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쉬고 올게요 여러분!!!!66회
트릭연참 1/2
새 아침이 밝았는데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와 공작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디까지 허락해 주실지 알 수가 없어서.’
그렇게 속삭이는 공작의 푸른 눈이 너무나 순전해서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가 내게 다가왔을 때, 온 세상이 나를 향해 기우는 것처럼 압도당했다. 달아나고 싶지 않았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온 파도를 맞이하듯 세차게 달려가 젖어버리고 싶었다.
‘미르아.’
어제 공작은 몇 번이나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때마다 네, 네, 하고 대답하면서도 무슨 정신인지 몰랐다. 나도 공작을 이름으로 불렀는데, 아, 어쩐지 너무 간지럽고 이상하다.
우리 도대체 무슨 사이지?
왜, 왜 키스한 거야? 나는 왜 거절 안 했어? 아직 교제 중인 것도 아닌데 왜! 아니, 공작은 ‘굳이 사귀자고 말해야 하나’ 파인 건가! 어제 공작한테 물어봤으면 일이 시원하게 해결되었을 텐데,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물어보질 못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어제의 그 키스로 한 가지 추측이 사실로 변했는데.
공작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다. 충분히 너그럽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키스하진 않겠지.
누구에게나 키스하진 않겠지.
안 그래? 어? 안 그러냐고!
“아아악!”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발을 동동거렸다. 어릴 때도 이런 짓은 해본 적 없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솟아올라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여기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기쁘다고? 행복하다고? 너무 좋다고? 그냥 최고라고?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그야말로 힘이 넘쳐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투적으로 몸부림치며 샤워하고 오랜만에 이불도 탁탁 털었다. 할아범이나 리리가 보면 의아하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는걸!
아침부터 난리를 치고 톡톡 앞에 앉았다. 사랑이 아무리 찬란해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 법이니까. 상단 직원들이 보낸 아침 톡톡을 확인하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동안, 점차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러나 이 평정은 레디아 때문에 완전히 깨졌다.
[단주님 리리한테 들었어요]
[어제 단둘이 몇 시간 내내 같은 방에 있었다면서요]
[너무 좋다 헉헉헉]
[이제 단주님만 연애하면]
[상단에서 저 빼고 다 연애하네~!]
[단주님 배신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장은 진짜. 우리 상단에 사내연애나 사내결혼이 많기는 해도 모든 직원이 다 연애하진 않는다. 하여튼 얘는 상황을 부풀리는 재주가 있다니까.
게다가 아직 연애도 확실하지 않고.
그래도 전처럼 난감하진 않았다. 뭐, 이제 공작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나 혼자 숨어 있던 초라한 빈방에 갑자기 해가 들고 바람이 통하는 느낌이다. 나는 그 안에서 자유롭다.
[고백은 누가 먼저 했어요? 누가 먼저?]
[그만 좀 해ㅋㅋㅋㅋ]
[역시 우리 백작님이 먼저 했구나!!!!]
[박 력 왕!]
…여기서 굳이 아무도 고백 안 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
적당히 마지막 답장을 보내 톡톡을 마무리하며, 다짐했다.
그래, 내가 고백하자. 공작이 ‘촌스럽게 사귀자는 말을 뭐 하러 해!’ 파여도 나는 아니다. 나는 고백이 주는 묵직한 긴장이나 짜릿한 기쁨이 좋다. 우리는 공식적인 연인도 아닌데, 고백은 해야지!
음, 뭐라고 고백하지?
-
그렇게 며칠이 지나, 리리의 마법 학교 소집일.
리리는 침실로 들어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했다.
“주인님! 밤에 못 잔 거예요?”
“…….”
못 잔 건 아니고 꿈에서도 고백할 말 준비했다.
내가 지난 며칠 동안 고백의 말을 쓰고 버린 종이만 한 뭉치일 거다. 사랑해요, 좋아해요, 계속 같이 있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연인이 되고 싶어요, 저랑 사귀어 주세요, 정식으로 교제해 주세요, 공식적으로 만나 주세요, 아무튼 별의 별 말을 다 준비했다가 구겨 버렸다.
오늘 마법 학교에서 공작과 만날 테니까 오늘 끝을 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공작과 톡톡도 하고, 오늘 리리가 입학 관련된 안내 듣는 동안 둘이 뭐 할지도 얘기했는데,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못했다.
리리가 너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어서, 일단 상황을 좀 설명해주기로 했다. 그래, 어쩌면 리리가 도움을 줄지도 모르잖아?
“아니, 사실은…….”
이야기가 끝날 무렵, 리리는 입을 거의 귀에 걸고 있었다. 이제껏 저렇게 크게 미소 짓는 리리는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내 머리를 빗어주는 것도 잊은 리리가 흥분하여 재잘거렸다.
“뭐가 고민이세요? 아니, 다른 사람이 보기엔 두 분 이미 교제 중이에요! 그냥 다가가서 살짝 ‘우리 사귈까요?’라고만 해도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요! 세상에, 집사님 말씀이 맞았어요.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 하셨거든요!”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직접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건강을 되찾은 데다 내 분홍빛 소식으로 인해 활기까지 얻은 리리는 여전히 내 뒤를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말을 쏟아냈다.
“저번에 공작님이 가져온 선물이요, 엄청 귀한 환약이었잖아요. 주인님한테 얼마나 진심이면 그런 값진 걸 그렇게 많이 가져왔겠어요? 분명 집사님 마음을 사려고 한 거예요, 틀림없어요!”
“…그럴까?”
“당연하죠!”
리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내게 응원의 눈빛을 쏘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머리 빗고 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다 끝냈다. 이미 마법사 제복을 입고 있는 리리는 급히 내게 다가와 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손가락이 내 턱 아래와 목을 살짝살짝 스치며 지나간다. 이렇게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팔짝팔짝 뛰는 리리가 고맙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수줍고 기운 없는 친구였는데, 몸이 가뿐해지면 성격도 변하는구나.
나는 잠시 공작을 잊었는데 리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 모자의 모양을 다시 잡아준 리리가 빛나는 눈으로 내게 이렇게 격려했다.
“그러니까 그냥 가서 사귀자고 하세요!”
며칠을 머리 싸매고 고민했는데, 그 한 마디에 용기가 났다. 리리가 쉽게 말하니 갑자기 모든 일이 정말 가볍게 느껴졌다. 어쩌면 누가 이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냥 얘기하는 거야.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해. 고백 안 하면 죽는 저주!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리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힘차게 외쳤다.
“출발하자!”
오늘은 정말 고백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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