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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54화 (54/74)
  • *가능하면 내일도 올게요!!!54회

    네 저주를 남에게 알리지 말라공기가 스산하다. 세상이 일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 앞에 선 괴물이 내 눈을 빤히 바라본다. 표정 없는 얼굴이 무섭게 느껴진다.

    대답을 기다리는 몇 초가 영원 같았다. 괴물이 언제 손을 뻗어 내 목을 조르거나 얼굴을 후려칠지 모른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싸울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 목숨을 내어주진 않으리라.

    다음 순간, 레타 씨가 코를 훌쩍였다.

    “킁.”

    ……왜 갑자기 코를 먹어?

    의문과 동시에, 레타 씨가 고개를 살짝 앞으로 빼고 입을 바보처럼 벌리며 되물었다.

    “예?”

    놀랍게도, 그 한 마디에 오싹한 분위기가 얼음 녹듯 사라졌다. 바람은 본래의 명랑한 가락을 되찾고, 나뭇잎도 즐겁게 춤을 추고, 나를 노려보는 듯하던 말도 순하게 투레질을 할 뿐이다.

    내가 잘못 느꼈나?

    레타 씨는 눈물이 번진 눈가를 소매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아, 저 아찔한 노란색 재킷. 하지만 마차를 타고 가며 좀 울었던 것 같아서 내 마음도 좋지는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레타 씨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트릭스터라고요? 아니, 그보다 백작님도 트릭스터를 알고 계십니까? 분명 마법사가 아닌 걸로 아는데…….”

    “…진짜 아니야?”

    혹시 몰라 다시 물었다. 레타 씨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아닌데요…….”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얼굴로 확 열이 올랐다.

    아니, 솔직히 좀 억측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느낌이 이상했는데. 게다가 공작도 레타 씨가 평소랑 너무 다르다고 했잖아. 난 당연히, 리리가 위험했을 때처럼 트릭스터가 변장해서 나타난 줄 알았지!

    손을 들어 눈을 꾹꾹 눌렀다가 미소를 걸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나 봐요. 어, 가끔 살다 보면 사람이 막 트릭스터로 보이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하하하!”

    당연하지만 말도 안 되는 변명과 농담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대체 왜…… 제가 트릭스터처럼 보이나요?”

    레타 씨는 이대로 대화를 끝낼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아까부터 말투가 묘하게 정상적이다.

    음, 혹시 트릭스터가 이 사람 몸을 잠깐 빼앗았다가 사라진 건 아니겠지? 빙의, 막 그런 거? 그랬다면 레타 씨는 자기가 왜 여기 이러고 있나 깜짝 놀라야겠지?

    연기일지도 모르니 슬쩍 떠보았다.

    “아니, 데이라 공작님이 평소랑 좀 달라 보인다고 해서요.”

    “아, 이건…….”

    레타 씨가 자기 옷차림을 내려다보더니 정상인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래, ‘정상인’처럼! 솔직히 저렇게 입고 다니는 게 평범하진 않잖아, 응?

    “사실 제 친구 중에 백작님에 대해 잘 안다고 한 사람이 있어서요. 톡톡으로만 연락하고 얼굴은 본 적 없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백작님 취향에 대해 조금 안다면서 이것저것 조언해 줬습니다. 정말 고마운 친구죠.”

    “…그 친구 이름이 뭔데요?”

    “네? ‘트릴리아’입니다.”

    트릴리아?

    나는 재빨리 ‘아는 사람 목록’에서 그 이름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다. 맹세하는데 만난 적도 없고 고객 중 하나도 아니다. 천재는 아니지만 친구나 직접 만난 고객 이름 정도는 다 기억하니까.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저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

    “아, 어쩐지…….”

    레타 씨는 크게 놀라지도 않고 쓰게 웃었다. 어쩐지 어른스러운 표정이었다.

    저 사람이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다니. 레타 씨가 가진 표정이라곤 과하게 웃기, 과장되게 찡그리기, 그런 게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신선한 충격이 가슴을 강타했다. 달걀을 깼더니 그 안에서 노른자 대신 금덩이가 흘러내린 느낌이다. 공작 말대로 상식인인 모양이다.

    달빛이 어린 레타 씨의 얼굴에 가련한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감상적인 헛소리를 해댈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시인 같았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옷을 걸치고 있는데도.

    레타 씨가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백작님의 반응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저는 데이라 경 저택에서 백작님께 반했고, 그래서 급히 가까워지고 싶어 친구의 충고를 따랐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아니, 애초에 톡톡으로만 연락하는 친구라면서요. 그런 사람 말을 믿어요?”

