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29화 (2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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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오해는 달콤하다연참 2/3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공작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아무리 성격 좋은 공작이라도 이번엔 정말 기가 막히겠지. 이해한다.

    “네, 네……. 저기, 말씀하세요.”

    순발력으로 승부하려고 했던 가상한 용기가 사라지려고 한다. 지금은 공작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난제다.

    공작은 몸을 움직여 레디아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사냥감을 노리며 빙빙 돌다 멈추는 맹수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마침내 공작의 입이 열렸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백작님께서 저를 부르셨을 때, 정말로 이 안에서 공격을 받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 그렇죠. 제가 좀 작게 부를 걸 그랬죠? 하하하.”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웃었는데 공작은 드물게 따라 웃지 않았다. 미소 한 줌 없는 얼굴이 진짜로 낯설다. 내가 공작 머리통을 깼을 때도 이거보단 부드럽게 대해줬는데.

    “창문으로 트릭스터가 뛰어들었거나, 직원 중 하나가 공격을 감행한 줄 알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저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요.”

    사실 저주 맞아요…….

    “노…… 놀라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진짜 해줄 말이 없다. 저주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작게 부르면 안 들릴 줄 알았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기도 민망하다. 나는 식은땀만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시야에 공작의 손이 들어왔다. 강하고 섬세한 손이 내 턱과 뺨을 부드럽게 받쳐 감쌌다. 이끌리듯 고개를 드니, 그가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렁이는 눈빛이 포근하게 나를 감싼다.

    “정말 다친 곳은 없는 겁니까?”

    “…예?”

    멍하게 되묻자 공작이 인내심을 갖고 반복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습니까? 정말로 별다른 이유 없이 절 부르신 게 맞나요? 다른 사람들 앞이라 말하기 어려우셨던 건 아닙니까?”

    아.

    그제야 공작의 시선이 이해가 간다. 직원들이 나간 후에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태도도.

    다행이다. 화가 난 게 아니었어. 그냥 걱정했구나.

    갑자기 긴장이 사라지고 미안함이 밀려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답만 제대로 챙겼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위험한 일인 줄 알고 문까지 부수고 달려왔는데, 별일 아니었다는 말을 들은 공작도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했을까.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죄송해요, 제가 경솔하게…….”

    “아뇨, 아닙니다.”

    공작이 비로소 안심한 듯 표정을 푼다. 서늘한 얼굴도 매력적이지만, 이 사람은 역시 따뜻한 봄바람 같다. 그가 열이라도 있나 확인하듯 가볍게 내 뺨과 이마를 짚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준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맨살에 살짝살짝 닿는 공작의 손이 차갑다. 무척 긴장했던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공작의 손을 감싸 주었다.

    “손이 차갑네요, 공작님.”

    “아, 네. 조금…….”

    공작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백작님 손은 따뜻하군요. 저야말로 백작님을 놀라게 해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문이나 다른 집기도 전부…… 배상하겠습니다.”

    배상 이야기를 하는 공작의 귀가 미미하게 붉어진다. 자기도 요란 떨며 들어왔다는 사실은 아나 보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짜증스러웠을 텐데, 내게 큰일이 난 줄 알고 미친 듯 달려온 공작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 물론, 인간적으로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손님이신데 그런 거 마음 쓰지 마세요. 제가 너무 과하게 불렀는데요, 뭐. 다음엔 좀 조심할게요.”

    “아니요, 언제든 불러 주세요.”

    공작은 잡힌 손을 빼지 않은 채 나를 응시했다. 은은한 미소가 물결처럼 나를 간지럽힌다.

    “언제든 백작님이 필요로 하실 때 옆에 있겠습니다.”

    “…….”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심장이 마구 뛰고, 조각처럼 반듯한 공작의 얼굴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맞닿은 시선을 비틀 수가 없다.

    침묵이 너무 길었다는 자각이 생기자 겨우 입술을 움직일 수 있었다.

    “네, 저도……. 도움 드릴 일이 있다면 뭐든지……. 늘 불러 주세요.”

