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27화 (27/74)

[작품후기]분위기가 말랑거리려고 하면 꼭 대답빌런 모먼트를 쓰고 싶은 제 마음... :D27회

어떤 오해는 달콤하다헥센 상단의 주인, 미르아 헥센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영업부장 레디아 선셋은 사실 상단주를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쩔쩔매는 시늉을 하면 금세 약해지는 미르아가 귀여워서 장난을 칠 뿐이다.

둘째, 레디아 선셋은 미르아와 유릭스 데이라 공작의 연애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냥 사귀는 게 아니라고 펄쩍 뛰는 미르아의 반응을 즐길 뿐이다.

“어, 단주님 오셨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이 창문에 매달려 그렇게 말했을 때, 레디아는 긴장하지도 들뜨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어……. 근데 남자랑 같이 오셨나?”

“뭐?”

레디아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들소처럼 창가로 달려갔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눈을 빛내며 상단주의 마차를 바라보았다.

과연, 말끔하게 차려 입은 미르아가 한 남자와 함께 내리고 있었다. 남자가 내미는 손을 거절하는 몸짓까지 분명하게 보였다.

레디아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뭐야, 진짜 공작이네?”

짧은 머리를 가볍게 정돈하며 마차에서 내린 미르아는 창문 쪽으로 유쾌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녀에게 화답하는 척하며 자기들끼리 마구 쑥덕거렸다.

“영업부 말이 맞았나봐. 마법사 제복이야.”

“그럼 진짜 데이라 공작이랑 단주님이랑?”

“미쳤다, 나 지금 소름 돋았어!”

그들은 모두 레디아에게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레디아는 너무 놀라서 아무 반응도 해줄 수 없었다.

세상에, 그냥 놀리느라 한 소리였는데 정말 유릭스 데이라 공작과 함께 나타날 줄이야!

그러나 일단은 일이 먼저였다. 미르아가 공작이 아니라 드래곤의 꼬리를 잡고 나타났다 해도 일이 더 중요하다. 레디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를 내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꾸었다.

“일단 빨리 준비합시다! 보고는 제대로 해야죠!”

나중에 진짜 제대로 알아봐야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레디아는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단속하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

회의실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안에서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들어가면 되는데, 나를 따라온 데이라 공작이 신경 쓰인다. 상단 내부의 중요 회의라, 외부인을 데리고 들어갈 수도 없고.

잠시 상황을 상상해 본다.

‘공작님, 실례지만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접객실로 안내해드릴게요. 내부 회의라 함께 들어가기가 조금 조심스러운 점 이해하시죠?’

‘물론입니다. 저는 밖에서 할 일 없이 기다릴 테니 천천히 용무를 마치세요.’

‘네?’

‘전 어차피 백작님을 보호하러 왔으니까요. 백작님과 떨어지면 할 일이 없죠. 안 그렇습니까?’

정신 차려.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데이라 공작이 그렇게 빈정거릴 리가 없잖아.

그가 뭐라고 대답하든 내 양심이 아프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바쁜 사람이 시간을 내어 여기까지 함께 와주었는데, 밖에 덩그러니 혼자 두기가 미안하다.

그때, 공작이 문 옆에 멈춰 섰다.

“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너무 당황해서 바로 고개를 쳐들고 되물었다. 공작은 당연하다는 투로 답했다.

“중요한 자리가 아닙니까? 저는 외부인이니 함께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죠.”

“아, 그, 그럼 접객실로…….”

“멀리 있으면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어려우니 여기 있겠습니다.”

진짜 미쳤다. 자기가 내 호위 기사로 고용된 사람도 아닌데 왜 여기 서 있겠대!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 것이며, 내 양심은 또 어떡하라고!

그러나 지금은 공작과 입씨름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마지못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작은 끝까지 미소로 나를 전송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든 피곤하시면 접객실로 가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탁,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심란하고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표정을 바꿔 끼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몰린다. 우르르 일어서기에, 진짜 낯간지러운 짓이다 싶어서 바로 손을 저었다.

“앉아, 다들 앉아요.”

할아범도 없는 자리다. 저주의 위험도 여전하니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상석으로 가서 앉자마자 두 손을 깍지 끼어 잡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일단 오늘 회의에는 새로운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꼭 내가 마지막으로 대답해야 해요. 내가 알겠다고 대답하면, 그 뒤에 이어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시겠죠?”

