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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이 자꾸 내 속을 훔쳐본다-109화 (109/109)
  • 109화

    *허락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앙증맞은 숲, 그 안에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는 꽃나무들.그 밑에 선 디에고와 비비안이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 이제 부부예요.”

    들뜬 목소리에 한껏 즐거움이 묻어난다.그런 그녀를 단숨에 안아든 디에고가 비비안을 빤히 본다.

    결혼, 그녀를 옭아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막상 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밤하늘을 등지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맑은 보랏빛 눈동자를 샅샅이 뒤져본다.저와 같은 욕망의 한 자락을 찾기 위해서.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비비안의 입술로 향하는 그의 목선에 핏줄이 도드라졌다.가볍던 입맞춤이 서로를 오간다.그 장난스러운 접촉에 푸스스 웃어버린 비비안이 디에고의 목에 팔을 두르고 껴안았다.

    “…이제 들어가요.”

    디에고의 목덜미에 닿은 부드러운 입술이 속삭였다.

    그에 지그시 눈을 감은 그가 그녀를 고쳐 안고 저택으로 향했다.침실, 문이 열리자마자 디에고가 비비안을 내려 입을 맞췄다.탁―그녀의 등 뒤로 밀린 문이 그제야 닫히고.두 사람의 숨결이 농밀하게 섞여들었다.더는 뒤로 도망갈 곳 없는 비비안을 디에고가 마음껏 탐하기 시작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허리를 쓸고, 나아가 그녀의 한쪽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그와 동시에 움찔, 몸을 떤 비비안을 달래듯 디에고의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내려앉았다.비비안이 그의 셔츠가 구명줄이라도 된다는 듯 다급하게 움켜쥐었다.

    “하아.”

    짙은 열기가 묻어나는 숨이 연신 터져 나왔다.끝내 비비안을 안아든 그가 침대로 향했다.

    제 위로 덮쳐진 디에고를 멀거니 바라보던 비비안이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끌어내렸다.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머금는 그녀의 서툰 몸짓에 디에고가 입술을 짓씹었다.

    “제발, 비비안.”

    주체할 수 없이 일어나는 욕망에 디에고가 애원했다.비비안의 이마에서부터 꽃잎을 남기듯 절절히 들끓는 마음을 내리눌렀다.한참 숨을 앗아갈 듯 맞물려 있던 것에서 물러난 디에고가 그녀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잘근 물고는 미끄러지듯 귓가에 닿았다.

    그 아찔한 감각에 눈을 감아버린 비비안이 디에고의 팔을 붙들었다.제 팔에 매달린 가녀린 손을 부드러이 감싸 침대 위로 내리누른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훑어 내려갔다.그 사랑 속에 파묻혔던 느낌이 다시금 되살아나자 비비안의 얼굴이 상기되었다.붉게 달아오른 뺨.

    부풀어 오른 여린 입술은 살짝 벌어진 채였다.그를 내려다보던 디에고의 눈동자가 일렁였다.눈을 뗄 수 없건만,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자극적이지 않는 곳이 없어서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완벽한 신뢰와 흥분으로 점철된 기대감이 비비안의 눈동자에 가득 담겨 있다.그게 마지막 도화선이 되어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그의 입에서 다급한 탄성이 터졌다.

    “…하.”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감은 디에고가 비비안을 감싸 안았다.

    귓가에 나직이 흐르는 그녀의 더운 숨결로 인해 더 정신이 없었다.온통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기댈 곳은 서로뿐이라는 듯 한없이 더 파고들었다.다디단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름을 되뇌었다.

    “…디, 에고.”

    고개를 든 그가 비비안의 손바닥 깊숙이 제 입술을 묻었다.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디에고의 눈동자만은 또렷이 담아내는 그녀였다.*물속을 부유하는 기분이다.

    온몸이 나른해서 금방이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잠이 들려고 하면 깨어나고, 깨어나고.일련의 상황을 반복 중이다.

    “…….”

    이상하다, 끝났는데.

    이거 처음이랑 너무 다르잖아? 디에고가 계속 내 곳곳에 입맞춤을 해서 간지러웠다.

    “디에고~”

    “응?”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답하면서도 하던 행동은 멈출 생각이 없구나.

    “…졸려.”

    그만 놔달라는 말을 이렇게 전해본다.우뚝 멈춘 채 말이 없는 그가 이상해 시선을 내리자 해사하게 웃는다.

    되게 환한 미소인데, 이상하게 음흉했다.왜지,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돋은 것 같은데.

    “한 번만.”

    한 번? 뭐가 한 번만이야.

    잔뜩 열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에 가슴이 찌릿했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내 입술을 물고 늘어진다.

    한없이 맞대었던 탓에 부어오른 입술이 그의 입 안에서 뭉개졌다.

    “우으―”

    설마, 지금 우리 신나게 사랑을 속삭였는데.

    그걸 또 하자고? 아닌데!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또다시 폭풍 속으로 휘말려 들 것 같아 초조하다.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여전히 야했다.

    “끄, 끝 아니었어요?”

    “설마.”

    혼란스럽다.

    나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것을 끝까지 다 본 거라고 착각했던 걸까.

    설마, 라고 말하는 디에고의 표정에 장난기가 없었다.너무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맙소사, 몰랐다.

    나는 아직도 뭔가를 모르는 게 분명했다.

    “비비안, 우리는 이제 막 새로운 놀이를 시작한 건데.”

    놀이? 천진하게 웃으면서 말하면 다 순수한 건 줄 아는 걸까.

    디에고의 입에서 튀어나온

    ‘놀이’

    는 어딘가 질척하고 야릇한 것을 품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둘만 할 수 있는 놀이.”

