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얘기 한 적 있나요? 저는 4월 내에 이 소설을 완결낼 수 있을 줄 알았답니다...ㅎㅎㅎㅎ 트릭스터가 없었다면 저는 평생 이 소설을 써야 했을지도 몰라요ㅋㅋㅋㅋㅋ58회
네 저주를 남에게 알리지 말라연참 1/2
당연히 유릭스는 헥센 백작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온 세상이 환한 꽃밭이었다. 튤립과 장미, 히아신스와 라일락이 향기를 발하며 유릭스의 이성을 날려버렸다. 그는 헥센 백작의 얼굴에 적힌 당혹을 수줍음으로 읽는 실수를 범하기에 이르렀다.
유릭스는 백작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열렬한 화답을 이어갔다.
“언젠가부터 늘 이런 순간을 바라 왔습니다. 백작님은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분이고 따르는 이도 많으니, 가망 없다고 여겼는데…….”
“예?”
“아, 백작님.”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유릭스가 백작의 손등에 키스했다. 깃털처럼 보드랍고 눈처럼 흰 손등에 입술을 누르자 그대로 날아갈 수도 있을 듯했다.
그는 이보다 더한 것을, 더한 것을 하고 싶었다. 백작과 입술을 겹치고 그녀의 몸을 부스러지게 끌어안고 싶었다. 지난밤의 질투는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던가. 백작과 함께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브라운 레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황홀감을 억누르지 못한 채 백작에게 매달려 있는데, 그녀의 물음이 날아들었다.
“어……. 그럼, 오해는 풀리신 거죠?”
어딘지 얼떨떨한 어조였으나, 유릭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작의 목소리는 봄볕이었고, 얼굴은 단비 머금은 꽃봉오리였다. 그는 믿음을 고백하는 독실한 신자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작님. 물론입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혹시 정말 어디 아프세요?”
백작의 목소리가 돌연 진지하게 변했다. 유릭스는 북처럼 뛰며 온 몸을 울려대는 심장과,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인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다. 그는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뒤흔드는 흥분을 통제하려고 애쓰면서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너무 기뻐서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아니, 몸 말고요. 혹시 머리가 아프다든지…….”
“네?”
“아, 아니에요.”
백작은 재빨리 도리질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바람에 공작이 잡고 있던 손도 쑥 빠져나갔다. 다시 손을 잡거나 함께 일어나기도 전에 백작이 말을 쏟아놓았다.
“오, 오해가 풀리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네? 이렇게 바로요?”
깜짝 놀란 유릭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놀란 중에도,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백작의 고개가 사랑스러웠다. 유릭스의 자제력이 조금만 더 부족했다면, 그는 그대로 백작의 희고 예쁜 이마에 키스하고 말았을 것이다.
“바쁜 일이 있으신가요? 이렇게 바로 가실 줄은…….”
오늘은 특별한 날 아닌가. 백작도 이런 고백의 편지를 준비했으니, 이후 일정은 비웠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릭스는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듣고 싶었고, 자신의 감정도 좀 더 상세히 털어놓고 싶었다. 그뿐 아니라 이제껏 함께 겪은 사건을 돌아보며 그때마다 백작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간다고? 지금? 보통 ‘이런’ 관계가 되고 나면, 서로 좀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않나?
그러나 백작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녀는 더 남아 있을 이유를 모르는 듯 쉽게 대답했다.
“네, 오늘은 일찍 돌아가기로 해서요.”
“아.”
유릭스는 그제야 백작의 뜻을 이해했다. 백작은 큰 상단을 책임지고 있고, 초대 받은 모임도 많을 테니 바쁠 수밖에. 오늘도 어렵게 시간을 내어 찾아와 준 것이 분명했다.
아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지만, 그래도 유릭스는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작이 이렇게 직접 와서 마음을 전해주었는데, 어린아이처럼 가지 말고 나와 머물자고 칭얼댈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순한 양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작님. 알겠습니다.”
백작을 마차까지 에스코트하기 전에, 그는 편지를 잘 챙겼다.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편지를 안주머니에 넣은 후, 기다리고 있던 백작의 손을 잡았다.
헥센 백작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유릭스와 나란히 걸었다. 풀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끙끙거리는 학생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아리송한 얼굴마저 사랑스러워서, 유릭스는 마차까지 가는 내내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꿈처럼 이루어지다니.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헥센 백작과 브라운 레타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세상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저택의 천장, 기둥, 계단은 물론이고 눈부신 하늘과 흔한 구름 조각, 바람마저도 특별한 예술품처럼 다가왔다. 성취된 사랑은 온 세상에 좀 더 선명한 윤곽과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었다.