“네.”

바로 답이 이어진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다. 다들, 이게 무슨 쓸모없는 규칙이냐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 나도 이상한 거 알아. 근데 어쩔 수 없다고!

가까이 앉은 영업부장 레디아는 내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단주님……. 어디 아프세요?”

“그런 거 아니야. 대답하지 마.”

모두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어쨌든 보고는 시작되었다.

톡톡을 출시한 후 벌써 6년이 지났다. 좋지 않은 조짐은 아무것도 없다. 황실이 톡톡 제작의 독점권을 보장한 이상, 경쟁사 걱정도 필요 없다. 우리는 논란 없이 이대로 순항하면 된다.

이런저런 보고를 받느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래 한 자세로 앉아 있으려니 몸이 뻐근해서, 의자를 살짝 뒤로 밀며 자세를 바꾸려 했다.

그 순간.

이 익숙한 느낌.

다리가 안 움직여. 다리가!

“자, 잠깐만요.”

보고하던 레디아를 제지하는 내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마치 책상 밑에 뭘 떨어뜨린 사람처럼 허리를 굽혀 아래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시발, 또 돌이다!

“단주님?”

“어, 아니에요. 여러분 다 대답하지 말아 봐요. 전부 조용!”

그래도 다행이다. 돌이 되어 죽을 뻔한 위기를 두 번이나 넘기고 나니, 전처럼 요란을 떨며 당황하지는 않게 되었다.

나는 내내 이 안에 있었고, 같은 사람들과 얘기했다. 전체적인 마지막 대답을 하면 몸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근데 진짜 이상하다. 정말 예민하게 마지막 대답을 챙기려고 애썼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대답 안 했지?

바로 그때.

우드득, 이상한 소리와 함께 다리가 더 심하게 굳는다. 경악하여 다리를 움직여보니, 이제는 무릎 아래가 죄다 돌이 되었다.

“미친?”

“네?”

“아니, 말하지 마!”

의아한 듯 묻는 레디아에게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왜, 왜, 뭐, 뭔데? 도대체 뭔데? 나 마지막으로 대답했잖아. 나 다 조용히 시키고 내가 대답했다고!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바지 정장 아래서 다리가 점점 굳어간다. 진짜, 진짜 이유가 뭔데. 할머니, 할머니, 뭔데, 나한테 왜 이러는데! 나 진짜 다 대답했어!

미칠 것 같다. 모든 평상심이 다 날아간다. 와, 나 설마 진짜 여기서 죽는 거야? 다른 사람들 다 보는 데서 갑자기 멍청한 돌덩어리가 돼서 죽는 거냐고! 저택 침대도 아니고 상단 회의실에서 죽어야 하냐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개미만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 마지막 대답.”

날 보는 레디아의 표정이 썩어간다. 이 상단주가 미쳤나 하는 표정이다. 조용한 회의실에 내 목소리가 다 들릴 거 안다.

아, 다들 이해 좀 해줘라,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마지막 대답. 마지막으로 대답. 마지막으로 대답했다니까? 할머니? 할머니?”

너무 당황하니까 머리가 굳어 버린 느낌이다. 혼자 속삭이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악, 악, 도대체 뭐야! 어디서 놓친 거냐고! 설마 마차에서? 마부랑 대화한 적 있나? 아니면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에? 아니, 그럼 진작 돌이 되기 시작했을 텐데, 도대체 누구지?

제발 생각해 내. 제발, 제발, 누구야. 누구냐고!

침착하자. 침착해.

마차에서 공작에게 마지막 대답을 했지. 그리고 할아범도 없이 공작하고만 여기로 왔어. 공작한테 회의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해야 해서 고민하다가, 다행히 공작이 선뜻 먼저 밖에 있겠다고 해줘서…….

헉.

설마…… 설마 또 공작한테 대답 안 했나!

정답이라고 외치듯 허리까지 석화가 진행된다. 진짜 죽기 직전이다, 미친놈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어! 성대까지 돌이 되기 전에 빨리, 공작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공작님! 공작님, 공작니이이이임! 빨리 와 봐요!”

쾅!

그 순간,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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