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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마세요-42화 (42/74)
  • *새 챕터의 시작이니, 빠르고 가볍게 슝슝 지나갑니다!42회

    고백은 마법처럼“어…….”

    수십 개의 대포처럼 내게 고정된 색색의 눈동자.

    연인과 다정하게 팔짱을 끼거나, 부채 뒤에 숨어 눈만 내놓거나, 아닌 척 장신구를 만지작거리거나, 아무튼 각자 내키는 대로 선 사람들. 그리고 나를 꿰뚫는 작살 같은 시선.

    무례한 탐색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좀, 뭐랄까, 전설의 대왕잉어가 된 기분이었다. 다들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뭐, 뭐야?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어려워하진 않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누구라도 수십 쌍의 눈동자가 자기에게 고정되어 있으면 부담스러울 거라고!

    바로 그 순간, 가운데 있는 마법사가 갑자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딱딱 끊어서 느리게 손뼉을 치는 그 미친 사람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손뼉 치는 소리가 갑자기 폭발하듯 늘어났다.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뭐지? 다 돌았나?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같이 박수를 칠 뻔했다. 그러나 마법사들이 휘파람을 불고 함성을 지르고 자기들끼리 웃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느리게 고개를 돌려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 말도 안 되는 마법사 문화를 당신이 대신 설명해 달라는 뜻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공작은 어쩐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젓고 답을 주었다.

    “환영한다는…… 그런…… 대강 그런 뜻입니다.”

    “맞아요, 환영해요!”

    앞에 있던 마법사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사람을 필두로 하여 목소리가 마구 쏟아졌다.

    “워후! 어서 와요!”

    “드디어 얼굴을 보네!”

    “주인공! 주인공! 주인공!”

    미, 미친놈들이 분명해.

    땀이 스미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한 번 꽉 잡았다 겨우 놓았다. 후, 하, 후, 하, 진정해. 진정하고 침착하자. 여기서 실수하면 진짜 죽어. 되도록 대답하지 말고, 마지막 대답 잘 챙기고.

    아씨, 어떡해!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아니, 많다고 해도 이렇게 주목을 받을 줄 몰랐다. 그냥 조용히 리리만 좀 챙기고 공작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했는데!

    낭패감을 숨기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했던 여자가 손을 뻗어 나를 낚아챘다. 그리 세게 잡아당기지도 않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며 마구 끌려갔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휘청했다가 겨우 고개를 드니,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마구 섞여 있었다. 적어도 열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의 얼굴을 다 눈에 담기도 전에 말이 마구 쏟아졌다.

    “무슨 음식 제일 좋아해요?”

    “데이라 경이 밥 잘 사 줘요?”

    “옷은 일부러 맞춰 입은 거죠?”

    “아아악, 몰라! 낭만적이야!”

    와……. 나 진짜 혼이 나갈 것 같아…….

    원래 마법사들은 다 이런가. 귀족 사교계랑은 비교가 안 된다. 비글 수백 마리와 함께 있는 기분이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여기서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안전할 것 같다. 아니,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는데 어떻게 하나하나 대답을 챙겨!

    상단 자선 파티 때도 느끼지 못한 심한 위기감이 발목을 낚아챈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저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무시, 무시해. 무시하자…….

    바로 그때, 큰 손이 내 어깨에 얹혔다. 훅 가까워진 온기와 익숙한 숨결, 돌아보지 않아도 공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파를 뚫고 와 내 두 어깨를 보호하듯 감싼 그가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다들 그만하시죠. 이게 무슨 예의 없는 짓입니까?”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공작과 지나치게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내 등에 닿은 공작의 가슴도 쿵쿵 뛰는 것 같았다.

    마법사들의 대답이 어지럽게 귓가를 스쳐간다.

    “에이, 좀 물어 볼 수도 있죠.”

    “나 느낌 진짜 좋아, 딱 느낌 왔어!”

    “로지 경은 어디 계셔? 데이라 경, 빨리 스승님께 소개해야죠!”

    공작이 한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대로 내 손을 잡고 몸을 돌렸다. 내가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부드럽게 돌아서는 그 몸짓이 유독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단은 아무 대답도 하지 마십시오. 더 시끄러워질지도 모릅니다.”