유릭스는 자기가 이제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임을 실감했다. 하찮은 풀벌레의 노래조차 특별해지리라. 지금 백작이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겠지 하고 짐작한 순간, 엄청난 환희가 가슴에서 폭발했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이 거대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백작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유릭스는 그녀의 손을 좀 더 단단히 잡는 것으로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때, 백작이 흘끗 유릭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공작님?”
“네.”
유릭스는 그녀가 또 어떤 선물을 줄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백작은 엉뚱한 말을 했다.
“혹시 제가 아까 준 편지요, 그거…….”
백작은 말을 하다 말고 혼자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아니겠지, 분명 태웠는데…….”
“네? 뭘 태우셨다고요?”
“아, 아니에요.”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헥센 백작의 마차 앞이었다.
유릭스는 아쉬움과 미련을 삼키며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안에서 반쯤 졸고 있던 집사가 화들짝 놀라 깨어나는 게 보였다. 물론 유릭스도 백작도 그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유릭스는 헥센 백작이 마차에 오르기 전에 물었다.
“그럼 다시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오늘 바쁜 일이 정리되고 나면 물론 연락을 주시겠죠?”
“네? 어…… 연락이요?”
“네. 아, 혹시.”
유릭스는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잦은 연락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백작님께 맞추겠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연인 사이에 연락이 너무 잦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만약 헥센 백작이 담백한 연락을 선호하는 성향이라면, 마땅히 자신이 맞춰서 행동할 작정이었다.
헥센 백작은 외계어를 들은 사람처럼 침묵하더니, 스스로 뭔가 생각하고 납득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어, 그럼 저택에 돌아가서 톡톡으로 연락할게요.”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유릭스는 백작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기 위해 평소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당연한 의문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제 우리는 연인인데. 좀 더 친근한 인사를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유릭스가 생각을 구체화하고 움직이기도 전에, 헥센 백작이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무릎을 굽혔다. 이제까지와 똑같은, 격식을 갖춘 인사였다.
유릭스도 엉겁결에 그에 호응해 몸을 숙였다. 그러면서 헥센 백작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하나 더 수집했다고 믿었다.
‘백작님은 교제할 때도 담백하게 행동하는 걸 좋아하시는구나.’
그녀와 너무나 어울리는 행동 방식이었지만, 유릭스는 아쉬웠다. 그는 백작과 좀 더 닿고 싶었고,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일을 함께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그녀와 한 침대에서 햇살을 받으며 일어나고…….
백작의 마지막 인사가 유릭스를 상상의 바다에서 건져주었다.
“배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편안히 돌아가세요.”
“네, 그럼…….”
백작은 마치 더 이어질 대화를 차단하듯 마차 문을 탁 닫았다.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문 너머로 사라졌지만, 유릭스는 선명하게 백작을 그려볼 수 있었다.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는데, 갑자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정말 교제하는 게 맞나. 정말 ‘서로의 마음이 통해’ 연인이 된 게 맞나.
유릭스는 이 모든 행복이 연기처럼 사라질까 두려워 급히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의 영혼을 구한 문장이 거기 모두 적혀 있었다.
[공작님, 저는 공작님께 오해받고 싶지 않고, 특히 사랑에 관한 오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잉크 묻은 종이에 불과할 편지가 유릭스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는 예술도, 자연도 전과 같지 않으리라.
그때 뒤에서 레이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작님, 왜 그러십니까?”
유릭스는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날아오를 듯한 몸짓으로 레이번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자기가 내내 하고 싶었던 말, 그 마법의 말을 했다.
“경, 축하해 주면 좋겠군. 백작님과 나는 이제 연인이 되었어.”
“…예에?”
레이번은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며 되물었다. 아니, 짝사랑의 아픔에 신음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사귄대? 그러나 유릭스는 레이번의 의문을 해결해주는 대신, 뿌듯한 표정으로 거듭 자랑했다.
“백작님처럼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분과 교제하게 되다니, 나도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지금은 온 세상이 나와 백작님의 관계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야.”
“저기, 공작님?”
“하지만 경솔하게 행동해선 안 되겠지, 백작님의 의견도 물어야 하니까…….”
“공작님?”
유릭스는 기쁨에 넋이 나가서 레이번의 부름도 듣지 못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소중히 들고 있던 편지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이 편지는 가보로 간직하겠어.”
