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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그 남자의 장례식 (24/28)

외전. 그 남자의 장례식

그 남자가 죽었다.

소식을 들은 건 늦은 오후였다. 서신은 오르세로 전달되었다. 서신에 적힌 소식을 읽으며 나는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아니, 실제로도 거짓말 같았다.

‘그렇게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더니만.’

서신에 적힌 것은 다름 아닌 제임스 파넬 공작의 서거 소식이었다.

‘결국 그 쪽에서 죽었군.’

그는 수도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생과 달리, 더 이상 북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음에도 그곳에 남았고,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의 시끌시끌한 세 시어머니가 한동안 새 며느리를 들이겠다고 사교계를 들쑤시고 다닌 것은 유명했다. 실제로 꽤 괜찮은 후보도 추렸고.

‘수도로 돌아왔으면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을 텐데.’

적어도 이렇게 허망하게 혼자 훌쩍 떠나지는 않았으리라.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네.’

하긴, 언제는 내가 이해할 수 있었나.

코끝으로 한숨을 내쉬며 서신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이안이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괜찮아요, 올리비아?”

“괜찮지 않을게 뭐 있나요.”

얼굴에 닿는 이안의 금빛 머리카락이 간지러워,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 감정 없어요. 사실은 실감도 나지 않고요.”

담담한 것에는 그게 가장 컸다. 그는 늘 나보다 오래 살았다. 지금도 그가 여전히 살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차라리 나가서 콱 죽기를 바랐을 때도 있었는데.’

부부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남편 없는 여자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할 때에는 죽지도 않더니만, 죽든 말든 아무 상관 없어지니 죽다니.

‘나도 잘 모르겠다.’

자기 마음을 알 수 없어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그 대단한 남자를 죽일 수 있었을까요.”

“지병이 있었을 수도 있지.”

“그럴 리 없어요. 아주 건강했던 걸요.”

미래의 그는 지금 순간에 죽지 않았다. 미래가 바뀌었다는 건 내가 모르는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설마 시간을 돌린 것과 관계 있을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내가 입술을 깨물었을 때였다. 다정한 손길이 내 머리를 쓸어넘겼다.

“올리비아.”

나는 이안과 시선을 맞추었다. 이안은 평소와 같았다.

“신경 쓰이면 같이 장례식에 참석합시다. 어차피 우리의 귀국길에는 파넬 령을 지나야 해요. 지금쯤 출발하면 묘지에 안장할 때쯤 도착할 수 있겠군요.”

“정말 그럴 필요 없어요.”

“올리비아.”

그는 내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가 보기에는 당신에게도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 보여요.”

“…….”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치 내가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려던 내 속을 억지로 바라보게 된 기분이었다.

한없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이안은 의지하고 싶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곁에서 꼭 붙들어줄게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옵시다.”

“……고마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침 오르세에서 제국으로 귀국하려던 차였기 때문에, 일부러 서둘러서 짐을 꾸릴 필요도 없었다.

어린 길리언은 마차에 오르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나는 길리언의 등을 토닥이며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왜 전생과 달라진 걸까.’

제임스의 죽음은 그만큼이나 당혹스러웠다.

‘아직 나는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병도 없고, 암살자가 아무리 달려들어도 끄떡도 하지 않을 만큼 강한 남자를 죽게 만든 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었다. 이제 그와 남남이 된 내가 답을 알고 있는 것도 우스울 테지만 말이다. 이안은 내가 심란하다는 걸 눈치채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센스 있는 남자였다.

국경을 넘어 오래지 않아, 파넬 령에 도착했다. 이안의 말대로 수도에서 장례식을 끝내고, 파넬 령에 있는 묘지에 관을 묻기 위해 관과 가족들이 내려온 참이었다.

‘정말 죽었구나.’

그제야 한 장 서신으로 읽었던 사건들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마차에서 내린 우리 부부에게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우아한 여인이 인사를 해왔다.

로자 파넬. 바로 첫째 진상이었다.

‘아직 살아 있었구나.’

그녀의 장례식이 이맘때였던 거 같은데. 내 기억 속에서는 죽은 사람이 살아 있고, 오래 살아야 하는 사람은 죽어 관에 누워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로사 파넬은 담담한 어조로 내게 인사해왔다.

“오랜만이군요.”

“네, 오랜만이네요.”

그녀의 존댓말이 나의 달라진 위치를 느끼게 했다. 나는 슬쩍 상황을 살폈다. 둘째 진상이 보이질 않았다.