    “네, 백작님. 영광입니다.”

    바람 부는 숲처럼 청량하고 시원한 공작의 미소. 그가 고개를 숙여 내 손등에 살며시 입술을 댄다. 더없이 소중하고 정중하게. 말도 안 되는 착각이 내 가슴에서 피어나도록.

    “제가 영광이죠……. 하하.”

    설마 이 사람 날 좋아하나?

    -

    공작에게 상단 건물을 간단히 구경시켜 주었다. 다음 버전 디자인이나 핵심 기술 같은 건 공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이 옥상 정원도 가고 상단 안에 있는 카페에서 차도 한 잔씩 마셨다. 물론 내가 대접했다.

    직원들을 방해하면 안 되니 최대한 사무실에 안 들어가고 복도나 바깥 공간에만 머물렀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공작은 지루한 내색도 없이 얌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직원들 시선은 최대한 무시했다. 그들은 내 눈치를 보며 자기들끼리 작은 소리로 속닥거렸다.

    “단주님이…….”

    “저 공작님이…….”

    “글쎄, 보고 도중에 갑자기…….”

    젠장, 보고 들어왔던 전원이 사방에 소문을 내고 다닌 게 분명하다. 지나가는 직원마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훔쳐보고, 심지어 우릴 스쳐 지나간 후 자기들끼리 소리를 죽여 웃기도 했다.

    ……상단주로서의 권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군.

    레디아까지 나타나서 몇 마디 거들었으면 정말로 창피하고 성질이 났을 것 같은데, 다행히 레디아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업무를 마친 후 공작과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내 저택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간간이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답을 챙겼다.

    이 ‘마지막 대답’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를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이제는 의무감을 가지고 제대로 챙기자. 세 번이나 죽을 뻔하고도 실수하면 그건 진짜 바보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오늘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내 저택 앞에 도착해 공작과 작별했다. 공작은 근처에 세워 두었던 자기 마차를 타고 돌아가기 전에 내게 부드럽게 인사했다.

    “네, 오늘 하루 동행하게 해주셔서 기뻤습니다. 다음에도 허락해 주시겠지요?”

    “그럼요.”

    “그럼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조심히 돌아가세요.”

    “백작님께서 저택으로 들어가시면 출발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어쩔 수 없군. 저택 입구로 가서 뒤로 돌아섰다. 공작은 여전히 마차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크게 소리쳤다.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휴, 또 대답 릴레이를 하고 있을 수 없으니 이 방법이 최선이다.

    어쩐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친 느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심장이 마구잡이로 쿵쿵 뛰며 존재를 알린다. 뭐 어쩌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왼쪽 가슴을 꾹꾹 누르며 내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엎어졌다.

    “으아…….”

    머잖아 할아범이 안으로 들어왔다. 내게 따뜻한 차를 내밀며 건네는 위로가 다정하다.

    “힘드셨다고 들었어요. 차 한 잔 드시고 일찍 주무시죠.”

    “으으응…….”

    신음처럼 대답하며 겨우 일어나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차를 홀짝이는 내내 할아범은 내 옆에 서 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라 슬쩍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왜 그래, 할아범?”

    “다 들었습니다. 공작이 문을 쾅! 아가씨를 번쩍! 평생 지켜드리겠습니다!”

    “푸우웁!”

    나도 모르게 입안의 차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할아범이 질색하며 손수건을 꺼내 자기 옷을 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분노로 눈을 이글거리며 할아범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 입 싼 놈들! 근데 공작이 평생 지켜준다는 말까진 안 했는데?

    “레디아 씨가 그러더라고요. 둘이 서로 바라보는데 그림 같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혼 날짜는 언제 잡습니까, 예?”

    “……그만해. 몰라.”

    찻잔을 떠넘기듯 건네고 이불을 휙 뒤집어썼다. 할아범이 침대 밖에서 실컷 놀리는데, 그 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장이 시끄럽게 날뛰었다.

    진짜일지도 몰라. 진짜로, 공작이 날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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