    넘어가면 안 되는데.

    느낌이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이 사기 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즐거울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

    눈치 없이 침이 꿀떡, 넘어갔다.뭐가 더 남았는데, 대체.

    즐겁다니.

    어떻게 하면 막 즐겁고 그런 건데?안 궁금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심하게 궁금했다.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자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그의 눈이 번뜩였다.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디에고, 나 너를 믿어본다.그와 함께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다 해보고 싶었다.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을 나는 수 초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게 되었다.내게 쉼 없이 닿았던 손길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 집요한 손길에 칭얼대면 디에고의 입술이 내렸다.

    “…아.”

    벌써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각이 무서웠다.

    “못 해.

    못 하겠어.”

    눈물이 났다.

    정말 슬퍼서도 울고, 행복해서도 울어봤지만.이런 눈물도 있다는 것은 몰랐다.

    “쉬이― 숨 쉬어, 비비안.”

    디에고가 멈춰주면 좋겠는데.

    끝을 모르고 어딘가로 내달리는 몸짓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그러나 쉽사리 놔주지 않았다.애틋한 눈길로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가차 없이 밀려드는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흐드러진다.

    “하아― 진짜 너무해.”

    목소리마저 다 쉬어버렸다.

    아직도 서러운 마음에 그를 노려보자 난감하게 웃는다.쀼루퉁한 내 얼굴을 보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그가 뺨을 주욱 잡아 늘인다.이거 그 언젠가 비몽사몽 한 채로 하던 그거 아닌가? 왜 또 그러니.

    “아가가 비비안 닮으면 너무 예쁠 텐데.

    어쩌지?”

    “아가요?”

    지금 아이 계획을 짜보자, 이건가.

    그렇다면 나는 디에고를 닮은 아들과 디에고를 닮은 딸, 나를 닮은 딸과 나를 닮은 아들을 낳으면 좋을 것 같은데.

    “디에고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는 듯 그의 눈썹이 치솟았다.

    아니, 아기 얘기는 네가 먼저 꺼내놓고.

    “난 너만 있으면 충분해.”

    산뜻했다, 아주.나를 그렇게 몰아붙일 때는 언제고 다른 사람이 온 것처럼 상쾌해 보이는지 모르겠네.

    “그런 것치곤 아기가 생길 만한 행위에는 열정이 남다르시던데요?”

    “무슨 소리야? 이거 서운한걸.”

    정말 억울하다는 듯 표정을 굳힌 그가 낮게 속삭였다.

    “난 오로지 네 생각만으로 가득한 사랑이었는데.

    그대는 아니었나?”

    “…….”

    아까 정말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었던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왔는데.디에고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그게 좋았구나.”

    “네? 뭐가요?”

    정적이 흘렀다.

    디에고의 눈동자가 나를 회피했다.

    나 갑자기 막 핏기가 가시는 느낌인데.

    이거 아주 잘 아는 상황인 것 같다.

    “…지금 내 마음 봤어요?”

    “…무심코.”

    미, 미쳤나 봐!얼굴이 터질 것같이 열이 올랐다.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놀란 가슴을 다독여본다.아니, 이게 다독인다고 다독여질 일이냐고! 엉엉― 나 쟤랑 못 살겠어!이불째로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그가 토닥인다.

    지금 그렇게 토닥인다고 막 일이 해결되고 그런 상황 아니거든?

    “괜찮아.”

    너는 괜찮겠지.

    나는 부끄러워서 안 괜찮다.

    “…….”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는지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비비안 몸이 약해서.

    네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면 난 아기는 원치 않아.”

    디에고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걱정이 앞서서 이 자리에서 나랑 결론을 내고 싶은 것 같은데.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 더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단다.

    나는 아기가 있었으면 하니까.무언으로 내 의견을 피력하고 있자 짙은 한숨이 허공에 흩어지는 듯하다.

    “너로 가득 차서 다른 무언가에 내어줄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마음은 잘 알았다.

    “…어릴 때, 우리가 만난 적이 있어.”

    낮게 흐르는 디에고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댔다.

    “얼마 전에 기억났는데 그때도 비비안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이미 너를 좋아했더군.”

    슬쩍 이불을 끌어 내리고 눈만 내밀어봤다.

    그런 나와 마주친 디에고의 눈매가 휘었다.

    “약속을 했었어.

    비비안을 지켜주겠다고.”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해놓고 늦어서 미안해.

    네 옆을 오래 비워둬서.”

    나는 슬쩍 이불 밖으로 손을 빼내 그의 목에 둘렀다.

    왜 자꾸 사과를 하는지 모르겠어.

    뭐가 매번 그렇게 미안한지.

    “…처음 만난 날 있잖아요.”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 순간.

    어쩌면 평생 그래왔는지도 몰랐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하는 줄 알고.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줄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때.

    - 아무리 봐도 내가 필요해 보이는데, 아닌가?먼저 손을 내밀어준 너.

    내게 네가 필요하다고 말해준 것.

    그럼에도 선뜻 마주 잡지 못했던 손을 끝까지 치우지 않았었다.내가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계속 거기 있었던 디에고의 손.

    - 잡아, 내 손.그 순간, 멈춰 있던 내 세계가 너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때 네 손을 잡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다지 흥미로운 세상은 아니었을 것 같다.그가 그때 손을 내밀어줘서, 거두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그 손을 잡기를 잘한 것 같아.”

    내가 그때의 디에고를 흉내 내며 그의 앞에 손을 흔들었다.

    “이제 내 손, 잡아요.”

    그리고 그 손을 아주 소중하게, 절대 먼저 내치지도 놓지도 않을 디에고 브라이트가 마주 잡았다.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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