    “네.”

    안 그래도 대답 안 하려고 했어요. 여기서 누구랑 대화를 시작했다간 진짜 끝장이야.

    리리와 피피온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리리라도 좀 챙겨 줘야 하는데, 싶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 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단은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 싶어 공작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공작은 위층에 있는 작은 티룸으로 나를 데려갔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지도 못하겠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공간에 있다가 조용한 티룸으로 오니, 오히려 힘이 쭉 빠졌다. 반쯤 넋이 나간 채 하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공작은 테이블 건너편에 앉는 대신 내 곁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내 손을 잡은 그가 주저하다가 사과했다.

    “백작님, 죄송합니다. 변명이지만,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네? 아니에요. 아니, 그게 아닌가? 다들 뭐였죠?”

    말이 마구잡이로 튀어나갔다. 그래도 정신은 조금 수습되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공작의 눈에 미안함과 난처함이 가득했다. 그가 입을 열어 상황 설명을 시도했다.

    “잘못된 소문이 번졌습니다. 제가 백작님과…….”

    “저와?”

    공작이 마른침을 삼켰다.

    “백작님과…… 연인 관계라는 소문입니다.”

    “…….”

    공작의 눈동자가 좌우로 바삐 움직인다. 내 감정을 필사적으로, 초조하게 살피고 있다. 내가 혹시 불쾌하거나 불편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며 멍청하게 묻고 말았다.

    “네에?”

    공작의 표정에 기이한 얼룩이 졌다. 공작도 어처구니가 없겠지.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공작이 차분함을 가장해 대답했다.

    “백작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당연히 내키지 않으시겠죠. 제가 피피온 경을 잘 단속했어야 하는데, 그가 이미 톡톡으로 아는 마법사 전부에게 저희 이야기를 해버렸습니다.”

    “아, 그, 그렇군요.”

    어쩐지 그때도 입 가벼워 보이더라니!

    톡톡은 이럴 때 진짜 불편하다. 톡톡보다는 사용자의 성향이나 인성 문제지만, 이런 헛소문이 톡톡을 통해 더 빠르게 퍼져나가는 현상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는 마법사 전부’에게 소문을 내다니, 그건 너무 심하지 않아?

    다른 일은 나중에 피피온에게 따지고, 지금은 공작의 표정을 조금 풀어줘야겠다. 그가 어찌나 쩔쩔매며 내 손을 붙들고 있는지, 잘못한 일도 없이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다.

    “전 괜찮아요……. 오히려 공작님이 걱정이죠. 공작님도 헛소문 때문에 불쾌하셨을 텐데.”

    공작은 나와 입장 자체가 다르다. 타고나길 귀족에, 원래부터 돈도 많았지, 명예도 드높고.

    난처하게 고개를 떨어뜨리며 중얼거리자, 공작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그가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니요.”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들었다. 공작의 짙푸른 눈동자에 내 형상이 아른아른 비친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함마저 스며든다. 내 착각이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그가 나를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다.

    공작의 입술에서 언약과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응?

    무슨 소린가 싶어 눈만 깜빡거렸다. 내 이상한 반응에 공작이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화드득 내 손을 놓았다.

    “무, 물론 소문이 달갑다는 말은 아닙니다. 근거 없는 소문에 백작님께서 마음이 상하실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아. 아뇨, 저도 그렇게,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데요…….”

    공작이 싫었을 것 같아서 그렇지. 특별히 내 마음이 상할 일이 뭐가 있겠어. 나는 공작을, 어, 좋아하는데.

    무난한 대답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공작은 아까의 나처럼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렸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돌아온 대답도 어쩐지 멍하게 느껴졌다.

    “그렇습니까?”

    “네? 네.”

    “그렇군요…….”

    “네……. 그렇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 이상한 분위기를 깨자!

    “저, 공작님. 사실은 제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기가 어려워요. 사람이 조금 적은 장소로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낯을 가리신다고 했는데 제가 그 부분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군요.”

    “낯을 가…… 네, 맞아요. 그렇죠.”

