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40화 (40/74)

*머그컵의 행방...드디어 썼다... 오늘 속시원하게 자겠습니다...40회

고백은 마법처럼“저, 주인님.”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리리 덕분에 공작 생각이 끊어졌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계속 공작, 공작, 공작 생각뿐이다. 아무 의미도 없이 주고받은 아침 톡톡을 수십 번씩 다시 보고,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공작이 떠오른다.

하루가 온통 공작으로 가득 차버려서, 다른 존재는 내 일상에 끼어들 틈이 없다.

“주인님?”

“아, 어! 응, 왜?”

이것 봐, 대화하다가도 넋을 놓는다니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리리를 보니, 리리는 오늘도 아름답다. 마법사 제복을 입게 되면 또 다른 모습이 되겠지. 뭔가 마법을 부리는 요정처럼 보일 것 같은데?

“데이라 공작가에서 온 초대장인데요, 마법사 사교 모임이라고…….”

그렇게 말한 리리가 초대장을 하나 내민다. 이미 뜯어본 흔적이 있어서, 가볍게 안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공작한테서 톡톡을 받았었지. 리리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미리 이야기한다, 대충 그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와, 맞아. 내가 옷을 안 맞춰줬구나! 언제지? 시간 많이 빠듯한가?”

“아, 아니요! 옷 때문이 아니라, 거기 후원자와 함께 와도 된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후원자?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리리는 그리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계속 아팠던지라 사람과 활달하게 어울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물론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같이 가줄게. 그거 얘기하려던 거 맞지?”

“네. 당연하지만, 거기 데이라 공작님도 계실 거예요.”

“아, 음…….”

리리가 ‘인간적인 호감’을 언급하며 날 놀렸던 순간이 떠오르는군.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나 언제부터 공작한테 마음 있었던 거지? 남들이 보기엔 막 다 느껴졌나? 그래서 리리도 레디아도 그렇게 놀렸나?

“일단…… 알겠어. 네 옷부터 맞추자. 그래도 마법사들 사교 모임이라는데 잘 차려 입고 가야지. 학교 다니는 중인데 방학이라 오는 사람들도 있을 거랬어. 좋은 인상 남겨서 나쁠 거 없잖아.”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서…….”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니까.”

웃고 손을 저어 리리를 내보냈다. 다행히 리리는 선뜻 내게 마지막 대답을 양보했다. 이제 이 저주와 함께 살아가는 일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나.

일단 공작에게 리리와 같이 참석한다고 말해야겠다.

톡톡 앞에 앉으니 가벼운 긴장감이 전신을 훑었다. 후, 긴장하지 말자. 그냥 평소처럼 하는 거야, 평소처럼!

안 그래도 전에 공작 앞에서 물건을 너무 떨어뜨려서 민망했다. 이상하게 행동하지 말고, 자연스럽게만 하면 돼.

공작의 톡톡 번호를 입력하고 잠시 망설였다. 손가락은 타자기 위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뭐, 뭐라고 보내지?

바로 그때.

톡톡!

[백작님, 저녁 식사는 잘 하셨나요?]

공작한테서 톡톡이 왔다! 내가 먼저 연락하려고 했는데 지금 딱 저녁 안부를 묻다니, 타이밍도 대단하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괜히 기분이 좋아서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좋아, 이제 평범하게 대화하다가 자연스럽게 마법사 사교 모임 얘기를 꺼내면 되겠어.

[네, 공작님도 편안한 하루 보내셨죠?]

[네, 좋았습니다. 사실 말씀드릴 일이 하나 있었는데, 아침에 미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해 다시 연락드렸습니다.]

이상하게 가슴이 조여 온다. 혹시…… 벌써 영지로 돌아간다, 뭐 이런 건 아니겠지? 손가락이 타자기 위해서 마구 날아다녔다.

[무슨 일 있으세요?]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책상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슬슬 쓸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여러 번 끊어 보내지 않는 사람이니 시간이 걸리는 거겠지……. 근데 그렇게 길게 말할 용건이 뭐지?

[마법사 사교 모임 이야기인데요]

생각 외로 문장이 짧았다. 뭐, 이 짧은 문장 쓰려고 몇 분을 고민한 거야?

가만히 기다리자 또 몇 분이 흘렀다. 이대로라면 돌이 될 것 같아서 일단 답장은 했다.

[네, 말씀하세요^^]

공작은 또 한참을 망설였다. 아니,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나? 바쁘면 나중에 얘기해줘도 되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아 내가 먼저 말했다.

[바쁘시면 나중에 연락 주셔도 괜찮아요!]

[아닙니다. 사실은 마법사 사교 모임에 백작님도 함께 참석해 주시면 어떨까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답이 도착했다.

나도 이상하지만, 오락가락하는 공작도 좀 이상하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일 부분은 아니지만.

자, 여기서 고민 하나.

안 그래도 리리가 부탁해서 함께 갈 생각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아니면, 먼저 초대해 주시니 고맙다고 인사할까?

그냥 아무렇게나 말하면 되는데 나는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나. 원래 누굴 조, 조, 좋……아하게 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이 생기는 건가.

[안 그래도 오늘 저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리리가 함께 가달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공작님이 먼저 말씀해 주셨으니 더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겠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 이런 대답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공작은 어차피 어느 쪽이든 신경도 안 쓸 텐데.

평소라면 칼같이 대답을 챙기고 대화를 끝낼 공작이 어쩐지 조용했다. 턱을 괴고 화면을 바라보며 그냥 가만히 기다렸다. 빨리 대답해주면 좋겠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대화 안 끝내고 싶기도 하고.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그날의 에스코트는 제가 해도 될까요?]

[리리 에스코트요?]

[네? 아니요, 백작님 에스코트 이야기였습니다. 백작님의 마법사도 특별히 에스코트할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제가 마법사 중 한 사람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아,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깜짝이야. 순간 자기가 리리 에스코트 한다는 줄 알았다. 아니 뭐, 물론 못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잖아?

당연히 올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톡톡이 연달아 쏟아졌다.

[그럼 그날 뵙기륵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니 뵙기륵]

[아니 뵙기를]

[죄송합니다. 서둘러 보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광대가 하늘 높이 솟았다.

뭐야, 이 사람. 이런 실수도 하는 사람이었어? 타자기 앞에서 당황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웃기고 귀엽다. 가뜩이나 키도 크고 손도 큰데 작은 기계 앞에서 쩔쩔맬 생각을 하니 참.

[원래 다들 빨리 쓰다가 오타 많이 내요! 공작님도 톡톡에 완전히 적응하셨네요!]

자기도 민망한 정신을 수습할 시간이 필요한지, 공작은 잠시 말이 없었다. 조금 기다리자 이번에는 침착하게 다듬은 문장이 화면에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날 꼭 뵙겠습니다. 백작님과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도 공작님과 빨리 만나고 싶네요!ㅎㅎ]

농담처럼 보였으면 해서 일부러 웃었는데, 공작은 처음 보는 표현에 당황했을까? ㅎ나 ㅋ를 사용해 톡톡을 나누는 공작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데.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말은 너무 과했나. 음, 아니야. 그래도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잖아. 그냥 의례적인 인사라고 생각하겠지. 막 연인처럼 ‘너무 보고 싶어요!’ 이런 것도 아닌데 뭐.

머잖아 답장이 도착했다.

[저도 무척 보고 싶습니다.]

…….

이게 그냥 인사치레라면 진짜 너무하지 않냐……. 한참을 고민하다가 딱 한 마디 했다.

[감사합니다^^]

아, 내 심장. 공작 때문에 남아나질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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