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사랑받고 싶어서 매달리는 불쌍한 조슈아. 코트 자락을 쥔 조슈아의 손을 덮어 쥐었다. 최소한 자신이 싼 똥은 스스로 치울 줄 알았다.
“또 만나야죠. 신관 알려줘야 하잖아.”
“…….”
그리도 두려워하던 시선과 비웃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눈앞에 닥친 절박함에 다른 상황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기약된 다음. 자신의 구원자가 달아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안도감. 약속된 다음마저 자신을 위한 일이어서 느껴지는 감사함이 조슈아를 완전히 무너트렸다.
벨리타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얼굴을 묻었다. 손등이 축축하다. 감사하다고 연신 되뇌는 조슈아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조슈아를 마차 안으로 처넣었다. 바닥에 나뒹굴든, 벽에 머리를 박고 악 소리를 내든 알 바가 아니었다. 사용인들을 멀리 물리고 덩그러니 놓인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의자에 얌전히 양손을 모으고 앉아 훌쩍이는 조슈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이고 몬난 놈. 허구한 날 울어싸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자, 뚝 해야죠. 뚝 해요, 뚝.”
“……눈, 물이…… 안, 멈, 춰요.”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울어요. 응? 뭐가 그렇게 서러워.”
“안, 서러워요. 흡, 으으……. 기분이 너무, 좋은데. 눈물이, 나……요.”
이상하다며 우는 조슈아를 다그칠 수도 없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울까 싶기도 했다. 역시 오지랖이 잘못했다. 그냥 내버려 뒀으면 알아서 잘 살았을 텐데.
하지만 울고불고 매달리는 꼴을 보니 내버려 두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절실했다는 게 너무 잘 와닿았다. 불쌍한 녀석.
벨리타는 조슈아 앞에 쭈그려 앉아 양 무릎을 쥐었다. 단단한 뼈대와 그 위에 짜인 근육이 천 너머로 느껴졌다. 실하구먼.
아래에서 보니 우는 얼굴이 너무도 잘 보였다. 우는 얼굴도 고왔다. 딸 취향이 이런 취향인가. 딸과 마음의 거리감이 조금 생겼다.
“그만 울고요. 나도 집은 가야죠.”
“죄, 송해요. 죄송해요…….”
“미안해하지는 말아요. 우리 또 볼 건데 볼 때마다 울 거예요? 웃는 얼굴로 보내줘야 웃는 얼굴로 생각날 거 아니야.”
“……네, 맞아요. 다 옳아요.”
“그러니까 뚝 해요. 착하지. 응?”
“……그러면, 제가 찾아가도 되나요?”
“응?”
“찾아갈게요. 영애에게, 영애가 있는 곳으로 갈게요.”
웃는 얼굴로 기억되고 싶다고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미소 짓는다. 무릎을 쥔 손을 큰 손으로 덮으며 허락만 한다면 어디라도 쫓아갈 듯이 말했다.
벨리타는 귀찮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책임은 지려고 했으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찾아와 봤자 벨리타의 집밖에 더 되겠나.
너그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조슈아는 그제야 해맑게 웃었다. 티 없는 얼굴이었다. 나이에 맞는 밝은 웃음. 배시시 웃는 꼴이 꽤 귀엽다. 강아지 같았다.
벨리타도 마주 방긋 웃었다.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밝은 미소였다.
“그래요, 그래.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자~ 그러면 이제 가야지.”
“……네, 네. 가셔야죠.”
“그러니까 좀 놓으세요, 소이트 남작님.”
손이 아직까지 잡혀 있었다. 놓으라는 말에 시무룩해진 모양이 딱 강아지였다. 그럼에도 놓지 않아 쏙, 손을 빼냈다. 졸지에 자신의 무릎을 쥔 꼴이 된 조슈아가 황망한 얼굴로 벨리타를 바라봤다. 뭐. 어깨를 으쓱이곤 조슈아를 일으켜 마차에서 내쫓았다.
멀리 보내놓았던 사용인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고 마차 앞에 멀거니 서 있는 조슈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인사하는 벨리타의 얼굴이 미묘하게 개운해 보였다.
