왜 제임스가 올리비아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정황들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제임스가 올리비아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두 공자들마저도 말이다.

    “아버지…….”

    “흐허어엉, 엄마.”

    첫째 공자는 존경해마지 않는 아버지가 자신이 경멸하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에 충격 받았고, 둘째 공자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일어나세요, 공작. 공작은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모두가 침통해하는 분위기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시어머니가 큰 소리로 제임스에게 말했다.

    “…….”

    하지만 제임스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상처 입은 곰처럼 눈을 감고 그저 거칠게 숨만 내쉬었다.

    그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도대체 이번에는 누가 당신을 이렇게 해친 걸까. 이번에도 나에 대한 복수였을까.’

    제임스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오로지 범인만을 추리했다. 지난 생의 경험으로, 그는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에 띄어봤자, 올리비아를 잃을 가능성만 높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도대체 누가…….’

    전날까지 그렇게 생생했던 여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을 리가 없었다. 제임스는 당장이라도 이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을 처죽이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누르며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 누굴까. 누가, 무슨 방법으로,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올리비아의 일을 돕던 보좌관이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각하, 침통하신 마음은 이해하나, 이렇게 계시면 안 됩니다. 오늘이 날인지라 이미 귀빈들이 올 채비 중이실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었음을 서신으로 알려야 합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마님의 마흔 번째 생신 아닙니까.”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반문에 보좌관은 조금 짜증이 났다.

    지금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황후 폐하는 물론이요,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축하하러 오기로 한 날인데, 당사자가 사망해버렸다.

    ‘이대로라면 장례식에 파티인 줄 알고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이 대거 생겨날 판인데.’

    정작 가족들은 생일이 오늘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보좌관이 조금 더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마님께서 분명히 지난달부터 전달했던 걸로 아는데요! 의상도 모두 맞추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냥 간단한 홈파티 아니었나?”

    “도련님!”

    당혹스러워하는 첫째 공자의 반문에 보좌관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싶어졌다.

    ‘전부터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도대체 마님은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집안을 이끌었던 것인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보좌관은 거두절미하게 제임스에게 본론만 말했다.

    “어서 서신을 보내야 합니다.”

    그의 말에 제임스는 사나운 어조로 대답했다.

    “보내면 될 거 아닌가?”

    “예?”

    “보내면 될 거 아니냐고. 고작 그런 이유로 나를 귀찮게 하는 건가.”

    “지, 지금 그럼 제가 알아서 보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서신은 엄연히 집안의 안주인의 일이고, 지금과 같은 안주인의 부재 시 주인이나 주인의 모친이 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제임스는 보좌관을 내쫓았다.

    “얼른 가서 네 할 일을 하도록. 나는 조금 더 부인의 곁에 있고 싶다.”

    “허허.”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대부인께서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둘째 부인도 내쫓기고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셋째 부인은 하녀 출신의 무지렁이였다.

    ‘도대체 이 집안이 어떻게 되려고.’

    한숨을 내쉬며 보좌관은 올리비아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벌써부터 돌아가신 마님이 그리웠다.

    * * *

    이어진 올리비아의 장례식은 난리도 아니었다. 서신을 받았어도 파티 참석 준비를 하느라 뜯어보지 않았던 가문이 많았던지라, 엄숙해야 할 장례식에 온갖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가장 슬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올리비아의 절친한 친구 로메오였다.

    “세상에, 올리. 어떻게 이런 일이.”

    로메오는 황후로서 무척 행동거지를 조심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남자였다.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상냥하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올리비아의 죽음 앞에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떠난 거야.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떠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체통도 잊은 것처럼 큰 소리로 우는 황후를 보고 다른 귀족들도 많은 애도를 표했다.

    “훌륭한 분이셨죠.”

    “신께서는 좋은 분을 먼저 데려간다더니, 그래서였나 봐요.”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눈을 감아도 감는 게 아니었을 것 같네요.”

    그 모습들이 올리비아의 두 아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했다.

    ‘할머니들은 어머니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에, 성질도 못되어서 친구도 하나 없을 거라고 했는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심지어 늘 칭찬하던 아버지가 오히려 이 상황에서 겉도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아버지를 어려워하고.’

    위대한 사람이라서 대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그저 꺼려져서 피하는 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

    “고생만 하고 떠나다니, 가엾은 내 친구.”

    황후의 그 한 마디가,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심지어 장례식에 와서 흉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다지만 손님을 이렇게 대하는 법이 어디 있죠?”

    “알잖아요. 그동안 파넬이 누구 덕분에 굴러갔는지…….”

    “주인 없는 티를 이렇게 내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쯧쯧.”

    손님들은 올리비아를 파넬의 주인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머니를 가장 함부로 대했는데.’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이 태어나서, 운 좋게 공작부인이 되어서 욕심이 많아 할머니들을 괴롭히는 여자.

    그것이 공자들이 알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올리비아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다들 죽으니 동정심을 가지는 모양이지. 저 말이 사실일 리 없어.’

    첫째 공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얼른 이 음울한 행사가 끝나길 소원했다.

    허나 장례식이 끝나면 사라질 줄 알았던 변화는 더더욱 극심해졌다.

    당장 집안에서부터 사람이 없는 티가 나기 시작했다. 어린 공자들은 알 수 없었지만, 가문의 사업도 구멍이 뻥뻥 나기 시작했다.

    이 순간 자리를 지켜야 하는 제임스는 무엇에 정신이 팔린 건지, 범인을 잡겠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늘 부재 상태였다.

    필사적으로 올리비아의 빈자리를 메꿔보려던 보좌관은 결국 사표를 던졌다. 떠나며 내뱉은 한마디 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파넬에 실망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파넬에서 일한 보좌관의 말에 첫째 공자는 달려가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어째서 그렇게 말해?”

    “도련님.”

    “어머니는 나를 한 번도 안아준 적도 없는 사람인데 어째서…….”

    그런 사람이 없어졌다고 파넬을 버려? 왜 집에 이렇게 변화가 일어나는 거야?

    혼란스러움이 역력한 첫째 공자의 얼굴을 마주하며 보좌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시간이나 있으셨겠습니까?”

    이 넓은 집을 혼자 꾸려나가느라.

    얼음처럼 굳은 첫째 공자를 내버려두고 보좌관도 파넬을 떠났다.

    그 뒤로도 오랜 시간, 아이는 제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처절하게 깨달아야 했다.

    죽음으로써 깨달은, 지독한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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