“둘째 부인은요?”

“건강이 좋지 않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만날 아프다, 아프다 징징 거리더니 결국 제임스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셈인 듯 했다. 셋째 진상은 천으로 덮힌 관에 엎드려서 꺼이꺼이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아이고, 내 아들. 내 아들.”

그리고 첫째 진상은 그런 셋째 진상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울지도, 비틀거리지도 않는 모습에, 조금의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괴리가 있어 보였다.

‘친어머니는 저 사람 하나니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제임스는 셋째 진상의 아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다들 너무한다 싶었다.

‘제임스 하나에게 붙어서 공동육아라도 한 것처럼 굴 때는 언제이고.’

특히 나를 괴롭힐 때면, 세 명은 모두 한 몸인 것처럼 쿵짝이 잘 맞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저렇게 각자 다른 태도를 고집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내가 위화감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첫째 진상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침 타이론 대공비 부부께서 오셨으니, 잘되었다 싶군요.”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잘될 것이 무엇이 인단 말인가.

내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첫째 진상이 어떤 아이를 우리 부부 앞으로 불러 소개했다.

“다음 대 파넬 공작위를 물려받을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누구죠?”

설마 제임스가 죽기 전에 결혼해서 이렇게 큰 아이를 낳았을 것 같지는 않고.

첫째 진상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제임스가 숨을 거두기 전에 양자로 들였습니다. 먼 친척 아이지요.”

나는 다시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제임스와 하나도 안 닮았는데.’

붉은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뿌려진 얼굴은 짓궂게 보였다. 장난이라고는 조금도 몰랐던 제임스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첫째 진상의 말에 관을 붙들고 울던 셋째 진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음 대 공작위라니! 그게 말이 되어요, 형님?! 아직 이 아이가 흙에 묻히지도 않았는데!”

침통해서 울부짖는 셋째 진상에게, 첫째 진상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평생 천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사는 것이다.”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닌데도 저절로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설마 그런 폭언이 자신을 향할 줄 몰랐던 셋째 진상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첫째 진상을 바라보았다.

첫째 진상은 엄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개개인의 생명과 달리 집안의 뿌리는 이어져야 하는 것. 슬픔에만 잠겨 있으면 무슨 일이 해결되느냐.”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잖아요!”

셋째 진상은 손가락으로 아이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그 아이는 형님네 집안 아이 아닙니까! 우리 제임스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입 다물어.”

첫째 진상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한낱 하녀 나부랭이였던 너와 내가 함께 어머니 소리를 들으니, 같은 줄 알았느냐?”

“그, 그런…….”

멀리서 바라보며 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또 멋대로 도장을 찍었구나.’

제임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파넬로는 빨리 전해졌을 터. 그래서 옛날부터 제임스의 인장을 관리하던 첫째 진상이 발빠르게 자신의 집안 아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 양자입적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저게 사실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진심일 거야.’

- 내가 너와 같은 줄 알아?

비록 아이를 낳지 못해 줄줄이 첩이 들어오는 걸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엄연히 귀족. 하녀였다가 운 좋게 아들을 낳아,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그녀를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란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두리번거리던 셋째 진상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올리비아! 얘야, 네가 말 좀 해주거라! 이게 말이 되니?!”

“…….”

하지만 타이론 대공비가 된 내가 구태여 저 상황에 낄 이유는 없었다.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추모할 상황이 아니기에, 별다른 인사 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이안도 그런 내 뒤를 이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임스가 불쌍해요.”

아까는 담담하게 그 꼴을 볼 수 있었는데, 막상 한 마디를 내뱉고 나니, 울컥했다.

“저런 사람들이 뭐라고 편을 들고, 평생 이용만 당하다가 죽었는지.”

“개인의 불쌍함과 상황의 합리성은 다른 거 아니겠습니까.”

이안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현실을 짚었다.

“제가 파넬 공작이라면 어머니와 당신을 짝지어 첫째, 둘째 부인을 집안에서 배제했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이안은 조금 냉정한 미소를 지었다.

“이도 저도 판단하지 못하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같은 과오를 반복했다면 구제할 수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의 커다란 손이 가볍게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운이 좋아, 태어날 때부터 넉넉한 가정에서 완벽한 부모를 둘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안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방탕한 선대 덕분에 귀한 유년시절을 이리저리 떠돌았으니 말이다.

“자기 한 몸만 챙겨서 불행에서 탈출하는 걸,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자책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조금쯤?”

나는 이안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곳에서는 편안하게 쉬어요,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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