“그럼 난 가요! 잠 좀 자고 밥도 잘 챙겨 먹어요~!”
참 밝고 따뜻한 사람인데 서러울 정도로 매몰차다. 빠르게 사용인들을 태우고 갈 채비를 끝내자마자 지체 없이 곧장 떠나버렸다. 저 멀리 점이 되어가는 마차를 바라보며 조슈아는 저택의 정문에 서 있던 집사에게 소리쳤다.
“지금 하는 일이 끝나는 대로 파텔 영지로 간다. 준비해둬.”
*
순조로운 귀향길이다. 마을에서 밥도 잘 챙겨 먹고 마지막으로 이온과 눈물의 작별도 나눴다. 실제로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디저트도 한가득 챙겨 마차에서 엘라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소이트 남작이 그 꼴을 하냐고 묻는 말에는 열심히 회피해줬다.
아무리 자기가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남의 사생활을 들춰낼 수는 없었다. 엘라가 둘의 사이를 의심했지만 조용히 하고 간식이나 먹으라며 입에 쑤셔 넣어주니 얌전해졌다.
겨울이었지만 마차 안은 보온 마법 덕에 따뜻해서 엘라와 벨리타는 파텔 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입 쩍 벌리고 깊은 잠을 잤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용인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가씨 몸은 괜찮으시냐, 쓰러지지는 않으셨냐 걱정을 해 벨리타는 너무 잘 지냈다고 종종 여행이라도 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당연히 사용인들은 기절초풍했다. 책 하나 겨우 드셨던 벨리타 아가씨께서 여행을 갈 정도로 몸이 회복되다니,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벨리타는 뻐근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아닌 척 슬그머니 벨리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슬렁거렸다. 저 양반들 저기서 뭐한담. 벨리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어요. 별일 없으셨죠?”
“별일 없었다. 너는 어땠니.”
“재미있었어요. 친구도 사귀었고요.”
친구라는 말에 벨리타의 어머니 라빌과 아버지 테일러는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딸 친구 생겼다. 성깔 더러워서 적이나 생기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까지 만들어 왔단다.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미친 딸 아니던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 파티에 보낼 때도 안 된다, 안 된다, 그렇게 말렸다가 겨우 보낸 거였는데.
테일러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걱정과 애정이 가득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괜한 녀석을 친구로 만든 건 아니겠지?”
그랬다. 이 집구석은 티를 내는 법이 없었다. 벨리타는 그 질문에 골똘히 생각했다. 괜한 녀석이라면 소이트 남작 정도인가. 개처럼 따르던 조슈아를 떠올렸다. 귀찮게 굴 게 뻔했다. 매달리고 간섭하고 집착하는 건 영 별로였으니까. 그 외에는 디저트 사장 이온을 포함하여 백작, 자작, 남작 부인들이니 그들은 괜한 사람이 아니지 않나.
“괜한 친구라면…… 소이트 남작 정도겠죠?”
테일러는 뒷목을 잡을 뻔했다. 그 능구렁이 같은 녀석과 친해질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거다. 소이트 남작이라면 분명 성깔 더러운 미친 딸과 친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보내지 말았어야 했나, 후회가 들었다.
“속이 검은 녀석이야.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라.”
“착해요. 순하고.”
“……뭐?”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고, 피곤해라. 허리가 다 쑤시네.”
허리를 이리저리 꺾으니 우두둑, 뼈 소리가 났다. 기겁한 테일러가 어서 들어가서 쉬라며 손짓했다. 라빌은 아무 말 없이 벨리타를 훑어보다가 툭, 말을 던졌다.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한 말투와 태도였다.
“찬 바람을 많이 쐬었을 테니, 당분간 나가는 건 자제하도록 하렴.”
“내일 일어나서 몸 상태 보고요. 아침부터 밤까지 마차 안에 있으니까 죽겠네요.”
“죽지 말고.”
“그럼요.”
벨리타는 그럼 들어가 보겠다며 인사를 마치고 쫄래쫄래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씻고 옷 갈아입으라며 잔소리하는 엘라에게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하면서.