“…….”
흰 편지가 햇빛을 받아 더욱 새하얗게 빛났다. 유릭스의 눈에는 그마저도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 종이는 빛을 이렇게 눈부시게 반사할 수 있을까. 백작님의 글자는 또 왜 이렇게 귀엽고 생기 넘칠까. 어떻게 ‘사랑’이라는 글자가 종이 위를 벗어나 제 마음으로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 들어올 수 있을까!
넋이 나간 주군을 보고, 레이번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맘대로 하십쇼. 액자에 넣어서 신혼방에 걸어두시든가.
-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마차 창문에 눈을 가까이 했다. 공작이 여전히 내 마차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혼잣말을 했더니, 나른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할아범이 되물었다.
“뭐가요?”
“음, 오늘 공작이랑 말이 안 통한 느낌?”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태워버린 사랑 고백 편지가 잘못 전해졌나 의심했을 정도로. 얇은 종이가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공작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직접 확인해 봤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늘 이런 순간을 바라 왔습니다. 백작님은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분이고 따르는 이도 많으니, 가망 없다고 여겼는데…….’
도대체 저주 얘기를 읽고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려는데, 할아범이 하품을 삼키며 내 상념을 잘라냈다.
“그래도 편지에 써서 얘기했잖아요. 말로 전한 것도 아닌데, 잘 알아들었겠죠.”
“그렇지?”
하도 이상한 일을 많이 겪다 보니 나도 의심이 많아지나 보다. 그래, 잘된 거야. 등받이에 편안히 몸을 기대며, 이상하고 찜찜한 느낌을 마차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제 이놈의 짝사랑에서만 해방되면 편안해질 텐데, 어휴.
7장. 네 저주를 남에게 알리지 말라
Fin.[작품후기]피아리님, Crinita님, omega11님, 선풍기가빙글님, Sen98님, 김뭄님, 봄타님, 씰버라이트님, 오리쓰님, 싱싱한알래스카연어님, bluestblue님, 비인강님, 알아서알게뭐야님, 모카몽님, niley님, O롱이님, 노화님, Reinette님, 아아아아야님, 오킬길길님, 플라우디테님, Nerimaki님, 김형서님, 도롱뇽악어님, 타락한나락님, 볶음우동님, ERTAF님, 차으누야님, 푸른물속유영님, 진데렐라님, 네버린a님, 슈크림붕어님, Aahdla님, 라바트님, 김뚝깨님, 빼빼룽님, 콩콩검은콩님, feelso0님, 포포체님, 이시스81님, 고희님, blackkit님, Sol14님, 여우와부엉이님, 레티엘님, 하이111님, lcanUcan님, 숨크님, 사쿠마레님, 별똥별0ㅅ0님, 숨크님, 너와나는토깽이님, selepael님, 젤라튄님, 치칼라님, Likry님, Elian.Elenist님, 시공초님, 아비안님, NameZIA님, 레몬e님, 뀨우뿌님, 뉘시님, Jeeenn님, 켠G님, Ddddvvx님, fffwok님, 푸들은요정입니다님, 더블뚝님, 카드결제체리님, 인류의시발점님, 하루24시님, 이상해꽃님, HETH5622님, 또롱이언니님, 조코난님, 로열밀크티님, 냠냐12님, ㅣ이자벨ㅣ님, hihihu님, l멋쟁이토마토l님, 비타민2님, 빵쓰님, CoCoMONGg님, highball님, 이화민님, 밥빵밥님, 떵실님, 피넬리아님, 썹ol님, 빠라람님, 버건디와인님, 아기황제펭귄너무귀엽님, 033님, 루신다님, sjay님, 미쯔조아님, 해연haeyeon님, 0p0p님, 청사민님, 노네임2님, 꿈꾸고10님, 유우우유님, 또이이잉님, 양유oo님, beolene님, 장동우킬러님, 소를리님, 0스텔라0님, 알수없는게시자님, liebetjddn님, 까망도롱뇽님, 햐무다님, pato님, 빛부스럼님, wjrmaxhd님, 댕댕나무님, 또댐미님, RouNn님, skql5님, 잘되겠지님, 베리피치님, 카인G크리티카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
*미르아 헥센 x 유릭스 데이라 공식 연애 1일! 물론 백작님은 모르는 공작 홀로하는 연애 1일!
*여러분 그냥 이어졌으면 섭섭해했을 거잖아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ㅔ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완결이 멀지 않았으니 곧 이어지든가 말든가 하겠죠...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