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하지 마세요-26화 (2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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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오해는 달콤하다연참 2/2

다음날부터 데이라 공작은 정말로 아침마다 톡톡을 보냈다. 우리는 대충 이런 대화를 이어갔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편안히 주무셨나요?]

[네, 저는 늘 잘 자요! 공작님도 편히 주무셨죠?]

[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혹시 외출할 일 없으세요?]

[오늘도 저택에 있으려고요.]

[아, 그러시군요.]

[넵!]

[혹시 나갈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이죠. 꼭 기억할게요!]

이런 식이거나, 아니면.

[백작님, 좋은 꿈 꾸셨기를 바랍니다. 위험한 일은 없으셨지요?]

[네, 전 안전해요.]

[확인할 겸 제가 백작님 저택에 한 번 들러도 될까요?]

[아뇨, 전 정말 안전하니까 염려치 마세요!]

이런 식이거나.

[백작님, 편히 주무셨지요? 오늘 마법사 거리에서 작은 자선장이 열린다고 합니다.]

[와, 신기하네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재밌나요?]

[저도 수도에 온 건 처음이라 참석한 적 없는 행사입니다. 혹시 가실 계획이라면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앗, 저는 오늘도 외출할 계획이 없어서요. 제안은 감사합니다!]

이런 식이었다. 물론 그때마다 지옥의 답장 릴레이를 해야 했지만, 그건 잊어버리도록 하자.

솔직히 나도 너무 나가고 싶다. 거의 5일 가까이 저택에만 갇혀 있으니 답답하다. 근데 공작 때문에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아범은 혀를 끌끌 찼다.

“고집 부리시긴. 그냥 나가면 되잖아요.”

“공작이 따라올 거 아니야!”

“안전하고 좋죠, 뭘. 저번에 아가씨도 동의한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양심이…….”

양심이 아프다. 윽.

데이라 공작도 할아범도, 내가 공작 때문에 트릭스터의 먹잇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데 어디 외출할 때마다 공작을 무슨 호위 기사처럼 데리고 다니라니, 불편해서 참.

점심(샌드위치)을 다 먹고 차를 따르면서 할아범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렇다고 새해 보고 받으러도 안 가실 거예요? 상단에 한 번은 들러야죠. 바로 내일인데.”

“아, 그냥 톡톡 보고 받을까……. 세상이 변했는데 꼭 얼굴 맞대고 보고 받아야 할까.”

“제발 좀, 자꾸 신문화 창조하지 마시고.”

새해 보고는 물론 중요한 문제다. 나도 이때만큼은 늘 상단에 들러서 사람들 얼굴을 보고 직접 보고를 받는다. 평소에는 하는 일 없이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져야 하니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냥 공작한테 말하지 말고 가야겠다.”

할아범이 찻주전자를 떨어뜨렸다. 쨍그랑, 반쯤 깨지는 소리가 나서 기겁하여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얇은 주전자가 깨져서 뜨거운 차가 줄줄 흐른다.

“으악, 할아범!”

책상을 타고 주르르 흐르는 차를 닦으려다가 손이 닿았다. 앗, 뜨거! 씁쓸한 블랙 티가 서류를 마구 적시고 톡톡에까지 튀었다. 아, 이건 기계라 고장난다고!

“왜 그래, 막 손이 떨려?”

“공작 없이 왜 외출합니까! 또 돌 되고 싶어요?”

또 시작이야.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니까 그러네.

“지금은 트릭스터보다 이 차가 더 위험하겠다!”

“아가씨는 상황의 심각성을 몰라요! 아가씨가 돌이 되어서 죽으면 전 어쩝니까, 예?”

“추천서 미리 써둘게. 유언장처럼!”

“아가씨, 어떻게 그런 말을…….”

할아범이 왈칵 울음을 터뜨리더니 휙 등을 돌려 뛰쳐나갔다.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이 쾅 닫힌 후에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헉, 대답 안 했어.

엉망이 된 책상을 버려두고 재빨리 뛰어나갔다. 복도 저 끝으로 멀어지는 할아범의 뒷모습에 대고 버럭버럭 외쳤다.

“할아범! 할아범, 나 대답했어! 들었지?”

할아범이 원망 어린 표정으로 나를 휙 돌아보더니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아, 내 인생. 도대체 언제까지 이 웃기지도 않는 짓을 반복해야 한단 말인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엉망이 된 책상을 직접 치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공작과 만나고 싶기는 하다. 인간적인 호감이 있으니까. 근데 공작과 함께 외출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안 그래도 돈으로 작위를 샀다는 험담을 듣고 사는데, 공작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

내가 돈으로 공작도 샀다고 할지도 몰라.

나야 원래 대단한 명예는 없는 사람이지만, 공작은 다르다. 그쪽의 이름에 흠집을 낼 수는 없지.

음, 근데 공작도 돈이 많으니 그런 얘기는 안 들으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내일은 혼자 가야지. 혹시라도 미르아 헥센 백작이 공작도 돈으로 샀다, 그런 얘기 듣게 하면…… 너무 미안하잖아.

-

나는 분명 양심적으로 다짐했건만.

“백작님,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왜 데이라 공작이 내 저택 앞에 있는 걸까?

오늘의 공작은 말끔한 제복 차림이다.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차림인데, 이상하게 그때보다 훨씬 더 멋있어 보인…….

