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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47화 (47/74)

*저도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해요 전부터 계속 좋아했어요!!!! 저는 이 고백이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고백중에 제일 좋아요 뭔가 너무 귀엽고 너무 좋아요ㅋㅋㅋ 그냥 이유 없이 좋아요. 제가 미르아를 좋아하나 봅니다ㅋㅋㅋ47회

고백은 마법처럼연참 1/2

유릭스는 따뜻한 물에 몸을 씻는 내내 헥센 백작 생각뿐이었다.

‘저도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해요. 전부터 계속 좋아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백작을 다시 끌어안을 뻔했다. 몸이 부스러지도록 껴안고, 정신없이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저 방에서 나가기 위한 열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허락 받았다고 착각했다. 아주 찰나였지만 유릭스는 정말로 그녀가 자신의 마음에 응답했다고 믿었다.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 백작은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추위 때문에 파랗게 질린 얼굴, 젖어서 달라붙은 검은 단발머리,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시선, 어딘지 울 것만 같았던 표정.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작을 둘러싼 분위기가 평소와는 너무나 달랐다. 늘 쾌활하고 적극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때만큼은 이상하게 애처롭고 외로워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두 가지 색깔이 어른거린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새벽 일찍 피어난 나팔꽃처럼 짙은 보라색도 있었고 별이 박힌 밤하늘처럼 어두운 군청색도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검은색인 줄만 알았는데.

그가 모르던 빛깔처럼, 헥센 백작 안에 비밀이 감춰져 있다고 착각하고 말았다.

그때, 욕실 밖에서 레이번이 문을 두드렸다.

“공작님, 손님들이 기다립니다.”

헥센 백작은 방에서 쉬겠지만, 유릭스는 이 모임의 주최자나 다름없었다. 서둘러 모습을 정돈하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유릭스는 거울을 확인했다. 안색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실 그는 헥센 백작만큼 심하게 추위에 떨지도 않았고, 혈색이 사라질 정도로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몸이 무겁다.

다 그만두고 헥센 백작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고백은 거짓이 아니었다고, 백작님은 달랐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라고, 어리석은 말을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유릭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백작은 적어도 오늘 내로 완전히 몸을 회복하진 못할 것이다.

유릭스는 간단히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갔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레이번이 얼른 뛰어와 착의를 도왔다. 미리 준비해 둔 셔츠를 건네는 기사의 손이 분주했다.

“로지 경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트릭스터 문제로 물을 게 많아 보였습니다. 다른 마법사들도 줄을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고…….”

“백작님은?”

“예?”

“백작님은 잘 쉬고 계시나?”

레이번은 지금 그런 걸 궁금해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가 그냥 포기했다. 그리고 순순히 공작이 원하는 대답을 주었다.

“말씀대로 의사를 보냈습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별 문제 없나 봅니다.”

“그래.”

유릭스의 대답은 짧았다. 그는 레이번의 손에서 재킷을 받아 들고 직접 팔을 끼워 넣었다. 동작이 이상할 정도로 느렸다.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했다.

레이번은 가라앉은 유릭스의 얼굴을 살피며 슬쩍 물었다.

“티룸 안에서 일이 많았다면서요?”

레이번은 저택을 돌아다니며 경비를 서느라 당시 상황을 직접 보지 못했다. 뒤늦게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는데, 상황은 이미 끝난 후였다. 현장에 있던 마법사들이 소리 죽여 떠드는 소리를 들으니 상황이 심각했던 모양이다.

“헥센 백작과 이런저런 일을 하셨다고 하던데.”

“나가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야.”

유릭스는 애써 냉정한 척 대답했다. 그가 아쉬운 내색을 하면 소문이 이상하게 번질 수도 있다. 헥센 백작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유릭스의 생각을 모르는 레이번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키스하고 고백한 게 없던 일이 됩니까?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백작님이…….”

태연하게 대답하려 했는데 목이 콱 막혔다. 유릭스는 한 차례 헛기침을 하며, 괜히 목이 잠긴 것에 놀랐다.

이렇게까지 상심했나. 이런 감정을 느낄 권리가, 그에게는 없었다. 유릭스는 일부러 스스로에게 가혹한 말을 골랐다.

“백작님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나도 그래야지.”

이 말을 자기 입으로 직접 하니 더 속이 쓰렸다. 레이번과 대화를 할수록 헥센 백작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까 그 말이요, 괜히 마음 쓰지 마세요. 그냥 열쇠 같은 거였잖아요. 그렇죠?’

그냥 열쇠.

그냥 열쇠…….

그렇다면 헥센 백작의 고백은 가시 돋친 열쇠였다. 그의 심장을 푹 찌르고 있는 힘껏 옆으로 비틀더니, 쑥 빠져나갔다. 그러자 너덜너덜해진 심장 어딘가에 작은 방이 생겼다. 있지도 않았던 문이 활짝 열린 것처럼.

하지만 헥센 백작은 아무것도 모르겠지. 알아 달라며 징징 떼를 쓸 수도 없다.

유릭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백작님이 추문에 휘말릴지도 모르니, 경도 말을 조심히 해. 나중에 마법사들 괜한 소문에 어울려주는 일이 없도록 하고.”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랑 키스했는데…….”

레이번은 참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유릭스는 그가 더는 이 화제를 꺼내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백작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키스보다 더한 걸 했다 해도 아무 의미도 없어. 백작님께 나는 그냥 친구일 뿐이니까.”

레이번은 공작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날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잔인할 정도의 단호함에 기가 막혀, 입만 딱 벌어졌다.

“이번 일로 나를 불편해하지 않으시면 좋겠는데. 괜히 트릭스터 때문에 백작님과 멀어지기라도 한다면…….”

기도와도 같은 중얼거림을 들으며 레이번은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시원하게 고백하고 차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주군에게 ‘그냥 고백하고 남남 되십시오.’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레이번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로지 경이 밖에 계신데, 준비 다 되었으니 바로 모실까요?”

“그래. 스승님도 내게 물을 게 많으시겠지.”

유릭스는 트릭스터 생각을 하며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트릭스터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스승에게 소상히 이야기하고 제대로 상의하고 싶었다.

하마터면 헥센 백작이 얼어 죽을 뻔했다. 당장 트릭스터를 잡아 목을 비틀어버리지 않으면, 조만간 사달이 날 것이다.

일에 집중하자 헥센 백작의 생각도 잠시나마 옅어졌다. 유릭스는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스승에게 의례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승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는 대답 대신 유릭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한 차례 쭉 훑었다. 그러더니 준비된 소파에 폴짝 뛰어올라 앉으며 물었다.

“너희 키스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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