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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68화 (68/74)
  • *이번 챕터 안에 완결이 목표입니다 내일 또 만나요~~~!68회

    트릭리리와 함께 마법 학교에 도착했다. 입장할 때부터 대저택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는데, 소집일 행사가 진행되는 곳으로 들어오니 더 입이 벌어졌다.

    마법 학교가 이렇게 클 줄이야.

    큰 학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다.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꺾어야 겨우 볼 수 있는 높은 천장, 정교하게 세공한 유리 장식들, 입학생과 방문객을 위해 강당에 두 줄로 준비된 긴 의자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사람들…….

    언뜻 보기엔 종교 예배당 같기도 하고.

    마법 학교에 오면 종이와 펜이 혼자 날아다니고 마법으로 만든 불꽃이 둥둥 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네.

    일단 리리와 헤어져야 했다. 입학생과 동행인이 떨어져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입학생은 왼쪽에 놓인 의자에, 동행인은 오른쪽에 놓은 의자에.

    지정된 자리로 헤어지기 전에 인사를 나누었다. 리리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 파이팅!”

    “…….”

    응원은 고맙지만 너한테 더 중요한 날 아닐까?

    그래도 성의는 고마워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오른쪽 의자에 앉았다.

    잠시 기다리니 마차를 맡긴 할아범이 들어와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할아범은 새삼스럽게 감격 어린 얼굴로 리리 쪽을 바라보더니 긴 숨을 내쉬었다.

    “참 특별한 날이네요. 이런 일이 있을 줄 몰랐는데.”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가 봐.”

    “그때 데이라 공작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날도 없었겠죠?”

    “그러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리리는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 자랐고, 그동안 내내 아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갑자기 공작의 도움을 받아 건강해지고, 이제는 마법 학교에 입학까지 한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공작과 제대로 만났고.

    얽히고설킨 우연과 오해, 사건의 인과를 헤아려보면 기분이 오묘해진다. 그 끝에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공작의 얼굴이다.

    그때,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데이라 경! 반가워요.”

    익숙한 이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막 행사장 안으로 들어온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마법사 비마법사 할 것 없이 모두 그에게 몰려갔다. 기쁘게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공작의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

    역시 마법사 세계에서 공작의 인기는 압도적이구나. 공작은 수도에 온 게 처음이라고 했으니 이곳 마법 학교를 다니진 않았을 텐데, 저렇게 아는 사람이 많다니.

    어쨌든 구름처럼 몰려든 이들을 헤치고 다가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들 좀 가고 나면 가서 인사해야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공작의 눈은 안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누구 찾는 사람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한 쌍의 파란 눈이 내게 고정된다. 멀리서도, 그의 표정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놀란 듯 살짝 커지는 눈, 초승달처럼 둥글게 휘어지는 눈썹, 인사하듯 한 차례 기울었다 제자리를 찾는 고개까지.

    나, 나한테 인사한 거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공작이 사람들에게 몇 마디 양해를 구하고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심장이 곧 터져버릴 것처럼 뛴다. 공작에게 인사하던 이들이 전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공작과 나 사이에는 의자도 많고 사람도 많고 소음도 많은데,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다.

    공작은 자기 눈에만 보이는 길, 내게 이어진 길이 있는 것처럼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공작을 맞이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작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심장이 귀에서 뛰는 것처럼 어지러웠지만 나도 눈치껏 맞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공작님.”

    대화가 바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공작은 묘하게 머뭇거렸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마음의 준비라도 하는 사람처럼.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러나 잠시 기다렸다.

    공작이 나와 눈을 맞추고 살피는 듯한 어조로 물어 왔다.

    “곧 소집일 행사가 시작될 겁니다. 일정은 확인해 보셨나요?”

    당연히 확인해 봤다. 간단한 환영사 후, 예비 입학생은 각자 담임교사를 만나러 간다. 사실상 마법 학교에서의 생활 전반을 함께할 ‘스승님’을 만나러 간다고 봐야겠지. 그 뒤에는 교사의 안내를 받아 학교 시설을 둘러보고, 과목에 대한 안내를 받고, 기타 등등.

    결과적으로 동행자와 예비 입학생은 이 자리에서 헤어지게 된다.