아니, 이게 아니고.

나는 고개를 홱 돌려 내 뒤에 선 할아범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할아범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게 턱을 치켜들 뿐이다. 불꽃 튀는 눈빛 대화가 오간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보시는지?’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언제요? 전 못 들었는데? 늙으니 귀가 어두워서, 아이고…….’

말을 말자.

홱 고개를 돌려 다시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로 웃고 있을 뿐이다. 아, 그렇게 웃으면 내가 냉큼 손이라도 잡을 줄 알고?

“모시겠습니다.”

“네.”

냉큼 잡았다. 뭐 어쩌겠어. 공작은 책임감에 이럴 뿐인데.

공작과 함께 내 마차에 올라탔다. 할아범은 문을 닫기 전에 내게 입모양으로 당부했다.

‘좋은 시간 보내십쇼.’

‘진짜 이럴 거야?

할아범은 대답도 하지 않고 탁 문을 닫았다. 이번에 할아범은 굳이 마부석에 끼어 앉았다. 허리도 안 좋을 텐데, 참.

마차가 출발하고, 닫힌 공간에는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공작이 나를 ‘지켜준다’고 말한 뒤, 함께 외출하는 건 처음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괜히 의자 시트만 만지작거렸다.

맞은편에 앉은 공작의 구두가 보인다. 반짝반짝 잘 닦인 구두다. 가죽 술이 많이 달린 구두가 유행인데, 제복 구두라 그런지 디자인이 클래식하고 단순하다. 평소에는 어떤 신발을 좋아하나. 괜히 궁금증이 일었다.

그때,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작님, 오늘 무척 달라 보이시네요.”

“아, 네? 그런가요?”

뭐가 다르지. 얼굴이 다른가? 머리가 좀 길었을지도 모르겠네.

내 표정을 보던 공작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정장을 입으신 모습은 처음 봅니다.”

아, 무슨 소린지 알겠다.

공작과 마법 정보상에서 만났을 때는 로브 차림이었다. 자선 파티 때는 간단한 드레스 차림. 공작한테 사과하러 갔을 때도 단정한 치마였고, 저번에 나인피스에서 함께 식사했을 때도 비슷한 스타일이었지.

지금은 할아범이 정성껏 다린 셔츠에 재킷, 정장 바지를 입고 굽 없는 구두를 갖춰 신고 있다. 상단에 보고 받으러 가는 날인데, 어느 정도는 신경을 써야 하니까.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간단히 대답했다.

“아무래도 직원들을 많이 만나는 날이니까요.”

“제가 제복을 입고 와서 다행입니다. 백작님과 함께 있을 텐데, 제 옷차림이 누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하하, 그런 거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백작님을 만날 때는 제 옷이 늘 신경 쓰입니다.”

“…….”

꼬시는 건가.

표정을 확인하니 공작은 그냥 웃고 있을 뿐이다. 평소처럼,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표정이다. 특별히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고,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그래, 그냥 옷에 신경 많이 쓰는 사람인가 보지. 또 맘도 없이 저런 말 한다. 아오.

해탈한 심정으로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공작이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는 집사를 통해 연락을 주셔서 놀랐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제가 직접 말씀드려야 했는데…….”

사실 같이 안 가려고 했는데 할아범이 멋대로 연락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일단 바로 사과했다. 아랫사람을 시켜 연락했으니, 제아무리 성격 좋은 공작이라도 기분이 상할…….

음, 표정을 보니 그러진 않았군. 정말 대단한 인격자야.

“네, 조금 서운하더군요.”

“……예?”

공작은 알아듣지 않았느냐는 듯 나를 바라만 보았다.

아, 그, 그래. 맞아. 저게 공작의 서운한 얼굴인 건가. 공작이 내 고용인도 아닌데, 할아범을 통해 오라 가라 불렀으니 기분이 나빴을 법도 하지.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 하고 사과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직접 연락드릴 상황이 아니었어요.”

“네, 그럼 다음에는 꼭 백작님이 연락을 주시겠지요?”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거의 소리치듯 대답했다. 마차가 울리도록 큰 소리였는데, 공작은 불편한 기색도 없이 만족할 뿐이었다.

“농담입니다. 백작님께도 당연히 사정이 있었겠지요.”

농담도 하는 사람이었나? 그의 얼굴에 은은하게 피어난 웃음이 개구진 동시에 상냥하다.

“그래도 백작님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만은, 철없는 투정이라 여기지 마시고 너그럽게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백작님과 대화하면 무척 즐거워서요.”

진짜 이렇게 말하는 거 반칙 아니냐.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려고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뺨을 스치니 시원했다. 나를 응시하는 공작의 짙푸른 눈동자처럼. 사람 눈을 보고 태양 같다느니 바다 같다느니 하는 소리 싫어하는데, 공작의 눈은 정말로 바다 같다.

그 바다 속에는 어떤 생태계가 펼쳐져 있을까. 내가 다 알지 못하는 공작의 세상은, 얼마나 넓고 오색찬란할까. 나중에 어떤 행운아가 그 너른 바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될까.

대답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저도 공작님과 대화하면 재밌어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저도요.”

“네.”

“네, 그렇죠, 공작님.”

“네, 맞습니다.”

“…우리 잠깐 말하지 말고 갈까요?”

제발 5분만이라도 간질간질한 분위기 유지해 줘요.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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