    “좋은 친구입니다. 아마 트릴리아도 잘못 알았겠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요.”

    “그래도…….”

    세상에, 이렇게 순진한 영혼이라니.

    ‘톡톡으로만 연락하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은 흔하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얼굴 아는 사람에게도 믿기 어려운 세상인데,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은 더 위험하지.

    톡톡 만든 사람으로서 참 통탄할 노릇이다. 물론 책임감을 느끼진 않는다. 사기꾼 잘못이지 물건 만든 내 잘못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레타 씨는 진짜 데이라 공작보다 더하구나. 공작의 착한 심성을 보고 어떻게 이런 마음으로 영지를 다스리나 궁금했는데, 레타 씨는 이런 순진함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멍하게 보는 나를 향해 레타 씨가 말갛게 웃어 보였다. 지금까지 그가 보인 것 중 최고의 미소였다.

    “그리고 이제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백작님과 데이라 경 사이의…… 방해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저는 이쯤에서 퇴장하는 게 옳겠죠.”

    “아니…….”

    우리 그런 사이 아닌데요.

    그 말이 목에 턱 걸려 나오지 않았다.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공작도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고, 그리고 내 마음도, 이제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말을 돌렸다.

    “혹시 그렇게 과하게…… 이상하게 말한 것도 다 그 친구 조언 때문이었어요?”

    “네, 맞습니다. 시를 너무나 사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1분 1초도 빼놓지 않고 시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고. 몇 가지 예시도 들어주던데요?”

    레타 씨가 그 친구에게 뭘 크게 잘못한 게 아닐까. 사람에게 악의를 품지 않은 이상 저런 조언은 안 할 것 같은데.

    결국 레타 씨는 트릭스터도 뭣도 아니고 그냥 순진한 영혼 중 하나였구나. 그냥 내 ‘박력 넘치는’ 모습에 반한.

    약간의 허탈감에 휩싸여서 나직하게 충고했다.

    “그 친구 실제로 만나게 되면 머리라도 깡깡 쳐주세요.”

    “네? 하하, 역시 백작님은…….”

    레타 씨는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옷과 어울리지 않는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급히 따라오시기에 희망을 품었는데, 제 착각이었군요.”

    목숨이 걸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아무튼, 갑자기 이렇게 정상인처럼 구니 미안해진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덕담 한 마디 했다.

    “더 좋은…… 좋은 인연이 있을 거예요.”

    “아뇨,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거짓된 모습으로 백작님의 마음을 얻으려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데이라 경이 없었다 해도, 진실하지 못한 모습만 보였으니 백작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아예 반성문을 쓰지 그래요.

    “앞으로 정진해서 더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백작님이 제게 가르쳐 주신 덕목이지요.”

    “…….”

    내가 무슨 덕목을 가르쳤다고?

    마법사들은 다 이렇게 착하고 솔직한가. 뭔가 애태우는 순정남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

    근데 공작 저택에서 날 보고 반했으면, 아직 호감 가진 지 이틀도 안 지난 거 아니야?

    갑자기 애처로운 마음이 싹 사라지는군. 금방 사랑에 빠졌으니 또 금방 식겠지.

    그냥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도 좋은 만남이었어요.”

    레타 씨가 떨리는 시선으로 내 손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자기 손을 뻗었다. 손과 손이 굳건히 만났다. 레타 씨는 힘을 주어 손을 몇 번 흔들고 내게서 멀어졌다. 서글픈 목소리가 귓전을 적셨다.

    “그럼 안녕히, 백작님.”

    “네, 편히 가세요.”

    다행히 레타 씨는 더 대답하지 않고 아련하게 나를 보다 등을 돌렸다. 자신의 마차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마치 한 송이 노란 장미…… 아니, 슬픈 장면이니까 놀리지 말자.

    어쨌든 마차가 다시 방향을 틀고, 천천히 멀어져 갔다. 나는 엄숙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쓰라린 사랑의 고통…… 그니까, 하루짜리 고통을 맛본 레타 씨를 축복했다.

    잘 어울리는 사람 만날 거예요. 앞으로도 톡톡 많이 사랑해 주세요!

    저주도 걱정할 필요 없겠다, 레타 씨의 이상 행동 이유도 알았겠다, 홀가분하게 저택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마음을 스쳤다.

    …공작이 이상한 오해한 거 아니야?

    -

    같은 시각, 유릭스 데이라 공작은 생애 경험해본 적 없는 좌절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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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화를 보고 "엥 할머니일 리가!"라고 생각하셨던 모든 분께 이번편을 바칩니다.

    *물론 "헉 할머니다!"라고 생각하신 분들께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르아의 짐작이 그랬다는 겁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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