    “네, 금방 끝나던데요? 리리만 좀 바쁘겠죠.”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대답했다. 내 말을 들은 공작은 짧게 숨을 들이켜고, 신중한 어조로 제안했다.

    “축사가 끝난 후에 제게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내가 바라던 바다.

    근데 공작 안 바쁜가? 나는 그냥 동행인으로 왔지만 공작은 유명한 마법사라 바쁠 텐데. 부탁받은 일도 많을 것 같고.

    잠깐 대화 나누려는 거면 차라리 저녁쯤에 길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중요한 얘기도 꺼낼 거고. 고백하는 도중에 갑자기 가야 하면 어떡해? 그 어색한 분위기 어쩔 거야?

    “바쁘진 않으세요? 금방 가셔야 하는 거면 제가 좀 기다릴게요.”

    “아뇨, 여기서 제가 맡은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매년 저 없이 진행되는 행사기도 했고, 부탁받은 일도 전부 거절해서요.”

    혹시 나랑 얘기하려고 다 거절한 건가?

    이건 너무 설레발이다. 마음을 단속하는데 공작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

    “오늘 백작님과 중요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방해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작의 음성이 장작처럼 내 마음에 던져졌다. 안 그래도 요란하게 타오르던 불이 더욱 거세졌다. 내 얼굴도 덩달아 빨개졌다. 귀와 뺨이 어찌나 화끈거리는지.

    “네, 기다릴게요.”

    때마침 곧 축사가 시작되니 자리에 앉아 달라는 안내가 들렸다. 공작은 내 손을 잡고,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내 착각일지는 몰라도 공작은 조금 떠는 것 같았다.

    손을 놓고 멀어지기 전에, 공작이 엄지로 내 손목 안쪽을 살며시 쓸었다. 아주 섬세하고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춘 틈에 온기가 멀어졌다.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짙푸른 눈에는 평소와 다른 격양이 어른거린다. 황궁으로 가는 마차에서 내게 키스하려 했을 때의, 바로 그 얼굴이다.

    오늘, 무슨 일이 나기는 나려나 보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네…….”

    공작이 자기 자리로 물러났다. 튀어나올 것처럼 요란을 떠는 심장을 꾹 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주위의 시선 때문에 얼굴이 간지럽다. 다들 아닌 척하면서 나와 공작을 주시하고 있다.

    때를 맞추어 축사가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예비 신입생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물론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준비한 고백의 말이 빙빙 돈다. 공작의 얼굴도 함께 돈다. 사랑은 감미로운 현기증임이 분명하다.

    -

    축사가 끝나고 예비 입학생이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자, 공작은 곧장 내게 다가왔다.

    이번엔 다른 이들이 공작에게 몰려들지 않았다. 마법사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공작과 나를 흘끔거리다가, 있는 줄도 몰랐던 피피온 경에게로 가 그의 팔뚝을 두들겼다.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지만 그냥 무시했다.

    할아범은 내게 말도 없이 슥 자리를 피해 버렸다. 돌아서는 얼굴을 살피니 콧구멍까지 벌름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다.

    주변 분위기는 이런데 난 도저히 웃음이 나질 않는다. 아, 긴장돼. 내가 먼저 고백하는 건 처음이란 말이야.

    그러는 사이 나와의 거리를 좁힌 공작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백작님, 가실까요?”

    “아, 네.”

    근데 어디로 가려는 거지?

    살짝 손을 올려 에스코트를 받아들였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커피를 열 잔쯤 들이켠 사람처럼 몸이 방방 뜬다.

    공작도 드물게 말이 없었다. 심지어 몇 차례 마른침을 삼키기까지 했다.

    그렇게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숲길이었다.

    …숲길?

    공작이 나뭇잎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입술로 설명했다.

    “마법 학교 뒤쪽입니다. 저도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이네요. 말로만 들었는데, 다들 입을 모아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맞았다.

    따뜻한 빛깔의 나무를 깔아 산책로를 꾸몄다. 그 옆에 크고 작은 돌을 자연스럽게 놓아두었고, 돌과 산책로의 틈은 푸릇푸릇한 잔디가 메웠다. 청단풍과 홍단풍이 앙증맞은 손바닥을 펼치고, 꽃 진 수양매가 수려한 가지를 뻗어 머리 위에 음영을 펼쳤다.

