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69화 (69/74)

69회

트릭연참 1/2

무시무시한 침묵이 미르아와 유릭스를 내리눌렀다. 미르아는 유릭스의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유릭스는 미르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정적에 지친 새들이 다시 노래를 시작할 때쯤 유릭스가 입을 열었다.

“좀 더 긴…… 연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 긴장과 의구심마저 스며 있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미르아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미르아는 유릭스가 그토록 귀엽다 여겼던,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꼭 길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저희 아직 연애도 안 했으니까요.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유릭스 데이라가 그 말을 받아들이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미르아의 말을 이리 뜯고 저리 뜯으며 이면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아직 연애도 안 했다.’ 그 말에 대체 무슨 다른 의미가 있단 말인가?

유릭스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었다.

“지금까지 했던 교제는 교제답지 않았다는 말씀을 돌려서 하신 건가요?”

“…네?”

미르아가 고개를 앞으로 빼며 되물었다. 그 얼굴에는 순수한 당혹뿐이었다. 유릭스는 그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자신과 미르아는 교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바로 그 편지. 편지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유릭스의 생각이 자신이 받았던 황홀한 편지에 닿은 순간, 미르아가 어색하게 권했다.

“어, 왠지는 모르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서서 말씀하실래요?”

그제야 유릭스는 자신이 아직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는 반쯤 혼이 나가서, 명령에 따르는 인형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활짝 열린 반지 케이스도 닫았다. 딱 하고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

분위기가 급격히 어색해졌다. 유릭스는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분위기에 떠밀리듯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저는…… 미르아 당신이 제게 편지를 주셨을 때부터 저희가 교제 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당황한 건 미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몰이해를 넘어 황당함마저 스민 얼굴로 유릭스를 바라보다가 간신히 예의를 차려 물었다.

“제가 그때 저택에서 드린 편지요? 대체 왜 그 편지를 보고 그런 착각을……?”

착각.

미르아가 뱉은 한 단어가 유릭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숨이 턱 막혔다. 생각을 가다듬거나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띄엄띄엄 말이 튀었다.

“저는, 분명히…… 저를…….”

단숨에 목이 메었다. 이미 우스운 꼴을 실컷 보였으니 이런 모습까지 들키고 싶지는 않은데, ‘착각’이라는 말 한마디에 울컥 눈물이 났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맞은편에 선 미르아도 그의 눈물을 보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숨까지 헉 들이켰다. 그걸 느낀 유릭스는 더욱 서러워졌다.

교제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들떠 반지를 보러 다니고, 긴 밤이 끝나도록 청혼할 말을 고민하고, 미르아를 이곳까지 데려와 결혼해 달라고 말한 일이 너무나 부끄럽고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가장 서글픈 것은…….

유릭스는 달래 주려고 손을 뻗는 미르아를 거절하며, 슬픔이 어룽진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럼 왜 제게 사랑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는 그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외울 정도로. 미르아가 단어와 단어 사이를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세로획이나 가로획을 쓸 때의 습관이 어떠한지, 어떤 글자가 기둥처럼 굳건하고 어떤 글자가 흐트러졌는지 기억할 모두 기억할 정도로.

이따금 자려고 누웠다가 일어나 편지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심장이 너무 뛰어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동이 터올 때까지 창가에 서서 그 편지를 읽고 있으면 청량한 바람이 이마를 쓸어주곤 했다. 해와 달도 사랑을 위해 뜨고 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 착각이었다고 한다.

전부 다…….

“자, 잠깐만요.”

미르아는 사과하지 않았다. 곤란한 듯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겨우 맑아진 유릭스의 눈에 들어온 그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미르아는 누가 자신의 청소년 시절 일기장을 훔쳐가 그대로 출판해버렸다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경악에 차 있었다.

물음을 건네는 미르아가 심하게 더듬거렸다.

“제, 제가, 제가요? 어, 어, 언제, 아니, 그 편지가…… 아니, 어, 왜……. 제가 그렇게 썼다고요?”

이쯤 되니 유릭스의 슬픔도 서서히 의문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그는 눈물 때문에 갈라진 목소리를 수습하며 겨우 대답했다.

“오해받고 싶지 않다고,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쓰지 않으셨습니까?”

미르아는 자기 귀를 의심하며 유릭스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목적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눈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굴리던 그녀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고, 숨을 어찌나 크게 들이켰는지 가슴팍까지 부풀었다. 미르아는 정말 돌이라도 된 듯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유릭스는 그녀의 반응을 하나하나 살피고 헤아렸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무슨, 중대한 오해가 있었던 게 분명한데…….

“미르아? 괜찮으십니까?”

어깨를 짚으며 묻자, 미르아가 그제야 유릭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불타는 고구마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르아는 여전히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가 겨우 중얼거렸다.

“당신 스승님이, 안 될 거라고 했거든요……. 그런 방법은 안 통할 거라고…….”

“네?”

여기서 갑자기 스승님 얘기가 왜 나오나. 영문을 몰라 멈춰 있는데, 미르아는 혼자 모든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마침내 손을 내리자, 분노와 수치심이 뒤범벅된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으아아, 할머니이이!”

허공을 바라보고 갑자기 조상님을 찾은 미르아는 이글이글 끓는 눈으로 외쳤다.

“다 트릭스터의 장난이었어요!”

이건 아까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르아는 설명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녀는 당장 트릭스터의 멱살을 잡고 싶은 사람처럼 격분한 상태였다. 두 주먹을 살벌할 정도로 힘껏 말아 쥔 미르아가 외쳤다.

“저는 분명히 다른 내용의 편지를 드렸어요. 제 손으로 봉투에 넣고 봉해서 똑똑히 기억해요. 그런데 당신이 왜 그, 그 편지를 받았느냐고요! 다 트릭스터 짓이 분명해요!”

“그러니까…….”

유릭스가 천천히 입을 열어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저에게 준 편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트릭스터가 편지 내용을 날조해서 저와 당신을 동시에 속이고,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건가요?”

“나, 날조라기보다는…… 아무튼 우리 둘 다 속은 거예요!”

어색하게 더듬거리던 미르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돌렸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하죠? 어떻게 이렇게까지 심한 장난을 하냐고요. 나타나기만 해봐, 내가 진짜!”

그러나 이상하게 유릭스는 미르아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좌절의 해일에 휩쓸린 사람처럼 춥고 초라할 뿐.

한때 유릭스는 트릭스터가 미르아를 이용해 자신을 방해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그때는 짐작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모든 일이 분명해졌다.

이 모든 일은 정말로 트릭스터의 계략이었다. 언젠가부터 유릭스는 트릭스터 추적보다 미르아의 마음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트릭스터가 뭘 어쨌든, 미르아의 편지가 가짜였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유릭스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그럼 자신은 트릭스터의 편지를 받고 그렇게 세상을 얻은 듯 기뻐 날뛰었단 말인가?

바로 그때,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

어떻게 들어도 헛웃음이었다. 유릭스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고, 나무 사이에 숨어 있던 노파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얼마 전에 길에서 마주친 바로 그 노파였다.

‘트릭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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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애매해서~ 연참~! 공작님 운다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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