    해탈한 심정이다. 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공작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솔직히 안 믿을 줄 알았는데.

    “그럼 이 티룸에 계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모일 수는 없을 겁니다.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도 충분히 만날 수 있고, 백작님의 마법사도 함께 있을 수 있겠죠.”

    확실히 이 티룸은 그리 크지 않고 아늑하다. 원래도 티룸 용도인 것 같지는 않고, 모임을 위해 잠시 이렇게 꾸민 것 같다. 드문드문 놓인 테이블과 의자의 수를 헤아려 보면, 열다섯 명 정도가 최대 수용 인원일까.

    낯가림 심하다고 거짓말한 건 미안하지만, 나도 살아야지.

    “아, 그렇겠네요.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건네자, 공작의 얼굴이 이상한 안도에 젖었다.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돌아가신다고 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네? 이런 일로 왜 돌아가요.”

    답지 않게 소심한 염려를 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웃음이 났다. 그제야 따라 웃은 공작이 마침내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가 백작님의 마법사를 데려오겠습니다. 소개해 주고 싶은 마법사도 몇 있는데, 백작님께서도 함께 만나 보시면 좋을 테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금방 돌아오겠지만, 차라도 한 잔 우려 드리고 갈까요?”

    “괜찮아요.”

    웬 호사야, 공작이 우리는 차까지 마시고.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일단은 인파 속에 내버려두고 온 리리가 신경 쓰인다. 피피온이 제대로 에스코트 하고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공작은 내 염려를 아는 듯, 더 권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공작의 뒷모습이 이상하게 크고 든든해 보인다. 처음 봤을 때부터 키가 크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비로소 긴장이 좀 풀려 의자에 등을 기댔다. 티룸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작은 온실처럼, 곳곳에 식물이 놓여 있다. 색색의 꽃도 여기저기 화사하게 피어서 눈이 즐겁다. 어쩌면 애초에 실내 식물을 기르기 위한 곳일지도?

    근데 이상하다.

    문 열리는 소리가 안 들려.

    문을 돌아보았다. 공작이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다. 찰칵, 찰칵,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 공작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그의 뒷모습에서 당혹이 전해진다.

    아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그때, 공작이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잘 다듬어진 얼굴에는 곤혹이 가득하다.

    “잠겼습니다.”

    “……예?”

    황당하게 되묻자 공작이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아예 내 쪽으로 돌아선 그가 난처한 얼굴로 설명했다.

    “마법을 사용해 봤는데 통하지 않는 걸 보니, 열쇠로 잠근 게 아닙니다. 강력한 마법으로 잠긴 듯한데, 아무래도…….”

    와, 설마, 아니겠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그 이름 아니겠지.

    “…트릭스터의 장난 같습니다.”

    [작품후기]김뭄님, 또롱이언니님, dewdrop님, 초코우유s님, 늘보라님, 소설같은삶님, 뿌잉뽀잉99님, Jnancy님, 케이a님, 좋은아침의줄임말좋아님, 여우와부엉이님, QA09님, 로시덴님, 네버린a님, 상큼한바람님, 노네임2님, 잉여잉여07님, 베리피치님, 뽀뿌리님, 누에삐오님, 알트라님, 문드림님, 하아111님, 알수없는게시자님, hihihu님, 십오월님, 더블뚝님, 아아아아야님, tlqkf1님, blackkit님, 슈크림붕어님, 0스텔라0님, 윙비님, 김뚝깨님, 레몬e님, maypsy님, 싱싱한알래스카연어님, 유후우후님, 0p0p님, 뉘시님, 켠G님, 냥카페사장님님, pato님, 나납님, HETH5622님, 장동우킬러님, 곰구미님, 쏨쏨이네님, 배고고곡파님, 조코난님, 이바니바니님, 소를리님, 카인G크리티카님, 라바트님, 미쯔조아님, 레드벨벳카롱님, Sol14님, 아비안님, fffwok님, 건시뭬님, 까망도롱뇽님, 몽뿌님, 오서하맑님, 푸른물속유영님, 레이dk님, 규젤님, Reinette님, 빠라람님, 전편 코멘트 모두 감사합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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