    작은 새가 이 가지 저 가지로 그네 타듯 오가며 지저귀는데, 사방이 고요해 날갯짓 소리까지 선명히 들렸다. 청명한 하늘에 걸린 해는 나뭇잎 하나하나를 꼼꼼히 쓰다듬고 나와 공작의 머리로 살짝 내려앉았다.

    오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까까지 머물던 행사장과 극명히 대비되는 정적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저, 공작님. 아니, 유릭스……. 할 말이 있어요.”

    공작이 미소를 지었는데, 입가에서 긴장이 엿보였다. 무슨 대답을 듣든 주저하게 될 것 같아서 머뭇거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새삼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 당신을 좋아해요.”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 버린다.

    뭐라고 더 길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공작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크게 보여 잠시 입술이 굳는다. 길고 조각 같은 손가락 하나하나의 미세한 움직임, 햇살을 머금듯 살짝 벌어진 입술의 작은 떨림, 의미를 읽어낼 수 없는 눈동자.

    “이건 트릭스터 때문에 하는 말도 아니고, 쉽게 하는 말도 아니에요. 당신을 계속 좋아했어요. 전부터 계속…….”

    마침내.

    마침내 공작이 반응했다.

    “미르아.”

    붉은 입술이 미려하게 휘었다.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몸짓이 더없이 친근하다. 고개가 살짝 기울자 머리카락이 미풍을 만난 듯 움직인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 생각만큼 놀라진 않네?

    약간 당황했다. 받아 줄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덤덤할 줄은 몰랐는데. 뭔가 처음 고백받은 사람 같지가 않다.

    내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라 다음 행동을 보이지 못하고 서 있는데, 갑자기 공작의 몸이 낮아졌다. 당황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내려다보니, 공작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서로 사과를 주고받아 왔기에 익숙한 상황이다. 그러나 낯선 물건이 시선을 빼앗는다.

    언제 꺼냈는지 모를 작은 남색 반지 케이스가 공작의 손에 놓여 있었다. 활짝 열린 채로.

    …반지?

    공작이 나를 올려다본다. 그의 표정이 어떤지, 얼굴색이 어떤지, 하나도 볼 수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 순간이 온몸에 각인된다. 두 눈에 공작의 모습이 새겨지고, 귓바퀴에 공작의 음성이 밀물처럼 고이고, 어깨는 오늘의 해가 선사하는 온기를 생생히 받아들인다.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께 마음이 갔습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렇게 저를 허락하셨으니, 이제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리고 싶습니다.”

    새들조차 노래하기를 멈춘다. 바람조차 잠시 나뭇가지에 머문다. 눈도 깜빡일 수가 없다. 꿈인가. 아무래도 꿈인 게 분명하다.

    “당신을 만나고 이렇게 사랑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 여겨집니다. 그러니 앞으로, 당신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공작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리고 한 마디. 예상했지만, 예상치 못한 한 마디.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햇빛을 사방으로 반사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다. 반지를 봤는데도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한 차례 속삭여 본다. 나, 방금, 프러포즈 받은 거야. 유릭스 데이라 공작이 결혼하자고 한 거야. 날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거야.

    저주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

    읽을 수 없던 공작의 표정이 이제는 활짝 펼쳐진 책처럼 환히 보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기쁨이 불안과 부끄러움을 걷어차자 공작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공작의 성급함마저 사랑스럽다. 제대로 교제하지도 않는데 대뜸 반지부터 내미는 모습이, 경솔하거나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바보들. 그래, 나만 바보였겠어? 나만 불안하고 나만 눈이 어두웠겠어? 공작도 마찬가지였던 거야.

    나를 좋아하니까.

    저절로 웃음이 났다. 묻는 목소리에서 아까의 무게가 사르르 빠져나갔다. 나는 경쾌하고 명랑하게 물었다.

    “그래도 연애가 먼저 아닐까요?”

    당연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공작은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건 당혹이나 쑥스러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악에 가까웠다. 커다래진 두 눈과 떨리는 눈동자, 동요를 드러내듯 움찔한 눈썹까지.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공작이 멍하게 되물었다.

    “네?”

    …왜 이렇게 놀라. 설마 당장 결혼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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