그를 지켜보던 테일러와 라빌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벨리타의 요구에 기뻐서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고 홀라당 파티에 보냈더니. 뱀 같은 녀석과 친구가 되어 돌아왔다. 장사 수완이 무척 능통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사람 좋아 보이지만 결코 아니었다.
대화의 흐름을 주도해 상대를 벗겨 먹는 녀석이다. 거래와 계약도 마찬가지였다. 긴장을 하고 있어도 정신 차려보면 남작의 손해는 전혀 없는 거래가 성립되어 있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파텔 상단과 겹치는 거래가 없어 접점은 없었다만, 언젠가는 모를 일이다.
속이 검은 뱀이 벨리타를 인질 삼아 파텔 상단을 이용할 수도 있고 벨리타를 구슬려 상단과 가문을 무너트릴지도 모른다. 벨리타는 몸도 약한 데다가 세상을 모르는 아이 아니던가.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남작이 진심으로 벨리타를 친구로 생각할 리 없었다.
부부는 일심동체였다. 라빌과 테일러는 같은 생각을 했음을 깨닫고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었다. 티 내는 법이 없어도 오랜 시간 붙어 살면 생각쯤이야 읽게 되는 둘이었다. 당분간 벨리타가 소이트 남작을 만나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굳게.
*
일주일이 지났다. 밖은 쌀쌀했고 저택 밖으로 나갈 일도 없었으며 마을을 싸돌아다니려고 해도 사용인들이 기를 쓰고 막아댔다. 초겨울이어도 겨울이라고 소복하게 눈도 내렸다. 쉬는 건 좋다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 안만 돌아다니니 미칠 노릇이었다.
책을 읽어도 이미 벨리타가 읽었던 것들이라 재미가 없었고 집안일을 하려니 사용인들이 가서 쉬라며 쫓아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벨리타는 오늘도 어김없이 주방에 들어갔다가 고기 한 점 얻어먹고 쫓겨났다. 그래서 결국 침대 행이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봤다. 벨리타가 이런 삶을 살았겠구나. 무기력하고 생기 없는 이런 생활을. 방 안에는 벨리타만이 남아 있어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핸드폰도 없고 티비도 없다. 심심해서 돌아버리겠다.
그동안 벨리타의 삶에 익숙해지느라 정신이 없어 잊어버린 채 있었다. 생존에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사무치게 와닿았다. 자신의 친구들, 종업원들, 가게, 딸.
딸.
내 딸.
마지막까지 잔소리나 들어야 했던 딸. 내 아이. 벨리타는 이불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손이 벌벌 떨렸다. 밥을 먹어도, 눈을 떠도, 숨 쉬듯이 떠오르는 내 아이. 밥은 먹었을까. 내 잔소리에 상처받지 않았을까.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을까.
내 몸은 어떻게 되었지.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난 왜 이곳에 있지. 어떻게. 어떤 이유로 자신이 죽지 않고 소설 속에 들어와 주인공의 몸을 가지게 되었을까. 벨리타는 파도처럼 물밀듯 쏟아지는 생각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젊음을 즐기는 건 됐다. 이젠 돌아가야 할 때였다.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죽어 볼까. 죽어 보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까.
벨리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들 하지만. 이곳은 자신의 이승이 아니다.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넓은 창문 끝에 늘어진 커튼 위로, 장식품이랍시고 얽혀 있는 밧줄이 보였다. 금줄로 엮인 밧줄. 화려한 장식품. 벨리타는 끈을 떼어내 천장에 걸었다. 부모도, 사람들도, 재력도 그 모든 것이 제 것이 아니다. 이 몸마저도.
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벨리타의 소중한 것들은 다 이곳에 없었다. 정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다. 어차피 현실이 아니니까. 언젠간 떠나야 할 테니까. 몸서리쳐지게 외로웠다.
벨리타는 두껍게 목을 감싸는 밧줄을 잡고 밟고 있던 의자를 찼다. 흔들리는 인영만이 넓은 방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